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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문서/문서

마틴 로이드 존스의 독서습관-엘리자베스 캐서우드

by Message.K 2022. 3. 25.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딸, 엘리자베스 캐서우드가 쓴 글 중에서 아버지이자, 목사인 로이드 존스의 독서습관에 관한 글을 쓴 내용입니다. 심장전문의가 목사로, 강해설교자로 설 수 있었던 바탕에는 독서습관이 존재했습니다.

  

 

 

 

1. 부친이 우리들에게 항상 강조해서 가르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독서가 마약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남편 프레데릭은 항상 코를 책 속에 박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 자신이나 혹은 앤, 아니면 우리 둘다를 가리켜 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이지 한때 저는 옷을 벗거나 입으면서도 계속 책을 볼 정도였습니다! 이런 것이 저의 부친을 다소 염려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독서는 쉽게 마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친은 소설에 대해 다소 주저했다고 봅니다. 독서가 독자를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 독자는 다른 일들에서처럼 자신의 독서를 지배해야한다는 것이 부친이 남겨준 교훈입니다.

 

 


2. 책 읽기와 관련해서 부친이 분명히 지적해주었던 또 하나의 충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해서 독서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독서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그러나 너희 독서 동기가 네 지식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면 분명히 그릇된 일이다."


즉 부친은 누가 어떤 분야에서 유명해졌을 때, 교인들이 급히 그 사람에 대한 서적들을 읽고서는 '나도 아무 아무개를 읽었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남 앞에서 잘 읽고 잘 안다는 것을 뽐내려고 하는 자기 선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심원한 이유에서 독서해야 합니다.

 

 



3. 부친은 '앵무새가 되기 위해서 책 읽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우리는 축음기나 녹음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친은 여러 강사들이 17,18,19세기의 저술가들에게 도취되어 그들의 사상을 옛 표현 그대로 가져다 옮기는 것을 염려하곤 했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사람을 보고 "야, 참 말씀 잘 하신다"라고 감탄하면 부친은 가끔 이렇게 대꾸하셨습니다.

 

"그렇긴 해, 그러나 그저 좋은 학생일 뿐이야."



물론 부친은 우리들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을 나쁘다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싫어한 것은 우리들의 다른 사람들의 것을 그대로 베껴내는 복사 행위였습니다. 독서는 그런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4. 또 부친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아이디어를 찾아내기 위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 책들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해야 한다. 독서의 기능은 우리들의 생각을 자극시켜서 스스로 사고하게 하는 데 있다. 그래서 책은 읽으면서도 철저하게 소화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베이컨은 어떤 책은 맛만 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 또 어떤 책은 씹어서 소화시켜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의 경우가 부친께서 인정하는 독서였습니다.

 

 

"책을 잘 씹고 소화해야 나의 일부가 된다. 그러면 나의 사고력이 자극을 받고 그 결과 내가 읽은 독서의 진액들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 진액은 내 사고의 결정체이다."


부친의 말뜻은 우리가 각 시대의 지혜를 독서를 통해 습득하고 우리의 일부가 되게 하면, 우리가 자극을 받아 더 낫게 사고하고 그 결과 더 낫게 말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부친의 독서 속도는 어떠하였을까요? 아마 들으면 실망할는지 몰라도 부친은 책을 매우 더디게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친의 독서량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굉장한 속독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의 모친에게 부친이 자주 했던 말이 있습니다.

 

"여보,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도 많아요. 내가 좀 빨리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부친은 한때 어떤 속독법 광고를 보고 그 책을 주문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속독법 책들은 대개, 페이지의 중간을 읽으면 다른 부분들이 저절로 둥둥 떠오른다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부친은 자신의 독서 방법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많이 읽었지만 빨리 읽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부친의 놀라운 기억력입니다. 그는 읽은 것은 다 기억하였습니다. 그가 비상한 기억력을 가졌던 것은 아마도 위에서 지적했었던 것처럼 책의 내용에 정신을 집중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책을 꼭꼭 씹어가면서 읽었으므로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또한 부친은 신약성경을 잘 아셨지만 결코 암기식으로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부친은 외우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습니다. 누가 부친에게 가만히 앉아서 성경 구절 4개 정도를 외워보라고 하면 그는 분명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를 하는 동안에 가령 바울 서신의 본문에서 설교를 시작했다면 항 성경 구절이 그의 생각을 자극시켜 15개 정도의 관련 구절들이 정확하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을 철저히 알았고 그것들을 씹으면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천히 읽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독을 했으므로 자신이 읽은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였습니다.

 

 


5. 부친의 일반 서적 분야에 관한 독서는 분량과 분야에 있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분야의 책을 다 감당하는지 알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부친은 실로 광범위하게 읽었습니다. 부친은 독서의 기능을 정신적 자극으로 보았는데,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정보 제공의 기능이었습니다. 그는 관련 분야의 책들을 통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웨스트민트서 집회(Westminster Conferences)때에 강사들의 말을 모두 염두에 두고 끝맺음을 할 수 있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강사들이 주제에서 빠뜨린 부분까지 보충시켜줄 정도로 사실과 정보에 밝았습니다.

 

 

 

 

6. 부친은 특히 '기본적인 사실들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분야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장남인 크리스토퍼가 눈앓이를 하여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부친이 출타중인 때에 크리스토퍼의 증세가 매우 좋지 않아 안과 의사들을 당황케 했습니다. 의사들은 모여서 숙의해보았지만 그것이 심리적인 이유 때문인지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인지 도무지 원인을 아는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문의들에게 크리스토퍼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부친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셨습니다. 부친은 환자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서 "다음 번 병원에 크리스토퍼를 데리고 갈 때에 나도 같이 가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함께 병원으로 갔었습니다. 의사들끼리는 서로 잘 통하는 곳이 병원입니다. "나도 의사지요"하고 한마디만 하면 쉽게 담당 의사를 만나고 처방전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인이 그런 요청을 하는 것은 절대 허락될 수 없지만 선임 의사인 경우는 달라서 부친은 크리스토퍼에게 내린 처방 노트를 받아 자세히 읽었습니다.

 


무엇인가 읽을 때 항상 노트와 연필을 준비하고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메모하는 여느 때의 습관처럼 부친은 그것을 읽으며 메모하였습니다. 부친은 담당 의사와의 협의가 끝난 후 자신의 노트를 만드시고 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친은 귀가하자마자 자신이 메모한 노트를 옆에 놓고, 매년 나오는 모든 약품들에 대한 방대한 의학 책을 펼쳤습니다. 부친은 늘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이 약품 의약서에서 크리스토퍼에게 투약된 약을 찾아내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 약의 부작용을 모두 읽고서 크리스토퍼의 문제점을 찾아냈습니다. 이론만 앞세우고 번지르르한 말만 늘어놓는 것은 실제적인 도움이 안 됩니다. 부친은 하나의 단순한 사실을 놓고서 거창한 이론들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실'들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친은 그 약품에 대한 정보를 관련 의사들에게 전달했는데, 모두들 그것이 크리스토퍼의 증상 원인이라는 데에 동의하였습니다. 크리스토퍼의 증상은 결국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부친은 사실들을 얻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가족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습니다. 우리 둘째 아들은 십대였을 때 초월명상(T.M.)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초월 명상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며 진지하게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15세의 소년이 본 관점에서 이 초월 명상은 세상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부친은 손자가 자랑하는 그 놀라운 책들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들의 훌륭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손자들과 이야기할 시간을 넉넉히 내어줍니다. 내 아들 요나단은 롭상 람파라는 사람이 쓴 책을 할아버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부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 책을 가져가서 읽으마". 그 책을 받은 날 부친은 맨체스터로 설교하기 위해 떠나셨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에는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부친은 귀가하는 기차 안에서 요나단의 책을 한 장도 빼놓지 않고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제3의 눈'이라는 제목이 달린 소책자였는데, 표지에는 이마 중앙에 눈이 박힌 중국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괴상한 표지를 단 책을 읽으면서 부친은 기분이 좀 언짢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책을 세심히 끝까지 읽으면서 메모를 해두었다가 집에 와서 요나단과 하나식 짚어 나갔습니다.

 

 

우리들은 아직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에 자주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런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어. 철이 들면 다 잊어버릴거야."

 

그러나 저의 부친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요나단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읽은 책을 세밀히 검토한 후, 무엇이 좋은 점이고 무엇이 위험한지를 지적하였습니다. 부친은 그 책을 읽었기에 요나단보다 그 내용을 훨씬 더 잘 알았습니다. 그 결과 부친이 얻은 정보를 가지고 요나단의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7. 부친에게 있어서 정보를 위한 책 읽기는 독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넓게 읽고 많이 일었습니다. 그는 각종 전기도 읽었는데, 상세하게 서술한 두꺼운 전기들을 탐독하였습니다. 그는 저 위대하고 탁월하며 비극적인 인물이었던 19세기 Newman 주교의 전기를 매우 즐겨 읽었습니다.
뉴만의이야기는 온통 흥미거리였습니다. 뉴만이 어디서 잘못되었고 어떻게 그런 잘못이 발생되었으며 그가 얼마나 우수한 두뇌를 가졌었는지, 또 어떻게 머리를 썼으며 카톨릭 신자의 정신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 등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가 부친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남편과 함께 오찬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옆자리에는 영광스럽게도 캠브리지의 Owen Chadwick 교수가 앉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친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저는 귀가한 후 오웬 채드윅 교수와 나란히 앉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채드윅 교수가 쓴 '빅토리아 시대의 교회'란 책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저의 부친은 채드윅 교수의 모든 저서들을 다 독파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부친은 채드윅 교수의 '19세기 유럽인들의 세속 정신'이란 책이 대단히 흥미있고 중요한 역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사상가들의 글을 다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광범위한 독서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정신을 위해서 좋은 일이지, 독서를 넓게하며 정신에 원기가 돈단다. 그래서 나는 일반 주제들에 관한 출판물들과 다른 잡지들을 꾸준히 받아보면서 잘 쓰여진 글들이나 양서 서평들을 즐기고 있단다."

 


저의 부친은 서평란을 꼭 읽고서 세이어씨에게 "여기 좋은 서평이 나왔는데 이 책을 우리 도서관에 비치하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제의하곤 하였습니다. 서평은 부친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독서를 돕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저는 부친을 아쉬워합니다.

그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휴가의 끝이나 시작에 책을 선물했었습니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책을 선물로 주는 일을 퍽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친께서 주시는 책은 언제나 우리가 갖고 싶어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책들을 좋아하는지를 잘 알고서 서평을 볼 때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구입해서 선물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는 앤을 위해서 현대 문학에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는 제가 빅토리아 시대의 서적들과 기독교 소책자 협회(Religious Tract Society)에서 나오는 서적들, 그리고 헤스바 스트레톤(Hesba Stretton)과 같이 기독교에 근거한 책을 쓰는 작가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언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엘리자베스 제이가 쓴 '마음의종교'라는 책을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이 책은 제가 좋아하는 저자들을 모두 다루면서 그들의책들을 소개한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 친구 중의 한 사람이 박사 논문을 쓰려고 주제를 잡았습니다. 제 부친은 그에게 필요한 서적들의 긴 목록을 만들어 제시해 주었습니다. 부친은 서평란을 늘 읽었기 때문에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제안한 독서 목록의 절반을 읽었었고 제 친구의 논문 주제 분야에 대해서도 철저히 알고 있었습니다.

부친이 우리 딸인 베단(Bethan)에게 준 여러 가지 조언들은 더욱 놀랍습니다. 베단은 에드워드 토마스의 초기 웨일즈 음영시인들이 관련된 특수 시어(詩語)에 관한 난해한 논문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부친은 베단에게 이렇게 조언하였습니다. "네가 논의하는 이 분야에 대해 현재 캠브리지 대학에서 꽤 흥미있는 연구가 일어나고 있단다." 이것은 약 3,4년 전 일이었습니다. 그는 캠브리지의 구조주의자들에 대해 읽고서 "내 생각에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을 듯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과연 2,3년 후에 캠브리지의 구조주의 풍선은 모두 터지고 말았습니다. 부친은 베단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였습니다. "너의 전공 분야에 꼭 맞는 책이 하나 있지. 프랭크 케모드가 쓴 것이야." "나는 너의 지도 교수 중 한 사람인 톰 폴린이 쓴 시를 금주의 'The Times Literary Supplement'에서 읽었지." 부친은 아주 세세한 연구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우리들이 독서를 즐기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8. 부친은 대단히 열정적인 분이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열심을 함께 나누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는 아담과 레슬링 시합 점수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엘리자베스와 리아논의 학교 문제, 또는 요나단과 미국 정치 이야기를 열심히 나누며 즐겼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담배 카드를 모으는 것이 취미었습니다. 그런데 집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담배 카드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버라본의 교인들 가운데 흡연자는 극소수여서 영화 배우들이 찍힌 담배 카드를 모으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들을 조르거나 학교 친구들의 아버지들에게 빌리거나 하면서 담배 카드를 순서대로 모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노마 시어러의 담배 카드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주일 동안 노마 시어러가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에롤 폴린과 같은 보통 배우들의 카드는 계속 입수 했는데, 노마 시어러는 제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배우가 몇 번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만 우울증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나이 아마 7,8세 정도였을 것입니다. (이 담배 카드는 지금 시가로 100파운드가 넘습니다!). 아무튼 저는 노마 시어러를 손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탁의 제 접시 위에 노마 시어러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사연인즉 저의 부친이 어떤 동네에서 말씀을 전했는데,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부친을 자동차로 모시고 가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초대된 집의 식탁에는 각양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목사님들도 함께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부친을 모시고 갔던 사람이 담배갑을 꺼내어 담배 한 까치를 뽑았습니다. 저의 부친은 식탁 건너편에 앉은 그 사람을 보며 "죄송하지만 그 속에 카드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약간 놀란 듯이 그 사람은 "찾아 보지요"하였습니다. 그가 "네,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자 저의 부친은 "좀 볼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시지요?"라고 그 사람이 말하며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노마 시어러였습니다! 부친은 저를 위해 그 카드를 호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하고 집으로 왔던 것입니다.

부친의 이러한 자질이 그를 훌륭한 독서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우리들의 관심과 열심에 합세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은 부친이 그들을 위해 설교하러 가는 것을 언제나 환영하였습니다. 부친은 그들의 열심에 합세하였습니다. 그 열심히 어떤 것이든 그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방대한 철학 서적을 읽는 일이든 혹은 담배 카드를 수집하는 일이든 부친은 항상 우리들의 열심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는 우리들과 함게 열심을 내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쁨이 곧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9. 부친의 독서에는 긴장 완화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책을 많이 보아 정신이 피곤해지면 이런식으로 조언합니다. "나가서 산보를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아니면 텔레비젼을 좀 보아요." 그러나 저의 부친은 달랐습니다.

 

"정신은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신적 휴식이 독서의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종류의 책을 바꾸어 읽도록 해라."

 


바로 부친 자신이 긴장 완화를 위해 독서를 했는데, 우스운 것은 그럴 때 읽는 책이 의학 전문지였다는 것입니다. 모친은 자주, 저녁 때 의학지에 몰두해 있는 부친의 모습을 보고 웃으셨습니다. 부친은 책을 그냥 대충 읽지 않고 잘 씹어서 삼켰기 때문에 환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0. 부친은 또한 변증서들도 읽었습니다.

 

저는 렉섬의 하이웰 존스(Hywel Jones)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에 의하면, 저의 부친은 독서에 있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약 10년은 앞섰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저는 지난주 웨일스어로 나오는 웨일스 복음주의 운동 잡지에 실린 한 서평을 보았는데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로우렌틴이라는 사람이 쓴 가톨릭 성령 운동에 대한 훌륭한 책인데 1982년 6월에 출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부친은 1978년초에 이 책에 관한 정보를 우리 몇 사람에게 제공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친은 세상의 일반 사상적 흐름을 늘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스 큉(Hans K ng)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이 전혀 모를 때에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한스 큉의 문제를 통찰하였었고, 캠브리지의 영어 교수진에게 일어날 문제도 미리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철학적, 신학적 발전 상황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스 큉을 모르다가 갑자기 그가 두각을 나타내자 그의 책을 사느라고 법석을 떠는 것을 보고 부친은 다소 재미있어 하였습니다. 부친은 한스 큉을 읽고 이해했으며 동시에 그의 생각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과 그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예견하였습니다.

 

 

 



11. 저의 모친에 의하면 부친은 철학 서적과 같은 일반 독서를 할 때에 상대방의 생각을 본인들보다 더 잘 알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저는 위에서 이 점을 요나단과 초월 명상자와의 예시에서 지적했었습니다. 부친은 다른 저술가들을 매우 철저히 읽었기 때문에 우리들을 잘 지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저자가 ABCDE를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부친은 그 저자가 FGHIH는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곤 했었습니다.

부친은 집에 들어오는 온갖 종류의 철학서, 잡지, 신학지를 읽었고, 서평들을 통해 자신의 독서를 위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부친이 우리부부에게 준 마지막 서적 중 하나는 해리 블래마이어스(Harry Blamires)의 책이었습니다. 그는 이 흥미로운 사람에 대해서 읽고, 그 사람의 위치가 어떠했고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얼마나 그가 가까이 근접했다가 멀어졌는지 등을 생각하며 즐기는 독서를 하였습니다.

 

 

 

 

 

12. 한편 부친은 일반 독서의 위험도 언급했는데 한쪽으로 편중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어떤 부분에 빠져서 그쪽 책만 계속 읽느라고 시간을 너무 쓰게 되면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자신을 위해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책들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해."

 

부친 자신이 늘 그렇게 하였습니다.

 


지난 30여 년을 회고해 볼 때 40년대와 50년대에 문학 공부를 했던 우리들에게 부친이 주었던 도움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로 말하면 예술에 대한 관심이 기독교 세계를 압도하기 전이었고 프란시스 쉐퍼(Dr. Schaeffer)박사가 알려져서 그의 책으로 도움을 주기 이전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쵸서(Chaucer)가 쓴 어떤 이야기에 대해서 공격하며 그를 '추잡한 늙은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저는 쵸서가 그런 지저분한 이야기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도 교수로부터 호통을 당하고는, 집에 와서 부친에게 제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친은

 

"전혀 그렇지 않다. 너는 문학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을 뿐이야"

 

라고 하셨습니다. 부친은 이러한 균형을 믿었습니다.

 


문학은 문학으로서 보아야 했습니다. 물론 부친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문장 스타일과 내용과 집필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룰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문학서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저의 지도 교수에게서보다 부친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부친은 적당한 사람에게 적합한 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유악한 사람은 부드럽게 대하였습니다. '설교와 설교자들'이란 책에서 부친은, 내성적이고 우울증에 잘 빠지는 이에게는 죄의 확신이나 인간의 전적 타락 등을 외치는 책을 주지 말라고 조언하였습니다. 부친은 자기의 회중을 잘 알았고, 어떻게 도와 주어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는 문학도의 고민에서부터 성도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항상 격려가 되는 것을 찾아줄 수 있는 자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캐서우드/마틴 로이드존스의 딸의 글에서)

 

강해설교의 대가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그의 딸, 엘리자베스 캐서우드가 펴낸 로이든 존스 목사님의 독서습관을 통해 그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성경 뿐만 아니라 세상의 지식에 대해 접근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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