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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Meditation

그들은 왜 기독교를 떠났을까?(ft. Hillsong의 예배인도자 Marty sampson)

by Message.K 2022.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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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우연히 힐송의 예배인도자를 찾다가 2019년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약간의 쇼킹을 받은 게 있어서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기독교를 떠난 이는 힐송의 예배 인도자 마티 샘슨이고,  기독교 베스트셀러작가 조슈아 해리스였다.

 

 

 

 

WHY?

찬양사역을 오랫동안 할 때 힐송Hillsong이 너무 좋았다. 난 그때 미혼이었고 호주의 힐송처치에 가서 공연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갈 수가 없었는데, 외삼촌이 선을 보라고 하시면서 그 여자가 바로 호주에 사는 자매였다는. 우아! 정말 나는 그때 그 자매를 보러 갔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다. 그 자매도 잘 살고 있겠지? 

 

 

 

기독교를 떠난 이들, 마티 샘슨과 조슈아 해리슨 사진
마티샘슨(좌)과 죠쉬 해리슨(우)이 기독교를 떠나다

 

 

 

힐송 처지 중에 젊은이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예배인도자가 있었다. 바로 '마티 샘슨Marty Sampson'. 노래도 많이 작곡.작사한 것으로 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이 "Better than life"(이 세상에 부요함 보다) 였다. 기타도, 건반도 잘 다루고, 연예인을 방불케하는 기독교 뮤지션이었다. 그래서 힐송 유나이티드에도 자주 등장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기독교를 떠났다고 한다. 힐송 처치에서 영향력 있는 워십리더였던 그였다. 왜 떠났나?

 

 

 

문제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교회, 사람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문제는 언제나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것,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 그 교회 구성원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기독교를 떠났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발견하는 것은 "Yes Jesus, No Christianity"에서 찾아볼 수 있다. 초대교회가 생성될 때 수많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기독교를 위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포기해야 했다. 예수 빼고는 다 버려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게 초대교회가 생성된 배경이기도 하다. 카타모, 지하교회에서 성도들은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예수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으니, 예수재림만이 주님 오시는 것만이, 마라나타 만이 자신의 소망이요, 희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가 성장하면서 비대해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로마 카톨릭의 예를 들어보면 카톨릭이 성장하고 신도의 수가 많아지면서 교황청은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권력과 권위가 생기기 시작하면 헤게모니가 작동한다. 권력이 무서운 것이다. 카톨릭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비대해지고 커지고 메가처치 형태로 가게 되면 거기에는 권력이 생긴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욕망이 작용한다. 조쉬 해리슨에 대해선 잘 모르겠고, 마티 샘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힐송처치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예배인도자였던 마티 샘슨에 대한 이야기만 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마티 샘슨에 대한 프로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가 이렇게 포스팅하는 이유는 찬양사역자로 오랫동안 사역해왔던 교회생활의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마티 샘슨이 왜 교회를 떠났고 신앙의 자리에서 떠났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가 공개적으로 신앙의 자리를 떠나겠다고 고백한 그 사실, 그로 인해 어떤 이는 그의 사역 전체를 부정하기도 하고, 그의 활동 전체를 폄하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이전에 최덕신 찬양사가 불미스러운 일로 한국교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이뤄놓은 업적과 과거의 사역은 정말 대단했다. 그가 다시 회복하면서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과거의 사역과 업적을 끌어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왜 그들은 떠났을까? 물론 최덕신과 마티 샘슨의 경우는 다르다. 최덕신의 개인적인 죄와 잘못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고 마티 샘슨의 경우는 신앙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욕망의 존재인 사람이 많이 모이면 거기에는 불협화음이 생긴다. 힐송 처지의 노선과 방향이 어떠한 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마티 샘슨은 열정적인 예배 인도자였지만, 그는 신앙을 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충격적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 

 

 

 

 

 

무엇보다도, 첫째는 예배인도자로서 과연 그렇게 신앙을 포기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의 신앙의 뿌리가 어느정도인가? 음악을 통해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인데, 바탕이 얼마나 견고하지 못했나? 이런 생각을 유추해보는 것은 음악이라는 쟝르가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감수성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이지 않는가? 그런 사역은 음악적인 감수성과 능력만으로 감당할 때는 사달이 날 수 있다. 기독교 음악은 기독교의 기초신앙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마티 샘슨이 얼마나 탁월하게 사역하였는가? 그런데, 신앙을 포기하다니...무엇보다, 나는 그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얼마나 견고한지? 그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관계가 얼마나 탄탄했는지 묻고 싶다. 기독교 신앙은 수많은 위기 가운데서 빛이 나야 하는 것이다.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 세워진 것이 교회이다. 힐송처치의 화려한 무대와 수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명성과 환호와 코러스와 배경음악...정말 거기 서 있기만 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저절로 느껴지는 착각을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러한 무대에 한 번 서 보면 소원이 없겠다 싶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은 은밀히 보시는 가운데 은밀한 예배를 더 기뻐 받으신다. 우리 하나님이 사람의 외모에 농락당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하나님의 탁월하신 점이시다. 사람은 속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마티 샘슨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유지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의 개인적인 잘못과 과오가 있어 기독교를 떠나겠다는 것도 아니라면, 기독교에 문제가 있어서인데, 예배 인도자라고 하는 이가 개인적인 사생활의 스캔들이나 다른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을 버리겠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심각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 친구를 비난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그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다시 점검했음 한다. 노래와 음악과 뮤직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인생에 다가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이런 부분을 보면, 음악사역자, 찬양사역자가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데, 루시퍼가 NO.2의 자리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다가 결국은 사탄이 되고 말지 않았는가? 찬양을 담당했던 루시퍼였다. 그만큼 영광스러운 자리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타락할 수도 있는 자리가 그 감수성이 엄청나게 발화되는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둘째, 힐송처치의 문제이다. 힐송처치가 다원주의, 동성연애지지 뭐 이런 이야기들이 도는데, 그게 거짓정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그 말을 다 믿지 않는다. 힐송처치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지만, 그건 여기서 다룰 내용이 아니고. 정말 예배인도자인 마티 샘슨이 교회를, 기독교를 포기한 것에 대해서 힐송처치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목이다. 책임을 진다는 말은 총체적인 회개와 각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전세계에 엄청난 반향과 인기와 명성을 누볐던 힐송처치이다. 예배음악이 무너져갈 때 기라성 같이 일어나 전세계의 음악예배, 예배음악의 붐을 주도했던 힐송처치이지만, 그들의 중심축에 있었던 예배인도자가 신앙을 떠나겠다고 한 대목에서 그들의 비대해진 음악사역과 교회의 규모의 가려진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가를 다시 한번 재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죄가 존재하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정치색이 드러나며, 욕망이 꿈틀댄다. 그리고 인해 죄가 발생하면 그 죄가 공동체를 전염시키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한다. 힐송처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음악예배의 화려한 무대에 서기 전에 날마다 눈물의 회개와 각성의 결단이 선행되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힐송처치의 예배인도자가 신앙을 버렸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이지만, 또 다시 한번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발버둥쳐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값을 주고 산 공동체인데,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도록 끊임없이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여기 저기서 곡 소리가 나는 것이다. 마티 샘슨의 경우가 그런 케이스일 것이다. 그래서 힐송처치는 더 겸손해야 하고 더 겸허하게 주의 얼굴을 구하면서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정말 말씀과 기도가 없이는 되어지는 게 없다. 마티 샘슨이 얼마나 말씀과 기도의 라이프스타일에 살았을까? 근데 그렇게 떠나다니...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님과의 관계에서 떠날 수 있는가? 떠날 수 없다. 그리스도인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부활로 맺어진 언약이다. 그런데, 그걸 떠날 수 있다고?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힐송처치이다. 

 

 

 

 

너무 안타깝다. 마티 샘슨이란 위대한 뮤지션, 찬양사역자를 잃었다는 게 안타까운 게 아니라 그가 얼마나 기독교 생활과 교회생활에 젖어 살았을텐데, 그게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자신의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에게 기독교는 관계가 아니라 종교였다는 말 밖에 더 되지 않을까? 그가 사생활의 문제로 타락했다는 사안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기독교를 버린 기독교 지도자, 예배인도자라니? 인간이 얼마나 연약할 수 있는가를 되새길 수 있는 대목이고, 우리가 정말 우리 자신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우리의 자리에서 더욱 근신하며 자중하며 그 분 앞에서 그분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것이 아닐까? 수제자 베드로가 왜 그렇게 예수님을 부인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앙을 버리겠다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버리겠다고 공언한 두 사람 중에서 Marty Sampson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 순 없지만, 내가 생각나는대로 적은 포스팅이 되겠다. 주여, 오늘도 우리를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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