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브라이트의 저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서, 고고학, 고대, 근동 지방의 역사를 솜씨 좋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학적 형성을 진지하게 다루었고, 역사적으로 믿음이 이스라엘의 정체성 형성의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간주했다.
이 고전적인 저서는 “다음 세대의 교과서들을 평가하는 표준”을 제시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A. 브라이트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배경
브라이트가 올브라이트 밑에서 공부할 당시, 올브라이트는 독력으로 성경 연구의 초점과 방법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라이트(Wright)와 올브라이트의 주도로, 웨스트민스터 출판사에서는 브라이트에게 신학생들을 위한 역사 교과서를 저술해 달라고 요청했다. 브라이트는 자신을 교회 생활에 헌신한 신학자로 생각했기에 거절했으나 후에 다시 “최근의 역사 저술에서의 초기 이스라엘”(Early Israel in Recent History Writing, 1956)이라는 제목의 서언을 저술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브라이트만의 특징적인 것들을 지녔다. 31년 후에 브라이트가 인정했듯이, 그는 “올브라이트에게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추가했을 뿐이다. 즉 성경 신학에 대한 관심을 추가했다.”
B. 방법
브라이트는 고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완전히 파악하려면 정밀한 역사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종교에 대한 감수성도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 연구에 알맞은 표준에 도달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브라이트는 마틴 노트(Martin Noth)의 저서가 “이스라엘의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역사”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브라이트는 회의주의와 직역주의 사이의 중도(中道), 고고학적 연구를 역사적 연구의 최전방에 놓는 상투적인 방법을 만들어 낸다. 브라이트의 방법의 특징은 역사와 신학을 혼동함이 없이 종합하고 연결하려 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c. 『이스라엘의 역사』의 역사
1. 초판(1959)
브라이트는 미지의 과거를 깊이 탐색하여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 및 그 너머까지 살펴봄으로써,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원근법적 시각”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브라이트는 이 야심적인 저서에서 시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넓은 범주를 다룬다. 이렇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주변의 이교 문화권의 차이점을 조명해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체성과 이웃 국가들의 종교적 정체성의 연속성을 식별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브라이트는 역사의 출발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문화들의 흥망성쇠를 차례로 언급하며, 그 문화들의 제의 제도와 통치 제도뿐만 아니라 상호관계, 차이점, 갈등 등에도 주목한다. 그러나 브라이트는 비교 연구를 변증적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브라이트의 견해에 의하면, 출애굽과 시내(Sinai)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이루는 두 개의 기둥이다. 택함과 언약, 출애굽과 시내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정의해 주었다. 브라이트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필요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전에 이미 그 종교가 지파 구조가 확립되어 있었음을 발견한다. 브라이트 견해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군주 정치를 신학적으로 보강하는 것의 기원은 장래를 위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약속들을 명시한 족장 시대의 언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브라이트는 기원전 8세기의 선지자들을 개혁자로 해석한다. 그들은 “당시 크게 망각되고 있었던 시내 산 언약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되살아나는 이교 신앙의 “피와 흙과 제의”. 그리고 군주정치의 신학적인 기둥이었던 무조건적인 약속의 언약을 거부했다.
브라이트는, “이스라엘은 어디로?”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에필로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약 성서를 너머 “현재까지” 계속된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여전히 성취되지 않는 상태에 있지만, 구약 신학은 탈무드 안에서 실현된다. 브라이트는 또한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 모두가 이스라엘의 독특한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는 구속의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인정한다.
2. 제2판(1972)
“책의 내용을 증보하려는 유혹에 저항했다”. 그러나, 그는 몇 가지 분야, 특히 두 차례에 걸친 산헤립의 유다 원정에 대한 부기(附記)에서는 내용을 증보했다. 시험적인 이 곤란한 문제에 대한 그의 논의는 실질적으로 초판에 기록된 분량의 두 배가 된다.
언약의 고대성을 증명하기 위해, 브라이트는 제2판에서는 히타이트 조약들을 한층 상세하게 열거하며, 그것들을 역사적 서언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결여된 후대의 아시리아와 아람의 조약들과 비교한다. 언약 공식집에서 역사를 강조한 것은 이스라엘의 특징적인 믿음이라는 보다 큰 문제를 지적한다. 브라이트는 이스라엘의 지파 동맹을 묘사하기 위해서 “인보동맹”이라는 함축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데 대해 그다지 자신감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틴 노트가 원래 사용한 명칭 대신에 “지파 동맹”과 “지파 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호수아 24장에 기록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지파의 질서는 언약전통의 정서를 반영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브라이트의 열심은 식지 않는다.
역사적인 관점이 변화되고 세부 내용들이 개정되기는 했지만, 브라이트의 제2판은 그 신학적 일정을 그대로 유지한다.
3. 제3판(1981)
최근의 고고학적인 발견과 새로 발달된 역사적 모델들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역사』최종판이 출판되었다. 브라이트는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양보했다. 제3판은 초판이 출판된 이후 계속 질문이 제기되어온 문제들에 관해 언급한 마지막 시도였다. 이스라엘의 선사 시대와 초기 역사의 형성에 대한 대체 모델과 결론들이 끈질기게 등장하면서, “상충되는 견해의 혼돈 상태”를 이룬다. 그리하여 1-4장은 완전히 개정되었다. 브라이트는 제3판에서는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성장한 독자들이 기대하는 문학적 안목과 신학적 통찰력을 희생시키지 않고 현명하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제시한다.
브라이트는 B.C 3천년대 이전의 고대 근동 문화에 대한 개관을 그다지 수정하지 않고, 에블라 본문에 대한 항목을 추가했다. 에블라 본문의 가장 큰 공헌은 아브라함의 연대를 기원전 3천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데 있다.
제3판은 대체 이론들에 직면하여 새로운 자료들을 통합하고 균형된 주장을 하기 위한 브라이트의 노력을 반영하므로, 브라이트의 신학적 성찰의 정점을 이룬다. 브라이트는 이스라엘의 믿음의 핵심은 야웨와의 언약 관계에 있음을 강력히 이야기한다. 이스라엘의 믿음은 일련의 신념들로 요약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의 의무 사이의 변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브라이트는 모세 언약의 유서 깊음을 고수함으로써, 언약 신학이 비교적 후대에 고안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독일 학계의 물결을 헤치고 나아간다. 브라이트는 또한 제3판에서 족장들의 종교와 모세의 여호와 신앙의 가족적인 정서를 보다 충실하게 통합한다.
D. 브라이트의 『역사』중심
브라이트의 역사적 재구성은 성경 자체의 정사(正史)와는 여러 면에서 상이하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이 성경의 진술을 의존하지 않고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회의주의를 대두시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연히, 히브리 성경에 의지하지 않고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저술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되어 왔다. 구약 성서의 메시지 이해는 이스라엘의 역사 이해를 위한 기본 조건이었다. 브라이트의 저서는 대체로 역사적인 재구성을 넘어서는 강력한 신학적인 탐구서이다. 브라이트는 자신이 본질적으로 역사가라고 생각하면서, 역사적 탐구의 완전함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올바른 시기에 올바른 방법으로” 자신의 신학적인 통찰을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브라이트의 교과서도 신학과 역사 사시의 불편한 연합을 촉진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브라이트는 이스라엘의 믿음에서 증명되는 것처럼 진정한 역사와 진정한 신학은 동일한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없이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없으면 이스라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열렬한 교인이었던 브라이트는 이스라엘의 형성과 역사적 경험 안에서 언약 신학의 중요성을 그 세대의 많은 사람들보다 더 크게 인정했다.
브라이트의 “생생한 역사 의식”은 신학이 인간 실존의 소동 너머로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틀을 제공한다. 브라이트는 제자들에게 “생생한 역사 의식”을 망각하지 말라고 촉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은혜와 의무 사이의 긴장 속에서, 자기 만족의 위험에 맞서는 제자도의 삶을 구현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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