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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로마서

로마서 강해㉖ 9장1-5절, 바울의 근심과 고통

by Message.K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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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11장은 로마서 해석에 있어 논쟁과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어떤 이는? 9-11장은 1-8장의 구원의 교리와 12-16장의 실천적 삶 사이에 있는 삽입이나 부록 정도로 치부한다.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대목이다.

 

•어떤 이는? 9-11장은 1-8장의 서론과 12-16장의 결론 사이에 있는 로마서의 핵심이나 절정으로 본다.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대목이다.

 

 

*적당한 견해:

1-8장의 결론을 받으면서 1-11장의 로마서 전체의 구원의 교리를 완성하고, 12-16장의 실천을 연결된다고 보는 것이 균형 잡힌 시각.

 

 

로마서 9-11장의 주요사안은 2두 가지이다.

①왜 대다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②유대인들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로마서 9-11장의 구조

서론 9:1-5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바울의 슬픔

본론 9:6-11:32

    -9:6-29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불신앙

    -9:30-10:21 인간의 책임의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불신앙

    -11:1-32 종말에 이루어질 온 이스라엘의 구원

결론 11:33-36 하나님의 구원방법의 놀라움에 대한 찬양

 

 

 

 ■ 동족 유대인에 대한 바울의 고통(1-3절)

 바울에게는 한 가지 큰 근심과 고통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2절에서 드러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바울이 근심하고 고통을 느낀 것은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대다수가 예수님을 거부하여 구원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 그래서 바울은 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8장 마지막에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수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 강조한다!

  바울의 동족을 구원을 바라는 마음은 모세의 기도에서도 드러난다.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사랑하는 대학.청년부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고통과 근심이 있는가? 바울은 자신의 동족 유대인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 예수님을 거절하고 거부하고 있다는 것에 심각한 아픔을 느끼고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친척,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에 대한 심각한 책임과 통탄함을 느끼고 있는가? 바울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신의 동포, 동족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 민족과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한 열정과 애정을 영적인 심각한 근심과 고통을 하나님께 드리시길 바란다. 다음주에는 VIP초청주일이다. VIP가 무언지 알 것이다. 여러분의 가까운 불신친구들을 주님께 인도하였음 좋겠다. 우리에게 만약 영혼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맘을 달라고, 바울처럼 간절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유대인의 특권(4-5절)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높은 사회적 신분에는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는데,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으나,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발전의 역동성이 급속히 쇠퇴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이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두산백과)

 

 

  바울은 자신의 동족을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이는 하나님의 선택된 언약백성의 의미로 사용. 유대인은 이방인과 대조되어 사용.

  이어서 바울은 과거 이스라엘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 8가지(4-5절)를 차례로 언급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첫째, 양자됨이다.

바울은 8장에서 양자됨은 기독교인의 특권으로 설명했다(8:15, 23). 그런데, 여기서는 양자됨을 이스라엘 사람의 특권으로 말한다. 바울이 이스라엘의 특권으로 말하는 이스라엘의 양자됨은 8장에서 말한 기독교인의 양자됨과는 다른 의미이다. 이스라엘은 특별한 나라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란 나라와 맺은 언약관계가 있다. 다른 민족과는 구별된 언약백성이었다.

이스라엘의 양자 됨 -옛 언약과 관련됨

기독교인의 양자 됨 -새 언약과 관련됨

 

 수년 전에 우리나라에 와서 참으로 귀한복음을 전하신 영국 선교사님이 계셨다. 그분은 복음의 열정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심어주신 분이시다. 그분에게서는 다섯 명의 어린 아이들이 있었는데, 착한 애들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나, 소식을 들어보니 이 영국으로 돌아온 선교사의 아디들king's kids이 자랐는데, 그 중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복음의 특권을 물려받은 선교사의 아들이지만, 복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참으로 쉽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선지자요, 양자와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왜 그 친구들은 하나님의 눈에 벗어난 타락한 인물들이었다. 아버지의 본을 조금도 본받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엘리의 아들들이 아니라 사무엘의 아들들이었다. 엘리는 늘 좀 게으르고 불성실하고 제사장답지 못한, 우둔하고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자식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렇게 패역한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영적 거인이었다. 그런데, 자식 일만큼은 사람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저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한답시고 자식들에게 불신의 유산을 물려주진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둘째, 영광이다.

이스라엘의 특권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출애굽 당시에 도망치는 이스라엘 백성과 추격하는 애굽 사람을 분리시켜주는 큰 구름 기둥으로 나타났다. 이 구름 기둥은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과 빛을 막아주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변하여 빛과 온기를 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인도해주었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리 위에서만 하나님의 영광의 기둥들이 있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출 24:26-17).

 

  또한 성막이 완성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은 성막에 충만했고(출 40:34-38),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에 충만했다(왕상 8:10-11). 에스겔은 환상 중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떠난 것을 보았고(겔 10-11장), 후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한다. 세상 민족 가운데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이렇게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민족은 이스라엘 백성밖에 없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적적으로 체험한 적이 없는가? 저는 어릴 때 교통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기적적으로 체험하고 부모님께서 서원기도를 해서 신학을 하게 되었다. 여러분은 어떤 영광을 경험하였나? 하나님의 영광을 몸소 체험하였으면서도 아직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지 못한 것은 없는가? 돌아보라! 그리고 감사하라! 추억에 머물지 말고, 그것이 현재가 되고 현실이 되길 소원.

 

 

 

셋째, 언약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고(창 12:2-3), 또한 모세를 중보자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으며(출 19-24장), 후에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다(삼하 7장). 아브라함 언약-모세 언약-다윗 언약, 이 모든 것들은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다. 그 언약은 지금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어졌다.

 

 

 

 넷째, 율법을 세우신 것이다.

세웠다는 말은 주셨다는 말이다. 이것은 다른 민족들에게 율법을 주진 않았는데,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율법을 주셨다는 차원이 아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자체 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방식에 있다. 하나님의 율법의 대표이자 요약인 십계명을 주실 때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으며, 직접 돌판에 새겨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언약의 주인공이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음성으로 율법을 받은 이런 방식은 참으로 이스라엘의 특권이다.

 

 

사극에서 보면, 임금의 목소리와 임금의 얼굴을 함부로 듣거나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임금의 얼굴을 그래서 ‘용안’이라하지 않는가? 영화‘광해’를 보면 이병헌이 광해군의 역할을 하는데, 그 광해군 대역하는 이병헌이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다 먹어버렸다. 광대노릇을 하던 이병헌이 광해군 대역으로 잠시 역할을 하면서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보니 다 먹어치운 것이다. 그걸 보고 있는 음식을 만든 신하들의 눈치가 수상치 않았는데, 그 이유인 즉 임금이 먹다가 남긴 음식들로 그 주방신하들이 요기를 한다는 것이다. 임금이 음식만 남겨도 그것은 신하에게 은혜이고, 은총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직접 백성을 찾아오셨다(신 4:32-36).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다섯째, 예배이다.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예배방법을 직접 가르쳐준 민족은 이스라엘 백성밖에 없다. 하나님은 예배장소, 예배시 어떤 재료, 어떤 모양, 어떤 스타일로 제조해야 할지 직접 말씀해주셨다. 또 예배자는 어떤 제물과 어떤 제사의 방식을 드려야 할지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예배시 제사장의 역할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제사법은 앞으로 주실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다.

 우리는 수많은 예배에 둘러싸여 있다. 저는 이런 수많은 예배가 여러분에게 독이 될까 심히 두렵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께서 청년대학부가 대예배시간에, 오후예배시간, 수요예배시간에, 새벽기도회시간에 좀 나오라고 늘 나에게 채근하신다. 제가 여러분의 입장을 너무나 잘 배려해서 늘 하는 말은 침묵이나 핑계뿐이다. 여러분! 예배를 자주, 많이 드린다는 것은 말씀을 그만큼 많이 접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로인해 여러분은 믿음은 더 자라게 될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제발 주일 예배에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무엇을 보시고 여러분을 강하게 하고, 여러분을 열방과 민족가운데 성공적인 인생으로 세워 가시겠는가? 여러분의 IQ? 여러분의 성적?-할 말이 없는 대학부! 장학금을 주려고해도, 공부 잘하면서 형편 어려운 대학생이 없다!-, 집이 잘 살아서 외제차라도 타고 다니는가? 그런데, 우리의 멘탈도 너무 가난에 쩔은 것 같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찬양을 죽도로 하는 것도, 말씀을 죽도록 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배를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고 고백한 오스왈드 챔버스처럼 드리는 것도 아닌 여러분의 무엇을 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겠는가! 대학부 지체들은 자존심도 없다.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부 이렇게 다음세대가 있는데, 제일 의식이 없는 애들이 대학부가 아닌가 싶다. 유치부애들 멘탈을 운운하겠는가? 초등부애들은 먹을 거 주면 모인다. 중고등부애들은 정말 순발력이 있다. 그렇다면, 대학부. 청년회 여러분은 무언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그렇다고 세상적으로 완전 쩔어서 잘 나가는 것도 아닌데, 왜 신앙생활이 이 모양이냐고! 내가 정말 할 말이 없다. 대학부 예배참여 숫자, 특송할 때, 특새할 때, 기도회할 때? 년말 되니 다들 임원, 리더 안 할려고 작정을 하고 결단을 내린다.

 

  모르겠다! 여러분이 언제 이렇게 헌신할 날이 올지! 다시 오지 않는 젊음이다. 저는 20대때 더 선교하고 전도하지 않은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선교여행도 한번 못 가고, 서른이 넘어서야 일본을 겨우 갔었다. 20대에 더 하나님을 위해 살고 발버둥치면 얼마나 좋은가!

 

 

 

  여섯째, 약속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에 대한 약속들을 주셨다. 또한 메시야가 오셔서 시작될 종말의 새 시대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메시야 약속을 받은 유일한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매우 특별한 민족이었다.

 

 

 

 

 일곱째, 조상들이다.

이스라엘의 백성의 특권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 이야기는 곧 아브라함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이는 이스라엘 조상인 모든 조상들에게도 다 적용된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다른 민족의 조상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조상을 가진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이다.

 

 

 

 

 여덟째, 메시야가 이스라엘에서 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특권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혈통적인 측면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이다. 마태복음에 실린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에게로 이르는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다.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이 자기 나라 사람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진다.

 

 영국인: 윌리암 세익스피어와 같은 국민이라는 것, 독일인: 칸트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와 같은 국민, 스페인인: 피카소가 우리나라 사람이야! 이와 같이 메시야가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다. 더구나 이 메시야는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기도 하신 분이시다(롬 9:5).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의 절정이자, 요약이기도 하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의 특권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 사람 대다수가 구원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왜 이렇게 큰 특권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 대다수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소수만 예수님을 믿는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래서 바울은 다음 단락을 통해 이 문제에 답을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받은 은혜가 크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도 크다는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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