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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창세기

창세기 45장 5-8절 설교, 하나님이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by Message.K 202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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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장에는 요셉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과의 상봉장면이 등장하는 부분을 설교한 내용입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이자 형을 요셉을 만난 요셉의 형제들에 대응하는 요셉의 반응 속에는 '하나님이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주권적인 발언을 합니다.

 

창세기 45장 5-8절 설교, 하나님이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창세기 45장 5-8절 설교, 하나님이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요셉의 이야기Joseph's Story-꿈이 성취된 시기의 이야기

  요셉의 표면적인 권력과 영광은 참으로 화려하지만 그의 마음에 맺힌 한(恨), 그러니깐 자신의 가족, 야곱의 아들들인 형제들과의 관계를 충분히 정리하고 정돈할 필요가 있었다. 요셉이 자신의 상처와 아픈 과거를 치유 받았다는 것은 그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다(45:7-8; 자신의 삶의 인도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고백함).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하나님이셨고 요셉의 가족들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 형제들과 대면케 하시는 기회를 제공하신다. 우여곡절 끝에 요셉은 자기의 형제들과 마주 선 자리에서 자신이 요셉이라고 ‘나는 요셉이라(V.3)’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요셉은 통곡을 하며, 방성대곡을 했다.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애굽의 궁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 같다(V.2). 여러분들도 요셉의 입장이 된다면 그의 눈물과 그의 통곡을 충분히 이해할 줄 믿는다.

 

 

 

 요셉의 인생-점입가경(漸入佳境)

 젊은 시절 부모의 곁을 떠났다. 떠나고 싶어 떠난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미움과 질투와 시기로 인해 죽임 당할 뻔하다가 겨우 애굽의 종으로 팔리는 노예신세로 전락하고 그러다가 겨우 자릴 잡아 시위대장 보디발의 관리인으로 세움을 받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의 덫으로 말미암아 감옥신세를 졌다. 그러다가 그의 삶이 부흥케되는 기회를 그 어두운 감옥 속에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시련과 이 모든 환난들이 요셉의 젊음을 관통해 갔다. 그의 울음은 충분히 그의 삶의 고통과 과거의 상처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요셉이 자신의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믿음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면 그는 자기를 팔았던 형제들을 향해서 보복과 분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요셉의 인생-믿음의 삶

  그러나,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자신의 환난을 믿음의 눈으로 다시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던 대단한 위인이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V.5)

 

 

 요셉의 효심(孝心)-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가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임을 고백하면서 제일 먼저 묻는 안부의 인사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V.3)

  요셉은 그 먼 나라의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늘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 않고 있었다. 부모님을 잊지 않고 있었다. 요셉이 과거에 형들과의 사이가 벌어진 원인 중에 ‘야곱의 편애’-채색옷을 지어 입힘(37:3)-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다른 형제들의 틈바구니에서 유독 요셉을 총애했던 야곱의 편애는 오늘날의 부모님들에게 귀중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편애는 가정을 허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뒤로하고서도 요셉은 효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 나라로 떠밀려오다 싶이 한 그러한 삶 가운데서도 ‘아버지’를 늘 기억하고 생각하고 기도했을 것이다(V.9-11).

  ‘내가 이제 남은 여생을 아버지를 위해 봉양하겠다. 아버지를 내가 섬기겠다’

 새해가 밝았고, 곧 있을 설 명절을 맞이하여서 여러분들은 얼마나 부모님의 마음을 흡족해 드렸는가? 비록 육신은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늘 부모님의 곁에 가 있는 요셉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 또한 늘 부모님의 곁에 가 있는가? 조용히 생각해 보았음 좋겠다.

 

 

  요셉의 형제애-친동생 ‘베냐민’에 대한 마음

 요셉은 또한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 아우 베냐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선 죽었기 때문에(35:18), 자기 아우 베냐민이 엄마의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한평생을 지내는 유일한 친동생이기 때문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요셉은 그 혈육의 정을 잊지 못한 가운데 베냐민을 보는 순간 어찌 했는가?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v.14)

  혈육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가 보다. 마치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연상케 하는 듯 베냐민과 요셉의 상봉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아버지는 한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는 4명이나 되는 그 야곱의 식구들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어머니가 없는 서러움을 당해야 했던 베냐민의 고통과 요셉의 아픔은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의 가족애-배다른 형들과의 관계

요셉의 해후는 단지 친동생 베냐민에게만 이어진 것이 아니고 자기의 10명의 형들과도 이루어진다.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V.15)

  형들은 요셉에게 상처를 주었고 요셉은 형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형들은 요셉이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남달리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유와 요셉이 자주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했기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 이유로 인해 형들의 요셉을 미워한 나머지 그를 죽일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어떠한가? 형제들과 자매들 사이에 옥신각신하는 그런 사소한 부딪힘에서부터 요셉의 가족들처럼 너무나 큰 상처로 얼룩져 있지는 않은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기둥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지에 대해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이다. 야곱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믿음의 위인이었지만 그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으로 인해 벌어진 가족과 가족들간의 불화의 응집체가 바로 ‘요셉’이었다. 그러나 요셉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심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진다. ‘용서’가 이뤄진다.

 

 

용서Forgiveness- 맺힌 것을 풀어야 영혼이 산다

 용서란 것은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깊은 용서를 받은 사람이 깊은 용서를 해 줄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바로 요셉의 가슴속에 있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그는 깊이 체험하였기 때문에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셉이 만약 하나님을 몰랐다면 그는 평생 형들에 대한 미움과 상처와 응어리진 마음 때문에 한으로 인해 신음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의 인생에 깊이 개입하셨듯이 요셉의 응어리진 마음에도 개입하셨고 이로 인해 형들과 맺힌 과거를 눈물로써 풀 수 있었던 것이다. ‘맺힌 것을 풀어야 영혼이 산다’라는 김남준 목사님의 책제목처럼 지금 요셉의 가족들은 대대적인 한을 푸는 화해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하나님께선 요셉이 죽는 날까지 형들과의 대면함도 없이 그냥 자수성가한 위대한 인물, 요셉으로 그냥 놔두시지 않고 가족들간의 맺힌 것을 풀게끔 인도하셨다.

  

 가정에 풀어야 할 맺힌 것은 없는가? 요셉이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그 삶을,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들을 사랑으로 다시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요셉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골이 깊게 패인 우리들의 가족 간의 불화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꼭 풀고 이 생을 마감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혈육인, 같은 핏줄의 형제들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성도들을 사랑할 수 있고 믿지 않는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교회가 하나되기 이전에, 우리의 가족들이 하나되는 것을 위해 기도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V.24...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왜 이러한 말을 남겼을까? 11명이나 되는 형제들끼리 돌아가는 와중에 요셉과 바로에게서 받은 재물로 인해 다툴 여지가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말을 한 이유는 10명의 형들이 서로 요셉에게 대하였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전가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42:22을 찾아보라.

거기에서도 요셉의 제일 큰 형, 야곱의 장남인 르우벤이 요셉을 팔았던 죄와 그 책임에 대해서 형제들에게 ‘요셉의 피 값’이 어떻고 ‘죄 값’이 어떻고 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지나간 과거’에 대해 서로 다툴까 생각한 나머지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셉은 당사자인 자신이 용서를 하였고 이해하고 풀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더 이상 확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요셉이 가족들과 상봉하는 장면을 잠시 살펴보았다.

거기엔 가족과 인간관계와 편애와 상처와 무엇보다도 용서 가 있다. 또한 ‘요셉가족의 진정한 하나됨, 오랫동안 맺힌 것이 풀어지는 영혼의 자유함’을 엿볼 수 있었다.

  얼마남지 않은 설명절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한 가족, 온 식구들의 하나됨’을 생각해 보았음 좋겠다. 여러분들에게도 요셉가족의 하나됨처럼 하나되는 가정공동체의 회복을 기도하면서 말씀을 마친다.

 

창세기 45장 5-8절의 본문 속에서 요셉을 시기 질투하여 이집트의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과 요셉이 재회하는 장면 속에서 요셉이 복수나 분노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용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먼저 애굽을 보내셨다'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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