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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기독교세계관과 영성

기독교세계관과 영성 ⑥기독교 세계관(개혁주의)의 기초

by Message.K 2021. 11. 17.

 

 

6. 기독교 세계관(개혁주의)의 기초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도이벨트의 기본적인 틀이다.

 

① 창조...

1.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1.2 문화명령...창 1:28 cultivate->culture가 파생되었다. 

창조의 명령은 문화명령이고 여기에는 a. 보존의 명령과 b. 계발의 명령이 포함된다.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3 모든 문화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초하고 있다. 에덴동산--->새 예루살렘 성

 

② 타락...

인간의 악함과 문화적인 타락은 모두 인간의 죄에서 연유되었다. 모든 부분의 오염, 타락...칼빈의 5대교리 중에서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다. 100가지 영역이 있다면 99가지 영역은 선하고 건강하고 건재하다 하더라도 한 가지는 그래도 타락하지 않고 건재한 것이 아니라 총제적으로 타락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타락은 세상의 문화적 구조를 타락시켰다. 이것은 자연현상에까지 파급된다. 중세시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건재설'을 주장했다. 모든 것은 다 타락했지만, 이성만은 건강하고 건재하다는, 타락치 않았기에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뭐 그런 소릴 했고, 그 이론이 사람들에게 먹혔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세상, 모든 요소는 다 타락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타락했다. 이성도 마찬가지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업적은 여전히 칭찬받을만 하지만, 그의 '이성건재설'은 과오였다. 




③ 구속...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은 단지 개인적인 인생의 구원과 구속에만 한하지 않고 모든 차원에서 효과가 있다는 기억. 우리의 문화도 구속하시고, 더 나아가 우리의 인간관계도, 우주 만물도 십자가가 구속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 그것이 바로 구속의 능력이다.




④ 하나님 나라의 이해

  자유주의자들의 주장...복음서의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말은 그들의 계속적인 연구의 결과를 발전시켜 그 하나님 나라는 단순한 공간, 영역이 아니라 주권(lordship)으로 국한시키고 있다. 그들의 주장...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이 말은 ‘천국에 가라’는 말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주기도문’을 들먹인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그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은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영향력, 주권적으로 개념으로만 국하시킨다.

또 다른 질문을 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은

"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만한 천국의 장소가 그만큼 거대한 곳이 있는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거, 현재, 미래에 이제껏 죽었고 죽고 있으며 곧 죽어갈 수많은 인구들이 들어갈 천국이란 공간이 도대체 어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공간도, 사이즈도 미어터질 정도로 인구가 많아질텐데, 천국도, 지옥도 과연 존재하기나 한가? 라는 반문을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일단,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한 주권lordship, 영향력influence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동떨어진 또 다른 차원의 천국space이 있다고 믿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천국은 꼭 어떤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그 상태being 자체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천국의 핵심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다. 예수와 함께 있다는 것이 싫다면 그 사람은 천국 가서도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곤욕일 것이고 오히려 지옥의 경험일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천국인이 될,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없다.

*나의 생각--->천국은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하기도 하고 동시에 도 다른 차원의 장소를 의미할 수도 있다. 천국은 우리의 이성과 한계와 생각을 초월한 미래적인 어떤 공간적 개념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지금 주 예수와 동행하고 함께하는 현재적 임재의 개념이기도 하다는 말씀이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연습’에서는  우리의 영성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다. 기도만이 영성이 아니다. 삶의 모든 것이 영성이다. 설겆이하고 육아하고 산책하고 휴식하고 모든 일들이 다 영성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서 따로 떼어낸 하나님과의 기도시간, 영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대는 이러한 사람을 원한다. 영성의 일상성!!! 과거에는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 좌우된 영성개념을 강조했지만, 오늘날은 영성의 일상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영성의 가장 큰 축은 '말씀과 기도'이다. 이것을 빼놓고선 영성을 논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기독교 영성작가, 리처드 포스터는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은 기술이 탁월한 사람이 아니다. 능력이 특출난 사람도 아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은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선 온 몸으로 느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벧전 3:15...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사람들이 질문해 왔을 때 온유한 모습으로 대답하고 변호하고 변증해야 한다. 기독교 학문중에 변증학apologetics가 있다. 세상의 수많은 질문에 대한 기독교적인 답변을 구하는 학문이다. 불신자들이 기독교에 대해, 신앙에 대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질문할때 막힘없이 답해주어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걸 잘 한 사람이 나는 '프란시스 쉐퍼'라고 생각한다.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모든 생활이 다 신앙생활이다. 복음이 세상을 향해 파고들어가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우리의 고민은 무엇인가?


편협한 기독교인듯한 느낌 VS 세속화되어가는 듯한 느낌.


이 두 가지의 갈등의 길 가운데서 균형을 잘 잡고 잘 정립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미(美)라고 송인규 목사는 말했다.

하나님이 창조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편협하다는 것은 모순이지 않는가? 술, 담배 안 하고도 더 즐겁고 복된 문화를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의무가 우리에겐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술자리에서 모든 응어리진 것들을 풀어헤치는 세상의 사람들보다 못할 때가 더러 있다. 그 자리에서 풀고 용서하고 포용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완전히 소갈머리가 ‘밴댕이 속아지’처럼 구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마음의 편협함이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쫀쫀하고 비겁하고 조약한 인상으로 얼룩진 세상에 여러분이 그 이미지를 한 번 바꿔보지 않겠는가? 진리를 확실히 안다면, 그 진리를 인해 우리는 오히려 더 자유하고 더 감사하고 더 탁월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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