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시편 146편을 가지고 '찬양의 대상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이다. 시편기자가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그리고 특별히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을 삼고 신뢰하는 이유도 해석해보면서 설교해 보았다.
[시 146:1-시 146:5]
(1)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I will praise the LORD all my life; I will sing praise to my God as long as I live.
시편 기자는 자기의 온 생애를 바쳐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아있는 동안, 호흡이 붙어 있는 동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결심하며 선포하고 있다. 그는 가수도 아니었고, 음악인도 아니었다. 요즘처럼 CCM가수나 오페라가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노래하기를 즐겼고, 그 노래의 주인공은 ‘여호와 하나님’이었다. 직업적인 가수도, 밥벌이도 아닌데 왜 찬양을 평생토록 한다고 말하는가? 그가 가수 이문세인가? 윤도현인가? 조수미? 최고의 거장, 고(故)파바로티였나? 그것은 단순히 의무감이나 생계수단의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가운데 다가오신 ‘야곱의 하나님’(5절)이시기 때문이다.
그 ‘야곱의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노래하는 인생, 찬양하는 인생을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결심은 단순히 자기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시편 속에서 시로 표현하고 있다.
수많은 정치인들처럼 자신이 대중들의 인기와 지지를 얻기 위해 순간적으로 깜짝쇼나 그럴듯한 슬로건slogan을 정책으로 내걸고 나중에는 입을 싹 닦아버리는 그런 권모술수에 능한 그런 시편 기자가 아니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고백이었고 결단이었다.
(3)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Do not put your trust in princes, in mortal men, who cannot save.
권력가, 권세가들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권세가, 방백들의 파워와 힘을 ‘자신의 백’으로 삼고 어께에 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노래하는 ‘하나님의 시인들’(?)-이렇게 붙여보았다-은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고, 인생들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그 이유를 4절에서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도움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실컷 노래해 놓고는 그 노래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래는 ‘허공속의 맴도는 메아리,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노래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를 지으셨고 그가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우시기 때문이다(6-10절). 우리가 그만큼 노래하는 이유는 그가 찬양과 노래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고 그만한 능력과 파워와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방백들과 비교할 수 없고 인생들과 대별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그 찬양의 대상에게 모든 것을 올인all-in하라!
찬양의 대상에 올인하지 않으면서 찬양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닌가?
찬양을 한다는 것은 찬양의 대상이 그만큼 찬양받아 마땅한 것이다.
만약 찬양을 하면서도, 노래를 하면서도 노래의 대상, 찬양의 대상에 큰 신뢰감이나 의존감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노래는 ‘유행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찬양을 하는가?
그렇다면 그 찬양의 대상이신‘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고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라!(5절과 연계).
시인은 이 하나님을 ‘나의 생전에, 나의 평생에’(2절) 찬양하겠다고 선포하고 있다. 이것은 찬양과 동시에 신뢰함(의존함)의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4)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표준새번역]시 146:4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 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왜 인생들을 의지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것은 인생의 본질, 인생의 실체를 지적해준다. 흙으로 온 인생은 흙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구도를 가진다. 그런 자를 의지하여 세우는 모든 도모,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5)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왜 하필이면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야곱의 피난길에서 그가 붙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던,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야곱이 속이는 인간이었고 권모술수에 능한, 자신의 친형조차도 속이는 간교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와 주셨던 것이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악으로 하나님께 손을 내밀지 말지는 그 사람이 당한 고난과 역경의 강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아무리 손을 내민 사람이 죄를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다급하면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 내민 손에 하나님은 거절하지 않으시고 절박한 야곱의 마음을 헤아려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말하고 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야곱에겐 집에 계신 아버지 이삭도, 어머니 리브가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친척도, 식구도, 빽도, 돈도, 물질도, 권력도, 명예, 팥죽 한 그릇으로 산 장자권도 아무런 힘이 없었다. 오로지 ‘자기 도움’은 하나님 한 분 뿐이었던 것이다. 그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고,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를 말한다.
6-10절,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말해 준다.
[시 146:6-시 146:10]
(6)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8)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9)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시편 146편의 구절을 가지고 '찬양의 대상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라', '야곱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담은 설교이다. 찬양이라는 것이 단지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찬양의 대상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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