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구약성경 사사기 12장 8-15절의 본문을 가지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주제로 과거에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고 준비하는 교회'로서 교회가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저는 이 본문을 가지고 과연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를 이런 측면에 한번 나눠보고자 한다.
사사기, 사사 시대의 주인공은 영원한 사사The Judge이신 하나님
사사기 시대는 임금도, 왕도, 영적 지도자인 성직자(목사)도 없는 시절이다. 오직 사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하나님의 지도자였다. 사사는 영어로 Judge이다. ‘심판자’라는 의미인데, 수많은 사사judge가 등장하지만, 그 모든 사사들도 결국은 모두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내고야 만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오직 한분이신, 영원한 사사는The Judge 하나님뿐이심 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들의 영원한 심판자이시자, 통치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사사기 이후에는 오히려 이방나라들처럼 왕을 달라고 종용하게 되고 결국 이스라엘도 왕정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정치가 그러하듯이 인간이 거하는 곳에는 언제나 냄새가 나기 마련이고, 인간이 거하는 곳에는 언제나 약점과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보시는 것은 길이가 아니라 영적 밀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입산, 엘론, 압돈이라는 세 명의 사사들이 사사로 있었던 임기는 다 합쳐 무려 25년이나 된다. 그들의 전임자 입다는 겨우 6년 사사로 있었다. 그런데 성경은 입다의 스토리는 10:6부터 배경이야기가 시작되더니 40절-12:7까지 48절을 통해 길고 비중 있게 다룬다. 그에 비해 이 사사들의 이야기,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고작 단 7절밖에 다루지 않는다. 이름만 소개하고 몇 년간 사사로 있었다는 말 뿐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인생을 길이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 밀도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선 외형적인 업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영적인 의미로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하나님은 엘리의 롱런한 사역의 길이를 보셨을까?
오늘 새벽에 삼상 4장을 같이 보았는데, 거기에 나타난 엘리제사장이 98세의 나이로 죽는다. 그 엘리는 40년 동안 사사로 사역했습니다. 이다말 계열에 최초로 대제사장에 오른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경건했고, 그래서 40년 동안 사역을 롱런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 사람의 마지막이 너무나 비극적이다. 어떻게 되었는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해하면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도 빼앗겨버렸다.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에 비둔한 몸의 엘리는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는다. 참으로 경건했던 한 사람, 엘리의 말로가 목이 부러져 죽었다니. 정말 백성들이 생각할 때 소름끼치지 않았을까? 대제사장이 목이 부러져 죽다니!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그랬다는 측면에서 해석할 때도 참으로 선한 사역을 위해 힘쓴 영적 지도자의 죽음이 그러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가 사역을 짧게 1-2년 했는가? 40년 했다. 세상은 오랫동안 롱런하면서 자신의 일을 잘 하는 사람을 최고로 대우해준다. 10년 정도 한 분야에서 일을 하면 전문가, 베테랑이란 소릴 듣는다. 엘리는 무려 40년의 짠밥을 가진 베테랑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길이나, 우리의 사역의 년수나, 오랫동안 신앙 생활한 짠밥을 보시지 않는다. 오로지 보시는 것은 영적인 밀도, 하나님과의 관계의 밀도를 보시는 것이다. 우리가 직분자로 얼마나 오랫동안 사역을 했고, 봉사와 헌신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재를 하나님께서 세밀한 현미경으로 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엘리는 이다말 계보의 첫 대제사장이 될 정도로 탁월했다. 어느 분야에서 첫 스타트를 끊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요, 탁월한 업적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엘리는 40년 동안 사역을 롱런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그 사역의 길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의 질(quality)을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의 영혼을 폐부를 보고 계신다. 그 여러분의 영혼의 현재(present)는 바로 선물(present)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영적 상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여러분의 삶을 융성케 하라!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얼마만큼의 공적을 이뤄냈다는 것, 물론 그것은 여러분의 프로필에 좋은 경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 면접시험에는 탈락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오늘 영적 상태를 보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영적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시고 융성케하라!
황무지가 된 영적 지경이 있는가? 말씀과 기도로 다시금 기름지게 할 수 있길 바란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기를 기도하길 바란다.
어제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잠들기 전에 손을 잡고 기도했다. 세 아이와 함께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기도하고, 아이들이 서로 대표기도할려고 난리를 친다. 큰 아들의 대표기도는 너무나 길었고 중언부언이 많았다. 아무리 아들의 기도이지만 중언부언은 조금 힘들었다. 그러다가 기도가 너무나 길어서 저도 모르게 살짝 1초 잠들었나보다. 변명을 하자면, 저희 집도 K목사님 댁처럼 텐트생활을 한다. 텐트생활을 하지만 유목민은 아니다. 불까지 끄면 방전체가 블랙홀이다. 빛과 바람이 못 들어오게 암막커튼과 문구사에서 사온 바람막이로 완전셋팅이 되어있어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눈을 뜨도 눈을 감은 상태처럼 어둡다. 그래서, 제가 살짝 1초 잠들었던 것을 양해 바란다. 둘째인 딸이 기도하니 그 새 막내 아들이 지루해서인지 잠이 들어버렸다. 막내의 대표기도는 생략했다. 딸의 기도도 조금 길어질 즈음에 끝이 나 다행이었다.
여러분, 저는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느꼈다. 대표기도는 길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이들의 기도를 통해서도 저는 절실하게 느꼈다. 애들이 어디서 길게 기도하는 것을 배웠을까요? 중언부언은 또 누구한테 배웠는지...
여러분, 가정에서 기도의 꽃이 피어나도록 하라! 정말 애들을 키워보니 우리의 지혜와 명철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처럼 부드럽고 온유하다고 자부하는 부모님들의 인격도 애들의 고집과 짜증에는 숨어있던 성질대마왕과 분노의 여신이 터져 나온다. 사랑은 오래 참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당근과 채찍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고심한다.
그 때 우리는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예수님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그 때 찬양을 고백하며 눈물로 하나님께 아뢰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의 힘과 말씀의 힘을 의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할 수 없다는 믿음의 선포인, 예배의 힘을 빌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본문에는 입다 이후로 입산, 엘론, 압돈, 이렇게 세 명의 소사사가 등장한다.
성경학자들이 이 세 사람을 소사사로 부른 까닭은 그들의 능력이 작아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히 중요하다고 할 만한 일들을 한 것이 별로 없는 까닭이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소사사들은 별로 중요한 일을 한 것이 없다는 것! 충격적이지 않는가? 사실 개인적인 조건으로 보면 이들은 기드온(겁쟁이-동굴에서 숨어서 타작을 했다)이나 입다(기생의 아들의 출신)보다, 다른 사사들보다 훨씬 많은 조건을 갖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유리한 조건과 환경들이 반드시 사역의 능력, 영적 리더십의 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세 사람을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세 사람 중에 첫 번째 사사 입산에 대해 같이 보자.
풍성함의 무의미-입산, 그가 남긴 것
베들레헴 출신의 입산은 자식 부자였다.
8절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아들, 딸 각 30명씩 하여 무려 60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두었다. 그가 사사로 있었던 것이 7년 밖에 안 되었음을 볼 때, 그는 장수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부인이 많았다는 이야기인데, 그는 굉장히 부유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고대 중동 사회에서 부인 하나를 더 둔다는 것은 그만큼 재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많은 부인들과 자식들 그리고 막대한 재산을 가진 입산은 한 마디로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구약시대에 많은 후손과 땅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입산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을 흠뻑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입산은 하나님께 받은 이 복을 자신의 통치와 힘을 키우는 데 사용했다. 60명이나 되는 자식들 모두를 타국 사람과 결혼시켰던 것이다.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타국 사람’이라는 원문을 엄밀히 해석하면 자기 가문 밖의 다른 잘 나가는 집안들과 결혼시켰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정략결혼을 시킨 것이다. 위협이 될 만한 세력들과는 모두 사돈 관계를 맺음으로써 동맹 관계를 확고히 하겠다는 철저한 계산적인 논리였다. 이로 이해 입산의 정치적 기반은 다져졌는지 모르나 그 다져진 기반을 토대로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한 마디로 아들딸 시집 장가보내느라 입산이 사사로 있었던 7년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가벼운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면, 7년 동안 60명을 장가와 시집을 보내려면 한 해에 8명-9명을 시집, 장가보낸 것이다. 자식을 결혼시켜 본 분들은 알겠지만 가문과 가문의 결합인 혼사를 치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것이다. 돈도, 열정도, 힘도 많이 든다. 그런데, 입다가 노년에 사사로 치리하면서 자식들을 시집, 장가보냈다는 것은 이미 자식들이 결혼 적령기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저 막강한 부와 탄탄한 정치기반만을 다진 사람으로 인생이 끝나 버린 것이다. 입산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재산과 자식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것들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재투자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복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인간적인 야심으로 가득 찬 입산은 하나님의 비전을 상실한 지도자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축복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축복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
단순히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축복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준 축복을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하면 안 된다.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건강한 몸으로 죄 지을 양이면 차라리 아픈 것이 낫다.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기도하는가? 물질이 풍성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풍성한 물질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돈이 많아져서 그 돈을 가지고 죄 지을 양이면 차라리 가난한 것이 낫다.
-똑똑한 자식, 잘난 자식 많이 키워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단순히 집안의 자존심만 만족시키고 입산처럼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쌓는데 쓸 양이면 자식 교육,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산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자기와 자기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만 쓰고 만다. 하나님은 이토록 많은 축복을 부어 주셨는데 하나님이 주신 그 돈, 그 재능, 그 자식들을 가지고 나는 하나님을 위해,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주신 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재투자하시길 바란다.
리더가 가장 부끄러운 순간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갖고도 그저 낭비해 버리는 때이다. 입산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뜻은 ‘그들의 순백’인데, 입산의 인생을 보면 순결하다는 ‘순백’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이 전무하다는 ‘순백’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가지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붙잡으려 했던 입산, 그는 전임 사사 입다가 이뤄 놓은 평화에 묻어가 버린 색깔 없는 지도자였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가 다스렸던 시간을 아무 의미 없는 시간으로 선언해 버리셨던 것이다.1)그의 풍성함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무의미한 풍성함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이 남들 보다 풍성하고 윤택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의미있게 재투자하시길 바란다. 여러분의 건강, 물질, 재능, 학력, 은사, 인간관계, 인격, 외모 등...하나님을 위해 쓰일 때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있을 줄 믿는다. 비록 길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색깔 없는 입산 같은 지도자의 전철을 밟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라!
성도 여러분, 사사 입산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가진 풍성함을 가지고 밋밋함을 남겼고 하나님께 특별한 인상을 제대로 주지 못한 별 볼일 없는 인생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물어보고 싶다. 인생에 있어 무엇을 남겼는가?는 우리 예수님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무엇을 남겼는가?
-재물을 남겼는가? 예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지만, 돈과 물질과 부요함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권력과 권세를 남기셨는가? 그 권세는 섬김에서 나오는 권세였다.
-학벌을 남겼는가? 예수님은 제도적인 학교를 나오지 않으셨다.
-건강을 남기셨는가? 건강하여 무병장수하신 삶을 남겼는가? 건강도, 젊음도, 무병장수도 예수님에겐 최종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인생의 33년에 가장 좋을 나이, 인생의 절정기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희생을 드리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남기신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남기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3년 동안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시면서 그들과 제자훈련을 감당하신 것이다. 그것은 삶에서 나오는 교육이었고, ‘보고 배우는 산 교육’이었다. 교실이나 강의실에서 배우는 이론교육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청각교육, 보고 배우는 교육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보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느낀다. 주일학교 교사분들도 여러분의 언어와 말을 통한 가르침 보다 삶을 통한, 본을 통한 교육에 더 최선을 다하시길 바란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통해 제자훈련을 하시고 그후에 바울이 후속타로 따라왔고, 그 12제자가 초대교회의 120문도들에게, 그리고 이들이 열방과 민족으로 흩어진 것을 본다.
다음 세대를 세우고 키우는 교회가 감수해야 할 것
우리 교회가 이왕 ‘다음 세대를 세우고 키우는 교회’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 목적은 예수님의 인생과 사역의 목적이기도 하다.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렸던 찰스 스펄젼이 사역했던 그 교회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였다. 한번은 불이 났던가? 그래서 사람들이 밖으로 빨리 빠져나갈려고 하다가 사람이 밟혀 죽고 사고사 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찰스 스펄젼은 당대 최고의 인원이 모이는, 몇 만명이 모이는 교회였다. 그후 그의 후임자들이 찰스 스펄젼이 사역했던 방식으로 계속 사역하려고 모방하고 따랐지만 더 이상 찰스 스펄젼이 목회할 당시의 부흥은 없었다. 지금 그 교회를 가보면 노인네들만 몇 명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 모습은 유럽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을 보고 한 기자가 유명한 말을 남겼다.
“London was Changed!
Society was changed!
But Church was not changed!"
런던도 변하고, 사회도 변했는데, 교회는 왜 변하지 않았는가? 이 도시도 변하고, 이 사회도 변했는데, 이 교회는 왜 변하지 않았는가?
우리교회가 10년, 50년, 100년 후에 유럽교회의 뒤를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변하여 새로운 도전을 주는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과 우리의 역할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선 우리, 기성세대가 먼저 감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 그게 무엇인줄 아는가? 그것은 바로 ‘불편함’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맞춰줄려면 기성세대는 일단 불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예배시간부터 주일학교를 위주로 편성되어야 하고, 예배시설, 편의시설, 찬양선곡, 식당메뉴, 차량배차시간표, 간식메뉴, 재정의 우선순위, 청소횟수, 등등. 모두 우선순위가 다음세대를 위주로 가야한다. 물론 이것은 한꺼번에 바뀔 순 없다. 또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표와 비전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선 우리의 가치관, 생각 자체가 변해야 한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목적 또한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키우는 것이어야 할 줄 믿는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것은 다른 어떤 유산도 아닌 바로 사람임을, 바로 다음세대임을 기억하라! 우리가 가진 모든 풍성함과 은혜와 은사가 있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 더 나아가 사람을 키우는 이 일에 우리가 함께 헌신하며 나아가길 소원한다.
1) 한 홍, 시간의 마스터(서울: 비전과 리더십, 2005), 230-233.
구약성경 사사기 12장 8-15절의 본문을 토대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주제의 설교를 살펴보았는데, 소사사가 풍성한 축복을 받았지만 그 받은 축복으로 무엇을 했는가를 돌아보면서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가 과연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를 생각해 보았네요.
이전에 사사기 12장 8-15절에 대한 또 다른 스타일의 설교와 묵상, 해석은 아래에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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