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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고린도전후서

고린도전서 1장 21절, 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프랭크 제너

by Message.K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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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장 21절의 본문을 가지고 전도자, 프랭크 제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프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

 

 

하나님의 지혜, 전도의 미련한 것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오늘 본문은 이야기한다. 이 세상의 지혜는 죄를 짓는데 빠르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 기능이 있는데, 사람은 오히려 이 율법을 가지고 죄를 짓는데 이용한다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했다. 자기 지혜로는 절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 자신의 심장을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 예수님을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서 죄값으로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그리고서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리고서 자신이 양육했던 12제자와 그 외의 소수의 무리들에게 세계 복음화에 대한 바통을 물려주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리고서 바울이란 사도를 통해 이런 말슴을 우리에게 남겼다.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은 특이하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이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셨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전도는 여러분이 보기에도 미련한 것이다. 사람에게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한 번 믿어보라고 아무런 물적 증거가 없이 입으로, 언어로만 이야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약장수도 아니고. 약장수는 그래도 물건을 가지고 사기를 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복음전도자는 입으로만 가지고 나아간다. 고작 물티슈나 전도지 한 장의 힘을 빌어서 말이다. 그러니깐 더 미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이런 복음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들의 탁월한 지혜와, 화려한 처세술과 화술과 대화가 아니라 어리쑥하고 부족하고 단순하지만 명료한 말로 던지는 그 복음전도에 더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과연 우리는 천국에서 유명한 자가 되고 싶은가?

이런 사람이 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여러분, 이 땅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말로는 모두가 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의 비난과 쑥덕거림과 몰인정과 눈치와 심지어 자녀들과 주변사람들까지 나를 세차게 내몰아칠 때도 나는 예수님께서 2000년전에 물려주신 그 복음전도의 바통을 쥐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는 오늘 같이 하나의 영상을 보고자 한다. 이 영상을 통해 여러분의 심령이 도전받고 복음전도에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였음 한다.

 

 

 

 

 

호주의 무명의 전도자, 프랭크 제너

 

"실례합니다. 선생님은 구원받으셨습니까? 만약 오늘 밤 선생님께서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호주 시드니 조지가에서 무명의 전도자로 40년간 노방전도를 하신 프랭크 제너의 이야기이다. 그분은 40년 간 전도지를 전하며 전도를 했지만 단 한 명의 회심자도 만나질 못했다. 여러분 중에는 그래도 복음 전도하면서 열매가 있지 않았나?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의 어느 교회에서 우연히 호주 시드니를 걷던 중 조지가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그 분의 말을 듣고 찔림이 있던 중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간증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미국의 집회에서도...

흥미를 느낀 교회 담임목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며 (호주 시드니) 조지가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미국에서도, 인도에서도, 호주 시드니 조지가의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나오기 시작한다.

 

146,000명....

 

 

  프랭크 제너가 전한 복음의 메세지를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파악된) 숫자이다.

 

 

 

최근 프랭크 제너에 대한 영상이 조지가의 무명의 전도자란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도에 대한 동기 부여를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보여지는 이 영상은 호주 시드니 조지가에서 40년간 노방전도를 하였던 프랭크 제너라는 분이 살아생전 단 한명의 열매도 못 맺은 줄 알고 아쉬워 했으나 세계 각국엔 146,000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프랭크 제너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음이 확인되었다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 영상을 소개하는 글의 내용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명 전도자, 프랭크 제너에 대한 논란

 영상을 보고 나면 프랭크 제너의 헌신과 열심에 도전을 받아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의 영상은 위조되고 또한 조작된 내용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바탕으로 확인해 본 결과 프랭크 제너의 죽음 이후 그에 대한 이야기는 확대되어지고 위조되어지고 조작되어 심지어 책과 다큐멘터리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While he was alive, very few people knew of him, but after he died, tales of his evangelistic activities circulated widely and the details of his life became exaggerated and falsified.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몇몇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그의 전도활동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세세한 부분들은 과장되고 조작되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rank_Jenner <출처>

 

 

 

3년동안 146,000명의 사람이 조지가의 프랭크 제너에게 복음을 들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생각되었습니다. 하루 한 명씩 3년을 조사할 경우 1,000명의 사람이 제너에 의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146000명은 하루에 대략 133명의 사람에게 3년 곧 1095일 동안 하루도 거리지 않고 프랭크 제너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어야 가능한 숫자입니다. 아마도 146,000 이라는 숫자는 하루에 열명씩 복음을 전하겠다고 다짐한 프랭크 제너가 40년동안 사람들에게 전도를 한 숫자로 생각됩니다. 365*40*10=146000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프랭크 제너의 일대기를 책으로 쓴 Wilson에 의하면 그가 살아 생전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은 대략 100,000명정도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프랭크 제너에 대한 이야기가 과장되고 조작되었을 것이라 생각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프랭크 제너에 대한 논란을 넘어 우리가 해야 할 사명, 전도

물론 프랭크 제너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희박하다 생각하지만 행여라도 이 이야기가 사실이고 146,000명이 프랭크 제너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할지라도 마음 속 한 구석이 여전히 불편한 것은 과연 우리는 프랭크 제너를 통해 몇명의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를 세어보는 일이 중요한가에 대한 문제 때문입니다. 프랭크 제너가 전한 메시지는 매우 짧고 간결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치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선포한 메시지처럼 또한 바울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닌 전도의 미련한 것 곧 십자가로 복음을 전한 것처럼 프랭크 제너의 메시지는 뛰어난 화술을 근거로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결국 프랭크 제너의 메시지를 듣고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너무 감사한 일로 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하심 곧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되어진 일임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정약용은 기억하나 정약종은 기억하지 않는 실용주의pragmatism의 세상 

존 맥아더 목사님이 말씀하였던 프래그머티즘 곧 실용주의 문화 속에 결과가 좋은 것은 과정도 좋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 속에 146,000이라는 좋은 결과를 위해 그 과정을 답습하는 열심과 동기를 부여하는 이 영상의 기획의도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줍니다. 역사적 판단이 엇갈리지만 배교하지 않았던 정약종은 기억하지 않고 배교하였지만 많은 업적을 남긴 정약용은 기억하는 세상 속에, 부흥=성장이라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은 또 다른 프랭크 제너 그리고 정약종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약종은 정약용의 셋째 형으로 가장 늦게 천주교인이 되었지만, 갖은 탄압과 박해에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다가 신유박해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기독교인과 천주교인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는 뒤로 하고서라도 중요한 것은 그가 복음에 대한 불굴의 믿음과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순교하면서 신앙을 지켰다는 사실입니다. 실용주의 세상에선 인정받았던 유명인이 과연 천국에서도 유명할까요? 정약용은 기억하나 정약종은 기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과연 천국에서 유명해지길 원하는가?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에서 유명한 프랭크 제너처럼 여러분도 천국에서 유명한 자가 될 수 있다.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이 아닌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단순한 복음메시지를 안고 전도대상자들에게 달려가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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