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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고린도전후서

고린도전서 15장 21-22절, 창 3장 6절, 최초의 죄, 그 죄가 후손에게 미친 영향

by Message.K 2022. 4. 16.

이 설교는 소요리문답 15, 16문을 토대로 한 설교입니다. 인간의 원죄, 최초의 죄가 인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다루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은 인류를 타락시킨 최초의 죄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그것은 답변에서 뭐라고 합니까?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 즉 불순종의 마음(태도)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위치와 본분을 잊고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던 그 교만, 그 불순종이 인류를 타락시켰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16문의 질문은 아담의 첫 범죄가 과연 인류에게,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입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본래 착하고 순결하게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다만 인간이 불행하게 된 것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잘못된 환경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 인간은 본래 악하지만 반드시 순식간에 성, 정, 려, 위의 네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됨으로써 착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설명하면서 예화를 하나 듭니다.

 

사막을 걷는 노모와 아들이 있습니다. 목이 타들어가 목마름으로 인해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가 물을 발견합니다. 아들은 노모를 줄 것이냐? 아님 자신이 마실 것이냐? 인간의 본성은 자기가 다 마시고 싶지만, 어머님을 바라보는 순간 아들은 악한 본성을 억제하고 인위적인 인성으로 어머님께 물을 드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순자의 성(性)(본성), 정(情), 려(慮; 생각하고 고려하고), 위(僞)의 네 가지 단계는 사실 단 1초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과연 그런 선함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의 목소리는 무엇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고’,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 이유에 대해 단호하게 말합니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말은 후천적으로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선천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대학부실에 자물쇠로 잠궈놓은 케비넷이 자꾸 털립니다. 거기에 놔둔 두꺼운 책, 대단한 용품들은 그대로 놔두고 맛있는 과자를 자꾸 누가 훔쳐갑니다. 군지체들에게 보낼 위로품도 누가 훔쳐갑니다. 대학부에도 CCTV를 설치해야 되지 않느냐고 대학부 회계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제게 부탁을 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과자라도 내것이 아니면 먹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사건에서도 인간의 죄성은 뚜렷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이 말은 우리의 죄의 자질이 태어나면서 물려받은 뉘앙스가 다분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소요리문답은 그 부분을 이야기해줍니다.

 

 

아담은 본래 선하게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 악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는 악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아담의 후손은 아담의 저질렀던 죄의 영향, 죄의 그늘 아래 놓이게 됩니다. 어떻게 아담의 죄가, 그것도 한 사람의 죄가 온 인류, 모든 후손들을 죄에 놓이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유전되었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낳아보신 분들은 다 잘 아실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찌 그리 똑같이 부모의 성격도 자질도 버릇도 습관도 닮는 지 말입니다.

 

 

아담은 아주 독특한 사람입니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입니다. 아담은 엄마 아빠가 없습니다. 즉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아담도 죄인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이 만드실 때부터 성인으로 만드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하더라구요.

 

질문: 그럼 아담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여러분께서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모든 인류는 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와조차도 아담의 몸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아담과 하와가 낳은 자식들이고, 모든 인류의 계보는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에게서 난 모든 인류, 모든 후손은 아담이 범한 죄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쉬운 말로 아담의 죄가 유전된 것입니다. 우리는 신체적인 조건이나 능력, 재능이나 기질 등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습니다. 심지어 점까지도 물려받습니다. 손흥민이 축구를 잘 하는 것은 태어난 후 어려서부터 축구훈련을 잘 받고 교육을 잘 받아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아버지도 축구선수였다는 것입니다. 운동신경도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뿐만 아니라 인류 최초의 아버지였던 아담의 죄가 이후의 모든 자손에게까지 유전되었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질문? 왜 아담 혼자만의 죄가 나에게까지 유전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냐? 아담은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죄만 우리에게 넘어오는 이유는 인류을 대표하는 아담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아담은 부모가 없이 순결하고 착하고 선한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입니다.

 

 

또한, 아담은 모든 인간을 대표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대표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아담의 죄가 곧 우리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표의 원리라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 삶의 대부분이 대표의 원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올림픽경기에서 대한민국 선수 김연아가 우승하거나 한국팀이 우승하면 대한민국 국기가 올라갑니다. 그 선수가 우리나라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법을 제정하게 하는 것도 그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간의 정상회담도 국가 대표성격을 띱니다. 또 노사 관계의 만남에서 노사 대표가 만나 협상하는 것도 회사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아담 개인의 자격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아담 뒤에 태어날 모든 인류의 대표로서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에 그 죄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도 태어날 때부터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원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변화되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순자의 성(性)(본성), 정(情), 려(慮; 생각하고 고려하고), 위(僞)의 네 가지 단계로 우리는 절대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칼빈의 5대교리 가운데 인간의 전적부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100% 부패했다는 말입니다. 98%, 90%, 80% 정도 부패해서 20%나 그 나머지는 건전하다는 교리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 전체가, 존재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듭남, 곧 중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사람인 아담으로부터 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또 다른 한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둘째 아담이 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시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완벽한 순종과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해 우리가 영원한 형벌을 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공로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삶의 여실히 나타납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국은 자기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윌리암 템플은 죄의 본질을 ‘자기중심성’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모든 것의 주체이고, 중심이고, 만족의 근원이고, 모든 것이 핵심이 되고자 하는 성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그 배후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태도와 자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중심성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지고 걸어 가야합니다. 죄성을 이기기 위해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의 제자의 길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부인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 아이들은 천사가 아닙니다. 아이들일수록 그 죄성을 감추지 않고 더 많이 드러냅니다. 욕심꾸러기인 아이들을 보면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이 아이들 가운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를 살린다는 구실로 자녀를 훈계하지 않는 부모는 잘못된 것입니다. 칭찬과 꾸중을 겸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생각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자녀는 천사가 아니라 훈계와 양육이 필요한 연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자녀들도 아담의 혈통의 따라, 부모의 죄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기 때문에 더욱 온전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 청지기인 부모의 책임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양심을 통해 우리의 죄성을 억누릅니다. 또한 사회의 법과 질서와 도덕을 통해 우리 속에 있는 죄를 제어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 부인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죄성으로 인한 깊은 절망을 표현합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의 저주는 우리의 자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망의 몸에서 우리 자신을 건져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 물에 빠져서 죽어간다고 칩시다. 밖에서 누가 구조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죄 가운데 빠져 익사, 아사직전입니다. 그런데, 제 2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우리를 곤고한 상태에서 희망과 소망과 희락과 기쁨의 상태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롬 8;1-2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온전한 희망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예수 안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죄인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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