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로마서

로마서 강해㉗ 9장 6-13절,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

by Message.K 2021. 11. 1.

 

 


■로마서 9-11장의 구조
서론 9:1-5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바울의 슬픔
본론 9:6-11:32
    -9:6-29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불신앙
    •9:6-13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
    •9:14-23하나님의 주권과 자유
    •9:24-29하나님의 주권과 예언의 성취
    -9:30-10:21 인간의 책임의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불신앙
    -11:1-32 종말에 이루어질 온 이스라엘의 구원
결론 11:33-36 하나님의 구원방법의 놀라움에 대한 찬양

 

 

  유대인들의 특권에 대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오블리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특권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특권을 받았지만, 그들에겐 믿음이 없었다. 하나님께선 유대인들에게 수많은 특권을 주셨는데(5절),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불신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택이 잘못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저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일반대학에 대한 욕심이 있어 편입을 했다. 국문과를 굉장히 가고 싶었다. 소설이나 문학,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국문과는 저의 본향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명 뽑는데 8명이 지원했는데, 후보1번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합격자는 같은 학원출신이었다. 후보1번으로 떨어진게 너무나 억울했다. 그래서 거의 공부를 놓다싶이 했다.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일종의 정신적 방황을 했다. 그러다가, 한 학기 있다가 영문과에 붙었다. 그때도 등록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다. 내가 원하던 학교의 국문과는 떨어지고, 영문과라니! 헐! 편입시험이 그랬다. 옛날대학시험은 선등록 후시험이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대학 밖에 치지 못했다. 그러다가 편입시험은 여러곳을 동시에 접수할 수 있었다. 저는 처음 편입시험칠 때 한 곳에만 넣었다. 왜? 무조건 된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공부도 많이 했고, 영어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후에 여러곳에 넣어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솔직히 원서접수비가 너무 아까웠다. 그렇게 해서 주저했던 영문과를 주위 형님이 들어가보라고 권유를 해서 들어갔는데, 문법이나 이쪽은 완전 절망이었다. 영어 안에 수학이 있었다. <통사론>수업을 들었을때, 정말 영어 안에 수학이 있다는 것, 행렬이 등장했다. 그때 아! 과거의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왜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기호학자, 수학자였는지를 깨달았다. 모든 학문은 통하는 것이었다. 사자 피할려고 하다가 호랑이 만난 셈이다.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선택은 내 적성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나는 영문과를 들어간 것에 하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문학을 좋아하는 경향이 영문학과 굉장히 잘 맞았다. 비록 방황은 많이 했지만, 세상에 영문학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경험한 게 나를 굉장히 풍성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국문과를 갔으면 한문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았을지도 모른다. 사촌 형님이 국문과를 갔었는데, 한문 때문에 리포트 해결하기 위해 찾아보기도 힘든 훈장을 찾아다니고 난리도 아니였다는 이야기를 후에 듣고는 영문과 간게 얼마나 좋은 기회였나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선택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하지만, 믿는 자의 선택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선택도 감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은 완전한가? 완전하지 않으면 불완전한가? 불완전하면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백성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혈통적 유대인인 육적 이스라엘인과 하나님의 참된 영적 백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혈통적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 특권을 모두 취소하시고 주신 복들을 철회하시는 겁니까?’

 

만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을 취소하신 것이라면,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이스라엘 백성 대다수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이 과거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유대인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을 취소하실 수 있다면, 현재 하나님의 백성이 된 교회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도 취소하실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1-4장)은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5-8장)을 이야기한 바울의 말이 거짓이 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구원을 하나님이 신실하게 지키셨는가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바울이 말한 복음(1-8장)의 신실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그래서 바울은 6절에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신실하게 자신의 구원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말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을 지키신 분이라면

당연히 교회에 하신 구원의 약속(1-8장)도 반드시 지키실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폐하여지지않았다는 근거를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에게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6절)”

 

 이스라엘이란 혈통으로 태어난 이스라엘인이 이스라엘이 아니고, 참된 영적 백성, 즉 믿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인 자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인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유대인중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진짜 이스라엘인이지만, 그중에서 아무리 유대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들은 진정한 이스라엘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란 자부심이 대단하다.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적 자긍심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강대국미국이 그 경상도 땅덩어리만한 그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눈치를 보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다. 예전에 중동전이 있을 때,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무기를 대 주고, 뒤를 봐주면서 배후를 지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이러한 자부심은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는 자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바울은 7-17절을 통해 두 종류의 이스라엘 교리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두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첫째,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의 사례이다(7-9절).

육적인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낳은 육신적 아들은 이스마엘과 이삭이다. 하지만, 이스마엘의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하갈로부터 낳은 아들이다.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다. 9절이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9절)

 

하나님의 택하신 약속의 아들은 이삭이었다.

 

 

  둘째,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사례이다(10-13절).

에서와 야곱의 사례는 이스마엘과 이삭의 사례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진리에 대한 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에서와 야곱은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는데 이스마엘과 이삭의 경우에는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그래서 이삭이 아브라함의 참 자녀로 선택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은 같은 부모에게서 난 쌍둥이였다. 그 조건에 있어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야곱이 하나님의 참된 영적 백성으로 선택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또한, 야곱이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것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11절이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야곱이 선택받고, 에서가 선택받지 못한 것은 이 쌍둥이가 태어난 이후의 행동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에서는 악한 행동을 하고, 야곱은 선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에서는 선택하지 않고, 야곱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에서와 야곱이 이미 태어나기 이전에, 그들의 선과 악의 행동을 하기 이전에, 그들의 행위와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더 나아가 쌍둥이 에서와 야곱 중에서 에서가 아닌 야곱이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음을 분명히 알려준다.

12-13절: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삭은 쌍둥이 중에 형인 에서를 자신의 상속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형이 아니라 동생을 선택하심으로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항임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이야기할 때 불평하고 원망한다. 왜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나님의 예정교리는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공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예정은 비밀로 되어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미리 얼굴만 보아 이 사람은 구원이 예정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모른다. 오직 하나님의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계획일 뿐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예정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야곱이나 에서나 모두 구원받기 대단히 어려운 사람이다. 에서도 하나님 믿기 어렵지만, 야곱도 절대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둘 다 믿게 할 수도 있지만, 야곱을 집중적 구원의 대상으로 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자가 들판에서 사슴 떼를 추격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된다. 사자는 강하고 빠르지만 사슴도 보통 빠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해서는 사슴을 절대로 사냥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자는 마음속에 사슴 한 마리를 미리 찍어 놓는다. 사자는 사슴을 추격할 때에 여러 마리를 추격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마음에 찍어 놓은 사슴을 끝까지 추격해 쓰러뜨리는 것이다.

 

  물론 사자의 발톱에 쓰러지는 사슴은 불행하지만, 하나님의 발톱에 쓰러지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우리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절대 하나님의 추격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이때 모든 사람들을 다 붙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붙잡으시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다른 예로, 야생동물들이 덫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었을 때 수의사가 잡아 치료해주려고 해도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를 쓰면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때 수의사들은 수면제를 넣은 총을 쏘거나 그물로 잡아 기절시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잡아셔서 은혜를 주시고 치료시키려고 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를 쓰고 달아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이다.

 

 

바울은 두 종류의 이스라엘 교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은 폐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바울 당대에 ‘대다수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해서 과거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라고 다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목적은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어져가고 있다.

 

 구원은 혈통, 즉 육적 이스라엘인라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인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절대 배교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영적 이스라엘은 절대로 안전하다. 이것은 현재 신약시대 교회에도 적용된다.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불신자가 있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교회에는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뒤섟여 있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에는 구원받은 사람만 있다. 하나님은 성도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견인의 과정에서 참 성도, 즉 영적 이스라엘, 보이지 않는 교회의 성도들을 끝까지 붙잡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학.청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심을 믿는가?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메시야)로 고백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영적 이스라엘인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선택에는 후회하심도 없고, 하나님의 선택은 틀림이 없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시고,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을 보내신 분이심을 기억하라! 오늘도 그 하나님의 주권 아래 여러분이 있음을, 하나님의 선택 아래 여러분이 여기 있음을 감사하며 찬양하자!

 

■찬양: 나같은 죄인 살리신G(어노인팅곡)


 

 

로마서 강해㉖ 9장1-5절, 바울의 근심과 고통

로마서 9-11장은 로마서 해석에 있어 논쟁과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어떤 이는? 9-11장은 1-8장의 구원의 교리와 12-16장의 실천적 삶 사이에 있는 삽입이나 부록 정도로 치부한다. 지나치게 과소

kkarl21.tistory.com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