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사무엘상 9장 1-2절, 31장 3-6절의 본문을 가지고 사울 왕의 일대기를 살펴보면서 '누가 왕을 죽였는가?'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Prologue...
이덕일이 쓴 ‘누가 왕을 죽였는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조선왕조 가운데 암살을 당했던, 아니면 암살 가능성이 농후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룬 역사책이라고 볼 수 있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 누가 조선왕조의 왕을 죽였는가? 정치적인 화두와 관심사, 의견의 차이로 말미암아,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로 말미암아 서로 죽고 죽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 때 정조의 이야기로 역사 드라마물로 인기가 치솟았던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도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과연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울의 죽음의 사인은 무엇인가? 누가 왕을 죽였는가? 그에 대한 영적인 추적을 다같이 해보고자 한다.
1. 매력만점의 사울 9:1-2, 21
일단 사울의 시작은 누가 보더라도 좋았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울의 출발은 너무나 좋았다. 그는 인간적으로도 매력만점이 인물이었다.
[삼상 9:1-삼상 9:2] (1)There was a Benjamite, a man of standing, whose name was Kish son of Abiel, the son of Zeror, the son of Becorath, the son of Aphiah of Benjamin.(2)He had a son named Saul, an impressive young man without equal among the Israelites--a head taller than any of the others.
❶ 부...a man of standing, 유력한? 고든 맥도날드는 그가 부유한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력한, 특출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❷ 매력적인 외모...an impressive young man, 감동적인 마스크, 흠모할만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력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impressive(감탄할 만한) -존 F. 케네디 대통령(그는 역사적으로 링컨 다음으로 존경받는, 인기 있는 미국 대통령이다)과 같은 탁월한 외모. 핸섬한 용모, 유창한 말솜씨-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통령이라는 평을 받았다. 사울은 케네디 같은 용모를 지녔다. 거기다가 키까지 컸단다. 톰 크루즈는 키가 작지만 매력적인 인물이었고 그의 연기와 매력은 키를 뛰어 넘었다. 결국 40이 넘는,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26살의 아름다운 케이티 홈즈라는 여배우와 결혼하여 아기까지 출산했다. 그 매력적인 니콜 키드먼과 이혼하고...그런데 사울은 톰 크루즈보다 더 나은 조건이었다.물론 톰 크루즈는 결국 이혼했지만 말이다.
❸ 건장하고 잘 발달된 체격...a head taller than any of the others. 키가 어중간하다면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컸단다. 와우~
갖출 것은 다 갖춘 인간! 그것은 인간적으로 흠모할만한 매력이었고, 어떻게 보면 사울은 매력덩어리였다. 완소 훈남, 완소 얼짱, 몸짱? 외모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고 한 번 더 그 사람을 훔쳐보던가, 돌아보던가, 쳐다보게 만드는 은사, 자질, 카리스마이다.
2. 영혼의 순수함과 처절한 겸손까지... 9:21; 10:22.
(9:21)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사울은 베냐민 지파 출신...야곱의 12아들 중 막내 지파 출신이었다. 하지만 이 지파 출신은 후에 사도 바울도 이 지파 출신이었다.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성경상에서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과 파워와 인도하심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손이다. 오른손, 오른편은 그러했다. 사울은 자신이 이 베냐민 지파, 지극히 작은 지파의 출신이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겸손하게 자기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났고 집안도 부유한 이 인물됨에 게다가 겸손함까지...정말 일등 신랑감이 아닌가? 좀 잘 나가는 사람은 웬만하면 자기를 뻐기고 자신의 교만함을 내비치고 자신의 자랑을 쏟아놓는 것이 특징인데 말이다. 사울은 인간이 된 인물!
(10:22)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사울은 사무엘이 자신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름부으시는 장면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 행구: 기구들, 물품들 이란 뜻. 여행 시 사용되던 여러 물품, 짐 보따리를 가리킨다. 몸을 숨길 곳만한 곳을 찾은 사울이 여기에 자신의 몸을 숨긴다. 부끄러웠고 so shy~사울이 A형이었을까? MBTI를 검사해보면 분명 I로 먼저 시작했을 기질의 소유자? 성경은 왜 사울의 혈액형과 기질테스트 결과와 MBTI를 기록치 않았을까? 그것은 안 보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하하...모든 인간적인 매력을 다 갖춘 인물이 출신성분에 대한 겸손함까지 게다가 짐 보따리 뒤에 숨는 최고의 겸손의 모습까지...오, 정말 하나님의 선택은 놀라우셨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좀 가진 것 있으면 교만해버리진 않는가? 겸손을 가장한 교만의 또아리를 틀고 있진 않는가? 여러분이 가진 은사와 카리스마, 능력과 재능을 은근히 보여주면서 슬쩍 다른 사람을 무시하진 않는가? 나는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교회만큼 치졸하게 서로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고 비아냥거리기 좋아하고 남을 무시하고 비교하기 좋아하는 집단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교회의 권위와 위상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교만을 내려놓으라! 그리고서 하나님의 겸손으로 치장하라! 여러분이 잘 나가는 직장인인가? 연봉이 확실하게 센 job으로 인해 다른 이를 무시한 적은 없는가? 여러분의 외모, 성적, 소유, 집안, 백그라운드, 배경, 성격, 장점, 달란트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경시한 적은 없는가? 다 내려놓기를 바란다. 그리고서 시작이 너무나 좋았던 구약의 인물, 사울의 겸손을 배우기를 바란다.
3. 신적인 감동까지...11:6-7
-여호와의 두려움
[삼상 11:6-삼상 11:7] (6)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7)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사람들은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으심을 받을 때 모두 다 환영했다. 그는 매력만점의 인간이었고 사람들의 기대와 평가 이상의 비범한 카리스마의 주인공이었다. 인간적으로 흠잡을데 없는 인물, 겸손함까지...그런데 거기다가 하나님의 신의 큰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는 사울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왕으로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을 정도!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사울의 존재감은 이제 인간적인 매력과 장점으로만 뭉쳐진 것 보다 더 한 무게감! 바로 영적인 무게감, 여호와의 두려움이 임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사울의 얼굴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막을 나왔을 때 광채가 난 것처럼 거룩한 신적인 광채, 빛이 뿜어져 나왔는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영적으로 살아있다면 얼굴에서 신비한 빛, 밝은 기운이 돈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을 것이다. 영적인 파워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할 순 없는 것이다. 교회는 더군다나 믿음의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이기에 영과 영이 통하는 사역의 장이다. 사울은 영적인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이제 모든 자격조건을 합당하게 갖춘 실질적인 위엄을 갖추게 된다. 그 누가 사울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그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 시끌벌적했던 BBK사건! 사울에겐 그런 비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괜찮은 인물이었다.
사랑하는 대학 청년 여러분!
여러분에게 인간적인 모든 매력과 장점이 있는가? 남들보다 나은 은사가 있는가? 거기다가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기를 소망한다. 사모함으로 신적인 능력을 받기를 소망하라. 교회는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지만 성령이 운행하시는 공동체이기에 영적인 파워는 분명코 필요하다. 부산 수영로교회는 정말 규모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광안대교에서 바라보는 수영로교회는 정말 몸집도 크다. 교회 현관을 들어서면 동대구역 대합실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수영로교회 목사님, 정필도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정말 이 설교를 듣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까 할 정도로 설교는 지루하고 말도, 목소리도, 톤도 너무 밋밋해서 젊은이들이 들으면 떠나간 졸음이 다시 올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 교회에 몇 만명의 성도들이 모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시설이 탁월해서인가? 시스템이 좋아서인가? 프로그램이 좋아서인가? 물론 그런 요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필도 목사님에겐 인간적인 매력보다는 신적인 여호와의 기름부으심이 있다고 확신한다. 인간적으로 보는 것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진 은사와 재능과 능력과 젊음 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달라고 기도하라! 신적인 파워를 달라고 기도하라. 주의 성령이 떠나지 않는 젊은 청년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라! 인간은 육식동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영적인 존재는 영적인 존재를 알아본다. 성경공부리더나 임원이나 부장, 위원장, 성가대, 교사, 찬양팀, 기타 모든 사역을 할 때 여러분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인간의 능력은 언제나 바닥이 나고 고갈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한다면 여러분은 좀 부족하고 모자라고 불충분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하게 여러분의 사역과 여러분의 인격과 여러분의 인생을 채워주실 것이다. 이것을 염두해두라!
4. 비극의 진혼곡Requiem,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3:8-10; 13-14; 15:12
[삼상 13:8-삼상 13:10] (8)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9)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10)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 하매
...직권남용이었다. 구약시대는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이 다 분리되어 있었다. 때론 왕과 선지자의 권위가 같이 사용되기도 하고,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이 같이 가기도 했지만 엄연한 분리가 존재했다. 신약시대에 와서 이런 모든 것, 왕과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 삼중직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메시야’(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유는 그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모든 삼중적인 직분을 그리스도라는, 메시야라는 이름으로 성취하신 것이다.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사울이 비록 일국의 최고의 권력자이지만 제사에 대한 권한은 없었다. 제사는 오직 제사장의 권한이었고 사무엘의 권한이었다.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나라, 신정정치의 국가였기에 전쟁을 하기 전에 반드시 제사를 드리고 나가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가 기도하고 밥을 먹고, 기도하고 회의를 진행하고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듯이 말이다.
사울은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데 적군이 눈앞에 와 있는데 전쟁준비는 만사오케이 되었는데 정작 제사드릴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사울을 엄습해오는 초조감과 불안을 누가 알겠는가? 사울은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직권남용! 그런데 꼭 사람 일이라는 것이 사고치고 나면 사무엘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 타이밍에 말이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삼상 13:13-삼상 13:14]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14)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5. 선을 넘어간 사람
사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을 넘어가버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역을 줄로 재어 주셨다. 이것은 신체적 제한, 국가적 제한, 능력의 제한 등 여러 가지 제한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지켜주는 구역으로 봐야 한다.
사울-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구별하지 못 하고, 왕이니깐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리차드 포스터는-권력(power)에는 그렇게 사람의 생각과 인격을 망가뜨리는 힘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돈, 학위, 지위도 하나의 권력이다. 그 권력이 당신을 착각하게 만든 적은 없는가?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선을 넘으면 이렇게 추락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너는 정말 바보짓을 했다You acted foolish!)
고 번역, 히브리어의 ‘싸칼’은 특히 하나님께 경솔하고 사악한 행위를 했음을 의미. 이것은 에덴동산의 반역과도 같다. 사울에게 있어 행위 그 자체보다, 마음의 태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Godliness)이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God-likeness)이 아니다. 능력은 떠나버렸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리더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아무리 눈에 보이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도 지도자로서 그 사람의 권위나 영향력은 끝이다. 사울의 인간적인 매력과 외모와 카리스마와 겸손과 여호와의 기름부으심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다. ‘싸칼’때문이었다.
여러분에게 ‘싸칼’이 없는가?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을 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길 바란다. 그리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리더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너는 정말 바보짓을 했다고 판단당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삼상 15:12)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6.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섬긴 사람
이집트 파라오들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승리의 과시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듯이, 사울도 기념비를 세웠다. 야드Yad -자신의 손, 자신의 수고를 이룬 일이라는 의미의 기념비를 세움. cf). doxa(헬)-는 원래 인간을 대상으로 쓰는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설명하는 의미로만 국한되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시간에 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의 경우, 리더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 시작이 화려했던, 겸손했던, 매력적이었던 사울의 길이 왜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변해버렸는가?
우리들 가운데 교회나 직장이나 가정이나 어떠한 영역에서든지 리더로 세워져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가 되어선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오류와 죄악을 저질러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남들 앞에 서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러한 범죄의 가능성과 시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음을 기억하자. 자기가 노력해서 땀 흘리고 수고한 것에 대한 결과와 그에 대한 칭찬과 인정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순간적인 착각과 교만과 유혹에 떠밀려 영원한 상급과 영원한 칭찬을 잃어버리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시길 바란다.
청년, 대학부 여러분, 여러분의 야드는 무엇인가? 여러분의 기념비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들어간 대학인가? 대학의 과인가? 성적과 장학금인가? 남들 앞에 내놓을만한 직장인가? 탁월한 은사인가? 재능인가? 리더십인가? 여러분의 야드와 기념비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여러분은 사울의 전철을 뒤밟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라!
7. 누가 왕을 죽였는가? 31:3-6
[삼상 31:3-삼상 31:6] (3)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4)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5)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6)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누가 왕을 죽였는가? 이 기술을 볼 때 ‘자살’이다. 자기가 자기를 죽인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죽음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더 심층적으로 살펴본다면 사울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들게 하여 결국 비극의 실패자가 된 것은 사울의 중심 때문이었다.
(잠 4:23)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왜 이렇게 변해버렸는가? 그것은 사울이 초심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왕권에 더욱 집착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보다 자신의 권력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나라라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나라’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나라였는데도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을 바꿔치기 해 버린 결과였다.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 인격적인 관계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이고 하나님께서 세워가실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것에 더 큰 신경을 썼고 그러기에 다윗이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라 비쳐지기 보다는 ‘자신의 권력의 경쟁자’로 보였던 것이다. 사울과 같은 유형의 사람을 ‘업적과 일 중심의 사람’(Driven Man)이라고 부른다.
8. 업적과 일 중심의 사람(Driven Man)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서 일 중심의 카리스마적 남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 1> 그는 항상 일을 해내야만 만족했다. 일에 대한 강박관념.
- 2> 그는 항상 성장하고 확장하기에 몰두해 있다. 좋은 일을 하는 것 보다 많은 일을 하는데 관심이 있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 보다 크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 3> 그는 자신의 인격의 깨끗함, 정직함을 돌아보지 않는다.
- 4> 그는 사람들을 일을 이루는 도구로 본다. 그에게 일을 이뤄내는 것이 사람을 키우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 그는 일을 이룰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 5> 그는 화산처럼 치솟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다.
- 6> 그는 늘 경쟁적이다. 함께 이긴다는 개념이 그에겐 없다. “나의 성공은 남의 실패다”
- 7> 그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항상 바쁘다.
늘 여유 없는 삶과 라이프스타일, 그러면서 늘 자기가 맡은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실은 자신이 그렇게 바쁘지 않으면 너무 불안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꼭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구세주 콤플렉스”, 이것을 버리라!
9. 누가 왕(王)을 죽였는가?-이중성Doubleness
바로 사울의 무너진 내면이 사울이란 왕을 죽였다. 더 나아가 이중적으로 해석해보자면 ‘누가 왕을 죽였는가’, ‘누가 하나님이란 왕을 죽였는가?’-바로 사울 자신이 그러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대학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왕은 누가 죽였는가? 여러분의 그리스도는 누가 죽이고 있는가? 시작이 화려했던 여러분의 믿음이 아니었던가? 중고등부 시절에 순수하게 수련회 때 눈물을 흘리며 첫사랑의 감격에 젖어했던 여러분들이 이제 머리가 굵어졌다. 나이가 먹으니깐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돈이 보이고, 이성친구가 보이고, 자동차가 보이고, 집이 보이고, 학점이 보이고, 시급이 센 알바가, 좋은 직장이 보인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여러분이 누렸던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만남과 경건의 시간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눈물 흘리며 달콤한 큐티를 했던 적은 언제인가? 기도하려고 자리에 앉기만 하면 눈꺼풀이 먼저 감기는 지금 말고, 예전에 여러분이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앉았을 때도 그러했는가? 감동과 눈물과 감격이 사라진 지금, 여러분의 왕은 누가 죽였는가? 바로 여러분의 무너진 중심, 하나님과의 무너진 인격적인 관계, 깨어진 하나님과의 사이가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스라엘의 홀로 하나이신 왕을 죽인 사울이 바로 여러분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어찌 처음으로 세운 사울 왕의 말로가 이렇게 끝나기를 기뻐하셨겠는가? 비록 그들의 실수와 욕심으로 세워진 초대 왕이긴 했지만 영혼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은 ‘사울의 자살’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
여러분의 왕은 죽어가고 있지 않는가?
여러분의 초심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길 바란다. 여러분의 무너진 하나님과의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복구하시길 바란다.
여러분이 죽인 왕은 여러분만이 살릴 수 있다. 여러분의 무너진 내면세계에 하나님을 초청하고 말씀과 기도의 시간으로 여러분의 영성을 회복하라!
사울은 죽었지만 이스라엘의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은 다시금 여러분 삶 가운데 일어나셔서 역사하실 줄 믿는다.
오늘은 구약성경 사무엘상에 등장한 사울의 일대기 중에서도 특히 9장1-2절, 31장 3-6절을 토대로 "누가 왕王을 죽였는가?"란 주제로 사울의 처음과 나중의 간격이 얼마나 격차가 컸는지, 그가 어떻게 선을 넘어버린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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