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6장 41-50절에는 모세의 리더십에 대적했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250명의 족장들의 죽고 전염병과 불평과 원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살아남은 이들 사이에서 선 영적 지도자 모세를 보면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을 생각해 보자.
강자와 약자가 경기를 하게 될 때에 많은 사람들은 약자의 편을 들게 마련이다. 옳고 그름은 반드시 판단되어져야 합니다. 요즘은 교단이나 교계에서 치리가 많이 약해져 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대적함, 그로 인해 백성들은 회개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타나는가?
V.41이튿날...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그들은 감사하기보다는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다.
V.47염병...일종의 전염병이었다. 무서운 염병으로 말미암아 단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신 하나님. 성경학자들은 이를 급성 흡사병으로 본다.
V.46, 낌새를 눈치 챈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대신하여 속죄제를, 향로를 피웠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두 지도자의 몸짓을 보라! 리더, 지도자, 목자의 마음이다.
우리가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이다(V.48).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산 것 같으나 이미 죽은 인생이다. 목숨보다 더 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생명이 있어야 가나안 정복도 의미가 있고, 회중이 있어야 모세가 가치가 있지 않는가? 정말 그렇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 나의 인생에 있어 내가 지도자의 길로 간다고, 내가 영적 리더의 길을 간다고 하지만 회중이, 청중이, 백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삶과 소명은 무의미할 뿐이다.
그렇다면 정작 진정한 리더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영혼을 위한 아파하는 마음, 하나님 아버지와 백성들 사이에서 중보하는 중보자로서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진정한 마음이 없다면 목자로서 소명이나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회중들의 생명들을 염려하고 안타까워하고 아파하는 마음으로 모세는 아론을 재촉했다. 뿌리 뽑힌 나무는 살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영원한 지옥이 예비되어져 있다. 무슨 사고가 났을 때 119대원들이 왜 그렇게 안달하는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자하는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라!
우리의 생과 실존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임을 기억하라. 우리들은 너무나 ‘사소한 일’에 매여 산다. 제자들은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기를 간구했다’.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길게 한다고 사람을 죽인 사건이며, 끼어들기를 하는 차량을 향하여 기분 나쁘다며 접촉사고를 낸 사건이며 이 모든 사건들이 왜곡되고 잘못된 우리의 ‘사소함’이 아닌가? 우리의 우선순위는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굴절된 패러다임이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영혼을 살리는 것, 교회가 다 교회인가? 영혼을 살리는 일이 없는 교회는 더 이상의 교회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관심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heart of the lost’ 오늘도 주님은 잊혀져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있다. 시장이, 대통령이 우리 시민들과 국민들을 살릴 수 있겠는가? 이 사업을 주님은 천사들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들에게 맡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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