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마태복음

마태복음 13장 18~30절, 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by Message.K 2023. 4. 14.
반응형

오늘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13장 18-30절의 본문을 가지고 '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라'는 제목으로 과거에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비유에는 이중성, 즉 '계시'와 '은폐'의 특성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씨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씨뿌리는 비유

 

오늘 본문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18-23절), 밀과 가라지비유(24-30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두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비유라는 것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요?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왜 하필이면 애매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요?

 

 

 

 

비유에 담긴 이중성

비유는 이중적인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비유는 먼저, 계시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말씀을 청종하는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주는 계시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둘째는, 은폐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비유는 하나님의 뜻을 은밀히 감추는 차원도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겐 하나님의 비유의 말씀이 진리의 계시가 되지만, 믿지 않는 자에겐 그 비유의 말씀은 영원히 감추어진, 은폐된 진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에겐 영원한 생명, 천국이 선물로 주어지지만, 믿지 않는 자에겐 영원한 지옥 형벌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 비유의 목적은 열매를 맺고 안 맺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씨의 서로 다른 운명을 강조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18-23절)

 먼저 비유에선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이란 4가지 땅이 등장합니다. 씨 뿌리는 자가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결실을 맺고 맺지 못하는 것은 전달된 메시지가 불량이라서가 아닙니다. 그 메시지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불량이라서 그렇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잘 따르지 못할 뿐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박해와 압박에 굴복하고 말기 때문에 열매를 맺기 부족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비슷한 땅은 어디입니까?

첫 번째, 길가는 ‘마음을 닫고’ 듣는 사람의 유형입니다. 반응이 없는, 굳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힌 딱딱한 땅에 싹튼 씨앗이 그 뿌리를 박을 수 없는 것처럼, 말씀을 자신들의 마음에 받아들이는 데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데 열린 마음으로 항상 받아들입니까? 아니면 항상 여러분만의 편견과 고집과 아집으로 먼저 색안경을 끼고 말씀을 대하거나 설교자를 대하진 않습니까? 때때로 설교자의 자질이나 준비나 역량이 부족해서 말씀을 잘 전달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의 오늘 핵심은 전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받는 자의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천국 말씀을 여러분의 가슴에 담을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 서마산교회 성도드은 베뢰아인들과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신사적인 심령’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두 번째, 돌밭입니다. 토양이 얕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청중이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생각해 내긴하지만, 끝까지 해결책을 궁리해 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새롭고 신기한 것을 열중해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시도해 보더라도 쉽게 곧 그만두고 맙니다. 돌밭에 뿌린 씨앗은 환난이나 박해로 말미암아 곧 넘어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을 얼마나 진득하게 깊게 받고 마음에 간직합니까? 우리가 받은 말씀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뿌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환난과 박해와 고난을 뛰어넘는 능력의 말씀,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하는 그 믿음이 바로 여러분의 소유이길 원합니다.

 

 

 

  세 번째, 가시떨기입니다. 인생살이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흔히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것에 몰두하여 여념이 없는 마음입니다. 너무 바쁘면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께 드리는 우선순위는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 말씀의 기운을 막히게 합니다. 아무리 주님을 사랑하더라도, 세상을 너무나 좋아하고 탐닉하면 그 사람에게 말씀은 언제나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를 제우선순위에 놓고 그 분을 가장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그 찬송이 여러분의 38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을 십자가에 내려놓읍시다.

 

 

  넷째, 좋은 땅입니다. 옥토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옥토와 같이 마음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셋째, 이해력이 있습니다. 넷째, 자신이 들은 바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압니다. 선하고 잘 반응하거나 잘 준비된 마음입니다. 이런 자는 삼심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으로 반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견고하게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풍성한 열매로 그 분께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밀과 가라지 비유(24-30절)

 앞의 비유와 가라지 비유에선 공통적으로 악한 자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두 비유의 차이는, 처음에 악한 자는 좋은 씨를 빼앗아 갔습니다. 두 번째 대목에선 그는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운 자입니다. 첫 번째에선, 모든 씨앗은 좋았습니다. 근데 두 번째에서는 곡식 가운데 가라지가 나타납니다. 일꾼들은 좋은 씨앗을 분명히 뿌렸는데, 가라지가 생긴 것에 대해 의아해 합니다. 주인은 원수의 짓이라고 하면서도, 그 가라지를 선별하는 작업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 곡식까지도 뽑을 수 있을 위험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가라지는 밀과 그 겉모양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그 뿌리가 밀보다 강하고 밀의 뿌리를 감고 있기 때문에, 가라지를 뽑다 보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필연적으로 밀도 함께 뽑는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은 밀 하나하나의 안전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건전한 밀 하나하나의 안전, 이것이 바로 주인이 가라지를 추수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일의 결과인 수확량일지도 모릅니다. 가라지를 뽑으면 밀의 수확량은 늘 것입니다. 하지만 가라지를 뽑음으로 인해 건전한 밀의 안전이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의 관심은 그의 백성의 안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관심을 존중해야 하며, 따라서 자신의 세상적 상식과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마지막날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과 악한 자들의 아들들이 잘 구분되기 어려운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곧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그 현저한 차이가 드러나면서 우리들은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이루어질 이러한 구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의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된 영광스러운 보상은 지금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세상 가운데 살면서 가슴 아픈 일들이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위로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위해 최선의 길을 준비하고 계시며 최상의 전략으로 우리의 안전을 도모하고 계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감당하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오늘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13장 18-30절의 본문의 주제이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으며, 예수님께서 왜 비유parable로 말씀하셨는지, 그리고 네 가지의 땅의 종류에 대한 영적인 의미도 살펴보았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