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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Meditation

할머니 향년 101세 소천, 할머니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by Message.K 2024. 4. 5.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뤘다. 장례식을 대하면서 인간은 언젠가는 누구나가 다 죽는다.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 앞에 손자가 느끼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느끼는 감정, 필자의 할머니가 자녀들에게 남긴 유산에 대해 생각해 본 신앙에세이, 포스팅이다.

 

할머니 장례식장 발인에 참여한 우리 가족사진
할머니 장례식장, 발인에 참여한 우리 가족사진

 

 

 

 

부활절 아침에 걸려온 전화

부활절 아침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응급실로 옮겼다고 하셨다. 상황이 변하면 또 연락주겠다고 했다. 바로 출발하진 못했다. 늘 정정하게 생활하시다가 최근 2주 전에 고향교회 100주년 기념으로 모교회를 방문하여 설교했던 그 날, 나는 주일예배를 참석하지 못하시고 요양병원에서 지내신다는 이야길 듣고 부모님과 함께 할머니를 뵙고 왔다. 

 

"우리 장손주 OO왔나?"

 

그렇게 말하시면서 나를 환대해주셨던 할머니셨다.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드리고 헤어졌다. 그게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뵙게 된 시점이었다. 오전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가 소천하셨다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모교회 100주년 기념해에 향년 101세의 나이에 부활절 아침에 소천하셨다. 100이라는 숫자가 범접할 수 없는 대목인데, 할머니는 이 모든 열매를 남겨두시고 부활 주일에 소천하셨다. 그게 너무 감사했다. 

 

 

 

할머니의 사랑을 많은 받은 장손자

그런데, 더 안타까웠던 것은 셋째 고모의 말이었다.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이제껏 수년동안, 아니면 10여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가족들을 다 재회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장수하셨으니 감사한 것은 손자손녀 뿐만 아니라 증손자손녀까지 참여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한 가족도 빠짐없이 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참여했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에 있는 외손녀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참여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약간 빗나갔는데, 셋째 고모가 응급실에 실려간 할머니와 마지막 재회의 장면에서 할머니가 한 말이 내 가슴에 남았다.

 

"우리 장손주 OO이는?"

 

나는 우리 가문의 장손자이다. 할머니는 옛날 분이시다. 남아선호 사상이 다분한 분이시다. 그 가정에 나는 태어나 장남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장남, 내가 장남이라 집안의 장손자이기도 하다. 그 혜택을 나는 고스란히 받고 살았다. 할머니가 아들을 지극히 편애한 대목의 사건이 있는데, 물론 이건 해석과 관점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할머니가 건네준 큰 돈 100만원

내가 총각 전도사 시절에 사례가 한달에 40만원이었다. 그리고 보너스는 400%였다. 그때 부흥회를 하면서 강사 목사님이 도전하셔서 교회의 건축헌금조로 100만원을 작정했다. 내 생각에는 보너스가 없다고 생각하고 헌금을 드려보자고 결단을 내렸다. 힘들었다. 물론 20여년 전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형편이나 조건은 다르겠지만, 40만원으로 생활도 힘들었지만, 보너스가 없다는 것은 생활이 큰 타격이었다. 그래도 결단하고 약속한 것이니 100만원 헌금을 드렸다. 물론 고비는 있었다. 보너스 받는 달 중에 세번째 달인가 그때는 드리지 못했고 12월달이 되어서야 100만원을 맞춰 헌금을 했다. 약속한 것은 지켰다는 것은 굉장히 뿌듯했다. 한번도 그렇게 큰 금액을 하나님께 드린 적이 없던 나였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부모님과 할아버지는 농사 일 때문에 떨어져 생활했고, 손자손녀들의 학업때문에 함께 생활하셨던 할머니가 나더러 농협에 적금을 찾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셨다. 내 차를 몰고 잘 다녀왔는데, 할머니께서 수고했다면서 나에게 100만원을 주셨다. 그때는 왜 나에게 할머니께서 100만원이란 큰 돈을 주셨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후에 알고보니 그 전 해에 내가 하나님께 드렸던 건축작정헌금 100만원과 연결이 되었다. 정말 하나님께는 공짜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소 웃픈 사실은 할머니가 나에게는 100만원을 주시고, 두 여동생에게는 10만원만 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첫째 여동생이 속상했던 것이 왜 막내 여동생과 똑같이 10만원을 줬냐는 것이며, 왜 오빠만 100만원을 줬냐는 것에 살짝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후에 들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런 과정들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유독 아들, 장손이란 이유를 나를 많이 챙기셨다. 나는 그 혜택을 늘 받다보니 그게 얼마나 큰 특혜인지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장례식에 새삼 깨달은 할머니의 남다른 장점

장례식에서 또 하나 특별하게 느낀 것이 있는데, 삼촌(작은 아버지)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할머니가 일평생동안 한번도 화를 내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 챘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를 봤지만, 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내가 너무 둔해서일수도 있다. 할머니는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성을 내시거나 짜증 같은 것을 내시지 않았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게 너무 신기하다. 할머니와는 반대로 이미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는 굉장히 화를 잘 내셨다. 가정의 가계를 일구어내시기 위해 혁띠를 졸라매고 가산을 일으키신 분이시다. 대구로 자취를 할때 처음에는 도지(전세)를 얻어서 자취생활을 하다가 중학교 시절에 부모님께서 '집을 살까? 아니면 아파트를 살까?' 굉장히 고민하셨다. 그때 부모님이 우리에게 물어보셨고 우리는 아파트를 원했다. 결국 우리는 대단한 아파트는 아니지만 우리 3남매가 살기에 적합한 공간을 부모님 덕에 구할 수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집 구매하는 문제로 인해 할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대출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셨을때, 할아버지가 단호하게 "너거는 빚내서 살라카나?"라고 하시면서 빚을 지는 것에 대해 굉장히 단호하게 엄포를 놓으셨다. 결국 대출문제도 있었고, 할아버지의 반대도 있었고, 아이들은 아파트를 원해서 아파트를 구한 게 아닌가 싶다. 나중에 어머니는 그때 만약에 우리가 주택을 하나 구매했더라면 더 부자가 되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셨다. 빚을 극도로 혐호하면서 성실과 근면함으로 생활을 기반을 잡으셨던 할아버지는 화가 많으셨다. 그런데, 그걸 할머니는 2남 4녀의 자녀들을 다 키우면서도 한번도 화를 내시지 않았다고 삼촌이 고백하는 대목에서 전율이 흘렀다. 할머니의 때로는 속이 없는 듯한 사람처럼, 싫은 소리 잘 안 하고 살아가는 것 때문에 은근히 무시하거나 무관심해 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한평생을 살았을까?

 

 

 

 

할머니의 유일한 습관, 필사

그런데, 마지막 임종하시고 나서 의사가 하는 말이 할머니의 장기는 이미 다 닳고 닳아서 제 기능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생활하셨는지 기적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속이 속이 아니었겠다 싶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나 아픔에 대한 반응으로 화를 내기도 하고 욕도 하고 짜증도 내야 살 수 있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한평생 화 한번 내시지 않고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뭐 분석하는 것은 아닌데, 할머니에겐 유독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필사'였다.

 

할머니께서 시골에서 농사를 도우며 지낼 때는 시간이 잘 나지 않았을 뿐더러 나도 곁에서 잘 보지 못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구로 와서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특별히 내가 신학교를 진학하고 신앙서적과 신학서적이 책꽂이에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언젠가부터 그 책들을 읽으셨는지, 노트에다 필사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할머니께서 만약 우리 손자손녀들이 아니었다면 모교회에서 새벽기도 다니시고 신앙생활 하시면서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이미 충분히 받았을 테지만, 모교회 예배생활과 봉사가 안 되니 평생 집사로 그렇게 지내신 것이다. 할머니의 필사노트는 그렇게 쌓여져 갔다. 대구에서 우리들과 같이 지내실 때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생활하실때도 할머니는 늘 성경과 신앙글을 노트에 필사하며 생활하셨다. 그래서 할머니가 치매 초기증상이 살짝 있긴 했지만, 늘 우리를 기억하셨고 정신도 또렷하셨다. 살짝 살짝 건망증을 보이는 것은 제외하고는 늘 정정하게 건강하게 지내셨고 101세가 되도록 어머니가 소변을 받아냈지만 대변을 받아내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정정하게 지내시다가 소천하셨다. 할머니가 그렇게 인생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필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할머니의 DNA는 삼촌에게도 나타나

할머니의 필사의 습관도 유전되었나 보다. 나도 한때 독서를 한참 할 때는 필사가 좋다고 해서 필사노트를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삼촌 이야기를 해 보자. 삼촌은 고등학교 졸업후에 자신의 길을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삼촌은 학창시절때부터 유독 그림에 재주가 있었고 만화가가 꿈이셨다. 결국 삼촌은 만화가로 남다른 성공을 일궜다. 물론 지금은 만화가의 길을 접고 다른 일을 하시지만. 그런 와중에 삼촌의 막내 아들에게 골수암 초기(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다)라는 진단이 나왔고 난리가 났다. 20대 푸르른 청춘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삼촌은 만화가의 길을 접고 다른 일을 하면서 사기도 당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터였다. 그런 와중에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삼남매의 막내 아들이 암이라니.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었고 우리 친척 단톡방에는 헌혈증서가 필요하다면서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도했다. 시간이 좀 흘렀다. 삼촌의 막내 아들은 우리 할머니의 자녀들, 2남 4녀의 손자손녀들 중에 막내이다. 내가 첫째 장손이라면, 그 놈은 막내이다. 나이차이가 20년이나 나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할머니 장례식에서 새롭게 안 사실은 삼촌이 막내 아들이 투병생활을 하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필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들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필사하는 와중에 그런 확신을 받았고 삼촌은 3년정도 걸리는 성경필사를 한번 마쳤고 막내 아들, 나에겐 막내 동생과도 같은 S가 완쾌되었다. 그런데, 숙모님이 삼촌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당신에겐 자식이 하나만 있냐?"

 

결국 삼촌은 아들을 위해 성경필사 1번, 두 딸을 위해 필사 2번, 결국 성경필사를 3번이나 하셨다. 그리고 성경필사한 노트를 자녀들에게 각각 1권씩 주신 셈이다. 참고로 삼촌은 전직 만화가이셨다. 글씨도 굉장히 잘 쓰신다. 그 글씨체로 필사한 성경을 자녀들이 하나씩 보유한 셈이다. 자신들의 가보가 된 셈이다. 삼촌이 고통스런 시간을 지나면서 성경필사를 무려 3번씩이나 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과 감사를 드렸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손가락이 빠질 것 같은 고통스런 시간들을 통해 삼촌의 마음을 다듬어가시고, 삼촌의 가족들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갸늠해 보니 너무 감사했다. 삼촌은 성경필사를 위해 거의 10년의 시간을 갈아넣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은 정말 고통의 순간이 자신의 백성들이 자기에게 주목하게 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역사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사역했던 교회에 암이 걸리신 집사님이 계셨다. 그런데, 그분이 성경필사를 한번 하시고서 병이 완쾌되었다고 하셨다. 그분이 붓글씨 필체가 좋아서 그 필사성경을 나중에는 교회에 헌물을 하시기도 했다. 그때 참 그 집사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삼촌은 필사를 3번이나 하셨다고 하니 존경의 고개가 그대로 떨구어진다. 삼촌에 얽힌 나의 즐거운 추억들이 너무나 많은데, 정말 우리 삼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구나 싶었다. 

 

할머니의 필사의 유전자는 대를 걸쳐 삼촌에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필사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 가문을 그래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에서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할머니 장례식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과연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본 대목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우리 자녀들, 후손들에게 남겨준 고귀한 습관들, 유산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본다. 

 

이사야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우리가 한평생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존귀하고 보배로운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놀라운가! 그것 아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평생의 과제인 것 같다. 풀은 마른다. 꽃은 시든다. 할머니의 관이 화장터의 굴로 들어가 2시간 정도 지났을때 할머니의 유골이 나왔다.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다. 그 유골을 모아 빻아 결국 유골함에 가루가 담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인생의 모든 육체(헬, 소마soma)는 다 시든다. 탱탱했던 피부도, 근육도 마르고 쪼그라들고 결국은 흙으로 돌아간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했다. 한평생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인생이 되길 소원한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루면서 할머니가 우리 대가족과 후손들에게 남겨준 아름다운 유산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본 포스팅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연인의 운명에 그리스도인으로 과연 어떻게 살아야하고, 후손들에게 과연 어떤 유산을 남겨야할지 생각해 본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라는 거창한 제목을 생각했는데, 그냥 생각나는대로 최근 있었던 일과 평상시의 생각을 한번 생각나는 대로 한번 포스팅해 볼까 합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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