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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태복음

마태복음 4장 은혜 후의 광야

by Message.K 2022. 4. 13.

흔히 '광야'라고 하면 사람들은 내버려진 곳,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곳, 고독과 외로움의 처소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광야는 은혜받은 자만이 가는 곳임을 마태복음 4장의 예수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본문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면 좋겠다.

 

 

 

 

I. 서론

 

1. 나눔

강렬한 은혜를 체험한 적이 있는가? 3박 4일 수련회 혹은 1박 기도회 캠프 등을 통해서 큰 은혜와 응답을 받고 수련회 장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때 마음이 어떠했는지 추억해 보라.

세상을 집어 삼킬 것 같은 흥분과 용기가 충만하다.

-한 장로님의 고백: “수련회 때 받은 은혜 3일 가겠냐?”

 

 

 

-이번 수련회 때 충격적인 도전과 특징:

1)온누리교회가 한국교회를 섬기는 마음으로 수련회 the one을 만들었다는 점.

2)이 시대의 청년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아니 유일한 대안은 바로 ‘말씀과 기도’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 영성이 우리의 살리는 것

3)온누리교회가 전주대학교를 세워서 그 전주대에서 슈퍼스타를 키울려는 꿈이 담겨져 있다는 점, 좋은 시설과 환경가운데 인재를 발굴하고자하는 마인드가 녹아나 있음. 건물이름도 스타홀, 스타빌,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는 점.

4)가장 충격적인 것? 여자 목사가 찬양인도를 했다는 사실, 젊은 여자가 찬양인도자로 등장했을 때 순간 ‘에이, 여자네!’

이것은 보수적인 나의 편견이었고 선입견이었다. 이렇게 생각했다가 굉장히 파워풀한 찬양인도에 결국은 압도되어 ‘에에, 여자네!’가 아니라 ‘우아, 여자네!’라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점. 그 여자는 목사였고, Holy impact라는 찬양팀을 인도하며 화요찬양집회를 인도한다고 했다(이때는 벌써 6-7년 전의 일이다. 저의 편견을 널리 용서하시길 바라).

5)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것은? 우리 대학.청년회가 하나님 앞에 강력한 결단을 했다는 점이다. ‘선교한국’을 원래 가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가지 못했는데, 선교한국 가면 가장 큰 특색이 마지막 결단의 시간이다. 하나님 앞에 단기선교사로, 장기선교사로 헌신하라는 도전을 한다.

 

 

 

EX) K 선교사의 스토리...대학1년때 선교한국 가서 헌신을 해서 결국은 영국선교사로 헌신하다가 결국은 미국인과 결혼하여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다는. 그 친구가 선교한국에 가서 멋도 모르고 헌신했다가 선교사로 갔다는 비보(?)를 전해듣고 저는 선교한국을 등록했다가 가지 않은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 다시 저는 선교한국엘 갔고, 거기 가서 결국 단기선교사로 헌신하고마야는 더 큰 실수를 범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우리 대학.청년회 지체들이 어제 바로 그런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다 선교를 떠나버리면 누가 교회에 남느냐? 누가 대학부를 지키며, 누가 청년회를 지키느냐? 근데 한 모 자매는 그 결단의 순간에, ‘여러분 중에 젊은 시절의 1년을 해외에서 선교사로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 일어나라’고 했을 때 그 모 자매는 ‘내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아. 정말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자매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분의 헌신과 결단은 꼭 지키라! 하지만 나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 서른이 넘어서 결단을 하니, 결혼도 해야되고, 아이도 낳아야 하고 그러다보니 아직 지키지 못했다. 결단을 한 사람은 그 결단의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계획을 빨리 세워 30이 되기 전에 갔다 오라! 그랬더니, K는 '그럼 내년에 가야되는데요.' 라고 했다. 그 자매가 서른을 코 앞에 두었기 때문이다. 젊을 때, 아무것도 거칠 게 없을 때 빨리 갖다오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분명히 보상해주실 것이다.

 

 

 

 

 

2.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서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은혜 체험의 간증들이 있다. 찬양집회 때나 수련회 때, 혹은 기도회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기도 하고, 성경공부나 제자훈련 시간을 통해 조용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곧 현실의 거대한 장벽 앞에서 초라해지는 자신을 볼 때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은혜 받은 후에 만나는 현실에서의 광야 그리고 사탄의 유혹은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도 그러한 시험을 당하셨다.

 

 

 

 

II. 본론

1. 광야 :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가 가는 곳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당하시는 장면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바로 전 문맥이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 때(1절)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를 들으신 직후였다.

 

 

쉽게 풀어서 말해 보면, 예수님이 소위 은혜 받으신 직후였다. 공식적으로 하늘로부터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것이다. 그런데 곧 바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다. 은혜 받은 후 궁전으로 가신 것,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가신 것이 아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거친 광야로 가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광야는 외롭고 힘들고 위험한 장소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가 가야 할 곳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이다. 광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가는 곳이다.

 

 

 

우리는 흔히 구원 받은 후(세례 받은 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만사형통과 성공의 길, 편안한 삶의 길로 인도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 오히려 거친 광에 광야로 들어갈 때가 더 많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를 건너 곧바로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광야를 지나가야만 했다. 다시 말하자면, 광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지 않은 채로는 지날 갈 수 없는 곳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닌 자만이 통과할 수 있다.

 

나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광야로 이끌림 당한다는 사실은 당신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2. 광야 : 시험뿐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를 경험하는 곳

광야는 시험당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를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도 당하셨지만, 천사들의 수종을 받기도 하셨다(마 4:11, 막 1:13). 그리고 성령에게 이끌려 가셨다(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시험도 받았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나님의 보호를 철저하게 경험했다. 다윗 역시 광야에서 도망자 신세로 엄청난 고난을 받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를 경험했다. 그의 수많은 주옥 같은 시편은 바로 광야에서 쓴 작품들이다. 거친 광야에서 그는 하나님을 ‘주는 나의 산성, 나의 방패, 나의 바위, 나의 요새’라고 고백했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찬송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노래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내모시는 이유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케 하기 위해서다.

 

나눔) 당신이 지나온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기억해 보라. 그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했다면 짧게 나누어 보라.  

 

 

 

 

3. 광야 : 사역자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당하시는 장면은 16절에서 끝난다. 그런데 그 다음 17절을 보면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라는 표현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기록되고 있다. 순서로 보자면, 예수님의 공식적인 사역 이전에 광야의 시험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 요셉은 총리로 쓰임받기 전에 보디발 장군의 집 노예로, 정치범 수용 감옥의 죄수로 광야의 시간을 지냈다.

- 다윗은 왕으로 쓰임 받기 전에 광야에서 쫓기는 세월을 보냈다.

-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임 받기 전에 40년 광야 목동생활을 했다.

 

만약, 당신이 지금 광야의 길을 걷는다면 하나님이 당신을 쓰시기 원하신다는 표징이 될 수 있다.  

 

 

 

 

III. 결론

만약 우리가 제대로 은혜를 받았다면 광야는 필수 과정이다.

예수님의 광야 40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과 오버랩된다.  

 

 

예수님은 세례 후 광야에서 시험 받으셨다. 이것은 (세례, 구원을 상징하는)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맞이한 것을 상징한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널 때만 하더라도 감사하고 찬양했지만, 광야를 만나자마자 불평하고 원망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끊임없이 불순종하여 시험에서 실패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실패한 곳에서 말씀에 순종하셔서 시험을 이기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의 광야를 통과를 통과하며 광야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확연해졌다(히 4:15-16, 약 1:2-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성도에게 있어서 광야는 필수이지 선택이 아니다. ‘사랑받는 자’ 예수님도 광야를 통과하셨다면 우리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광야를 맞이할 때 불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며 말씀으로 승리해야 한다. 예수님은 선악과 시험에서 실패한 아담과 광야의 시험을 이기지 못한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죄인들을 위해 승리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도와주실 것을 믿으며 나아가야 할 이유이다. 우리는 그 분께서 가신 걸음을 따라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나눔) 광야를 걸어갈 때 당신은 주로 어떤 마음가짐이었는가? 감사와 순종의 걸음을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말해 보라.

 

 

찬양과 기도) 광야를 지날 때, 시험을 당할 때 용기를 잃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심을 잊지 않기를 기도하자. 인내와 감사, 그리고 순종으로 시험을 잘 이겨내게 해 달라고 다 함께 기도하자.

 

 

 

 

마태복음 4장에서 광야의 시험을 받은 예수님은 분명히 사랑받는 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자라는, 사명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자질과 자격을 갖춘 자만이 광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귀한 기회이길 소원한다.

 

 

 

 

 

존 비비어의 <광야에서>에 대한 리뷰도 참조하시면 좋겠다.

 

존 비비어의 광야에서

  0 ‘광야’를 아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광야’라는 단어는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지만, 신앙이 없는 비그리스도인이라면 ‘광야’라는 단어는 익숙치 않을 것이다. T.S.엘리엇의 유명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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