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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태복음

마태복음 6장 24절, 마음의 예배Heart of Worship

by Message.K 2023.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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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24절의 본문을 토대로 '마음의 예배Heart of Worship'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몽골의 한 자매의 잃어버린 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중심, 예배의 중심이 어떠한지를 한번 돌아보았음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 마음의 예배Heart of Worship
마태복음 6장 24절, 마음의 예배Heart of Worship

 

 

(마 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내려놓음’이란 책에서 저자는 자기 교회 자매의 이야기를 합니다. 몽골의 한 자매가 소를 잃어버려서 찾고 있다가 교회 예배시간인 줄 알고 소 찾기를 포기하고 예배드리러 왔다는 그 이야기가 가슴을 두들깁니다.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믿음

  그러한 믿음의 순전함과 순수함이 있었습니까? 그러한 시절이 있었습니까?

학창시절 때도 ‘시험은 성령도 떨게 만드신다’는 말을 신학교 교수님으로 들었던 그 말이 그걸 반영이라도 하듯,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유독 선생님의 매와 학교의 시험에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힘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시절부터 발바닥, 엉덩이, 손바닥에 우직하게 내려지는 매질!

  믿음은 시험을 이기지도 못하는 정말 볼품없는 ‘골동품’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은 시험하나도 제대로 어찌 하지 못하는 골동품, 골동품이 무엇입니까? 고물상자일 뿐입니다.

 

 

 

 

 

  대학교시험에서 실패자의 모습을 보이곤 다시 교회로 돌아와 키보드(신디사이저)를 치면서 찬양을 인도하고 눈물을 퍼부어댔던 것입니다. 비오는 날에 눈물을 흘리면 표시가 잘 나지 않아서 좋다는 유행가의 가사말이 유독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믿음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학업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삶의 현장 가운데서도 늘 우직한 믿음이요 버팀목이며 기둥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우리 현실에서 보면, 언제나 제일 뒷켠인 듯 싶다. 제일 초라한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 대신 예배를 택했던 그 몽골의 순전한 믿음’

  예배를 마치고 나니 교회마당에서 울고 있는 소!

  소를 택하고 예배를 버렸다면, 그 자매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소를 찾기나 했을까요? 소를 우여곡절 끝에 찾았겠지만, 그 주일에 받아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날려버리진 않았을까요?

 

  지금도 우리는 소를 택하고 예배를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의 소는 무엇입니까? 시험기간만 되면 텅 비어버린 예배당, 여러분의 자리, 한 주간의 삶 가운데 말씀의 공백과 기도의 내려놓음! 우리는 어려움이 닥치면 제일 먼저 내려놓은 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는 아닙니까? 여러분의 소는? 이성친구입니까? 이성친구, 사랑을 위해선 예배는 언제나 제일 먼저 내려놓는 내려놓음의 Best! 그럴 수 있습니다. 알바와 용돈과 나의 필요! 나의 필요가 우선이야! 하지만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자는 것입니다! 리마인드합시다!

소 대신 예배를 택했던 그 몽골 소녀의 순전한 믿음!

 

 

 

 

우리는 왜 소를 택하는가?

소? 소가 없으면 우리는 왠지 허전해합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집니다. 예배시간, 예배보다 소가 없는 것이 더 갈급합니다. 돈이 없습니다. 헌금할 돈도 없고, 십일조 낼 돈도 없고, 차비도 없고, 월정낼 돈도 없고, 밥값도 없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신학교때였다. 돈이 없었다. 1학년:1만원, 2학년:2만원....밥값이 없었다. 그런데, 한번은 리더 형님이 내게 봉투를 하나 건네는 것이었다. 봉투에는 밥값 3천원이 들어 있었다.

 

  공과금 낼 돈도 없습니다. 돈이 없습니다...너무 불안하고 미칠 지경입니다. 가슴이 타들어가고 머리가 뽀개집니다. 돈을 택해야 합니다. 소를 택해야 합니다. 소가 없으면 가정경제가 마비됩니다. 소가 중요합니다. 돈이 중요합니다. 등록금도, 용돈도, 밥값도 소! 아 이 놈의 소!!!!

  -돈 벌어서 머할라꼬? 돈 많이 벌어가 쇠고기 사묵겠지!

 하지만 언제나 소는 목마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소에 대해 목말라 합니다. 소는 소일 뿐인데, 가치중립적일 뿐인데 우리는 소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소는 도구일 뿐인데, 연극으로 치면 소도구에 불과한데. 소는 어느새 우리의 연극의 주연배우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소는 어느새 우리의 인생이란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를 어느새 우리는 경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예배를 버리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소를 택하고 예배를 버립니까? 머? 우리가 예배를 버리고 싶어 버립니까? 예배가 예배답지 않으니 버릴래야 버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현대의 모든 예배들이 이런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수련회 때 보고 느끼고 감동했던 그런 폭발적인 분위기가 실제 교회 예배에선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노인팅이나 예수전도단이나 hillsong의 뜨거운 찬양예배와는 너무나 격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우리의 답답한, 무거운 예배...너무나 적막하고 너무나 답답하고 너무나 메마른 예배...나의 인생을 터치하기에는, 나의 감성을 터치하기에는, 내 인생의 문제를 터치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해 보이는 하나님!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예배, 예배에 대한 마음의 중심’이 아닐까요? ‘마음의 예배’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이른바 매트 레드맨이 이야기한 것처럼, ‘Heart Of Worship' 말입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너무 의례적인 접근이며, 너무 식상한 발상과 접근법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예배의 마음, 마음의 예배를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Matt Redman의 "Heart of Worshop"


음악이 희미해지면

When the music fades
 
모두 벗겨져
All is stripped away
 
그리고 나는 단순히 온다
And I simply come
그냥 데려오고 싶어
Longin' just to bring
 
가치가 있는 것
Something that's of worth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축복할 것입니다
That will bless Your heart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노래 자체를 위해
For a song in itself
 
당신이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Is not what You have required
당신은 훨씬 더 깊이 검색
You search much deeper within
 
사물이 나타나는 방식을 통해
Through the ways things appear
 
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어
You're looking into my heart
예배의 중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I'm comin' back to the heart of worship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And it's all about You
 
당신에 관한 모든 것, 예수님
It's all about You, Jesus
죄송합니다, 주님, 제가 만든 것에 대해
I'm sorry, Lord, for the thing I've made it
 
모든 것이 당신에 관한 것일 때
When it's all about You
 
당신에 관한 모든 것, 예수님
It's all about You, Jesus
끝없는 가치의 왕
King of endless worth
 
그 누구도 표현할 수 없었던
No one could express
 
당신은 얼마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How much You deserve?
비록 내가 약하고 가난하지만
Though I'm weak and poor
 
내가 가진 전부는 당신 것입니다
All I have is Yours
 
모든 호흡
Every single breath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노래 자체를 위해
For a song in itself
 
당신이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Is not what You have required
당신은 훨씬 더 깊이 검색
You search much deeper within
 
사물이 나타나는 방식을 통해
Through the way things appear
 
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어
You're looking into my heart, yeah
예배의 중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I'm comin' back to the heart of worship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And it's all about You
 
당신에 관한 모든 것, 예수님
It's all about You, Jesus
죄송합니다, 주님, 제가 만든 것에 대해
I'm sorry, Lord, for the thing I've made it
 
모든 것이 당신에 관한 것일 때
When it's all about You
 
당신에 관한 모든 것, 예수님
It's all about You, Jesus
예배의 중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I'm comin' back to the heart of worship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이기 때문에
'Cause it's all about You
 
당신에 관한 모든 것, 예수님
It's all about You, Jesus
죄송합니다, 주님, 제가 만든 것에 대해
I'm sorry, Lord, for the thing I've made it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이기 때문에
'Cause it's all about You
 
당신에 관한 모든 것, 예수님, 예
It's all about You, Jesus, yeah
 
당신에 관한 모든 것
All about You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노래보다 더, 노래보다 더 당신을 데려올게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more than a song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노래보다)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than a song)
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어
You're looking into my heart
 
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어
You're looking into my heart
 
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어
You're looking into my heart
 
내 마음 속으로
Into my heart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예, 예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yeah, yeah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노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게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몽골 자매처럼 잃어버린 소에 대한 불안감과 답답함과 두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예배를 찾는 마음이 왜 우리에겐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예배worship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worshiper를 찾으신다?

하나님은 예배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를 찾으신다?

 

어떤 모습, 어떤 형태, 어떤 스타일, 어떤 색채의 예배?

닫힌 예배이냐? 열린 예배이냐? 전통적인 예배이냐? 모던한 현대적인 예배이냐?

찬송가이냐 가스펠이냐? CCM이냐? 그런 예배를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사람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 바로 예배자!

바로 ‘자기를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자기(하나님)를 예배하는 자, 바로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또한 그 소가 예배 후에 밖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예배를 택할 수밖에 없는 자들! 이를테면, 그 몽골자매가 소를 찾다가 소를 정말 완전 잃어버렸다고 칩시다! 아니면 소가 독버섯이나 독이 든 풀, 독금물, 농약 같은 것을 잘못 먹고 어쩌다 죽었거나 한다면, 자매는 소를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예배를 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도 하나님은 찾으십니까? 답은 Yes!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어떤 동기와 어떤 이유로든지간에 하나님을 찾고 예배를 택하는 자에겐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무궁한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대학부에 이런 예배자들이 차고 넘치길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의 본문을  통해 '마음의 예배Heart of Worship'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해 보았습니다. 몽골 소녀의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믿음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을 때마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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