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말미를 장식하는 요셉의 이야기에서 짤막하게 '요셉의 두 가지 위대한 점'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한 것을 포스팅하고자 한다.
창세기 37장 1-5절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이 시대의 네티즌을 ‘신인류’라 일컫는다. <브로주아+보헤미안=보호스> 엄청난 부를 추구하는 세대는 아니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부의 절반을 사회에 환언하는 충격적인 일을 수행하였다. 브룩스는 ‘신인류’군상의 집단이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도 추구할 줄 안다는 특징을 지적하였다.
성경 상에서는 이미 ‘신인류’부족이 등장해 왔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고, 아브람은 자기의 본토를 떠났던 개척자였다. 오늘은 약관 30세에 이집트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랐다. 애굽의 람세스의 피라밋을 구축할만한 능력을 구비케 했던 장본인이 바로 요셉이다. 37장부터 50장까지 요셉의 이야기가-야곱의 이야기가 아닌-가득하다. 하나님의 꿈을 이뤄간 인물, 요셉!!!
약관 30세에 자수성가한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요셉의 17세 때를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고자질의 고수, 미숙한 아이였다. 그래서 ‘채색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미숙한 모습, 신학교 입학 시의 그 어리쑥한 모습 그러나, 후에 우리가 되어질 우리의 모습과 비젼들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V.3 ‘채색옷’-야곱이 먼저 입혀줬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입혀준 것이다. 내가 스스로 입고자 한 채색옷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교단과 국적과 민족과 성(性), 기질과 성품과 자질들을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다. 채색옷을 벗어야 한다. 우리의 꿈을 막고 있는 그 모든 것들...교파, 군소교단이라는 약점과 핸디캡, 그것이 채색옷이 되어질 수 있다. 80년대 ‘광주사태’시에 광주에서 SFC수련회를 가지게 했던 담대함이 있었다. 급할 때는 등까지 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한경직목사에게도 폐결핵의 선고를 받았지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더 나아갔고 영성을 회복하였고 한국교회 지도자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창50:24-26, 요셉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꿈을 놓치지 않고 있다.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요셉의 모습이다.
요셉의 위대한 점의 첫번째, 하나는 바로 꿈이다.
요셉은 자신의 임종시에도 가족들, 유족들에게 당부한다.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약속의 땅에 대한 메모리, 평생 자신은 이방인의 땅에서 살긴 했지만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비전이 또렷했다.
창세기 50장 24-26절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우리에게 꿈이 존재하는가?
요셉의 묵상은 두 번째, 성실함이다.
V.19-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열 명의 형들이 저항세력이었다. 우리가 사역을 할 때 죽음의 위기가 자주 오지는 않지만 죽음에 대해서 늘 묵상하여야 한다. 죽음에 대한 묵상이 없으면 영성이 Depress된다. 나겸일 목사가 새롭게 되어진 것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묵상과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표 목사의 ‘별세신학’이 그러한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역자, 꿈꾸는 자로서 계속적으로 묵상을, 죽음의 체험을 해야 한다.
존 칼빈은 우리의 사역이 ‘강력하지만 어두운 그늘이 존재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39:1-6, 11년의 사건을 6절로 끝맺고 있다. 성경은 목적이 분명한 기록이지, 일기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혹에 무너져 목회가 망한, 몰락한 사역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꿈을 꾸는데는 세금이 필요 없다. 노예도 좋다, 감옥도 좋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유혹은 ‘동침에 대한 유혹’이었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노예는 단지 주인의 명령체계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보디발의 아내는 ‘하나님’이란 단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요셉에게 <하나님>은 남달랐다.(39:9)-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강인하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아 주셨다. 요셉은 ‘건강한 반항기질’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요셉의 한결같은 성실함이다.
창세기 37장 1-5절의 본문을 통해 요셉의 인생을 살짝 들추어 보면서 그의 위대한 점, 첫째 꿈Vision과 둘째 성실함에 대한 묵상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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