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고린도후서 4:1-16의 본문을 가지고 <우크 엔카쿠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란 주제로 한 설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가린 수건은 아주 두껍고 우리 몸은 아주 허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그 수건을 뚫거나 몸을 지탱하는 데 충분하기에 ‘우크 엔카쿠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인생에게 있어 낙심은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역에서도 가장 위험한 문제입니다.
낙심은 비전과 열정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압박감을 어떻게 견뎌 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 우리에겐 어떤 압박감이 있습니까?
1) 경제적인 압박감: 돈에 대한 스트레스, 카드값이 월급보다 더 많이 나옵니다. 월급은 통장과 지갑을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채무자는 옛날부터 나의 별명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이 너무 벅찹니다. 하루 하루가 돈 걱정 없을때가 없습니다.
2) 사람으로 인한 압박감: 골치아픈 사람과의 인연, 악연으로 인해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트러블메이커는 없는가? 전화와 문자와 카톡으로 사람을 압박하고, 때론 불쑥 불쑥 찾아와 나의 삶을 흐트러놓는 경우는 없는가?
3) 날씨로 인한 압박감? <기상청사람들>이란 드라마를 보면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날씨때문에 생계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건강의 문제로 인한 압박감: 질병, 연약함, 상처, 아픔, 고통
5) 깨어진 마음으로 인한 압박감: 영적, 심리적, 정신적, 멘탈붕괴의 모든 상처와 아픔
...
6) 복음으로 인한 압박감: 바울이 느꼈던 압박감이다.
1절: 그러므로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헬라어로 ‘우크 엔카쿠멘’입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기소침해하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5: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8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이는 충분히 용기를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기독교 사역의 영광스러움 때문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 엔카쿠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크 엔카구멘:
1절: 그러므로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낙심의 이유는 첫 번째 바로 사역 안에 있는 외적인 문제입니다.
① 3:13,18에서 바울은 ‘수건(veiling)’을 이야기합니다.
‘칼뤼마’(kalyma), 이는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덮은 수건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고후 4:4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라고 합니다. 복음의 진리는 간단하다. 단순합니다. 심플합니다. 하지만 설명하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납득하지 못합니다. 용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제시하고 설명하고 선포합니다. 이 정도로 논증하면 굴복할 수 있겠지 싶지만, 그래서 간청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요지부동입니다. 어떤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로 인해 극심한 좌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낙심할 수 있습니다.
이 첫 번째 문제는 영적인 것으로 우리의 선포를 듣는 이들의 눈먼 상태입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의 낙심의 이유는 두 번째,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내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입니다.
② 이것은 ‘소마’(soma), 즉 몸입니다.
이는 우리의 몸, 복음이라는 보배가 담겨 있지만, 허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인간 그릇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육체적인 것으로, 우리의 개인적인 약함과 죽을 수밖에 없는 몸입니다. 허약한 설교자와 눈먼 회중, 이 두 가지 문제보다 더 낙심을 일으키는 것은 없습니다.
첫 번째 눈먼 상태의 근거는 마귀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우리의 몸 때문입니다. 고후 4:7-18에 몸에 대해 씁니다.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분명히 복음을 담고 있는 그릇, 우리의 연약한 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에는 카탈로그를 붙여놔야 합니다. ‘취급주의: 깨어지기 쉬움fragile’. 우리가 택배물품을 받을 때 ‘fragile’이라는 경고문구를 보았을 것입니다.
2:3에서도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여 심히 떨었노라
여기서의 약함은 육체적인 것이기 보다는 심리적인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들고 고린도로 갔을 때 그에게는 타고난 소심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서 고후 12:7에서 세 번째 예로 ‘육체의 가시’가 언급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바울이 10절에서 계속해서 약함, 능욕, 핍박, 박해, 곤고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이는 다시 육체적 결함인 듯 합니다. 일종의 질병 혹은 장애일 수 있습니다. 내성적인 수줍음, 우울함에 빠지기 쉬운 성향, 두통...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몸이 지닌 약함의 예들입니다. 복음이라는 보물이 담긴 그릇은 이토록 약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다룰 수 없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수건을 걷어낼 수 없으며 믿지 않는 이들의 눈먼 상태를 고칠 수 없습니다. 또 우리 마음과 몸의 약함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우크 엔카쿠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맞다뜨릴 때 우리는 어떻게 이 낙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낙심에 대한 해독제
낙심에 대한 해독제라고 할 때 해독제는 ‘단수형’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두가지이지만, 해결책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후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우크 엔카쿠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수건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것을 뚫을 수 없지만, 복음이 선포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뚫어낼 수 있습니다.
약함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
두 번째 몸의 문제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첫 번째,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하려 함이라’는 표현에 주의하십시오.
둘째로, 고린도전서 2:3-5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의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다시 ‘하려 함’이 나옵니다.
셋째로, 고후 12:7입니다. ‘내 육체의 가시...를 주셨으니’예수님은 이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9절에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라고 합니다. 다시 여기 ‘하려 함’이 나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하려 함’이라는 어구를 세 번 사용합니다.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고린도전후서의 강조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약함 가운데서 드러나고 하나님의 힘이 죽음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고후 4:10절과 12절을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우리는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드러나도록 우리 몸에 예수의 죽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약함을 통한 능력과 죽음을 통한 생명이 이 두 서신의 주제입니다.
우리 죽을 몸의 이러한 약함을 느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해서 모든 육체의 가시와 두통과 육체의 질병과 약점과 연약함과 심리적인 수줍음이 사라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이 우리에게 거하도록 종종 의도적으로 우리를 약함 가운데 두신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해야 성공한다.
-토머스 섯클리프 모트는 19세기 식품을 냉장하는 문제를 푸는 데 몰두한 인물이다. 그는 이 일을 3년이란 시간에 해결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26년이 걸렸다. 결국 그는 냉장된 고기의 첫 배송품이 호주를 떠나는 것을 보았지만, 그 고기가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트의 서재 곳곳에는 그의 좌우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모트는 맨 벽 맨 위쪽 둘레에 자신의 좌우명을 스무번이나 적어 놓았습니다.
“끝까지 인내해야 성공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인내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크 엔카쿠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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