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설교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을 토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주제를 다룬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오래 전에 설교한 포스팅입니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러분이 잘 사용하는 한글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최고의 워드프로세서이다. MS word보다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한다(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우리가 모든 소프트웨어가 그렇지만 요즘은 다르겠지만 예전에는 한글 2003에서 작성한 글을 한글 97에서 작성하고자 하면 파일이 안 열리는 것이다. 급하게 숙제를 해야해서 피시방에 가서 작업을 하려는데 이런 문서가 안 열려서 혼난 적이 있다. 또 윈도우 프로그램을 까는데 지금 윈도우 VIsta가 나온지 꽤 되었는데, 윈도우 95운영체제를 생각하면서 그 때의 환경가운데 비스타와 호환되는 프로그램을 95에서 돌리려고 할 때 그것만은 어리석고 바보같은 짓은 없는 것 같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경험이 없는가?
이 비유가 완전 적절하진 않겠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때도 윈도우 95로 자꾸 윈도우 비스타를 이해하려고 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흔히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설명할 때 이런 비유를 한다. 개미가 인간의 세상을 알 수 있는가? 개미가 인간의 모든 사회,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역사를 알겠는가? 개미가 인간 한 사람의 머릿속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것만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는 크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우리 머리로 하나님은 온전히, 완전히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 걸리버를 대하는 소인국의 소인의 심정이 하나님을 대할 때 우리가 느끼는 심정과 비슷하다고 비유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머리로 절대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렇다면 그 분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의 두뇌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뇌는 매분, 매초마다 다운되는 비극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컴퓨터 다운되면 정말 죽을 맛인거 알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우리의 두뇌가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다운되는 대목은 바로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바로 목사님이 늘 축도하실 때 사용되는 말들 속에 드러나는 교리이다.
한 번 같이 읽어볼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것은 바로 '삼위일체 교리'를 말한다. 1+1+1=1 이라는 신비한 교리!
하나님이 그렇다면 세 분? 삼위일체를 이렇게 이해해선 안 된다.
나를 예를 들면, 나는 집에선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교회오면 목사이다. 직장과 가정과 부부관계에서 역할/기능적인, 이런 역할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삼위일체의 삼위의 기능function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은 각기 다른 위격을 가진 존재이다. 위격이라는 말이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인격person을 가진다는 말이다. 다른 인격,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이 하나라는 것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개미가 어찌 인간을 이해하겠는가?
또 한 가지! 원래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롭다. 근데 요즘 세대는 전부 혼자놀기의 달인, 혼자놀기의 대가들이 우후죽순 탄생하고 있다. 위대한 혼자놀기의 달인, 슈퍼스타 혼자놀기의 신개념 인간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여러분들 아닌가? 외로움도 안 타! 외로움을 탈 겨를이 없어! 왜? 외롭다고 느끼는 여유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다, 학원이다, 보충이다, 인터넷세상이다, 스마트세상이다 보니...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러면 안 된다. 혼자 놀다가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 그런 인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은 함께하는 인생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많은 다양한 동네에서 온 다양한 애들이 한 교회에서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하나됨, 이런 것을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그림을 그리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냥 십자가에 자살하러 가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에 목매어 죽을거야! 죄지은 놈들을 내가 어찌 해벌릴라고!!! 헐! 예수님은 자살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죽으시면서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 수 많은 인종-흑인, 백인, 황인, 색깔-검은색, 똥색, 흰색, 거무틔틔, 노리땡땡..., 스타일-힙합스타일, 락스타일, 발라드, 댄스 등등, 성격-차도녀, 차도남, 까도남, 까도녀, 된장녀, 훈남, 추남, 미남, 엽기남,..., 다른 가정형편-잘 사는 애, 못 사는 애, 경제적인 여력에 의해 차별되는 기준..., 정서-부모이 살아계시는 친구나 엄마만 살아계시거나, 아빠만 살아계시거나, 부모님도 안계셔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아니면 고아로 지내거나...어떤 환경과 형편에 의해서이든지 간에, 계급-인도에 가면 무슨 제도가 있는가? 카스트1)제도! 인간이 소도 아닌데, 등급을 매겨서 사람을 분류한다고 한다! 이 모든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되는 것을 보고 싶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막힌 담,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신 것이다. 그 담이 부실 공사한 담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보혈로, 십자가의 능력으로 무너진 것이다. 여러분 마음의 담, 친구를 향한, 부모님을 향한, 형제자매를 향한, 선생님들을 향한 막힌 담이 있는가? 그 담을 부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기억하라!
왜 하나님께서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신 것일까?
바로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즐거움과 기쁨을 같이 나누시기 위해서였다. 자 여기서 질문 하나!
그러면 하나님도 외로웠을까?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혼자였을텐데 외로웠다고?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아니다. 하나님을 절대 외롭지 않으셨다. 왜? 공동체, 3위의 복수형태로 존재하셨기 때문에 절대 외롭지 않으셨다. 그 안에서 교제가 충분했음을 알 수 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구약의 근거/ 하나님을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삼위일체의 근거가 된다.
마태복음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 구원의 집행자, 성령: 구원의 과정을 주도해가심, 성부하나님: 말씀하시고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복음서의 근거: 이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된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옳은 표현이다.
베드로전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서신서의 근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같은 권위로 표현하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옳은 표현이다.
요약하자면,
- 1.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은 구별된 세 분이시다.
- 2.성부성자성령은 각각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 3.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Cf,) 물(액체)-수증기(기체)-얼음(고체)
삼위일체 하나님은 교제가 충만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매일매일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새벽기도를 하셨고 기도를 충분히 하시면서 하나님과 교제했던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그 교제가 일시적으로나마 끊어지는 것을 예수님께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셨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에게 떨어져 지낸다는 것,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굉장한 고통이며 아픔이며 상처다. 예수님은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아버지여, 이 고통의 잔, 십자가의 잔을 내게서 좀 옮겨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게 단순히 육체적인 십자가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영적인 고통, 삼위일체 하나님과 비록 기도를 통해서지만 계속해 왔던 그 관계조차 파괴된다는 것에서 오는 절규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 오늘 삼위일체 교리는 굉장히 낯설고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성이 하나이면 하나이지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웅동체라고 해서 남성과 여성이 같이 존재하는데 육상선수, 세메냐 인가? 하지만 하나님이 남성이라고, 여성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하나님 안에 남성과 여성의 측면이 다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존재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나님 안에 남성처럼 담대하고 용기있고 거친 면이 있는 반면에 여성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고 온화한 그런 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됨처럼 우리 중고등부의 하나됨을 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되는 것을 보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번 수련회, 여러분 한번 기대해보지 않겠는가? 2박3일, 그냥 다른 곳에 놀러간다 생각하고 교회로 와보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역사는 모이면 부흥하고 역사가 일어났다. 하지만 모이기를 기피하고 싫어하고 그러할 때 분열하고 좌절하고 쇠퇴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연합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작은 지폐 한 장에도 한 나라의 미래를 담을 수 있다
정주영 에피소드!
정주영 회장은 40여년 전, 한국에 미래 산업을 세우기 위해 험난한 길을 홀로 걸었다. 당시 한국에서 조선업은 불가능한 산업으로 치부되었다. 조선소를 지을 돈도 없었고, 배를 건조할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설득해 영국 버클레이 은행과 차관을 도입을 협의할 수 있었고, 마침내 돈을 끌어오는데 성공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의 방해와 여러 가지 로비 활동으로 힘들 수 밖에 없었던 조선업!
그러나 믿을만한 무기 하나 없는 맨몸으로 정주영은 유럽으로 건너갔다. 대신 그의 주머니에는 자부심과 용기, 무한한 잠재력 그리고 500원짜리 지폐가 들어 있었다.
세계 1위 조선 대국의 시작은 이렇게 지폐 한 장으로 출발했다.
세계의 화폐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배가 새겨진 지폐가 종종 있다. 그런데 죄다 오래된 배나 평범한 배가 전부. 그러니깐 거북선처럼 멋있고 창의적인 배는 단 한 척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 -인도네시아 발리에 갔더니, 지폐에 동물 그림이 있더라구! 헐!
싱가포르 지폐에는 짐을 가득 실은 무역선 그림이 있다. 싱가폴의 정체성과 미래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주영은 일본의 미쓰비시와 협력을 하고자도 했고, 이스라엘과 노르웨이 회사들과도 합작투자를 제의했지만 모두 다 맘에 들지 않아 결국 선택한 것은 마지막 보루 유럽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부하직원들이 아마도 설득하기가 힘들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정주영은,
"이게 뭔줄 아는가?"
"500원짜리 지폐 아닙니까?"
"그냥 돈이 아니라네."
그리고서 애플도어 사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다. 회장은 대번에 난색을 표했다. 한국은 도저히 조선업을 펼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대금을 상환할 능력도 없는 나라라고 거두절미했다. 요즈음은 덜 하지만 몇십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무슨 희망과 소망이 보였는가? 영국의 회사 사장도 그랬다. 그런데 정주영은 자신의 주머니에게 구겨진 지폐 한 장을 꺼내서 말했다.
"회장님 한국은 삼면이 바다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500여년 전에 이 철갑선을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세계 해양을 누빈 영국보다도 3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우리에겐 충분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정말 500년 전에 이 배가 있었습니까?"
그는 거북선을 보고서 일본과의 전쟁시에 사용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더 귀가 쏠깃했다.
회장에게는 한 나라의 지폐가 배에 도안되었다는 것이 상징하는 바,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만한 배가 실전에 사용되었다는 점, 무엇보다 그 점을 이용한 정주영의 아이디어가 마음을 흔들었던 것이다. 잠시후 사장은,
"막대한 투자를 이런 식으로 결코 하진 않습니다. 정 사장님도 잘 아실 겁니다. 당신 나라의 선조들에게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배를 구매할 선주를 물색하셔야 합니다. 영국은행들이 차관을 보장한다면 일이 훨씬 수월할 겁니다. 그 이후로는 정 사장님의 몫입니다."
회장은 자신의 판단이 현명한 것인지 장담하지 못했다. 기껏 지폐 한 장에 마음이 동하다니!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평생 사람을 봐 왔던 그 안목! 다만 기회를 주고 싶었기에 그는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세계 1위의 조선국이 바로 한국이다!
정주영이 갖고 간 것은 그냥 지폐 한 장이었지만, 거기에 대한민국, 조선의 조선업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그 500원짜리 지폐가 뭐길래? 2박 3일 중고등부 수련회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수련회 그거 다른 M.T나 수련회와 별반 다를게 뭐가 있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련회 안에 무슨 내용물이 들어있느냐가 관건이다. 수련회 안에 여러분의 미래를 담아낼, 이제 올해를 달려갈 후반전의 에너지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련회 한 번 참석 하고, 안 하고 별만 다를 게 없다? 정주영이가 내세울 것 아무것도 없지만, 500원 지폐 한 장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때 역사를 일어났다. 여러분, 하물며 여러분이 2박3일 동안 하나님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수련회에 여러분을 한 번 맡긴다면 어떨가? 500원 지폐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한 번 이번 수련회는 보충, 학원, 공부, 만남, 놀기는 잠시 제껴두고 하나님의 수련회에 한 번 집중해보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나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혼자서 슈퍼맨처럼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수련회를 통해 함께 어울리면서 진정한 삼위일체 하나님이 느꼈던 하나됨을 경험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이번 수련회에 일본을 강타했던 쓰나미가 집을 날리지 않는 이상, 몸에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이상 여기에 한번 시간을 투자해보라! 여러분이 이제껏 노력하고 애썼지만 얻을 수 없는 것을 2박3일 동안에 다 얻을 수 있다는 미스터리가 있다! 보충수업, 학원수업이 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수련회에 있다. 정말 수련회 참석하기 힘들면, 저녁집회라도 참석하자! 한 번 뭉치자! 제발! 수련회에 다같이 함께 가자! 고고씽! 수련회에 임하실 성령님을 기대하면서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1) 브라만(사제계층)-크샤트리아(왕후·전사계층)-바이샤(상인·농민계층)-수드라(수공업과 노예계층)
이 네가지 계급은 다시 2,378개의 계급으로 나뉘며, 약 100여개의 최하층 계급이 있는 것이 있다고 하네요.
청소하는 수드라. 창문 닦는 수드라. 나무 심는 수드라.. 등등
또 하나! 하층 계급이 있는데요. 하층 계급이란 카스트 제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최천민들로, 이들을 불결하게 여겨 인간 취급도 하지 않고요. '접촉해서는 안 되는 부류'라는 뜻인 하리잔(불가촉민)이 이들입니다..
이들은 인도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아주 천한 직업에만 종사할 수 있어요.
왜 이렇게 인도에는 수천 단계의 높고 낮은 계급이 있을까요?
바로 힌두교의 교리 때문이죠.
윤회사상! 인간은 이승에서의 착한 행동과 악한 행동, 즉 업에 의해 다시 태어날 때의 계급이 결정된다. 문제는 선행과 악행에도 그 정도가 천차만별이고, 당연히 받아야 할 상 벌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환생할 때 결정되는 계급도 천차만별이어야 하므로 수천 가지의 계급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도 같은 계급 끼리만 하죠. 약간 말도 안되는 부분들이 많지만 인도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네개의 신분 그 뒤로는 수천개에 이르는 세부적인 계급들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본문을 가지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중고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는 것, 1+1+1=1이라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함께함이라는 것을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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