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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기독교세계관과 영성

기독교세계관과 영성-⑦기독교 세계관의 내용 1.8 인생과 사랑의 의미

by Message.K 2022. 2. 2.

기독교 세계관과 영성에 대한 특강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 중 '인생관'과 '사랑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생의 의미(인생관)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영화롭게 하는 것(glorification)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잘 즐기는 것(enjoyment)이다. 잘 즐긴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즐김=영광

인간의 창조목적...‘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Enjoy). 영원토록 하나님을 엔조이하는 것이 인간의 목표이고 목적이다. 즐긴다고 해서 우리의 쾌락과 정욕과 욕심대로 끌리는 대로 엔조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엔조이하는 것이다. 이게 세상 사람들과 다른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의 핵심이다. 

경건하게 살면 편협한 인간이라고 규정하고 싶은 심리, 이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위해 존재함은 바로 ‘풍성함으로의 초대’이다. 그리스도인 그 자체는 바로 자유, 그 자체이다. 뭔가에 얽매여 있고 족새를 찬 느낌이 든다면 우리는 기독교는 종교인 셈이다. 종교의 율법에 갇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궁극적인 뜻과는 멀다는 것을 기억하자.

 

 

사랑의 의미(사랑관)

언젠가 지인 중에 이러한 말을 했다. 사랑은 ‘1%의 sparkle과 99%의 노력’이라고 했다. 맞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는 사랑은 능력이다. 갈고닦는 것이다. Love is Art(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왜 두 남녀가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는데 이혼을 하는가? 사랑은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인격이 부딪히는 자기 뼈를 깎는, 자기 영혼을 다듬지 않고서는 같이 생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학교나 신학대학원, 또는 특별한 임무를 가진 부대원들이 왜 공동생활을 하는가? 공동생활을 하면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갈등은 정-반-합으로 가는 하나 됨의 훈련인 셈이다. 


감정 sentimentality, 이것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첫눈에 반하고 넘어가는 사랑이 드물다. 우리의 질문은 항상 이러해야 한다. "
1년 전보다 좀 더 사랑하느냐? 이전보다 더 거룩해졌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은 더욱 커져야 한다. 정체함 속에서 퇴락함과 타락함이 있다. 인간은 설교, 지식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사랑으로 인해 쓰러지는 것이다. 빌 클린턴이 왜 우리에게 불결한 이미지로 남아있는가? 성적인 스캔들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가 경건을 잃을 때 우리의 약점을 틈타 공격한다. 어느 스님의 고백을 알지 않는가? ‘나물 캐러 온 여자가 겁이 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성직자에게 있어 회복할 수 없는 문제는 바로 ‘성적인 문제’이다. 붕괴됨의 요인이다. 대학때 선교단체 간사님께서 이성교제 강의 때 하신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Puppy's Love leads to Dog's Life.

(개같은 사랑, 강아지의 사랑은 개 같은 사람을 낳는다)

우리의 사랑관은 어떠한가? 시대를 좇다 보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랑과 이별과 영육 간에 비수에 찔린 상처뿐이다. 임재범의 노래 제목처럼 ‘사랑보다 깊은 상처’이고,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수많은 대중가요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다. 거기에는 헛헛함만이 남는다.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이자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란 엄청난 스테디셀러를 쓴 작가, 고든 맥도날드도 비서와의 불륜으로 인해 넘어졌다. 하지만, 기독교 지도자들과 그를 아끼는 그룹이 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중보 했다. 그가 성적인 타락 이후의 ‘회복’되어 다시 사역할 수 있게 되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의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CCM 가수의 간음 사건으로 인해 한국교회에 파문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 물론 그분은 지금 회복되어서 다시 사역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정서상 쉽지 않은 대목이기도 하다. 

기독교인의 사랑관은 길게 보는 것이고, 오늘보다 내일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연유되어져야 하며, 거룩의 단계를 더 밟아가야 하는 것이다. 감정의 sparkle만을 중시하는 시대와는 달리 사랑에는 훈련이 필요하며 기술 art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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