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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사기.룻기

사사기 6장 25-32절, 기드온의 또 다른 이름, 여룹바알

by Message.K 2022. 3. 3.

사사기 6:25-32의 본문을 가지고 <기드온의 또 다른 이름, 여룹바알>이란 제목으로 한 설교입니다.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이 무엇인가?

그렇다. 기드온의 또 다른 이름...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서 한 사람이 무언가 하나의 업적이나 명성을 얻으면 그 사람에게 붙여지는 애칭이 있다. 이를테면 ‘영웅’이라던가 아니면 ‘호걸’이라던가 ‘신동’이라는 말을 그러한 것을 지칭한다. 베토벤을 우린 ‘불멸의 영웅’이라고 하고 모차르트를 ‘음악의 신동’이라고 한다. 이 두 사람을 음악을 통해 자신에게 새로운 애칭이 붙은 케이스이다. 좀 우습지만 요술공주 밍키라는 만화 이야기를 예를 들어보자. 밍키는 ‘요술공주’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그만큼 요술을 잘 하는 소녀라는 의미이다. 더 이야기 안해도 이해할 것이다. 오늘 볼 기드온에게도 무언가가 있었기에 애칭이 붙었고 명성을 얻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여룹바알’이란 별명이다.

 

 

 

오늘 우리는 지난주에 이어 기드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난주에는 기드온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장면이었다. 오늘 그 이후에, 기드온이 소명,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생긴 사건이었다.

기드온은 그 크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큰 용사가 될 것이라고 부르심을 입었다. 그 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무언가를 명령하셨다. 그것이 무언가?

 

25절... 이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26절...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반드시 너는 큰 용사가 될 것이라는 미래를 내다보시고 그를 부르셨다. 근데 갑자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무언가를 강력하게 부탁하신다. 그것은 바로 네 자신이 속한 가족이 갖고 있는 우상을 버리라는 말씀이었다. 아마도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우상을 열렬히 숭배하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섬기는 폭풍우 신인 바알을 섬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른 뜻 없이 ‘주인’이나 ‘남편’을 의미하는 ‘바알’로 불렀는데 이는 자연히 혼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기 기드온의 집안에 있는 바알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이라는 이방신, 즉 우상이었다. 또한 26절의 아세라는 가나안의 모신으로 바다의 여신이었다. 구약에서는 바알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어떤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다곤이 아스다롯과 아세라를 배우자로 삼아 낳은 아들을 ‘바알’이라고도 한다. 바알과 아세라 목상은 엄연히 혼탁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죄악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우상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동사를 주목해 보면...take취하고, pull down헐며, cut down찍고, build쌓고, using the wood from the Asherah취하여, kill and burn드릴찌니라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 용사로 다 부르심을 입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단순하게 생각하면 대개 단순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면 아주 복잡한 요구일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취한다. 여러분이 가진 우상을 헐게 한다. 그리고 우상을 다신 소용없도록 찍어버리도록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죄의 씨앗을 주님께 제물로 돌려야 한다. 여러분이 기드온에게 요구하신 하나님의 뜻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여러분 가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그 모든 우상들을 허물게 하실 것이다. 찍어버리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온전히 자리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가진 우상은 없는가? 여러분에게 우상이 없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서 순간순간마다 죄를 짓는다. 죄를 짓게 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때론 예배를 빼먹게 하는 텔레비전 시청이나 잠(수면)이 될 수도 있다. 여러분 나름대로 세워놓은 나의 비젼과 진로와 성적이 때론 우상이 될 수도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으로 인해 여러분의 믿음이 떨어지고 탈색된다면 그것도 우상이 될 수도 있다. 지나친 인터넷 게임과 인터넷 검색, 서핑, 지나친 친구들과의 만남, 아니면 여러분들이 남들 몰래 죄책감을 느끼든지 느끼지 않던지간에 취하는 담배와 술, 컴퓨터 상에 있는 음란물, 폭력물...심지어 최근 유행하는 엽기-엽기라는 말이 붙여진 모든 이야기들-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것들이 우상이 될 수도 있다.

 

 

 

요즘 애들의 특징은 예전에 전도사님이 학교 다닐 때와 많이 다르다. 물론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변했기에 당연히 변하는 것은 맞지만. 때론 우리의 하는 말들과 농담과 언어생활이 우상이 될 수도 있다. 요즈음은 무슨 이야길 할 때 꼭 웃겨야 한다. 웃기지 못하는, 유우머가 없는 친구는 재미가 없다고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지도 않고 신경을 별로 안 쓴다. 그렇지 않은가? 무슨 이야길 할 때 꼭 썰렁한 이야기한다고 왕따시키고 그러한 습관도 우리의 우상의 냄새가 나는 습관일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Mp3음악듣기나 영화, 비디오 보기... 제가 이야기한 것 들 외에도 여러분의 은밀한 사생활 속에 뭍혀있는 우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드온 집안에 있던 아세라 목상과 바알 우상이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찍어버리라고 말한다. 이것을 허물라고 말한다. 이것을 네 삶 속에서, 네 가정 속에서 없애버리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알다싶이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면 헌 건물, 낡고 더럽고 보기 싫은 이전의 건물을 허물어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가정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악의 냄새, 죄악의 분위기를 delete시키고 그것을 취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세워지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신다. 아세라목상을 장작으로 삼아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26절 말미에 말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죄악된 습관, 지나친 취미, 기호, 무분별한 호기심과 욕망,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요즈음은 더 그렇다. 무슨 중.고등부 행사가 있으면 다과나 과자상이 여러분 앞에 있을 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먹고싶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여러분 옆에 있는 어른들이나 웃사람을 생각지 않는다. 얼마나 버르장머리가 없는가? 하나님은 절대 예의범절이 없는, 매너가 없는 사람을 사용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왜 우리더러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는가? 그것은 내가 먹고 싶고, 사고 싶고, 입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십일조 낼 돈으로, 아니면 조금만 더 보태면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조금이라도 포기하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내는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이다. 여러분만, 여러분의 기분과 요구와 취향과 생각만 내세우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신다.)-버려야만이 온전히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으며 ‘큰 용사’로 쓰임받을 수 있다.

 

 

 

 

우리가 부흥을 원한다면 먼저 부흥이 일어나야할 장소는 우리들의 뒷마당이다. 우리의 앞마당, 그러니깐 남들 앞에서 표면적으로만 교회나 학교에서 보일 수 있는 우리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사생활의 뒷마당에서 부흥이 일어나야한다. 기드온이 믿음으로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미디안의 압제와 폭정으로부터 이끌어낼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그는 먼저 자기 가정에서 바알을 제거해야했던 것이다. 밖에서 아무리 많은 업적을 남겼더라도 가정에서 실패한 자는 하나님께서 결코 쓰시지 않는다. 교회활동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사람이라 할찌라도 가정에서 가족들 가운데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는 참된 일꾼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또한 참된 부흥이라 할 수 없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기드온의 아버지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우상과 재물인 둘째 수소를-7년이나 되면 값이 꽤 나가지 않겠는가?  하지만, 둘째 수소가 가장 품질이 좋은 수소이다. 이 수소는 요즘 유행하는 광우병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버리기를, 취하기를 요구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큰 용사로 쓰임받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기드온의 첫 번째 수능고사였다. 기드온의 아버지의 귀한 재산이며 보물인 우상과 수소를 없앰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눈밖으로 나서 몰매를 맞거나 ‘이 죽일노무 쌔끼! 미친 자식을 내가 키웠구나’하면서 아버지의 역정을 온 몸으로 버텨내야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시는가 아니면 인간의 눈치 즉 아버지의 눈치를 더 보는가 그 문제였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군사로 헌신할 수 있는 <증거>를 보기를 원하셨다.

여기서 기드온은 순종할 수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기드온은 하나님께 헌신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매몰차게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순종한다면 기드온은 ‘큰 용사’로 쓰임받을 수 있을 것이고, 순종치 않았다면 기드온은 성경 속에 등장치도 않았을 것이다.

 

 

 

 

기드온은 어떻게 했는가?

27절을 보라. 비록 기드온은 자신의 가족들과 집안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솔직히 한 집안에서 가장 애지중지하는 종교의 상징물인 우상물을 박살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요구했다. 그러기에 굴속에서 포도주틀에서 타작을 하던 기드온은 여전히 고민했다. 여전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까? 아버지는 나를 아들이 아닌 개망나니로 취급하시진 않을까? 역시 연약한 기드온이었다. 기드온 아래에는 종 열이 있었지만 도저히 용기를 내지 못 했다. 그래서 성경기자는 무어라 이야기하는가?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두려워하긴 했다. 그래서 대낮에는 이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했다. 밤이었지만’

 

기드온에겐 비록 소심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었다. 여기에 기드온의 위대함이 있다. 순종은 비록 주춤주춤하더라도 순종하기만 하면 그 자체는 아름답다. 그 자체로 더욱 빛날 것이다.

날이 밝자 기드온이 행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동네사람들에게 퍼졌고,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웅성웅성거리면서 쑤근쑤근대기 시작했을 것이다.

 

‘저게 우예 된기고? 아이구마 조짔다. 조짔어! 바알신이 뭉개졌뿟다 아이가?’,

‘어느 미친 놈이 저 짓을 했노, 아이구 망측해라...우리 곧 벌 받겠데이. 아세라 여신의 목상을 장작개비로 사용했데이’,

‘미디안 놈들 땜에 묵을 것도 없는 세상에 수소를 태워버렸다 아닌교? 우야노? 저 아까운 수소를....’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이었다면 이렇게 사투리로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이 일을 저지른 주인공이, 장본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기에 이르렀고 곧 그 범인은 바로 요아스의 아들, 피로 연결된 혈육인 아들 기드온의 짓임을 밝혔다. 이 사건의 주인공이 기드온임을 알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30절...“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일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사람들이 봉기했다. 우리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목재나 나무조각상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아세라와 바알을 요즘 불교인들처럼 물 한그릇 떠 놓고 손바닥이 부르터도록 빌고 빌고 절하고 절하고 향 피우고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종교적인 열성으로 가득찬 이스라엘인들에겐 이것은 마치 날벼락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기드온을 죽이자고 난리였다. 그들에겐 그들의 절대자의 분신과도 같은 물건이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린 그 다음 절에서 의외의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상이 있었던 그 집 주인, 우상을 찍은 아들의 아버지의 요아스의 대답이었다.

 

31절을 다같이 한 번 읽어보자!

(읽지 않는 사람은 졸거나 자거나 잡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생각하겠다.^^)

그렇다.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 변호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절대자)이라면 자신의 제단이 붕괴된 것에 스스로 무언가 말할 것이 아니냐? 신이 그 정도의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신이겠는가?’

 

놀라운 요아스의 변화였다. 성경 해석학자들은 이 장면을 요아스가 우상의 헛됨을 알고서 발언한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자신을 쳐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밤에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했던 기드온에겐 아버지의 이러한 반응은 의외였다. 충격이었다. 기드온의 두려움은 요아스의 이러한 의외의 자신에 대한 변호와 발언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순조로히 풀리게 된다. 순종함이 있으니 모든 문제가 순조로히 풀려지게 되었다. 기드온은 온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구나!

 

 

32절...기드온은 그날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여룹바알’이라는 명성이었다. 이 말은 바알이 더불어 싸울지니라. 곧 ‘바알은 싸울지어다’라는 이름을 얻었다. 곧 기드온이 바알 제단을 파괴하였으니 만약 바알이 참 신, 참 절대자라면 능력의 신이라면 자신의 제단을, 자신의 성전을 훼파한 기드온과 싸워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바알의 헛됨과 무능력을 조롱한 말이었다. 그는 소심하게 순종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부족한, 불완전한 순종을 순종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들어 사용하셨고 역사하셨다. 목숨을 내놓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연약하게나마 목숨을 내놓았을 때 하나님은 그의 목숨을 거두시지 않고 그의 목숨을 살리셨고 그를 ‘숫자 삼백의 주인공’ 기드온‘으로 불러 사용하셨던 것이다.

 

 

 

기드온은 처음에 매우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 굴 속에 숨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했던 겁보였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을 때 놀라운 담대함과 용기가 주어졌다. 우리가 하나님만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큰 용사로 사용코자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와같이 잘못된 우리의 과거를 청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주위의 사람들과 시선과 비난과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적인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시인해야 한다. 그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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