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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태복음

마 1장 1-17절, 여인열전

by Message.K 2022.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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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 드러난 4대 여인에 대해 살펴보면서 <여인열전>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이다.

 

 

 

사람은 그가 가진 용기만큼, 쪼그라진 인생도 만발한 꽃밭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다 -아나이스 닌

 

 

3가지 유형-폴 스톨츠 박사에 의한

 폴 스톨츠Paul G. Stoltz박사는 인간의 능력을 말하면서 지성도 중요하고, 체력, 감성도 다 중요하지만, 인생이란 어쨌든 수많은 예기치 못한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고난을 이겨내는 의지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스톨츠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이 인생의 역경에 부딪히면 보통 세 가지 유형의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첫째, 힘든 문제만 닥치면 포기하고 도망가 버리는 ‘퀴터’Quitter(도망자)형이고,

  둘째는 포기하고 도망 가 버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역동적으로 문제를 넘어갈 생각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현상 유지나 하고 있는 ‘캠퍼’Camper(현상유지)형이다.

  셋째, 역경을 만나도 포기하고 않고 모든 힘을 동원해 반드시 그 장애물을 기어올라가 정복하고 마는 ‘클라이머’Climber(정복자)형이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

 

 이 클라이머(정복자)의 능력을 스톨츠 박사는 “역경 지수”(AD; Adversity Quotient)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수많은 세대들을 보면 뛰어난 머리와 좋은 환경이 맞물려 자신감 넘치는 이들이 많지만 의외로 조그마한 시련도 견뎌 내지 못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항상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어려움을 불평하며 백기를 들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저는 역경보다 더 큰 영혼을 가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타나는 역경지수가 굉장한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이들

-목록들: 우리 삶은 수많은 목록들list로 가득 차 있다. 생일 목록, 싸이 일촌 목록, 인터넷의 즐겨찾기 목록, 주소록 리스트, 전화번호부 목록, 구입해야 할 품목들, 해야 할 일들의 목록 등등.

 

  하나님에게도 이러한 리스트, 목록이 있다. 성경, 특히 마태복음 1장은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들의 족보 두루마리와 족보 다발로 유명하다. 우리는 대개 경건의 시간, Q.T 시간에 그 부분은 그냥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봐야 할 이름 목록이 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 성령께서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고 생각하신 듯한, 남자가 아닌 여자, 그것도 다섯 여인의 목록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뭔가 독특하고도 놀라운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마태의 기록 중에 이 다섯 여인을 포함하는 족보로 시작되는 이 목록, 거기에 여자 이름들이 있다는 것은 아주 예외적이다. 수 많은 남자들의 목록 가운데 드러난 여자들의 목록!

 

  신약 성경 첫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남자였다.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으며, 유대적이고도 남성 중심(남성우월주의)의 사고에 젖은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 이름 가운데, 마치 흑진주 목걸이 사이에 반짝이는 다섯 개의 은구슬같이 반짝이는, 다섯 여인의 이름이 있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밧세바)’,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하나님은 마치 마태라는 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이 여인들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족보는 미완성 교향곡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오늘 이 5명의 여인열전에 대해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조상의 유산

 여호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 유대인들에게 조상은 아주 중요했다. 이들은 조상들의 계보를 기록하고 존중하며 보호해야 했다. 그 족보와 계보는 미래의 약속된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래와의 연결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그리고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이들의 뒤를 잇는 후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하여 모든 나라에 그분의 복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어지는 세대의 밭 이랑에서 싹이 나고 자라날 남성의 씨를 심는 것, 계보를 잇는 것은 히브리 백성의 가장 중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였다.

 

  예수님의 조상 목록에 나오는 모든 남자에게는 여성, 곧 아내와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남자가 있었고 거기에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여인들만이 특별히 언급된 것일까?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확증하는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면 누구든지 분명 하와나 사라, 리브가나 라헬, 여 사사 드보라 등과 같은 역사적으로 훨씬 위대한 여인들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마태가 이 다섯 여인의 이름을 포함시킨 것은, 그것이 저자의 임의로 결정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성경은 ‘영감inspiration of Holy Spirit’으로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글을 썼기 때문이 그들이 거기 나온다고 확신한다. 하나님이 그 이름들, 그 여인들을 특별히 언급하기로 취사선택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해 봐야 한다. 이 이름들이 오늘날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자, 성경과 성경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듣는 청중의 입장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흠이 있지만 열매 맺은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적으로 언급할 만하며 가치 있다고 생각하신 다섯 여인에 대해 다소 평이한 관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사회적인 규범으로 보아도 이들은 각각 심한 결함, 핸디캡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적인 기준이 아니라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해도, 우리 중 누구도 그들이 메시아의 조상들 사이에 놓일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것 같지 않다. 이들 중 둘, 곧 가나안 여인 라합과 경멸받던 모압 족속 여인 룻은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선민에게는 철저하게 요구되었던, 타민족과의 결혼을 금한 배타적 규정에 따르면 외인(外人), 이방인이었다. 또한 다말과 라합은 유혹적이고 부도덕했을 뿐 아니라 속이는 자였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음란과 기만으로 점철된 삶이 아니었음에도 성적 문란과 상관된 오명으로 쉽게 폄하되곤 했다. 그런가 하면 밧세바는 왕의 욕정의 희생자였다. 마리아는 혼외 임신을 한 것이었기에, 친척들 뿐 아니라 약혼자 요셉도 태아를 사생아로 생각했다. 사실 요셉은 천사가 꿈에 나타나 그의 마음을 바꾸기 전까지는 파혼하려 했다.

 

  흠이 있었거나 신실했던 이 여인들은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에서 그들의 선택적 반응으로 칭송받는다. 그 순간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해야만 했던 결단의 순간이었다. 각각의 여인들은, 적절하다고 혹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대로 단호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 자신의 평판을 기꺼이 큰 위험에 노출시킨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역경지수가 굉장한 여인열전이었다. 그들의 선택은 결국 역사의 축을 이루는 사건이 된다.

 

 

 

  ①다말

   다말은 유다의 아들 엘과 결혼했는데, 어떤 분명히 언급되지 않은 악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를 죽이신다. 우리는 창세기 38장에서 유대 문화에 따라, 엘의 동생 오난이 형의 미망인 다말과 결혼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오난은 그녀가 임신하여 죽은 형의 후손을 낳는 것(히브리에세 계보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는 ‘형사취수혼’이라 불리는 관행-신 25:5-6)을 원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오난이 “땅에 설정”한 것을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 여기시고 죽어 마땅한 것으로 보신다. 오난이 퇴장한다.

 

  그러고 나서,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 휘하에 들어가 유다의 어린 아들 셀라가 그녀의 남편이 될 만큼 자랄 때까지 과부로 살았다. 그러나 셀라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결혼에 대한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말은 유다가 그녀에게 한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음을 알아채고 계략을 꾸민다. 창녀로 가장하여 얼굴에 베일을 쓰고 유다에게 다가가 자기와 같이 자도록 유혹했다. 그녀는 먼저 자기의 ‘동침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약속에 대한 ‘담보물’-그의 도장과 끈과 손에 있는 지팡이-을 요청했다. 그녀는 주도면밀했다.

 

  후에 며느리가 행음함으로 인해 임신했다는 사실이 유다에게 알려졌다(지금처럼 그 때도 소문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신이 바로 아이의 아버지임을 알지 못했던 유다는 그녀를 불태워 죽이도록 했다. 바로 그 순간 다말은 부도덕한 관계의 증거로 갖고 있던, 그 부끄러운 증거물, 담보물을 내놓는다. 자기의 지팡이와 도장을 본 유다는 후회하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1)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창 38:26)

 

  유다의 부당함(셀라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이 다말의 행음보다 더 비난받을 일 인 것처럼 보인다.

 

  유다 자신이 간통을 했다고 해서 다말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강조하고 칭찬하는 것은, 그녀의 지혜이다. 또한 혈육과 가계의 계보의 부당한 조치를 그냥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습인 것 같다. 생산을 해내고자 하는 본능, 조상의 계보를 자신을 통해 잇고자하는 그 열정과 열의는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기는 가벼운 짓과 대조된다. 다말은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을 얻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도리를 볼 때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평가: 유다와 다말의 부적절한 관계,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기의 말미를 장식하는 ‘요셉’의 자손을 통해서가 아니라 ‘유다’의 자손(다말과의 관계에서 난)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메시야가 유다의 자손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이례적인 것이다. 복음은 언제나 의외적이고 이례적인 것들로 다분하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복음, 그 자체가 경이적인 것이 아닌가?

 

 

 

   

  ②라합

  라합의 이야기는 여호수아 2장과 6장에 나온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주 평범했던 그녀의 집은 여리고 성벽 안에 있었고, 그녀의 직업은 여인숙 주인이었다. 여인숙 주인은 손님들의 성적인 파트너 역할을 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여호수아가 땅을 탐지하기 위해 보낸 두 명의 히브리 정탐꾼이 그 도시에 은밀히 잠입하여 라합의 여인숙에 왔을 때였다. 그녀는 그들이 자기와 자기 백성이 섬기던 가나안 우상들보다 더 진실되고 강한 하나님을 따르는 자임을 알아챘다. 그녀는 그들을 숨겨주고 도망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소극적으로가 아닌) 도와주었다.

 

 

  이후 여리고가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라합의 집에 매달려 있던 붉은 줄은 밖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침입자들에게는 신호였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그 도시에서 구원받았다. 그것은 정탐꾼들을 숨겨 줌으로써 위험을 무릅쓴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매국노적인 처사일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국 이 용감한 여주인공은 히브리인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이 둘 다 유다의 조상 계보에 들어 있으며 이로부터 다윗 왕이 나오고, 후에 예수님까지 이어진다. 라합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서 11장에서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가운데서 다시 한번 밝게 빛나고 그 믿음으로 인해 칭찬을 듣는다.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묻는다.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5)

  

 

그녀의 지력과 여성적인 기교 외에 이 여인 라합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라합은 선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꿀 기회를 만났을 때, 기꺼이 그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시작한 이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라합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여전히 이스라엘 군대를 환영하며 자신은 그들의 편임을 그 성으로 들어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호를 보냄으로써 알렸다. 우리는 과거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이들조차도 하나님이 그분의 목적을 위해 도전하시고 변화시켜 사용하실 수 있음을 깨닫는다.

 

 

평가: 비록 이방인의 처지였지만 라합은 하나님은 선택했다. 믿음을 선택했다!

 

 

 

 

 

  ③룻

 룻 역시 두려움을 모르는 유산을 이어받은 여인이었다. 성경은 그녀의 창의적 주도성을 기념하기라도 하듯, 성경책 한 부분에 그녀의 이름을 붙여 ‘룻기’라는 책을 남겼다. 유다 족속의 젊은이와 결혼했지만 곧 과부가 된 모압 여인 룻은, 히브리 시어머니 나오미가 유다로 돌아갈 때 신실함과 사랑으로 시어머니를 따랐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나라와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나라와 하나님으로 여기며 따랐다. 이런 결정이 얼마나 모험적이었겠는가? 낯선 땅에는 친구도 없고, 친족도 없다. 지역의 관습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여성이자 이방인으로서 상처받기 쉽고 경멸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룻은 시어머니를 돌보아야 할 책임까지 떠맡으며 일거리를 찾았다. 룻은 밀과 보리 추수가 진행되던 밭에서 이삭을 주웠다. 그녀는 밭 주인 보아스를 알게 되는데, 그는 이후 그녀의 기업 무를 자가 되고 그 이후에는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이다(룻 4:13). 룻의 평판은 그녀가 도착한 이후부터 널리 퍼져 있었다. 보아스는 자기가 들은 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룻 2:11-룻 2:12]

(11)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12)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루시 쇼라는 작가가 있었는데 이 여자는 과부였다. 이 60대 할머니의 과부에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신에게 냉장고문에 붙이는 자석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거기에는 ‘창조하는 삶을 살라!’(Live generatively)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시 말해,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지 말라는 말이다. 담대함과 믿음을 가지고 당신의 인생 속으로 전진해 나가라. 쉽고 ‘안전한’ 길만을 택하지 말고, 룻처럼 다른 이의 삶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하라. 소비하기 위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기 위해 삶을 살라!

 

    모압 여인 룻은 그녀의 세상에 활력을 주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없던 것을 가능케 하는, 창조적인 삶을 살았다. 우리 역시 그럴 수 있다. 나이는 아무 상관도 없다.

 

 

 

 

  ④밧세바

 그리고 예수님의 족보에는 밧세바도 있다. 그녀가 어느 모로 보나 부도덕하거나 적절치 못한 품행의 소유자였던 것은 아니다. 파행적인 군주 앞에 선, 한낱 무력한 고대 근동 문화권의 한 여인이었을 뿐이다. 당신은 저녁에 다윗 왕이 왕궁 옥상을 거닐 때 그녀가 왕의 눈을 사로잡은 이야기를 알 것이다. 그녀는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심히 아름다웠다(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서는 빨래와 목욕 같은 일들을 으레 옥상에서 한다고 한다).

 

 

  밧세바는 유다 왕 다윗과의 불륜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 다윗 왕은 강한 용사였지만 욕정에 사로잡혀 그 유명한 유혹-살인 계략을 꾸밀 만큼 약한 사람이었다. 다윗은 불륜을 저질렀고, 그 이후 그녀의 임신사실을 안다. 이 사실을 들은 다윗은, 최전방에 있던 이스라엘 군대 장관 우리아를 집으로 불러들여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우리아가 혼자 집에 가서 아내와 같이 자면 후에 아내가 임신한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아는 그 계획을 좌절시켰다. 군대의 동료병사들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떠나 전쟁터에서 야영중인데 차마 자기는 집으로 갈 수가 없었던 멋진 동료애, 전우애의 용사였던 것이다. 그러자 낙심한 다윗은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다윗의 계획대로 그는 그 곳에서 죽었다. 그러자 다윗은 자유롭게 밧세바와 결혼하여 아들을 얻었다.

 

 

  다윗에게는 자기 부하를 살리고 죽일 힘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윗의 부적절한 관계가 강간이 아닌 화간이었으리라고, 밧세바의 동조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왕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을, 힘없는 여인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아마도 그녀는 이 경험에서 배운 바가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성경 역사에서 그녀가 수동적이고 무조건 복종하는 여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변해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 앞에서 솔로몬을 천거하는 이야기가 보여 주듯이, 오히려 그녀는 용감하게 앞장서는 여인이 되어 있었다(왕상 1:11-28). 그 이야기에서 그녀는, 솔로몬이 이복 형이었던 약탈자 아도니야가 다윗의 뜻을 무시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솔로몬을 왕으로 선포하도록 옛 왕에게 강력하게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녀가 왕 앞에 나아간 것은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 간 것과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여성이 정의를 위해 왕고 대면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평가: 밧세바는 첫 아이가 죽은 후 “다윗의 아내”가 되고, 마침내 왕의 배우자가 된다. 그 여자는 결코 무능하거나 수동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을, 다윗 이후의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기 위해서 다윗을 찾아가 자신의 주장을 떳떳하게 펼친 여인이며, 이러한 밧세바의 노력과 용기가 있었기에 그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다말의 악’, ‘라합의 불의함’, ‘룻의 부정함’, ‘밧세바의 간교함’...학자들은 이것들을 찾아내어 이것을 근거로 하여 여성들을 죄인으로 규정하였다. 결국 마태가 이 여인들의 이름을 예수의 족보에 삽입한 것은 예수께서 미천하여 죄 많은 이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심을 부각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➀ 마태복음의 저자는 네 명의 여인들에 대해서 성적으로 타락한 ‘죄인’으로 규정짓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➁ 예수의 족복에 삽입된 여인들은 모두 이방인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로 이해할 수 있다.

➂ 다말과 라합과 롯과 밧세바는 삶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삶의 개척자들이다.

 

 

 ⑤마리아

 그 목록의 마지막 인물이자 가장 중요한 여인 마리아가 있다. 그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그런 그녀의 순종은 구세주를 우리에게 주었고 세상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그녀는 요셉과 결혼하기 전에 수태하는 것은 의심과 경멸과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과 함께 돌에 맞아 죽기까지 할 수 있는 일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천사가 놀라운 선언 곧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26-38을 보라)고 했을 때 천사에게 “예”라고 말했다.

 

 

  시인 데니스 레베르토브(Denis Levertov)는 ‘수태고지’라는 시에서 마리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 중에 가장 용감한 여인/

그 일을 받아들임으로 그녀는 밝게 빛난다.

받아들임이...그녀를 완전히 개화(開化)시켰으니.”

  수태고지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마라이의 행동과 태도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그 분을 따를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족보에 나오는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우리를 향한 하나남의 엄청난 은혜는 과거의 죄된 실패들을 다 없앨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 그분의 용서하심은 충분히 넓다. 그래서 우리를 용서하고 깨끗케 하고,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실 뿐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셨듯이 일흔 번에 일곱 번의 새로운 기회들을 주신다. 사실 이것은 무한한 기회다(마 18:22).

  

 

  우리는 또한 우리 삶과 성품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고 심각한 실수들을 했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방향을 아신다는 것을 배운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택하실 때 우리의 약함이나 실수가 아니라 우리의 은사와 마음의 갈망을 보신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계획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우리는 어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한도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명석하고, 가장 칭찬을 많이 받는, 업적에 아무 흠이 없는 사람들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달랐다는 것!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혁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죄인중의 괴수’인 우리들을 택하셨다는 것이 아닐까?

 

 

 

 약함 가운데 강함

 인간적 관점에서는 힘없고 흠 있는 사람, 존경받지 못하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종종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쓸모 있고 귀한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님이 꺾지 않으시는 ‘상한 갈대’와, 끄지 않고 다시 불을 붙이시는 ‘꺼져 가는 심지’를 생각해 보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선 결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쓰시기에는 더 좋을지 모른다. 그만큼 교만이나 자기 의의 덫에 덜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족보에 넣음으로써 명예롭게 하시고 보답해 주신 여인들의 삶, 여인열전이다. 하나님은 신상의 위협이 닥친 순간에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진취적이고 주도적으로 살았던 그녀들의 꿋꿋한 삶을 귀히 보셨다. 여자에게는 수동적인 복종만이 기대되고 요구되는 시대를 살면서 능동적이고 위험을 무릅쓴 순종을 하나님께 바쳤다.

 

 

 

  위험을 무릅쓴 사랑과 순종, ‘예’라고 대답하는 용기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여인은 아마도 마리아일 것이다. 특별히 그 천사의 요구처럼, 도무지 어불성설이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것으로, 우리에게 도전하실 때 더욱 그렇다. 전설에 의하면 마리아 이전에, 가브리엘 천사의 명을 거절한 다른 젊은 여인들이 몇 있었다고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는 마리아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고 있다.

 

 

  마리아의 소명은 자기 몸에 하나님의 몸을 담고, 가장 원시적인 환경 속에서 그를 낳아 인간인 동시에 신인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을 감당할 뿐 아니라 아들의 고통에도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그녀에게 어떤 일을 예비하셨는지 온전히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께 “예”라 대답하며 순종의 모험을 했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로 하여금 더 열심히 살게 하고,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어떤 위험천만한 순종이 당신과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분께 미래를 맡기면서 감히 새 출발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우리 삶을 기록하실 때, 우리 삶의 어떤 점이 그 분이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분은 선이냐 악이냐를 기준으로 우리에 대해 쓰실 것 같은가, 아니면 위험스런 미지의 것에 직면해서 겁내고 주저했느냐, 순종했느냐에 따라 쓰실 것 같은가?

 

 

  예수님 자신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위험을 무릅쓴 삶이었다. 그분은 왕이었지만, 외적인 영광도 없는 비천한 삶의 한계에 몸을 던지셨다. 그분은 아마 다른 종류의 위험도 각오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당신은 아십니다.

  성육신은 도박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당신이 걸었던 목숨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고

  선택의 기로에

  당신은 서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특출한 것도 없지만, 그런대로 만족할 만하고, 내일이 보장된 소도시 목수로서의 미래를 담담히 누릴 수 없으셨다. 그 역할의 유기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그 얼굴로 예루살렘을 향하셨다”. 그 분은 아버지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뤄지려면 능욕, 거절, 고통, 골고다, 죽음, 무덤, 부활과 승천에 이르는 길을 가야 함을 아셨다.

 

 

 

  그리고 마태의 기록에 나오는 다섯 여인, 그들 역시 철저히 가부장적인 풍토 속에서 자신이 할 일에 대한 지시가 떨어지기나 기다리면서 살지 않았다. 그들에겐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순종했다. 모험을 택했다. 그들은 행동했다. 그들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일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신다.2)

 

 

█ 기도제목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을 위한 기도

 

  1. 다말: 복음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주는 여인

  2. 라합: 이방인의 처지에 믿음의 바른 선택을 한 여인

  3. 룻: 이방인이었지만 창조적인 삶으로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의탁한 여인

  4. 밧세바: 하나님의 은혜로 불륜의 주인공에서 일국의 왕비로, 국모로 세움입은 여인

  5. 마리아: 하나님의 의문스런 말씀에도 ‘예’라고 대답한 순종의 여인

 

-보잘 것 없는 인생이지만 5명의 여인을 사용하신 하나님, 나를 사용하옵소서!

 

 

가정을 위한 기도

-불신가정, 짝믿음 가정, 영적인 하나됨과 회복을 위해

-가정의 경제적, 육신적, 영적인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

-자녀들을 위한 기도-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고 닮아가는 인생되도록

 

 

교회를 위한 기도

-담임목사님의 영육간의 강건함과 목회 사역을 위해.

-장로님들과 부교역자들과 장립집사님, 권사님 등의 중직자들의 직분을 잘 감당케...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 앞에 부르심의 열매를 맺기를!

-역동적 예배, 강력한 구역, 전하는 사명, 섬기는 훈련의 4대 비전을 가지고 기도.

-각 부서별 섬김과 활동-성가대, 전도회, 로뎀나무, 전도대, 생명의 삶, 전도의 삶, 중보기도 등등.

 

 

교육기관,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

 -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제1청년회, 제2청년회(대학부)를 부흥의 세대로 세워 주시고, 육적인 성장과 아울러 영적인 성장의 자녀로 서 갈 수 있게.

 - 자녀들에게 비전과 꿈과 사명을 허락하여 주셔서 목적 있는 삶 살게 하소서

 - 10대에 꿈을 가지고 20대에 준비하여 30대, 40대 이들이 세워진 곳에서 영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시며 50, 60대 이후의 삶에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혀지게 하소서

 - 자녀들의 학업과 진학과 군복무와 유학과 취업과 결혼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소서

 - 교육기관이 교회 부흥의 기초가 되게 하시고, 주의 자녀들 모두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군사 되며 하나님으로만 설명 가능한 기적의 삶을 살게 하소서

 -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시대와 민족과 세계를 주도하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게 하소서

 

우리의 중보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경제적인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나고 회복되는 민족 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나라 되게.

개인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

 


1) 유다는 다말을 ‘의롭다’고 말한다.

2) 루시 쇼, 내 영혼의 번지점프, 김유리. 김명혁 역(서울: IVP, 2006), 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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