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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변천과 그 흐름(고대사부터~성막중심의 예배)

by Message.K 2022. 3. 21.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변천과 그 흐름(고대사부터 초대교회까지)에 대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한다. 김진호의 <예배>에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한 내용입니다. 예배의 정신이 어떻게 신구약성경을 통해 이어져 왔는지 역사적인 조망이 되었음 합니다.

 

 

 

현대-예배의 홍수 시대

 

성경이야말로 예배에 관한 역사.

예배로 인해 종교적인 단계---->기독교적 단계로의 자기 실존의 변화를 경험.

이러할 때 예배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living relationship, 진리 안에서의 자유freedom,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의 회복 그 자체가 됨.

 

 

 

 

 

창세기의 예배

 

 (창 1: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첫째, 하나님은 인간과 교제의 관계fellowship를 갖기 위해 자신의 형상image of God대로 인간을 창조. 바로 이 근본목적을

 

 (사 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proclaim my praise) 하려함이니라-예배적인 관계를 설명해 주는 말씀.

 

둘째, 이런 관계를 통하여 위로부터의 권세와 권위와 능력을 받은 인간에게 통치권rulership을 주셔서 생육, 번성, 충만, 정복(창 1:28)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예배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야 할 가장 근본적인 행위이며 주어진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의 원천.

 

 

 

 

 

2. 아담과 이브의 타락(예배 관계의 파괴)

 

인류 역사의 최대의 불운은 예배의 관계를 상실해 버림. 이 상실의 근본 원인은 ‘교만 즉 메시아 콤플렉스(Messiah complex)’에서 왔다.

 왜냐하면 “계명성 혹은 빛을 발하는 자(light bearer)"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던 사단이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이 교만해져서 결국은 하늘에서 추방당하였기 때문이다. 그 사단이 아담과 하와에게로 갔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You will be like God)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고 그들을 유혹하였다->예배적인 관계의 파괴->잃어버린 예배 관계의 회복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영단번once for all의 속죄의 제사를 자신의 죽음으로 드렸다.

 

 

 

 

 

3.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의 사랑(예배의 필요성에 대한 첫 교훈)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 육체적 죽음 + 영적인 죽음->예배적인 관계의 파괴.

그 결과는?

 

첫째, (창 3: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죄->죄의식->수치

 

둘째, (창 3:10)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댄 친숙한 관계->그의 부름 앞에서 두려워하여 숨어버리는 불편한 관계로 전락.

 

: 죄의식과 수치심을 씻어주시기 위해 나뭇잎 대신에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

 

 

 

◓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의미는?

1. 짐승을 잡아 제사 즉, 예배를 드려야 된다는 의미.

2. 짐승을 잡을 때 흐르는 피는 어린 양 예수의 보혈로 해석되며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이는 그러한 죄의식과 수치심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제시한다.

(히 9:22)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희생의 제물을 통한 제사, 즉 예배가 드려져야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배는 인간이 고안해 낸 창작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며 기독교 신앙 생활의 핵심 부분임을 알 수 있다.

 

 

 

 

 

4. 가인과 아벨의 제사(성서 상에 나타난 첫 예배)

 

  아담 자신이 입은 가죽옷을 볼 때마다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상기했을 것이고 그러한 제사를 드렸을 뿐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가르쳤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근거:

첫째, 가인과 아벨이 각자의 제물을 가져왔다 brought-한:드렸다, NASB: brought an offering to the Lord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d Abel, on his part also brought of the firsthings of his flock...그 때 당시에 제물을 드릴 제단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둘째, 가인이 쫓겨나는 장면

(창 4:16)‘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Cain went out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에덴 동편에 거하였더니’라고 기록한 것을 볼 때 그 당시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던 제단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신 이유

아벨의 제사: 히브리서 11장 4절의 말씀처럼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일이지만(창 3:21)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예배를 드려야 됨을 가르치신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을 가질 수(롬 10:17) 있었던 산 믿음이었다. 즉 아벨의 제사는 믿음으로 가르침에 순종한 제사였다.

 

*. 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와는 달리 그 제물의 설정에 있어서 하나님 가르침에 따르지 않은 불순종함이 있었기 때문. 즉, 그는 하나님의 방법<자신의 방법과 생각에 근거한 제물, 인본주의적이며 반항적인 자세의 제사.

 

 

 

 

5. 인류 첫 회중예배(public worship)의 시작

 

가인의 저주 이후 하나님은 경건한 자손들을 통하여 하나님 중심의 올바른 예배를 부활시키기 위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아들 셋을 허락하시고 또한 셋의 아들 에노스 대에 이르러 인류사상 씨족 중심의 첫 회중예배 성격을 띠는 예배를 드리게 하였다.

 

[창 4:25-창 4:26]

(25)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26)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 첫 회중예배에서 그들이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 이것은 그 때 당시 개인의 마음에 인격되신 하나님을 모셔드리면서 그 분의 도움을 간구하는 예배의 모습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6. 노아 홍수 이전의 첫 예배

 

창 6:5-22, 노아의 삶 자체가 온전한 예배였으며 예배 그 자체가 삶이 될 수 있었기에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여시기 위하여 그를 선택. 선택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대홍수가 끝나고 배에서 나왔을 때 최우선적으로 한 일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제사 즉,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다.

 

[창 8:20-창 8:21]

(20)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21)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

첫째, 성서에서 처음으로 제단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제단을 세웠다라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을 때 그들이 제물을 가져왔던brought 지정된 제단 형태의 장소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제단이라는 명시적인 표현은 없었다. 다만 그것이 제단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 제단=하나님의 임재라는 개념과 직결된 장소, 노아의 우선순위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마 6:33)신앙인의 예배적인 자세.

 

 

둘째, 성서에서 처음으로 번제라는 단어를 찾아 볼 수 있고 그들이 번제를 드렸다는 사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불로 태운 번제였음을 언급치 않음. 그런데 노아의 첫 번제: 정결한 짐승과 새-이는 거룩한 하나님께 성결한 것을 드려야 함을 의미, 더 나아가 그 분 앞에 열납되는 삶을 경험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그 분 앞에서 정결해야 함을 의미.

 

 

[시 24:3-시 24:4]

(3)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4)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깨끗한 제물=깨끗한 마음의 표현, cf> 아벨과 제물을 함께 열납(창 4:4).

 

 

  노아의 자손들이 바벨탑을 수축, 인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을 향한 첫 집단적인 반역행위로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입장에 서겠다는 반 예배적 행위.

  바벨탑 사건->그들은 선조들의 제단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으므로 그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하였다(창 11:4). 인간의 집단적인 힘을 기르겠다는 교만한 생각. cf> 루시퍼.

그 결과, -언어를 혼잡케, -셈의 후예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심.

 

 

 

 

7. 출애굽 이전 족장시대의 예배(단 중심의 예배)

 

창 12:4-믿음의 행진의 아브라함, 족장시대의 시작, 이 시대의 족장이 제사장, 예언자, 왕 같은 역할을 감당.

 

 

1> 단과 장막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인도함을 받아 지시하는 땅으로 갈 때마다 먼저 단을 쌓고 장막을 친 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함.

 

[창 12:7-창 12:8]

(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8)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 13:17-창 13:18]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단을 중심으로 예배적 믿음 생활을 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시기 시작.

 

Ex>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El-Elyon, God Most High: 창 14:18), 전능하신 하나님(El-Shaddai, God Almighty: 창 17:1), 영생하시는 하나님(Jehovah-Olam, God Everlasting: 창 21:33, 여호와 이레(Jehovah-jireh, the Lord who provide: 창 22:14)

 이러한 이름들 자체가 하나님의 성품character과 인격person과 본성nature을 대변해 주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더욱 깊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왔을 것.

 

 

2>예배하는 자의 근본 마음 자세를 가르치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큰 시험Test를 통하여 예배자의 마음을 가르치셨다. 주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단 위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삭과 같은 우리 인간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하여 구원의 은혜를 경험케 하심. 그리고 이삭의 죽음을 대신하가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수양을 준비하시는 사랑을 보여주심.

 

첫째, 예배는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욥과 동일.

 

(욥 1:21)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창 22:12)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둘째, 믿음으로 순종하면 제사보다 나은 결과에 이른다.

Q.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A.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7-8)-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었다. 이것은 아들의 의아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가 항상 당신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함과 아울러 그 생활 속에 당신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있어야 함을 가르침.

 

 

3> 십일조의 시작

사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십일조의 필요성에 대하여 가르치셨는지에 대하여서는 성서 안에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기원을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으로부터 대접과 축복을 받은 후 그 감사의 표시로 그가 취한 전쟁 노획물의 1/10을 드리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창 14:17-20).

야곱도 십일조를 약속함-(창 28:22)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 개념은 그 당시까지 희생 제물을 드렸던 제단 중심의 예배 개념에서 노동 즉, 생활을 통하여 취할 수 있는 것들 중의 일부분을 드린다는 넓은 개념의 예배에로의 한 걸음 전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그 양에 의하여 결정되기 이전에 그 질 즉, 정신 다시 말해서 봉헌자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가 되었는가에 그 핵심이 있다.

(마 23:2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 임마누엘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

야곱의 두려움-> 아버지의 집에 있는 단에 임하셨던 하나님을 떠나는 것.

(창 28: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 어떤 장소와 공간에 제한된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에 편만한 하나님-그 현존하심에 대한 경외 의식으로 충만하여졌다.

 

 

 

 

8. 출애굽 이후 광야 시대의 예배(성막 중심의 예배)

 

출애굽 광야 생활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적극적으로 계시하시기 위하여 새로운 제도와 방법을 계시하셨다.

 

 

1>모세의 호렙산 경험

모세가 소명을 받는다.

(출 3:5)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계시.

 

(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모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잊혀지지 않는 신관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 더 나아가 광야에서 백성들을 리더할 대언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주춧돌.

 

 

2> 더욱 역동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역사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레 11:45)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모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that I am"(출 3:14)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심과 거룩 자체에 대하여 계시하기 시작하심.

 

*. 율법과 계명(출 19-24)

*. 장막의 모형(출 25-31)

*. 우상숭배의 죄(출 32-34)

*. 장막 건축(출 35-40)

*. 제사법(레 1-6)

*. 순결에 대한 율법(레 11-15)

*. 거룩한 백성(레 18-20)

*. 거룩한 제사장(레 21-22)

*. 거룩한 절기(레 23-25)

 

출애굽 이후 주님께서 창세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단어인 거룩이란 개념을 계시하셨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분리적인 의미의 거룩 개념을 계시. 성서적 거룩한 삶이란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육에 속한 삶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삶이 내면화 된 삶을 의미.

 

이유: 

(레 19:2)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거룩함이 바로 하나님 자신과 교통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역할-자신과의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를 수립(출 19:5-6).

 

 

3>예배의 제도와 형태에 혁신을 일으키는 하나님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계시+예배 제도와 형태에 있어서의 혁신적인 변화.

 

첫째, 단 중심의 족장시대의 예배 VS 하나님께서 직접 디자인하신 성막의 번제단 이외는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을 허락지 않음(죄로부터 구별된 개념을 교육하시기 위한 의도).

 

둘째, 출애굽 이전의 개인적, 가족적 범주의 예배->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집단적으로 드리는 대중 예배mass-worship가 시작. 대중 예배는 절기 중심(유월절, 무교절, 맥추절, 오순절, 나팔절, 장막절)

 

셋째, 성막예배-레위인과 제사장 중심-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연결해 주는 중계자 역할. 그러나 그 당시 예외가 있었다. 매년 3회 정해진 때, 즉 장막절, 맥추절, 무교절의 예배시였다. 이때엔 12세 이상의 남자는 모두 직접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고 자신을 점검하고 헌신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산교육적인 의도.

 

넷째, 다양한 제물을 봉헌할 수 있도록 계시.

 

번제-불에 깨끗이 함으로서 모든 제물과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림.

소제-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로서 삶을 드림.

화목제-하나님과의 교제의 축복에 참가함.

속죄제-지은 죄로 인하여 죄인됨을 용서받음.

속건제-지은 죄를 용서받음.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며 속죄제, 속건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죄의 현실과 하나님의 심판이 속죄제, 속건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필요한 세 가지 정신

1-번제의 정신: 날마다 우리의 죄를 예수의 보혈로 씻어 자신을 온전케 함으로 그 삶과 노력을 모두 헌신해야 함.

2-소제의 정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영육의 축복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함.

3-화목제의 정신: 예수의 공로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 분과의 영적인 깊은 교제가 있어야 함.

4>성막Tebernacle과 이를 통한 계시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사건을 통한 영적 간음의 죄.

율법과 계명 성막(기독론적 해석)
죄에 대한 정죄와 깨달음, 그리고 인간의 무력함 하나님의 해결책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자신의 의에 기초(우리가 행하리라!) 그리스도의 의에 기초(다 이루었다!)
시내산에서 갈보리 산으로
돌판에서 십자가로

 성막은 인간의 한계를 아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고안하신 죄사함의 방법을 통하여 인간을 만나 교제하기 위하여 오신 처소였다. 참으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과 함께 살기를 원하셨다.

 

5> 성막의 기본구조와 그 의미

출애굽기 1-18: 구원이야기

         19-마지막: 예배(참된 예배야말로 구원의 감격에 기초해야 함을 보여주는 틀이다)성막 그림 참조

 

 

성막평면도와 치수
성막평면도와 칫수

 

 *이 강의는 김진호의 <예배>를 기초하였다. 미완성 기록강의안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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