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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문서/문서

고린도전서 개괄Survey

by Message.K 202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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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고린도전서의 개괄적인Survey 내용이다. 고린도전서의 배경, 특징, 주제, 사회적인 관계에 관련된 지역교회 고린도 교회가 가진 독특한 문제들과 사안들을 살펴보면서 고린도전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이 주어졌음 하는 바램이다. 

 

 

1. 고린도 전서의 서론

1.1 고린도 전서의 배경

고린도 전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린도 교회가 형성되었던 시기의 고린도 도시 주변의 정치-사회-문화-종교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한 서신을 쓰게 된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1) 고린도 도시(Corinthia)

이두메 남단 지역의 아크로 고린도(Acrocorinth) 기슭에 위치한 고린도(아가야 지역의 수도[BC 2세기경])는 군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동과 서, 남과 북을 잇는 길목)로서 무역(농업[포도]과 제조업[청동과 도자기])과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헬라 문화의 중심지이다. 도시의 역사(歷史)는 고전 헬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바울 당시는 로마에 의하여 재건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로마 지배하의 헬라의 활기찬 국제 무역항구도시(로마와 소아시아, 그리고 애굽을 연결)였다. 특별히 자유인 20만에 노예 4-50만을 가진 대도시인 고린도는 지중해 일대의 여행객들이나 상인들, 그리고 뱃군들이 머물기를 좋아하는 곳으로 2년에 한 번 이두메 지역체전이 열리고 4년에 한 번 로마제국 체전이 열렸으며 부가적으로 웅변대회와 음악대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이곳에는 많은 상점들을 가진 상가와 극장, 경기장, 법정, 그리고 강연장이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신전들이 있는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의 온상이 되기도 한 도시였다.

 

 

 

 

특별히 종교적으로는 혼합주의가 번성하였고 많은 신전들 가운데 헬라의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 신전이 고산도시인 '아크로 고린도'(Acrocorinth) 가운데 우뚝 서 있어 이곳에 1000여명의 성기(聖妓)들로 여겨지는 여자제사장들이 성(性)을 찬미하고 성행위를 예배화하면서 방탕과 음란을 조장하였다(Strabo). 그리고 고산도시 아래 주변에는 '항해의 수호신'인 멜리세르테스가 숭배되고 또한 '치유의 신'인 Asclepios의 신전과 남성미의 이상인 '음악과 노래와 시의 신'인 아폴로(Apollo)의 신전이 도시 안에 있어 그의 남성다움을 자랑하기 위한 다양한 모습들이 전라(全裸)의 동상들과 조각들로 장식되어 남자 신도들로 하여금 아폴로 신의 미동(美童)들과의 육체적인 관계를 갖게 하는 종교적 행위들을 통해 성적 문란함을 조장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는 동성연애의 본산이기도 하였다(cf 롬 1:26ff). 이와 같은 종교를 통한 부도덕한 성적 조장이 고린도인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방탕한 자들로 만들었고 전 도시는 성적으로 부패하게 되었다. 헬라어로 Korinthiazein(코린티아자인) 즉 고린도인처럼 산다는 말을 썼다면 매춘하는 것을 의미하며 영어의 Corinthian이란 '음란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어진다. 이 뿐 아니라 고린도는 달변과 세속적 지식을 강조하는 헬라철학(Betz 1986:27ff; 고전 1-4장)과 종교의 열광적 체험과 이적적인 능력을 강조하는 신비(사이비)종교들의 깊은 영향 하에서(고전 12-14장) 자만과 자찬과 자기자랑(self-boasting)에 빠져 있는 그러한 모습 가운데 있었다.

 

“종교의식은 성(性)을 기리는 데 봉헌되었다.”

 

아프로디테 숭배는 솔로몬, 여로보암, 요시야 시대의 아스다롯 숭배[수리아의 아스타르테(Astarte)숭배에서 따 온]에 견줄 수 있다.

아크로코린트 기슭에는 항해를 보호하는 신인 멜리세르테스(Melicertes)-이는 두로의 우두머리 신 혹은 ‘바알’인 멜카트(MelKart, 아합이 두로와 시돈 통치자의 딸인 이세벨과 결혼한 주전 9세기에 멜카트 신 숭배가 이스라엘에 도입되었다)와 같은 신이었다-신전이 있었다. 따라서 고린도의 아스타르테 여신과 멜카트 신은 동방의 영향을 받은 직접적인 결과였다. 게다가 그 도시에는 아폴로 신전이 있었다. 아폴로는 음악과 노래와 시의 신이었으며 또한 남성미의 전형이었다. 갖가지 남성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폴로의 나체상과 띠 모양의 조각들에 자극을 받아 아폴로를 숭배하는 남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그 신의 미동(美童)들과 더불어 육체적으로 과시했다. 따라서 고린도는 동성애 행위의 중심지였다.

파라(Farrar)는 고린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베니기아에서 흘러 들어온 오염 물질과 더불어, 헬라 모헉마들과 로마 부르주아들로 이루어진 이 잡종의 이질적인 인구, 유대인, 전직 군인, 철학자, 상인, 선원, 자유민, 노예, 소매상, 행상 그리고 온갖 종류의 악의 대행인들로 구성된 이 무리.

바클레이(Barclay)는 고린도를 ‘귀족이 없고 전통이 없으며 안정된 시민이 없는’ 식민지로 규정한다. 1세기 중반의 고린도는 거칠고 무법적인 장소였다.

 

 

 

폴록(Pollock)은 바울이 처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린도는 바울이 지금까지 만났던 도시 중 가장 큰 도시로서, 격렬하고 새로운 상업 중심 도시였다. ...그곳에는 거의 이십 오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 빽빽이 들어차 있었으며, 그 중 높은 비율이 끝없이 상품을 옮기는 일에 종하사는 종이었다. 종이건, 자유민이건, 고린도인들은 뿌리가 없는 자로서, 자신의 국가적 배경에서 단절되었으며 제국 전역과 각종 민족과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이는 20세기 ‘도심’(inner city)인구와 기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보았던 중간 정도 크기의 도시들에게 교회가 성장하고 번성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동부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부유하며 상업적 성격을 가지고 섹스에 사로잡힌 도시인 고린도에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사랑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그 사랑은 다른 어디에서도 힘을 발휘할 것임이 분명하다.

 

 

 

 

2) 고린도 교회(행 18:1-18)

이러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로마에서 최근 이주]; 실라와 디모데[마게도니아로부터 합류])의 성실한 사역(18개월 간)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인 고린도 교회(행 18:1-18; "이 城中에 내 百姓이 많음이라")는 주로 하류층의 이방인들이 다수였고(고전 1:26-29 & 12:2) 그 외에도 유대 기독인들(고전 7:18)과 중류와 상류의 부유층의 사람들(11:21ff)도 있었다. 바울의 고린도 사역은 제2차 선교여행 중에 이루어 졌는데 주로 회당을 중심으로 시작되다가 유대인들의 반발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결과(18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큰 교회( : 1:2; 11:22; 14:12, 19 23)를 이루었다. 그 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게 되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자신은 안디옥으로 돌아옴으로써 제2차 선교여행은 끝이 났다.

 

같은 해 가을, 유대 그리스도인인 아볼로라는 사람이 에베소에 와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부터 복음을 듣고 양육을 받은 후 에베소 교회의 파송을 받아 고린도에서 바울의 사역을 이어갔다. 그 사이 제3차 선교여행을 시작한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3년 동안 체류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고린도 서신은 바울이 에베소에 체류하여 사역하는 동안, 여러 경로들을 통해 (1:11; 5:1과 11:18; 7:1; 16:17) 들었던 교회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 주어졌다.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의 서신왕래 중에 고린도 전서는 그중 가장 긴 서신으로 추측된다.

 

 

 

3) 고린도 교회의 문제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특별하신 역사를 통하여 많은 영적 은사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주변의 헬라적 사조(철학/문화/종교)와 영향을 받음으로써 세속화의 길을 걸어갔다(cf. 고전 3:3). 이러한 세속화의 길 가운데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은 외관상으로 다양하게 표출이 되었지만 근본 문제는 한마디로 교회의 분쟁과 파당(고전 1:10-12; 3:3; 11:18-19)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점으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신의 모범과 함께(고전 4:16; 11:1) 보다 기독론적(십자가의 복음)이고 종말론적인 면(already but-not-yet)에 기초하여서 교회론적인 답변(교회의 덕 세움[사랑]: 순결과 연합)을 시도하고 있다. 즉 분쟁과 파당(1:11); 음행(5:1); 법정 송사(6:1); 결혼과 성 윤리(7:1); 우상 제물(8장과 10장); 사도직과 자유(9장); 교회 내의 여자의 역할(11장; 14장); 성례(11장); 영적 은사들(12-14장); 몸의 부활(15장)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찢겨진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바울은 고린도 서신을 통해서 신학적 해결점(하나님의 智慧[헬라인들은 智慧를 구함]와 能力[유대인은 表蹟을 구함]으로서 그리스도[십자가]의 복음[1:24]과 부르심과 일군의 모습; 성령의 殿<" "> [3:16; 6:19]이며 그리스도의 몸[12:27]으로서의 교회의 삶[거룩과 연합]; 공동체 내에서의 성령의 은사들의 목적과 역할)을 제시해 주고 있다.

 

 

 

특별히 바울은 고린도 서신을 통해 고린도 교회의 '윤리 없는 영성'(spirituality without ethic)을 지적하고 있다. 소위 그들의 '영적' 부요(富饒)와 '신앙의 성숙'사이의 불일치의 관계(Betz & Mitchell 1992:1146)롤 지적하고 있다.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1:5);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1:7) -> "책망할 것이 없는 자"(1:7); "타서 없어지지 않는 공력"(3:13-15); "주의 일에 힘씀"(15:58; 16:10).

 

- 풍족(구변/지식/은사/자랑)과 부족(사랑/덕 세움/주의 일/봉사)

- 나뉨(시기/분쟁)과 나눔/세움(사랑/연합)

- '주장'(claim)과 '현실'(reality)의 불일치

-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 육신에 속한 자(사람을 따라 행하는 자)와 온전한 자(신령한 자)

 

/ 일( ) 主의 터

풍족/부족함이 없음 => "타버리는 공력": 시기/분쟁/다툼/자랑/방탕/거만 => +

'구변/지식/지혜/은사' \ 실행( ) 主의 일

 

송 명희 詩人의 모습(정말 인간적으로 부족한 사람)

장애인의 날('95. 4. 20)의 열린 음악회에서의 그녀의 찬양을 보았는가?

그녀의 율동과 찬양은 희극인가? 아니면 비극인가? No, 풍족 그 자체다.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4가지 사회적 관계>

1) 교회 자체 내에서의 관계로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관계(11:22); 이데올로기(신앙)적으로 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의 관계(8:1-13; 10:26f); 민족적 관계의 집단주의의 파당이 존재: 사회적/종교적/민족적 차이 => 분파와 파당

2) 교회와 불신자들, 즉 외인들과의 관계로 이것은 불신결혼과 가정 내에서 갖는 관계(6:1-8; 7:11-16; 8:1-13; 14:21-25, 33-36)를 의미한다: 법정소송 등의 문제.

3) 다른 교회들과의 관계(1:2; 16:19-20).

4) 교회와 바울(지도자)의 삶과의 관계(3:1-15).

 

 

 

 

<고린도교회의 문제점들>

- 모든 구변( )/지식( )/지혜( )를 추구(1:5, 20-22; 2:1-6):

=> 자화자찬/자만/자랑

- 영적 체험(1:7; 12-14장): 예언, 영적 황홀한 체험, 경험을 기독인의 삶의 표준으로 삼음. 종교적 경험가운데 입증된 '영적인 부유함'(spiritual wealth)을 자랑하고 교만에 빠짐.

- 도덕적 무감증: 도덕적 자유주의(5-6장)와 금욕주의(7장)가 함께 공존:

=> "모든 것이 가(可)하다"

-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진 삶의 모습(8:1-11:1): 우상제물을 무관 시

- 세례와 성찬의 남용(고전 1:13-17; 15:29; 11:17-34).

- 몸의 부활을 부인(15장)

 

 

 

 

고린도전서 개관

바울이 사역했던 1세기 당시 고린도는 남부 헬라의 주요한 상업 중심지였다. 또 이 도시는 음란과 이교도주의로도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그곳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행 18:1-17). 그 후 바울은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고린도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의 편지들 중 두 개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앞으로’ 썼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이었지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교리적이고 실제적인,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것 등 여러 문제들로 시달리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당파, 소송, 문제가 되는 습관들, 주의 만찬과 영적 은사의 오용 등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답하는 형식으로 편지를 썼다.

 

 

 

지역적 배경:  고린도

고린도는 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연결하는 좁은 지협에 위치한 항구 도시였다.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할 당시에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정치적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무역과 예술과 공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해 있었다. 선원들과 상인들이 많이 몰려들어서 부도덕, 술취함, 사치와 방탕의 도시가 되었는데, 2년마다 포세이돈(Poseidon)신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모여 운동 경기를 벌이는 것도 타락에 한 몫을 했다. 또 사랑과 아름다움과 생식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고, 이 신전에는 1000여명에 달하는 여사제가 상주해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성도덕이 아주 문란했다. 그리스인들, 로마인들, 여러 종류의 동양인들 등 여러 종족들이 모여 살고 있어서 종교적 혼합주의와 타락상이 심각했다. 그러나 고린도에는 유명한 철학과 수사학 학교도 있어서 지식층의 자부심도 강했다.

 

 

 

고린도 교회 설립

고린도 교회 설립은 사도행전 18장에 잘 나타나 있다. 바울은 제 2차 전도 여행 중 아덴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고린도에 도착했다. 그 때 로마의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칙령에 의해 로마로부터 추방당한 두 명의 유대인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주후 50-51년). 바울은 그들과 함께 하면서 회당에서 전도사역을 시작하였다. 그의 전도사역으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얼마 후 유대인들의 반발로 유스도의 집을 근거지로 하여 전도의 방향을 이방인에게 돌렸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있었다.

 

 

 

 

주제와 목적

고린도전서의 기본 주제는 개인적, 사회적 기준에 대한 기독교 원리의 적용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신자들을 변화시키며, 그들을 주변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민족과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메시지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음란과 불일치로 십자가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더럽히고 있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여러 문제와 혼란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고린도전서의 특징

1. 다른 바울서신에 비해 고린도에 보낸 편지는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강한 책망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신의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심각하고 엄하다.

 

2. 바울 서신 중 가장 현실적, 구체적인 신앙생활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즉 신앙의 원리 자체보다는 신앙의 원리를 삶의 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원리, 곧 신앙생활의 원리를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3. 초대교회 당시의 상황에 대한 간접적 자료가 가장 풍부하다.

바레트(C. K. Barett)는 ‘나는 우리 시대의 교회가 사도적 복음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로마서가 필요하다. 교회는 또한 이 복음과 거기 나오는 질서, 징계, 윤리를 재발견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또한 고린도전서가 필요하다. 교회가 그러한 것을 발견한다면, 교회 스스로가 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후서가 존재하는 것이다....하지만 엄청난 보화를 담고 있는 질그릇은 깨어질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는 것은 사도적 소명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 분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때, 장례식이 승리로 변화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1972).

 

 

 

개요

서론 1:1-9

교회의 분열에 대해 1:10-4:21

교회의 도덕적 문란에 대해 5:1-6:20

결혼에 관한 문제에 대해 7:1-40

우상에 바쳤던 음식에 대해 8:1-11:11

공중 예배에 대해 11:12-14:40

부활에 대해 15:1-58

결론 1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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