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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고린도전후서

고린도전서 15장 3-4절, 한 사람의 죽음이 집중받는 이유

by Message.K 2022. 10. 4.

고린도전서 15:3-4은 한 사람의 죽음이 왜 그토록 시대와 세대에게 집중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이기도 한데요. 바로 그 한 사람의 죽음의 의미와 해석에 대한 신학자 존 스토트의 이야기를 통해 재발견할 수 있어 살짝 포스팅해 봅니다.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4)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고전 15:4]

 

 

 

 

 

사람의 죽음이 집중받았다!

  보통 사람들이 후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중심되는 행위들, 즉 칭송받을만한 업적과 성취가 있을 때, 시기(timing, period)나 결과물(lifework)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 세상을 지나쳐갔지만 특히 한 사람만큼은 그 사람의 탄생이나 청년시절, 그의 가르침이나 봉사, 섬김, 그의 통치, 성령의 은사 더 나아가 부활조차도 중심으로 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십자가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모든 중심은 바로 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춰졌고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굉장한 관심과 찬사를 보여주었다.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고 애통해 해야 하며 절망스럽게 생각하는 인생의 보편적인 심리와는 달리 이 사람의 죽음은 세상의 정서와는 상반되는 느낌과 감정을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죽는데, 그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박수와 갈채를, 환호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사람만은 유독 독특했다.

 

 

  또 한 가지, 그의 죽음이 이렇게 전인류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칭송받는 이유는 그의 죽음의 독특성 때문이었다.

 

 

 

 먼저, 그가 죽었던 곳은 십자가라는 데서 독특하다.

 둘째, 그가 죽은 십자가의 자리는 그가 스스로 자원한 자리였다.

 

 

 

 

 

 

십자가라는 형상, 이미지가 왜 기독교의 상징(Symbol)이 되었는가?

❶ 원래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가 아니었다.

 

❷ 기독교의 최후의 상징이 십자가가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 때문이다.

십자가상(crucifix, 즉 그리스도의 모습이 달려 있는 십자가)은 6세기 이전에는 사용된 흔적이 없다.1) 적어도 2세기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그림으로 나타낸 상징으로서 십자가를 그리고, 칠하고 음각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상징을 그려 주기도 한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이런 실천을 최초로 증언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터툴리안(Tertullian)이었는데, 그는 주후 200년 경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북아프리카의 법률가요 신학자였다.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고 움직일 때마다, 들어가거나 나갈 때마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에, 목욕을 할 때에, 식탁에 앉을 때에, 등잔에 불을 켤 때에, 침상에서, 좌석에서, 매일의 모든 일상적인 행동 속에서, 우리는 이마에 표시(십자가)를 그렸다.

 

-그리스도의 표시Sign


1) 존 스토트,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옥배역(서울: IVP, 1993), 25.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직 탐독하지 못하신 분들은 꼭 정독을 권합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감동적으로 기술한 지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으로 한 사람의 죽음이 이토록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회상하고 기억하고 추모하고 기념하고 묵상할 만한 사건이 있던가요? 그리스도의 죽음은 몰트만이 표현한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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