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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찬양예배사역

넘치는 예배자Overflowing Worshiper③

by Message.K 2022.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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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예배자> 2번째 장chapter '흘러 넘치는 예배자'로 이번 포스팅은 진행하겠습니다. 예배자를 위한 강의, 예배자의 자질에 있어, 자원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을 아는 지혜, 거룩과 성결 등 내면적인 자질을 다루고자 합니다. 

 

 

 

 

02. 흘러 넘치는 예배자

예배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1. 자원하는 마음

자원하는 성격,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을 세울 때 자원하는 것을 기뻐하며 쓰신다.

 

 

(출 35:5)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정신, 자원 봉사정신 Volunteership이다. 예수전도단의 화요모임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보수나 이익과 상관없이 섬긴다. 문희곤 목사는 일정한 수업이 없이 찬양사역하는 제안을 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레위인들도 그러한 방법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직업이 있다면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고 자원 봉사했으면 한다.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예물

자원하는 마음에는 부담감이나 떨떠름함이 없다. 오로지 즐거움과 기쁨만이 있다. 왜냐하면 그 동기가 명백하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에스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헌금생활과 아울러 하나님께 헌신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스 3:3-스 3:6]

(3)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4)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5)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예물 드리되(6)칠월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

 

 

궁색한 헌금생활, 늘 우후죽순처럼 드리는 헌금(생활). 있으면 드리는 거고, 없으면 못 드리는 거고, 생각나면 드리는 거고, 생각 못 해서 빠뜨리면 양심에 덜 미안해하면서 살짝 건너뛰는 거고 그러면 생활비 만원 버는 것이 나의 예전의 헌금생활방식, 늘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성경적인 헌금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기쁨과 감정적인 상태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드린 헌금과 번제와 제물은 특색이 있었다.

 

regular burnt offering-늘 빠지지 않고 정기적으로 드려지는 헌금의 보편성. 정기성, 주기성.

 

그들의 관심사는 성전 건축이었지만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예배의 회복이었다. 정돈되지 못한 삶과 살림살이, 흐트러진 일상들, 노예생활에서 오는 후유증살림살이가 힘들고 자식들은 아직도 대학입시 문제에서 해결되지 못하였고, 남편의 직장생활은 형편없고 가정살림은 거덜나게 생겼고 가계 또한 형편없다. 주위의 친구들이 떠나갔고 집안의 부채는 산떠미처럼 쌓여있다. 유대 백성들의 환경이 그러했다. 노예 생활, 머슴살이를 하다가 고향으로 기쁨을 안고 돌아왔지만 제대로 정착되거나 안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스룹바벨과 영적 리더들은 그들의 살림살이의 회복, 재건설보다 먼저 예배를 마음에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평안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모든 환경과 상황이 종료되지는 않았지만 만군의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기고 무엇보다도 먼저 예배의 갱신, 예배의 회복을 꾀하였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삶이 힘들고 마음은 무겁고 육신은 쇠약해가지만 그리스도인은 예배를 먹고 살고 예배의, 예배에 의한, 예배를 위한 그리스도인임을 기억하자. 오,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었음 한다.

그들은 첫번째로 먼저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예배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이전에 먼저 예배자들이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찾고 간구하고 나아감이 있어야 한다.

 

 

(대하 16:9)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임하셔도 그만이고 안 임하셔도 그만인 그런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99%가 아닌 100%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자를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찾고 계신다. 자발적으로 주를 찾는 예배자들이 되시기를 기대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예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것을 기억하라!(요 4:24)

 

 

[스 3:3-스 3:4]

(3)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4)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지만 주변 정착민들의 반대가 예상되었지만(NIV: despite-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 터 위에서 제사드릴 단을 만들어 하나님께 희생과 헌신의 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성전 예배 규정에 따라 정상적인 성전 제사가 날마다 그리고 절기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점을 성전 건축 이후로 미룰 수 없었다. 우리가 모든 스케줄과 업무와 삶의 모든 일들은 뒤로 미룰 순 있다 하더라도 예배를 미룰 순 없다. 1차 포로 귀환한 무리들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알았다. 예배를 미룰 순 없다. 예배를 거스릴 순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숨쉬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과거의 예배자들의 순수하고도 정열적이고 규모 있는 예배에 대한 자세를 닮기를 소망한다.

 

new moon sacrifice-신선한 예배에 대한 기대와 늘 신선한 하나님에 대한 성도의 마음자세가 드러남.

 

 

[스 3:5-스 3:6]

(5)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6)칠월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

Regular burnt offering-new moon sacrifice-all the appointed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올 때 그냥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벅찬 감격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왔다. 성전의 터가 준공되지도 않았고 완벽한 예배건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격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에 찌들었던 과거에서 해방된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감격을 그들은 예물로 표현하였다. 궁색한 헌금, 볼품 없은 예물, 마음에도 없는 무의식적인 틀에 박힌 헌금생활거기에는 능력이 없다. 

 

 

 

여러분 돈의 힘을 믿지 않는가? 그 돈의 힘을, 물질의 힘을 하나님께 보여보라. 하나님께서 그 돈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우리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우리에게 융자받으시기 위해 헌금하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은 그렇게 쫀쫀한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고대사회 돈이 없던, 화폐와 지폐가 없던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주도해가시는 전지전능하신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시다. 그 분 앞에 즐거이 헌금을 드리라. 기쁨으로 드리는 헌신과 헌금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임하심과 능력과 복이 임한다. 이것은 기복신앙이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부처상에다가 다보탑에다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지극정성을 다하는 세상의 우상숭배자들 보다 더 하게 우리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하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마음과 정성을 표현해 보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털어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드린,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드린 그 분 앞에 옹색하고 궁색하게 나아가지 말라. 빈 손으로 오지 말라.

 

 

명절 때가 되면 부모님에게 빈손 들고 자식들은 없을 것이다. 우리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에도 여러분의 주머니를 넉넉하게 하여 그 분 앞에 드리라. sacrifice 를 드리라. 희생 없이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는가? 저희 부모님도 일년 대추 농사한 것, 이 천만원을 하나님의 교육관건축에 바쳤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자식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헌금 생활에 전폭적인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 그 전폭적인 개혁과 변화로 인해 여러분의 인생이 윤택해질 것이다. 그 윤택함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소산이다. 

 

 

[스 3:5-스 3:7]

(5)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6)칠월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7)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하게 하였더라

 

 

그들은 자발적으로, 한 마음으로, 그리고 즐겁게 예물을 드리면서 먼저 예배하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일꾼과 자재 준비에 착수했다. 예배의 회복이 성전 건축을 앞섰다. 그 뿐만 아니라 

 

freewill offering-의무감이나 강박이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순전하고도 자발적인 의지에서 출발함.

 

자발적으로 예배에 모임에 참석한 그들에게는 감격이 있었고 헌금이 있었고 그리고 즐거움은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이다. 그들은 즐겁게만 예배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3절-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주위 사람들의 반대와 분위기의 심상치 않음, 환경의 열악함, 반대세력 등)

6절-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분위기가 안 따라줌, 모양새 없음, 초라함, 볼품없음 등)

 

두 가지의 큰 방해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영적인 즐거움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즐거움이 넘쳤음 한다. 예배로 인한 즐거움, 말씀으로 인한 풍성함, 자발적인 헌신과 즐거이 드리는 헌금으로 기쁨, 예배를 통한 하나됨영적인 축제적인 예배가 회복되기를 소원한다.

예배에 능력이 있음을 믿으라. 그리스도인은 한 번 잘 드린 예배로 인해 평생이 축복된 삶에 서게 된다.

그리고 올바른 예배를 드리자. 

자발적으로!!!

희생의 헌금을 드리며!!!

즐거이 감격적인 자세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라!

 

아벨은 한 번 잘 드린 피의 제사로 하나님이 받으셨지만 가인은 한 번 잘못된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께 내침을 당하였다. 저주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 

자발성에는 하나님을 진실로 예배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마음이 있었다. Heart of Worship.

 

이동원 목사는 에스라 2장 68절은 헌금은 헌신의 구체적인 증거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스 2: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우리의 불규칙한 헌금은 우리의 불규칙한 헌신의 표시이다. 우리의 형식적인 헌금은 우리의 헌신이 형식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생이 없는 최소한의 헌금은 우리의 헌신이 희생을 거부하는 최소의 체면치레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헌금 없는 신앙생활은 우리가 헌신 없이 신앙생활 하겠다는 위선의 증거입니다

 

 

 

 

 

2. 감사하는 마음

2-1.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존 파이퍼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는 모든 선행은 그분께 빚을 갚는 것과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우리의 선행은 그 분의 은혜에 더 많은 빚을 지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름 아닌 은혜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하신다

 

고 하면서 또한 선행은 은혜를 갚지 못한다. 그것은 더 많은 은혜에 빚지게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너무나 많은 일을(구원을 포함한 모든 것)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께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채무자의 윤리이다. 우리는 이러한 논리로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을 갚으려는 노력을 한다. 채무자 윤리는 우리가 결코 그 빚을 완전히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한다. 선행과 종교적 행위는 우리가 하나님께 진 무한한 빚을 갚기 위해 지불하는 할부금이 된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위해 일하길 그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분을 위해 일하길 기다리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분을 위해 하는 모든 수고조차 그 분에게서 오는 선물이며 따라서 빚을 갚는 것으로 생각될 수 없음을 상기시켜 주심으로 우리를 채무자의 사고에 젖어 들지 않게 지키십니다(롬 11:35-36; 15-18). 사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분께 빚을 갚으려고 하는 모든 선행이 사실은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우리로 그분의 은혜에 더 많은 빚을 지게 합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라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의 빚을 점점 더 많이 지면서 다름 아닌 은혜에 영원히 머물길 원하신다.

이처럼 감사는 우리의 사역의 동기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일함의 내적 이유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빚을 주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시 않는다. 오히려 그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하면서 감사하기를 기뻐하신다. 

감사가 사랑을 통해 일한다가 아니라 믿음이 사랑을 통해 일한다(faith works through love, 한글 개역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는 신약의 중심된 윤리적 선언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갈 5:6).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감사가 사랑을 통해 일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율법적인 위험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채무자의 윤리를 경계하고, 항상 의지하는 기쁨에서 비롯되는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가운데로 양떼를 인도하라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2-2. 서로를 인해 감사해야 한다. 

똑 같은 사람이나 현재의 부르심이 다른 것뿐이다. 팀원 서로 간에, 드럼은 베이스에게, 일렉은 건반에게, 싱어들은 엔지니어에게 모두가 서로를 향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경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관계 위에 기름 부으신다. 사역에 독불장군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된다. 유기적인 공동체로 협력하여 사역하며 서로를 인해 감사해야 한다. 

 

 

 

2-3. 우리가 정말로 감사해야 할 대상은 예배자인, ‘회중들’이다. 성도들이다. 

(살전 1:2)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아무리 훌륭한 찬양인도자나 예배인도자라 할지라도 회중이 따라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때때로 찬양을 인도하다가 기타연주에 신경을 쓴 나머지, 나의 감정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공연을 한다거나 청중에 대해 무관심해 하거나 아니면 청중 앞에 우쭐거리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절대 금물이다. 청중이 없다면 인도자도 필요 없다. 회중이 없다면 인도자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전이고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제상적인 특권을 부여 받았는데 굳이 인도자가 필요한가? 그러기에 청중에 대한 깊은 인정과 감사함이 바탕이 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서로의 자리매김과 위치선정에 대한 부르심에 감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를 향해서 감사하기 시작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시 50: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

 

 

또 이렇게 감사하면 그 예배에 또 하나의 축복이 온다.

 

(고후 4:15)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3. 하나님을 아는 지혜

01- 그러면 하나님을 인도자들이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01-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결국 그들은 거룩함을 상실하고 그들의 기름 부으심과 생명력이 끊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그 결과로 공동체의 예배가 죽어간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도 예배 인도자들이었다.

삼상 2장 12-17절과 22-36절에 나온다.

 

 

[삼상 2:12-삼상 2:17]

(12)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13)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14)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뿐 아니라(15)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16)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17)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삼상 2:22-삼상 2:36]

(22)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23)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24)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25)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26)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7)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28)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29)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30)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31)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32)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33)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34)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35)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36)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을 알지 않는 예배인도자는 솔직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 않는 엘리의 두 아들을 버리시고 충실한 제사장, 신실한 예배인도자의 발굴을 꾀하셨고 그가 바로 사무엘이다. 

 

 

02-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된다.

초창기 CCM가수들 중에서도 최인혁, 박종호, 송정미, 소리엘 등이 활동을 잠시 쉬고 예수전도단의 6개월 합숙 프로그램인 DTS에 간 이유도 바로 이러한 탓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희생과 포기가 따른다. 그래도 가치 있는 일이다.

Coram Deo

 

 

 

 

03-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 

1-성경을 읽어야 한다. 하루에 한 장이라도 읽어야 한다. 

 

2-성경을 묵상해야 한다. 묵상의 힘은 대단하다. 고형원 형제-묵상 시간과 중보 기도 시간에 나오는 것이다. 묵상을 하나님을 알아가는 신비의 명약과도 같은 것이다. 성령님과 함께. 

 

3-말씀을 많이 듣기를 바란다. 예배준비와 예배시간에, 설교할 때 다른 용무를 보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 복을 제 발로 차는 격이 된다. 말씀을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도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잘 잡아야 한다. 

 

 

 

 

4. 거룩하기 위한 성결과 회개

 

(레 11:45)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를 가까이서 섬기는 제사장, 선지자 등 예배에 관련된 자들은 당연히 거룩이란 단어를 제일 많이 적용되는 사람들이다. 철저한 거룩함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구별된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예> 옷, 헤어스타일, 옷 매무새, 

회개-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기 위한 준비운동이다.

 

-개인적 영성(성경읽기, 묵상, 큐티, 개인기도, 중보기도, 경건서적 읽기, 찬양하는 삶.)

-묵상_포괄적인 활동-본훼퍼의 예/

 본회퍼는 사람들이 본문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읽고 넘어간다면서 한 본문을 가지고 일주일 전체를 묵상할 것을 권고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분석하려 하지 않고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마리아처럼 마음에 두고 생각하라.” 

-사람들과의 관계성(공동체 내에서)

 왕따는 싫다!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여유와 포용심, 용서의 욕구

-음악적 능력(감수성 깃든 카리스마)

이원론은 아니지만능력은 있느나

가요, 팝, 영화, 드라마 이야기로 지겨워할 줄 모르면서 찬양 하나 부르지 않는 사람(교제할 때 보면 안다!!!)

Vs 찬양할 줄 아는 사람

 

 

 

 

예배팀이 조심해야 할 거룩함의 적들

SMILED PIG

S: Sex

M: Mannerism

I: Insult(무례한 것)

L: Lust(탐욕)

E: Egoism(이기주의, 자기 중심적인 삶)

D: Debt(빚지는 것, 꾸는 것)

P: Pornography(음란물)

I: Idolatry(우상숭배)

G: Gambling(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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