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역대상하

역대하 20장 20-30절, 기도의 언어로 브라가를 선포하라

by Message.K 2022. 1. 2.
반응형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된 이후로 남유다의 4번째 왕으로 등극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여호사밧이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17장부터 21:1 까지 계속되는 여호사밧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대목이다. 여호사밧이란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30대 중반에 왕으로 등극하여 25년간 55살까지 통치한 군주였다. 역대기와 열왕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왕들을 살펴보면 다 장단점이 있다. 오늘 여호사밧은 의외로 장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여호사밧은 누구인가?

여호사밧...(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 남유다의 4대 왕, B.C 873-849년경.

 

➊유다의 방어력을 강화시켰다(대하 17장).

-모든 성읍에 군대 주둔,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셨다(대하 17:10), 블레셋, 아라비아 인들이 조공을 바침, 견고한 채(왕궁,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 군사 30만+28만+20만+20만+18만(여호사밧과 동명이인) 표면적인 군사 숫자만 116만명에 달함!-17:14-19.

 

➋이스라엘과 동맹 조약을 체결하였다(대하 18:1).

-북이스라엘 아합과 연혼함,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자고 제안하지만, 거짓선지자들과는 달리 미가야는 ‘아합의 죽음’을 예언한다. 여호사밧과 아합이 변장을 하지만, 결국 아합은 죽고 여호사밧은 살아남는다.>여호사밧의 죽음을 모면한 전쟁터에서의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진다.

 

➌그는 이교적 우상숭배를 대부분 근절시켰으며 백성들에게 모세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순회하는 율법 선생들을 세웠다(대하 17:7-9;왕상 22:42이하). 또한 그는 주요 성읍들마다 재판관을 두었다(대하 19:4 이하)...>선지자 예후의 회개와 각성에 대한 경고의 순종



여러분은 어떤가? 자신이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단점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여호사밧은 특히 군사적인 방어력을 강화했다(약 100만 가량의 군사력 확보). 신앙적인 혼합주의를 배격하며 백성들의 신앙적인 면을 바로잡기 위해 순회율법선생을 두어 가르치게 하였다. 성읍들마다 재판관을 두어 법률적인 상담과 판결을 담당하게 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신앙과 믿음 생활을 독려하게끔 한 획기적인 인물이었다. 보통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 백성들의 신앙생활까지 신경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하기도 바쁜데 말이다.

 

이런 여호사밧의 모습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는지 17:10에는

 

(10)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여호사밧이 이러한 명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 왕의 보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많은 군사적인 방어력 때문에 사면으로부터 두려움을 주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직분과 직업과 은사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 여호사밧이 자신의 왕좌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였던 것처럼 그러한 지혜와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원한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이전에 섬겼던 수많은 잡신들과 우상들을 배격하고 제거하는 국가적인 우상청결운동을 행하는 본을 보였다. 이러한 장점이 많았던 여호사밧이지만, 18-19장에서는 그의 단점이 보여준다. 그는 친구를 잘못 사귀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바로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합과 여호사밧은 사돈지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죽음을 전쟁터에서 목도하고 나서 다시 마음을 바로 잡고 정신을 차린 듯 하다. 그런 가운데 오늘 사건이 등장한다.

 

그 후에...

모암 자손과 암몬 자손과 몇 마온 사람과 함께-After this, the Moabites and Ammonites with some of the Meunites came to make war on Jehoshaphat.- 유다를 쳐들어 왔다.

 

여호사밧의 첫반응이 중요하다!!!!

 

(3)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대하 20:12-대하 20:13]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얼마나 겸손하여진 여호사밧의 모습인가?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향해 두려움과 겁에 질려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것처럼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의 언어를 내뱉고 있다. 아합의 죽음 앞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군사력과 경제력과 정치력을 의지하지 않았다. 동맹관계에 의지하지 않았다.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러한 마음은 단순히 지도자인 여호사밧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다의 모든 사람’이 공유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왕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니

(18절-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왕이 백성들 앞에서 엎드리고 꿇어앉는 그런 모습은 잘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왕이 엎드리는데 백성들이 어찌 서 있을 수 있느냐?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 아닐까?)



전쟁의 찬양

(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7)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을 드리며 응답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전쟁사에서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서 승리한 방법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는 특이한 행동을 했다.




그 행동이 무엇인가?

여호사밧은 성가대, 노래하는 자들에게 군대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했다. 전쟁에서 전사들보다 노래하는 자들을 앞에 세운 것이다!

 

(21)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원래 전쟁할 당시에 음악을 동원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여호사밧이 행한 것은 사기를 충전시키기 위해, 더 전쟁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경배와 찬양 그 자체였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음악, 찬양의 진정한 능력

찬송(가사)의 능력

찬송한다는 말은 음악을 한다는 말이 아니다. 상대방을 ‘칭찬한다’는 말이며 ‘높인다’는 말이다. 히브리어의 ‘할랄(HALAL)’이나 영어의 찬양(Praise)은 ‘찬양한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칭찬한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HALAL’이라는 이 단어는 제일 먼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데 쓰였다(창 12:15).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칭찬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 하나님이 이루신 구속 사건의 위대함을 높이고 칭찬하는 일이다. 이 때 하나님은 그 칭찬 가운데 거하신다. 찬송은 믿음의 언어이다. 찬송은 믿음의 고백이다. 우리는 지금 땅을 버티고 있는 사람이지만, 우리의 신분은 하늘의 사람임을 시인하며, 하늘의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며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로 찬송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좋아하신다. 이 목적을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라고 우리가 칭찬해 드리면 쑥스러워하지 않으신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어린아이들에게 칭찬해주면 애들이 웃으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애들을 키우면서 자기 전에 칭찬을 하나씩 해주니깐 애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 진짜 한 번씩 말 안 듣고 고집부리면, 저 대우백화점 그랜드 뷔페 앞에 펼쳐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1%라도 있지만, 그래도 없으면 만들어내고, 비슷한 거 있으면 격려할 꺼리, 칭찬꺼리로 높여주니 애들이 그렇게 웃고 기분좋아하고 행복해한다. 하나님은 더 없이 그 칭찬 가운데 거하신다. 그러자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가?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대하 20:22-23)



(24)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동맹군끼리 전쟁을 하고 난리가 났다. 암몬과 모압과 세일, 서로 전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멋진 승리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일과 사역을 팽개치고 찬양만 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찬양은 전쟁터에서, 영적 전쟁에 사용할 만한 강력한 무기이다. 우리가 대적하기에는 너무 강한 적군을 만났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찬양하고 경배하라고 말씀하신다.

 

(17)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찬양으로 경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는 우리가 드린 경배가 힘을 발휘하여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승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찬양은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나님께 주신 강력하고도 영원한 무기이다. 교회는 이 뛰어난 무기의 위력을 잊어선 아니 된다.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새가족 축제를 앞두고 1월 ‘기도로 기적의 그림을 품는다’는 주제아래 같이 말씀을 나누고 있다. 여호사밧이 무릎을 굻을 때 백성들이 같이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한 마음으로 한 가족이 이 새가족축제라는 비전을 공유하길 원한다. 그 비전을 공유하는 것은 바로 기도이고, 믿음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하는 것은 바로 ‘찬송’이 아닐까 한다. 곡조가 있는 강력한 기도가 바로 찬송이 아닌가?

 

(26)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찬양을 할 때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거기서 바로 ‘브라가 골짜기’가 태어난 것이다. 에메크 베라카...‘축복의 골짜기’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높일 때 그들을 승리로 이끄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보장해 주실 뿐만 아니라 선물까지 주셨다.

 

(25)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3일 동안 모아야 겨우 다 챙길 수 있었던 각종 보물과 보석과 의복들, 재물들이 선물로 준비되어져 있었다.

성공학의 대가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신이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포장을 해 준다고 한다. 저는 거기에다 제 생각을 조금 더 보태면, 사람들은 그 겹겹이 싸인 포장(지)때문에 그 안에 담긴 선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포기하곤 한다. 포장 벗기는게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 선물을 제대로 구경도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아닌가 싶다. 여호사밧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여호사밧은 그 선물을 겹겹이 싸고 있는 어려움과 위기와 겁과 두려움과 답답함의 포장지를 찬송으로, 믿음으로, 기도로 잘 풀어헤쳤다. 그러할 때 진정한 선물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여러분, 찬송하면 떡이 나옵니까? 돈이 나옵니까? 아무것도 안 나옵니까? 오늘 본문은 떡이 나오고 돈도 나온다고 말한다. 그것도 아주 풍성하게, 충만하게 나온다고 말한다. 여러분들도 실험을 해 보라! 하나님을 한 번 움직여보라! 바로 찬양을 통해서, 곡조있는 기도를 통해서...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나라와 민족이 바로 ‘브라가 골짜기’, ‘축복의 골짜기’가 되길 바란다!!! 새가족축제는 뜬 구름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토마스 칼라일은 '교회는 세상의 뱃머리'라고 했다.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영혼구원의 비전과 계획에 순종하며 제 역할을 감당하는 것에 새가족축제가 포함되어 있다. 담임목사님에게 비전을 주신 하나님은 그 비전에 순종하여 함께 기도하며 찬송하며 동역해나갈 믿음의 동지들을 불러모으고 계신다. 함께 영적전쟁의 선두에 서서 믿음의 노래, 곡조있는 기도를 부르며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가 왕되심을 선포할 노래하는 자, 그리스도의 능력을 선포하며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지금 부르고 계심을 기억하라!

 

(21)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적어도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예배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바로 여호사밧의 전쟁에서 군대 앞에서 행진하는 무리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가 영적전쟁의 선두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우리 이제부터 찬양의 무기를 맘껏 사용하자! 곡조있는 기도, 기도의 언어, 믿음의 언어로 우리의 불가능한 현실과 희망없는 현실을 향해 축복, 브라가를 선포하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브라가를 선포하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믿음에 기반하여 축복을 노래하라!



"기운차게 찬송하십시오. 그리고 용감하게 찬송하십시오.

맥이 빠진 사람처럼, 혹은 조는 사람처럼 찬송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음성을 높여서 힘차게 찬송하십시오.

당신이 사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음성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도 마십시오."

-요한 웨슬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언어로 브라가를 선포하라! 기도의 언어로 브라가를 선포하라!

찬송의 언어로 축복을 선포하라!

그러할 때,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교회가, 우리의 직장이, 우리의 가정이 브라가의 골짜기, 축복의 골짜기가 될 것입니다. 이 브라가의 골짜기(축복의 골짜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