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중간기 시대에 등장했던 인물로, 역사적으로 유대인들 핍박하고 박해했던 악한 인물로 기억되는 셀류쿠스 군주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그는 누구인가?
안티오쿠스 4세는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의 왕국을 4개로 분할했던 왕조 중 수리아(시리아)지방을 통치하던 셀류쿠스 왕조의 왕인데 안티오쿠스 3세의 아들입니다. 안티오쿠스 3세 때에 예루살렘과 유대는 수리아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전에는 애굽을 통치하던 프톨레미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음)
안티오쿠스 3세의 뒤를 이어 셀루쿠스 4세 필로파토가 왕이 되었는데 B.C 175년 안티오쿠스 4세가 동생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여 B.C 163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그를 "장엄한", "찬란한"의 뜻을 가진 에피파네스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유대는 헬라파 유대인과 정통파 유대인 사이의 커다란 마찰이 있었습니다. 프톨레미 왕조와의 전쟁에서 돌아온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자신의 비위도를 맞추지 않고 헬레니즘을 수용하지도 않는 유대인에게 분노를 쏟았으며 유대교를 말살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아래와 같은 칙령을 내렸습니다.
- -유다인들은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를 것.
- -성소 안에서 번제를 드리거나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술을 봉헌하는 따위의 예식을 하지 말 것. 안식일과 기타 축제일을 지키지 말 것.
- -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울 것.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희생제물로 잡아 바칠 것.
- -사내아이들에게 할례를 주지 말 것. 온갖 종류의 음란과 모독의 행위로 스스로를 더럽힐 것.
- -이렇게 하여 율법을 저버리고 모든 규칙을 바꿀 것.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이 때의 사건을 잘 나타내고 있는 마카베오상(외경) 공동번역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그 후 안티오쿠스 왕은 온 왕국에 영을 내려 모든 사람은 자기 관습을 버리고 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방인들은 모두 왕의 명령에 순종했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왕의 종교를 받아들여 안식일을 더럽히고 우상에게 제물을 바쳤다. 왕은 또 사신들을 예루살렘과 유다의 여러 도시에 보내어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렸다.
- -유다인들은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를 것.
- -성소 안에서 번제를 드리거나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술을 봉헌하는 따위의 예식을 하지 말 것. -안식일과 기타 축제일을 지키지 말 것.
- -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울 것.
-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희생제물로 잡아 바칠 것.
- -사내아이들에게 할례를 주지 말 것.
- -온갖 종류의 음란과 모독의 행위로 스스로를 더럽힐 것.
- -이렇게 하여 율법을 저버리고 모든 규칙을 바꿀 것.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안티오쿠스 왕은 그의 온 왕국에 이와 같은 명령을 내리고 국민을 감시할 감독관들을 임명하고 유다의 여러 도시에 명령을 내려서 각 도시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게 했다.
많은 유다인들이 율법을 버리고 그들에게 가담하여 방방곡곡에서 나쁜 짓이 마구 저질러졌다.
그 밖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아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백사십오년 기슬레우월 십오일에 안티오쿠스 왕은 번제 제단 위에 가증스러운 파멸의 우상을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유다의 근방 여러 도시에 이교 제단을 세우고 집 대문 앞에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살라 버렸다. 율법서를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왕명에 의해서 사형을 당하였다.
그 들은 여러 도시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왕명을 위반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매달 잡아들여 모질게 학대하였다. 그들은 여러 도시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왕명을 위반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매달 잡아들여 모질게 학대하였다. 매달 이십오일에는 옛 제단 위에 새로 세운 제단에 희생제물을 바쳤다. 자기 아이들에게 할례를 받게 한 여자들은 법령에 따라서 사형에 처하고 그 젖먹이들도 목을 매달아 죽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그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푼 사람까지 모두 죽였다.그러나 이에 꺾이지 않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 몸을 더럽히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게 받기로 결심하였고, 사실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크고 무서운 하느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마카베오상 1:41-64)
그 무렵에 마따디아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모데인에 가서 살았다. 마따디아는 요하립 가문 출신의 사제인 시므온의 손자이고 요한의 아들이었다. 마따디아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가띠라고 불리던 요한, 마카베오라고 불리던 유다, 아와란이라고 불리던 엘르아잘, 그리고 아푸스라고 불리던 요나단이었다.(마카베오상 2:1-5)
안티오쿠스 왕은 유다인들에게 배교를 강요하고 이교 제사를 드리게 하려고 자기 부하들을 모데인 시로 보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따랐지만 마따디아와 그의 아들들은 따로 떨어져 한데 뭉쳤다. 그러자 왕의 부하들이 마따디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들들과 형제들의 지지를 받는 당신은 이 도시의 훌륭하고 힘있는 지도자요. 모든 이방인들과 유다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이 다 왕명에 복종하고 있는 터에 당신이 앞장선다면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은 왕의 총애를 받게 될 것이고 금과 은과 많은 선물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오."
그러나 마따디아는 큰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왕의 영토 안에 사는 모든 이방인이 왕명에 굴복하여 각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를 따르기로 작정했다 하더라도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이 맺은 계약을 끝까지 지킬 결심이오. 우리는 하늘이 주신 율법과 규칙을 절대로 버릴 수 없소. 우리는 왕의 명령을 따를 수 없을 뿐더러 우리의 종교를 단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소."
마따디아의 말이 끝났을 때 어떤 유다인 한 사람이 나와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왕명대로 모데인 제단에다 희생제물을 드리려 했다. 이것을 본 마따디아는 화가 치밀어올라 치를 떨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앞으로 뛰어 올라가 제단 위에서 그 자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교 제사를 강요하기 위하여 온 왕의 사신까지 죽이고 제단을 헐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마따디아는 전에 비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를 찔러 죽였을 때처럼 율법에 대한 열성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마따디아는 거리에 나서서,
"율법에 대한 열성이 있고 우리 조상들이 맺은 계약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 나서시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모든 재산을 그 도시에 버려둔 채 자기 아들들을 데리고 산으로 피해 갔다. 정의와 율법을 따라 살려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할 곳을 찾아 나아갔으며 그들의 처자들과 가축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너무나 심한 불행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마카베오상 2:15-30)
마따디아(맛다디야)가 죽고 그의 아들 중 마 카베오(마카비, '망치잡이'란 뜻)라고 불리던 유다가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가 성전을 더럽힌 지 3년 만인 B.C 165년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전을 깨끗이 정돈하여 유대의 희생제사를 다시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수전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B.C 167부터 B.C 63년 까지를 마카비시대 또는 독립시대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제국의 재통합을 위해 강력한 종교정책을 펼친 결과로 오히려 마카베오 전쟁을 초래했던 부분에 대해서 언급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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