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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by Message.K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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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하지 않는가?' 신학대학을 졸업한 학사가 후배들을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란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강의안이 바로 이 결과물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에 대해 알아보자. 

 

 

 

 

 

들머리...들음에 대하여

  우리는 무수히 많은 소리들과 음성들을 듣는다. 어쩌면 일생동안 우리가 하는 말보다 듣는 말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의 가르침과 말과 사랑의 언어를 들으면서부터, 자라면서 친구들과 또래애들의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제도적인 학교 교육과정 가운데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되고, 교회생활을 어릴 때부터 했던 애들은 무수한 설교와 교회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된다.

요즘 같으면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컴퓨터와 텔레비전, 라디오, 음원, 강의, 스마트폰 등 뿐만이 아니라 거리엘 나가보면 자동차의 소음과 여기저기서 북적거리는, 수 없이 많은 소리들을 듣게 된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을 죽 한 번 돌이켜 보더라도 그러한 들음에 대한 무수함은 어느 정도 상정하고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죤 스토트는 ‘우리의 신체구조가 입이 하나이고 귀가 2개인 것은 우리가 듣는 것을 두 배로 하라는 말이다’라고 했다. 이를테면 Long ear- Short tongue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우리의 삶 가운데 듣는다는, 들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네델란드의 문화사학자 J.하위징아가(1872-1945)가 제창한 개념인 ‘Homo Ludens’(유희인)가 있다. ‘재미있는 인간, 놀기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바야흐로 놀줄 아는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왔다’. 얼굴은 못 생겨도 유머감각이 탁월하면 또 먹어주는 시대이다.  김제동- 너무 얼굴이 그런가? 너무 고지식한가? 책을 많이 읽는 김제동이라서 그런가? 하지만, 말을 잘 하는 김제동의 먹히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 대세이다.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 가운데 때론 매스미디어(드라마, 영화, 쇼프로그램 등)가 주는 재미가 때론 말씀에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다. 왜냐하면, ‘믿음은 봄이나 시청함이 아니라 들음(경청함)에서 나기 때문이다’. '들음'이 얼마나 우리 삶에 엄청난 무게를 자리잡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그렇다면,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 무엇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이미 충분히 말씀하시지 않았는가?”(성경은 완성된 계시!)라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신의 백성과의 대화의 길을 열어 놓으시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시대의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교제하신 것처럼 우리들과도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둘째, 여호수아나 모세나 야곱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분명하고 세밀한 인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참된 자료를 제공해 주시는 책임을 지고 계신다.

 

셋째, 믿음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들도 평안과 확신이 필요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넷째,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멈추신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구약과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아브라함...‘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꿈, 이상(Vision...요셉의 ‘꿈’/하늘의 달과 해와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볏단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 다니엘...‘환상/금은동철흙 신상에 관한 미래의 예언). 기록된 말씀, 율법. 선지자들의 외침, 환경(기드온의 양털사건/양털󰍮양털주위...). 천사(J.X의 탄생...). 성령(바울의 아시아를 향한 전도여행을 금지...성령이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오늘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

  1.1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읽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며, 성경은 인간이 진리를 알도록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의 숨결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마음이 아플 때 이곳저곳 상담 다니기보다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Back to the Bible! 성경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담겨져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성경으로 돌아가기보다 먼저 사람을 찾고, 문제의 해결방식을 찾기에 급급하다. 어쩌면 기도보다 더 우선시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다!

 

 

 

  1.2 성령...

사실 예수님께서 신약시대에 말씀하신 주된 방법 또한 성령을 통한 것이었다. 오늘날,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시고 거하시며 우리를 지키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의 영에 말씀하고 계신다. “보혜사the helper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장 26절

주님은 육체에 갇힌 존재이시지만, 성령은 영이시다. 그래서 제한과 구속이 없는 것이다.

 

 

 

 1.3 다른 사람들(가까운 사람들)...

사실 우리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할 사람은 일상생활을 같이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를 가장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할 때 조심하여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누구에겐가 말씀을 전하시려고 할 때 날씨나 여담, 잡담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방해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부시절에 교육전도사 할 것에 대한 고심 중에 큐티한 말씀 ‘행10:1-33’ 말씀을 통해 확인했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던 소그룹 리더 형이 의외로 동의를 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사역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고 공동체에서도 그걸 반대했던 분위기였는데, 의외로 찬성하는 분위기라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음성(뜻)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힘들 때면 ‘내가 왜 여기서 사서 고생을 하나?’하는 생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소명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청년사역자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게 있었을까? 그것도 모교회 사역이었는데 말이다. 보통 시골은 씨족공동체인데, 교회 계신 분들은 대부분 친척이고, 지인인데, 호칭부터가 너무 힘들었다. 1년 사역했던 그 시간이 내겐 버거웠다. 나이도 어렸고, 사역이 뭔지, 설교가 뭔지 아무것도 몰랐는데, 왜 하나님께서 교육전도사를 시키셨는지 모르겠다. 군대를 가기 전에 당시 선교단체에서 마지막 송별식을 하면서 편지를 적었는데, '지나온 날들이 아름답다'라고 고백했던 것 같다. 예레미야가 고백했던 것처럼. 나는 시골 모교회에서 너무 힘들게 버티는 사역을 1여년 동안 하고, 학교에서는 소그룹을 2개씩 맡고, 문서담당자라고 자가용도 없던 시절에 등산용 배낭을 매고 경산에서 대구까지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면서 책을 떼다가 팔고 다시 반납하고 그런 일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묵상하면서, 그리스도는 말로, 입으로 고난을 때우신 것이 아니라 친히 몸소 몸으로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참 숙연해졌던 순간이었다. 그 1년의 시간이 내 생애 가장 감사한 추억이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의 확신과 가까운 지인의 동의 가운데 출발한 사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며 추억을 소회해 본다. 

 

 

 

  1.4 환경..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역시 동일하게 믿는 자들에게 활발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하고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시편 85:8...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리니).

 

 

 

 1.5 기도...

기도한다면 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2.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다른 소리를 착각하는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사탄의 음성인지 어떻게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가?”

 

  정확히 구별하여 듣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마16:21-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장면...하나님의 음성인지 사탄의 소리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우 베드로의 갈등은 곧 우리의 갈등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0:27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것이 믿는 자의 정상적인 경험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인지 구별할 수 있는가?

2.1 말씀에 대한 일관성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미 죄를 고백하였고 자신이 아는 한 깨끗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불순종하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죄의식과 정죄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탄으로부터 오는 소리이다. 이것은 로마서 8:1의 말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한 정죄의 음성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말씀의 일관된 메시지에 위배되는 것이다.

 

  사탄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우리들 모두가 너무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삶 속에 그 말씀이 든든히 서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본 말씀과 자신의 삶이 모순된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에 비추어 결코 모순되는 일을 결코 우리에게 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도 중에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것이 기도 중에 들은 음성이기에 무조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단정하기 이전에 성경을 보면서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만약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소리, 즉 사탄 혹은 육의 소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결코 성경의 원칙에 위배되는 자료를 제시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2.2 인간적인 지혜와의 모순성

  예외가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자연적이고도 합리적인 일에 모순이 된다(예/십일조, 마태복음5:39 누가 한쪽 뺨을 치면 다른쪽 뺨도 내어 주라,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를 같이 가 주라).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것은 비합리적인 행동들이다.

  EX)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한 것처럼 우리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인간적인 지혜와는 반대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호와의 말씀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

 

...하나님의 음성은 때때로 우리생각과는 모순되는 일을 요구하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2.3육적인 본성과의 충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코 육체적인 소욕을 만족시키는 일을 명하시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원치 않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순간적인 육체적 만족이 아니라 말씀을 성취하여 유익함을 끼치는 올바른 즐거움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계속적으로 육적인 본성에 호소하는 것들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그러기에 어떤 이는 ‘사탄은 현대에 3S정책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Sex, Sports, Screen. 이 모든 육적인,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과 쾌락에 몰두해 가는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은 시대에 반하는 것이다. 영적인 소욕은 육적인 소욕을 거슬리게 하기 마련이다.

 

  수련회를 앞두고 우리는 릴레이 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다. 새벽기도는 쉽지 않다. 그것도 매일! 우리가 더 자고 싶고, 더 놀고 싶고, 내 시간을 나를 위해 더 쓰고 싶은 것은 내 욕심이지만 그 육적 본성을 누리고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오는 것이 바로 새벽기도가 아닌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우리는 끊임없이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구조를 가진다. 거기서 승리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육적인 본성을 누리고 참고 인내하고자 하는 우리 개인의 의지도 중요한 것이다.

 

 

 

2.4믿음에 대한 도전

  주님께 간구할 때 항상 그것이 우리들의 믿음에 도전을 주는가를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항상 큰 믿음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가운데 어떤 결단을 내리려할 때에는 이러한 질문이 그 음성의 기원이 과연 무엇인가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행사나 이벤트를 계획할 때 그게 그냥 나에게 발전이나 진보를 주기 보다는 주저앉아 있고 도태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 프로젝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자가 되어선 아니되기 때문이다.

 

 

 

 

2.5용기

  또한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예/수1:1-9).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계획의 온전한 성취여부는 어느 정도 우리들의 확신에 찬 용기 있는 태도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들을 소심한 제자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담대한 증인으로 만들어 주신다.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케리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이었다. 19세에 인도로 선교사로 갈 때, 그는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었고, 아이도 있었고, 대머리였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그는 아무도 선교를 시도하지 않던 시대에 선교를 시도했다. 당시 선교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의 주권은 온전하기 때문에 굳이 사람들이 복음을 가지고 선교지에 가서 고생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알아서 그들을 다 복음화시키실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엉뚱한 성경해석과 선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윌리암 케리는 용기있는 선교의 첫 테이프를 끊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들어맞았던 것이다.

 

 

 

2.6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도 선한 방법을 고려하신다.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분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혼자만 잘되고 잘 살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합력하여 서로 윈윈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2.7인내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성급하게 결정짓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탄은 항상 즉시 행동하라고 우리를 다그친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마귀이다’라고 말했다.

 

  성경의 사울 왕은 성급하게 행동함-사무엘을 칠일 째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리는 죄를 범함-으로써 왕위를 잃게 되었던 사람이다.

  이와 반대로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따르는 관원이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으로써 영광스런 결과를 맞이하였다. 유다에 살다가 추방된 사람으로부터 예루살렘이 도살장과 같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면서 그는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다”(느1:4)라고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는 직접 달려들어 버리는 순간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넉 달 동안이나 기다렸다. 그 후 왕의 직접적인 승인을 얻어서 성전건축 물자를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갔다.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정리하시기를 기다린 다음 행동하였다.

 

 

 

2.8결과에 대한 고려

 “행동해 버려라. 어서 계속해라. 결판 내 버려라.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아라!”라고 사탄은 말한다. 막가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행동에 의해 파급되는 결과에 관해서 염려하신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 볼 때 우리들이 과거에 내렸던 판단의 결과를 고려한다면 다시 예전과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삶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먼저 질문해야 한다. ‘내가 만약 이러한 결정을 한다면 가족들과 친구들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주님 안에 거하는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특히, 공동체내에서의 이성교제시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2.9경건한 상담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충고를 받도록 인도하실 때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카운셀링을 담당하는 자들의 생활방식을 검토하여 보기를 원하신다.

 

  찰스 스탠리의 할아버지(목사)는 손자인 그에게 이렇게 충고하였다고 한다.

 

 “찰스야,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만나거나 항상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여라. 하나님께서 네 머리로 벽을 받으라고 하시면 구멍을 내주실 것을 믿고 그렇게 해라.”

 

  찰스 스탠리는 이 충고를 결코 잊은 적이 없고 이 말씀은 자신의 30년간의 목회생활의 버팀목이자 기둥이었다고 고백했다.

 

 

 

2.10영적인 성장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영적인 성숙을 방해하거나 후퇴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거나 그러한 생활을 쫓는 것을 분명히 싫어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할 때는 ‘이것이 내게 영적인 유익과 성장을 주느냐?’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2.11평강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영혼이 고요하고 잠잠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갈등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던 영혼이 말씀을 오랫동안 들을수록 고요해지고 더욱 평안해지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어떠한 일의 결정 후에 그 마음속에 평강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는 것이다.(제가 군에 가기 전, 한 학기를 휴학하고서 선교단체 활동을 하면서 참으로 힘들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문득 ‘내가 왜 휴학하면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회의가 찾아 왔을 무렵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말씀묵상을 하면서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하나님의 위로함을 맛보았을 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일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다.)

 

 

 

 

3.하나님의 음성 듣기

  저는 여기서 여러분에게 <묵상>을 제언하고 싶다. 기독인의 묵상은 초월명상이나, 불교의 선이나, 금욕주의적인 자기수련이나, 범신론적인 평정, 자기최면, 또는 마음을 비워서 해탈을 얻고자 하는 수도 자세 등이 결코 아니다. 기독인의 묵상은 마음을 비우는 수도가 아니라 깊고 동적인 사고 작용을 통해 마음이 점차 성령의 활동으로 가득 차게 됨으로써 집중력이 필요에 따라 요구되기도 하는 창의적인 사색이다. 하나님의 역사나 말씀, 섭리 등을 기억하고 사색하고 곰곰이 생각하여 자신에게 적용해 보는 거룩한 생각, 사고활동이다.

 쉽게 말하자면, 묵상은 하나님 중심의 사고활동, 즉 하나님을 생각(Thinking of God)하는 것이다. 성요한은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알고 보면 가장 적극적인 성령의 활동이다”라고 설파했다. 토마스 머튼은 “진정한 묵상은 심리학적 요법이 아니라 신학적인 은총이다.”라고 말했다.

 

 

  다윗왕은 가장 경건하고 열정적으로 묵상을 시행했고 이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묵상의 대가였다. 다윗에게 묵상은 결코 새로운 어떤 형태가 아니었다. 묵상은 그에게 있어 ‘삶’이었다. 그의 묵상의 진면목은 시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자주 들에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자기의 이야기를 아버지 하나님께 아뢰었다. 심지어 사울로부터 끊임없는 도망행각, 창을 피할 때조차도 다윗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묵상은 매일 매일의 생활 가운데 우선순위를 차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통하여 일생생활의 소란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건져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묵상은 혼자서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일말씀이 정해지면 그 본문을 가지고 기도하기도 하고, 새벽기도 시간에 묵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눈물을 주시기도 하고, 감동과 도전을 주시기도 합니다. 기도가 뒷받침된 말씀은 더 파워와 영향력이 있습니다! 기도를 통한 묵상은 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부들은 종종 묵상을 ‘거룩한 여가’(Otium Sanctum)라는 말로 사용하였다. 고든 맥도날드는 우리들의 내면의 영적인 영역,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이루어지는 중심부를 ‘마음의 정원’이라고 표현하였다.

 

 18세기의 기독교 시인 윌리암 카우퍼(William Cowper)는 그것을 조용한 호수에 비유했다.

      ‘삶이 아무리 거칠고 소란스러워 보여도

       이를 현명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에게는

       지혜란, 깊은 호수에서 온 힘을 다해 찾아낸 진주이다.‘

 

찰스 스탠리는 묵상에 도움이 되는 4가지 원칙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첫째, 과거에 대하여 검토하라.

둘째, 하나님에 대하여 숙고하라.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

넷째, 하나님 앞에서 요청하라.

 

 

 

 

3. 묵상을 위하여 필요한 구체적인 요소들

1.일정한 시간

  하나님에 관한 묵상을 하려고 할 때 시간의 길이는 목적에 따라 1분이 될 수도 있고 1시간이 될 수도 있다. 내면적인 삶에서 일단 숙달된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묵상하는 것이 시간이나 장소나 환경에 제한을 받지 않고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같은 초보자에게는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공식적인 묵상에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사무와 세상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다급한가가 문제이다. 이것을 늦추기 위해서는 일정한 양의 시간이 필요하다.

 

 

  본회퍼는 핑켄발터에 신학교를 세웠을 때, 그 곳 사람들은 반드시 한 시간 반씩 조용히 성경을 묵상하도록 했다.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 묵상을 위해선 일정한 시간, 정해진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남녀 이성교제를 할 때 시간을 매주 일시와 장소를 똑같이 정해서 만나지는 않지만 정기적으로 때론 변칙적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만남이 서로에게 더 큰 사랑과 도전과 도움을 줍니다. 데이트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성교제는 엄청난 에너지, 시간, 물질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도 하나님께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아깝다 생각하면 안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마 6:33)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쓰는 묵상을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2.고요함과 침묵

 시편 46:10“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나님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 앞에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는 법을 배우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열쇠이다. 또한 우리는 소음에 워낙 익숙해져 있기에 소음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을 느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때에도 하나님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때도, 요단강을 도하할때도 그들이 댐공사를 하거나 다리를 만들거나 배를 만들어 띄우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가만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렸습니다.

 

  여리고성을 돌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7일째 되는 날은 일곱바퀴를 돌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셨나요? 바로 ‘침묵’입니다(수 6:10-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삼국지에 보면 ‘사람이 말이 많으면 마음이 빈다’ 그랬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그분을 음미하는 것은 예배자의 기본자세이다.

  

  예배 참석자들은 예배의 다음순서가 진행되지 않은 채 1,2분 정도의 공백이 생기면 그 때의 고요함을 견디지 못한다. 우리 대부분이, 아무 것도 말하지 않거나 남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않은 채로는 한 시간도 배겨 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잠잠할 때에 자신의 생각을 우리들의 사고 속에 불어 넣어 주신다(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사30:15).

 

  말콤 머거리지는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 분은 시끄럽고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만나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침묵의 친구이시다....우리의 영혼을 울리리면 침묵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때론 큰 소리가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때때소리는 소음이 될 수가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집중의 훈련, 침묵이 때론 더 효과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3.홀로 있기

 -(2의 고요함이 없으면 홀로 있기도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마가1:35“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하나님 아버지와 완벽한 관계를 가지셨던 예수님조차도 사랑하는 제자들과 무리들 곁을 떠나서 홀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셨는데 하물며 우리들은 더욱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가끔 필요하다. 아빌라 테레사는

 ‘당신이 홀로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라고 했다. 이처럼, 부부도 가끔은 떨어져서 각각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묵상을 함으로써 그들 사이에는 더욱 친밀함이 싹트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절대적이고도 완전히 집중된 관심을 원하시기 때문에 가끔 홀로 있을 것을 명하신다. 가령, 여러분이 결혼해서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매일매일 24시간 내내 대여섯명 씩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분명히 여러분은 그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고 심지어는 다투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는 하나님과 여러분과의 완전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는 거룩한 사랑의 가슴과 팔과 당신을 감싸주고 싶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두 사람을 안아주시지 않는다.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안아주시고 사랑해 주신다. 홀로 있는다는 것은 우리가 순례의 길을 가는 어느 시점에 ‘영혼의 어두운 밤’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성숙했느냐를 갸늠할 수 있는 척도는 얼마나 ‘홀로 있기, 홀로 서기’를 잘하느냐이다.

 

 

  죤 스토트는 어떤 책을 쓰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어떤 문제에 봉착하였을 때마다 그는 인적이 드문, 시골의 조용한 곳에 ‘고독과 싸우며’ 책을 쓰거나 사색을 하거나 성경을 묵상했다고 한다. 리챠드 포스터는 홀로 있는 훈련을 위한 제언으로 하루 종일 한마디의 말도 없이 생활하는 실험을 해 볼 뿐만이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있는 고요한 장소를 찾거나, 일년에 네 차례 정도 삶이 목표를 재정비하기 위해 세 시간 내지 네 시간 동안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라. 당신의 삶의 목적과 중간목표들을 평가해 보도록 하라. (지금부터 앞으로 일년동안 당신은 어떤 일을 달성하기를 원하고 있는가? 또한 지금부터 앞으로 5년, 10년 동안의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일년에 한 차례는 집을 떠나 조용한 곳을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4. 묵상에 대한 몇 가지 제언

 본회퍼는 사람들이 본문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읽고 넘어간다면서 한 본문을 가지고 일주일 전체를 묵상할 것을 권고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분석하려 하지 않고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마리아처럼 마음에 두고 생각하라.”고 했다.

 

 

  또 하나의 묵상 방식은 ‘회상’이라고 하는 중세의 묵상법으로, 퀘이커들은 흔히 ‘전념’이라고 부른다. 이 시간에는 가만히 있으면서 재창조의 침묵으로 들어가 우리 생각의 단련들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간단한 연습/‘손 바닥 아래로, 손바닥 위로’...전자는 주님께 내가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분노, 염려, 근심, 고민 등)을 드리는 것이며, 후자는 주님께로부터 긍정적인 것들(사랑, 평안, 인내, 기쁨 등)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세 번째 종류의 묵상 방식은 ‘창조에 대한 묵상’이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그분의 창조물을 통해서 그분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방법이다. 에블린 언더힐은 ‘옛날 신비주의자들이 <피조계를 통한 하나님 발견>이라고 불렀던 첫 번째 형태의 묵상을 시작하라’고 하였다. (저는 때때로 노트북이 있다면, 시원한 자연경관이 담겨 있는 저수지나 체육 공원에 가서 사색도 하고 글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네 번째 묵상 방법은 우리 시대의 사건들을 묵상하면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다. 우리는 능력이 아니라 선지자적인 관점을 얻기 위해서 우리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의 내적 의미를 꿰뚫어 볼 의무가 있다.

토마스 머튼은

 

‘그리스도의 고난만 묵상하고 닥하우와 아우슈비츠의 수용소를 묵상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시대의 기독교를 온전히 체험하지 못한 것이다.

 

이 형태의 묵상은 칼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한 손에는 성경을, 또 한 손에는 신문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잘 할 수 있는 묵상이다. 이런 것을 일컫어 죤. 스토트는 <이중적인 귀기울임Double Listening>이라 칭했다.

 

 

  다섯 번째는 좀 더 실제적인 방법으로 ‘일기 쓰기’를 들 수 있다. 수세기에 걸친 수 많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일기를 써 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는가? 만약 그들이 영적 성장을 위해 일기 쓰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들이 그들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은 일기쓰기를 통해 다윗의 말처럼 ‘나의 폐부를 살피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때때로 일기는, 말로 하는 기도가 응집력을 잃을 때 글로 쓰는 기도를 싣는 도구가 된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는 일기장의 앞쪽에서부터는 매일매일의 사건 기록을 해 놓고, 뒤쪽에서부터는 매일매일의 사색을 담아 놓는다고 한다. 그 일기장은 갈등과 배움의 경험을 포함한 영적 편력이 담긴 한 권의 귀한 책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고픈 것은 ‘독서’이다. 독서를 하면서 나는 수많은 생각의 실타래와 사색의 밀림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말이 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이고, 책은 읽는 사람은 결국 성경을 읽게 된다.’ 또한 우리는 ‘아는 것 만큼 믿을 수 있다.’ 한 권의 책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하나님을 묵상하는데 얼마나 큰 촉매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나 죤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같은 고전을 읽어보라. 마틴 로이드 죤스는 주일마다 예배를 마치고 황혼이 질 저녁무렵에는 ‘교회사’를 읽으며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얼마나 큰 감동인가? 지성은 감성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묵상의 풍성함을 위해서 우리는 독서해야 한다.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 필립 얀시의 신앙서적,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조직신학’, C.S.루이스의 저작, 유진 피터슨의 신앙서적들을 탐독하길 권한다.

 

 

 

 

마무리...

  성경적이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로렌스 수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시작하라!”

             토마스 켈리는 이렇게 말한다. “저 중심부로 들어가라!”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청하신다. “내게 와서 배우라!”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뜻과 음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란 이 강의를 통해 조금이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디테일해지고, 더 민감해질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감사하겠다.

 


 

 

Reference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찰스 스탠리/두란노 - 강의안의 뼈대를 제공한 textbook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고든 맥도날드/IVP

영적 훈련과 성장/리챠드 포스터/생명의 말씀사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죤 스토트/IVP

큐티가 어려우십니까/라채광/두란노

생명의 삶/두란노

신국원의 문화 이야기/신국원/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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