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장을 가지고 롯의 일생을 한번 돌아보면서 과연 그가 했던 창세기 13장의 '눈에 보이는'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적 거인이었던 삼촌 아브라함 곁을 떠나면서 닥친 롯의 위기를 한번 나누고자 합니다.
롯을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롯의 아내를 떠올리면 '소금기둥'이 떠오릅니다. 과거에 나왔던 성경을 배경으로 한 명화들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 스토리'가 종종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하면 롯의 아내, 그리고 롯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노릇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들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제대로 받은, 불덩이 유황의 재앙을 그대로 받아 소돔과 고모라 전체는 불바다가 된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보았던 명화에선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지는데 마치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것처럼 도시가 불타는 것으로 묘사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던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미련과 아쉬움에 가득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봅니다. 자신이 두고 왔던 소돔과 고모라에서 누렸던 사치와 향락과 명예와 명성과 부와 재력, 그리고 롯의 두 딸의 사위들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창세기 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롯은 사위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 재앙에 관한 소식을 분명히 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고 했습니다. 같이 떠나자는 것이죠. 하지만 두 딸의 사위들은 장인어른 롯의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장인어른과 사위들의 관계가 좋았겠죠. 롯도 재력이 있었고 점점 소돔과 고모라에서 자리매김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떠나서 처음에는 소돔과 고모라 근처에서만 살았을 것인데, 점점 더 소돔과 고모라 중심부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롯의 가족들과 종들만 오롯이 생활하였다면 아브라함과 같이 살았던 믿음의 삶과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했을 수 있겠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데 당시 교회도 없는 상황에서 아브라함을 떠난 롯의 가족은 점점 소돔과 고모라와 친밀한 삶의 방식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깐 외부인에 불과했던, 아웃사이더에 불과했던 롯의 두 딸이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 출신의 남편과의 결혼까지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던 것을 볼 때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의 라이프스타일에 깊게 물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도 남자지만, 여자가 가지고 있는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자랑하고 과시하고 픈 욕심이 아마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롯의 집안의 가진 것들은 분명히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었을 것입니다.
떠돌이 출신의 롯의 두 딸이 소돔과 고모라와 사돈을 맺었다는 것은 롯의 집안의 존재감이 있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이 먹고 살면,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쾌락을 탐하게 됩니다. 롯이 어느정도의 위치가 되면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어울렸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롯의 집안을 받아들였다는 말이겠죠. 소돔과 고모라가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는 아니겠지만, 고대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의 '유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롯의 가족이 아마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딸을 결혼시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소돔과 고모라에 가득했던 동성연애, 특별히 '남색'이란 단어가 sodomy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남색'이 가득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집안의 남자 소녀 노예와 이런 부적절한 관계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남색 문화에 젖어들진 않았지만, 롯이 사위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매개체는 아마 '농담'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요즘 예능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 엄청나게 많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 희희낙낙했던 분위기가 그 당대에도 있었단 이야기입니다. 그런 웃고 즐기고 폭소하는 분위기가 롯과 사위들 사이에도 있었단 말씀이죠. 그래서인지 롯이 굉장히 심각하게 '소돔과 고모라 재앙으로부터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사위들의 반응이 굉장히 가볍습니다.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롯이 가진 게 얼마나 많았을까요? 아브라함과 헤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이고 있던 수많은 가축들이 너무 많아서 목초지가, 뜯어먹일 풀이 모잘라서 이동이 불가피했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부동산도, 주식도, 가상화폐도, 자가용과 명품, 보석, 악세사리, 금덩어리, 달러...뭐 엄청나게 많은 재력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롯이 지금 그냥 몸만 빠져나가야 할 상황입니다. 자기가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와서 이뤘던 모든 좋은 것, 자기가 가지고 왔던 모든 것, 자신이 좋다고 여겼던 모든 가치들을 다 버려두고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롯은 자신을 아들처럼 아꼈던 삼촌 아브라함이 이야기하니깐 어떻게든 액션을 취하지만, 사위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아내와 두 딸만 겨우 챙겨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반려자 아내조차도 너무나 많은 미련과 아쉬움으로 뒤를 돌아보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야 맙니다.
저는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롯의 선택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3장에서 이렇게 나옵니다.
5 아브라함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이로 인해 아브람의 종과 롯의 종들이 다투게 됩니다. 같은 가족끼리 다투니깐 아브람이 제안을 합니다. 다들 아시다싶이 롯은 아브람에게 더 좋은 풍요로운 땅 소돔과 고모라쪽을 양보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그 풍요로운 먹잇감이 넘치는 그곳을 선택합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이 하자는 대로 하고 자신은 다른 편을 선택합니다. 롯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창세기 13장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처음에는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물렀지만, 12절 마지막에 보면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도시의 명성과 소식을 롯이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고수하고 누렸던 믿음의 문화와 가치관과는 다른 이방인들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와 소식, 정보를 접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롯은 분리된 모델을 취하지 않고 동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구도인데요. 롯이 동화되기 시작한 그 소돔, 소돔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졌느냐를 이야기할 때 성경기자는 13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죠.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면 큰 죄인이었더라"
세속적으로, 세상적으로 더 나은 선택지를 선택했던 롯의 현실이 이러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롯은 결국 자신이 살려면 그곳을 빠져나와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자력으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를 통해서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서 가장 사랑했던 아내를 잃어버리는 댓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두 딸의 남편인 사위들도 그러했습니다. 말 그대로 이제는 빈털털이가 된 상실자, 롯에게 남은 것은 두 딸 뿐이었는데. 두 딸이 롯에게 선물한 것은 근친상간이었고, 두 딸이 자신의 씨를 받아 모압과 암몬의 조상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창세기 19장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눈 앞에 보이는 것, 풍요로운 땅, 물이 넉넉한 땅을 선택한 롯의 선택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요? 눈에 보이는 데, 세상적으로 다 화려하고 보기 좋아 보이는데 그럼 그걸 선택 안 하고 황무지와 같은 척박한 곳을 선택하느냐? 그것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롯의 소돔과 고모라 쪽을 선택하면서 결국 가정의 비극으로 치달았다는 점입니다. 풍요롭고 화려하고 눈에 좋아 보이는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는 점입니다. 그 소돔과 고모라 도시 전체가 패망했다는 것이죠. 그럼 롯이 거기 안 갔다면? 거길 선택 안 했다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았을까요? 멸망했을 것입니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그렇게 타락시킨 주범은 아니니깐 말이죠. 하지만 가정은 구원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우리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해도 항상 사달 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아뢰고 협의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해도 언제나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심한 터치가 없으니 언제나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설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롯이 선택이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단정지울 순 없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먼저 선택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이 들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더 하게는 원래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져, 바닥으로 떨어진 곳으로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토록 유력했던 롯이 얼마나 밑바닥으로 떨어졌을까요? 소알에서 거주하길 두려워하여 산에 올라가 거주하다가 다시 굴에서 거주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10명의 의인이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는 중보기도는 결국 10명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롯이 지금 두 딸과 동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탈탈 털린 롯입니다. 롯이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과 현실이 오히려 그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삶을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롯의 인생을 진단해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욥의 사건을 통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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