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3장 23-32절의 본문을 가지고 <구원받은 성도가 맞이할 새 날>이란 주제로 설교를 한 내용을 포스팅 해 봅니다. 이스라엘의 신년, 새해에 해당하는 달에는 과연 어떠한 의미와 행사와 이벤트가 있었는지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히브리달력 7번째 달(양력으론 9월~10월)에 절기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특별히 7월 1일은 나팔절, 7월 10일은 속죄일, 7월15~22일은 초막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년예배를 드린 그 1월1일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바로 이 일곱 번째 달의 첫 날이 이스라엘의 신년으로, 한 해의 농사를 끝내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때를 가리킵니다. 일곱째 달 첫날에는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기 때문에 나팔절이라 불리며 다른 절기처럼 모든 일을 멈추고 성회로 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새롭게 시작한 한 해, 7번째 달에 특별히 26-32절에 등장하는 '속죄일'에 한 번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이 속죄일에 대해서는 레위기 16장에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날을 말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날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날 지켜야 원칙이라면 첫째, 27,29절에서처럼 '스스로를 괴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절기 때에는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구원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것이 특징이었지만 이 날, 7째달 10일은 '속죄일'이므로 경건하게 금식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즐거움과 쾌락과 즐거움을 잠시 접는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날입니다.
둘째, 이 날은 화제를 드리는 날입니다. 레위기 16장에서는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은 이 날에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는 속죄소에 들어가 '성직자인 자기 자신과 자기 집안과 그리고 온 이스라엘 회중을 위하여' 속죄를 합니다. 특별히 대제사장은 자기와 자기 집안의 죄를 위해 수송아지를 그리고 백성을 위해서 염소 두 마리를 가지고 갑니다. 염소 한 마리는 백성의 죄를 위해서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수송아지를 가지고 한 것처럼 지성소에 뿌리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한 마리 염소는 아사셀 염소인데, 아사셀은 '염소'를 뜻하는 히브리어 '에즈'와 '쫓아버리다'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아잘'이 결합된 말로서 '쫓아버리기 위한 염소'(scapegoat)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아무도 살지 않는 먼 광야에 내버려지는 염소를 말합니다.
레위기 16장에 보면 아론은 두 손을 그 아사셀 염소 위에 안수하고 백성들의 죄를 다 아뢰고 그 염소를 광야에서 버립니다. 이 의식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가 이 속죄일에 정화되어졌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유리하며 방황하는 이 아사셀을 보면서 우리의 죄가 해결되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했다면 우리의 인생이 그 아사셀처럼 버려진 존재와도 같은 처지임을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속죄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28절에도, 30절, 31절에도 일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이 날을 오로지 자신의 죄를 위해 애통해하는 날인 것입니다. 전적으로 올인하기 위해선 자신의 생업도 잠시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 이 날은 백성들은 금식하면서 예배하면서 진정한 용서와 죄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고 참 안식을 누리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날에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전적으로 수용하면서 회개하고 참회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소통을 위해 7/10, 속죄일을 정해주셨습니다. 이 날은 국가적인 영적 회개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출구를 통해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새롭게 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일년 중에, 아니면 하루 중에 얼마만큼 하나님을 위한 시간과 여유의 짬을 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나머지 그들과 어떻게라도 소통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대제사장 자신도 자신과 자기 가족들을 돌아보고 회개의 시간을 갖게끔 속죄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섬세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죄짐의 고역과 제사와 예배의 부담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제를 나누기 위해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찾아주시고 창구를 마련해주시는 것에 얼마만큼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를 위해 하루를 온전히 비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경을, 모든 집중력을 하나님께 쏟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그러면 좋겠지만, 설사 그렇게 되진 못한다 하더라도 매일 매순간, 아니면 잠시라도 시간과 짬을 내어 하나님께 신경을 곤두세우는 우리만의 '속죄일'이, 우리만의 '속죄의 시간', 우리만의 '교제의 시간'이 요구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앉아 있는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문제의 짐을 거두어 가실 것이고 다시금 뜨거운 교제를 나누실 것을 기대하십니다. 지금부터 이후로 영원토록 하나님과 투명한 영적 교제의 장을 날마다, 매순간마다 갈망하는 주의 백성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레위기 23장 23-32절을 바탕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맞이할 새 날>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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