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성령을 통한 구원의 확신
우리의 구원받았다는 확신의 근거가 바로 ‘성령님’,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검증될 수 있다.
1-13: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통한 구원의 확신의 근거
14-17: 양자되게 해주시는 성령을 통한 구원의 확신의 근거
18-30: 신자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을 통한 구원의 확신의 근거,
라 볼 수 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수 있을 진 모르나, 작게는 감기부터서 시작해서, 크게는 죽음, 질병, 갈등, 사회적 범죄, 자연적 재해 등을 피할 수가 없다.
저희 집은 항상 고층이었다. W 집처럼 몇십층 되진 않지만, 3층인 5층 높이의 아파트에 살 때 태풍 매미가 왔었다. 그때 금요철야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대구는 웬만해선 비오는 것도 비오는 것 같지 않은데, 이번에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로가에 물이 범람해서 차들이 도로중앙으로 붙어서 주행을 하고 있었다. 자취하면서 빌라도 4층 높이의 3층, 지금 집도 2-3층, 광주에선 18층짜리에서 살았다. 고지대의 건물은 태풍이나 홍수에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현재의 고난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이 고통의 원인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 인가? 바로 인간의 죄로 인함이다. 죄가 있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 것이다. 죄가 없다면 고통도, 고난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죄많은 이 세상을 살면 고통은 필수적인 것이다. 고통이 수시로 찾아올땐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고통의 종류
이 고통은 불신자나, 신자가 모두가 같이 당하는 첫 번째 고통이 있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사람들 가운데 신자. 불신자가 함께 있었다. 진동버스사건도, 모든 자연재해는 신자와 불신자가 같이 당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 고통은 신자이기 때문에 불신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경우이다.
-일반 고난:
-특별 고난:
신자에게 이 세상의 현재의 삶은 고난이다. 하지만 17절에 말한 것처럼, 영광을 받기 위해선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현재의 고난은 18절에서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30절에선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고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고난은 신자가 대면해야 할 필요악이다. 하지만, 그 고난은 필요악이 아니라 필요약이 된다.
왜? 인간의 죄성, 본질적인 진노의 자식으로 사는 인간의 본성을 고치는 가장 좋은 필요약이 바로 ‘고난’이기 때문이다. 고난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같이 받기 때문에 더 이상 고통도 혼자 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위로가 된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하시고, 우리의 고통의 중심부에 항상 함께 하신다. 왜? 그 분이 모든 고난을 십자가에서 다 경험하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래서 고난은 경험적 측면에서 신자가 성화되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 고난을 통해 울고, 불고, 짜고, 눈물흘리고, 통곡하고, 절망하면서 신자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진리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아픔을 겪으면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조금 이른 나이에 고통을 겪으면 성숙미가 더해진다.
사랑하는 대학부. 청년회 여러분!
여러분이 고난 가운데 있는가? 그 고난이 여러분을 더 성숙시킬 것을 믿으라! 믿기 싫을 것이다.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된다. 하나님께서 욥을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성숙시키시고 단련시키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다듬어 가실 것이다. 제가 나이 40대인데, 지금쯤 인생의 궤도에 오르신 분들을 보니, 다들 20대나 30대에 고난의 한 칼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고난이 그 사람을 그 자리에 서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10대의 경우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너무 세게 겪으면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10대에 너무 세게 방황하면 인생의 가닥을 잡기가 힘들고, 대학부터 가는 것이 연기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성공이 더뎌지기 마련이다.
여러분 중에 부모님께 유산을 많이 물려받거나 집안이 빵빵하면 그 재산을 잘 물려받아 사업을 하든지 하면 된다. 근데 중요한 사실, ‘부자는 삼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1대 부자의 마음과 2대 부자의 마음, 3대 부자의 마음이 다른 것이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 그리고 3대는 누구냐? 과연 그 부와 명성과 권세가 얼마나 갈까?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 많은 사람은 그것으로 감사하라!
하지만, 그게 물질적인 것이라면, 결코 자식에게 이롭진 않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서 돈을 물려주는 것이 진짜 큰 복이라면 왜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왜 미국의 부자들이 사회에다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가? 자식에게 물질을 물려줘봐야 정욕과 쾌락을 위해 쓸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수고해서 벌지 않은 돈은 공짜라는 생각에, 성경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탕자처럼 방탕하게 돈을 물쓰듯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었던 대통령은 링컨이었고, 그 다음이 아마 케네디 대통령이다. 그런데, 바람둥이로도 유명했던 케네디였지만, 그의 부인도 유명했다.
재키(재클린)는 프랑스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신문 기자로 활동하였을 당시 존 F.케네디를 만나 2년간에 뜨거운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과 카 퍼레이드를 하던 도중,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자에 손에 의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영화 ‘파크랜드’). 그리고 5년간의 미망인 생활 후,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다는 기사가 뜸으로 인해 미국인들은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재클린은 이에 굴하지 않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당당히 오나시스와 재혼하게 된다.
지금도 세계적인 부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는 생존시엔 세계 최고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의 돈이 있었다. 이 결혼으로 재클린은 부를 얻게 되었지만, 오나시스는 재클린을 전시용으로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싶어 했다고 한다.
말도 못한 모욕감 속에서 재클린은 8년간의 결혼생활을 보내게 되고, 오나시스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그녀는 장황하게 긴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란 이름과 막대한 금액의 상속금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재클린이 부유한 생활을 하며 조용히 칩거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기자로 활동했던 처녀시절의 경력을 되살려 출판과 언론 일에 뛰어들어 잡지를 발간하고 책을 출판하였으며 특유의 매력과 지성으로 많은 사업 동반자를 끌어들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뛰어난 워킹우먼, 지금의 슈퍼맘으로 케네디와 오나시스라는 이름 속에 깃든 전 남편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재클린은 94년 암으로 임종하기 직전까지 미국 상류층 사교계의 대모로 또 출판업계의 큰손으로의 삶을 영위하였다.
백악관의 안주인, 세계 최고 부호의 아내, 그리고 뛰어난 사업가로 살았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중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행복했을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녀는 어떤 충격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며 지킬 줄 아는 강인하고 굳센 여인이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것은 이 재클린이 오나시스와 결혼 한 이유이다. 말 그대로 '돈'때문이었지 않았을까? 남편을 잃고 젊은 과부가 취할 수 있는 것은? 그녀는 34살때 3살짜리 케네디 2세를 데리고 장례식에서 나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튼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39살에 자기보다 20살 이상 많은 60살의 대부호와 결혼을 했지만 결과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오나시스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유산을 아들 케네디 2세에게 물려주었지만, 결국 아들에게 물려주고 했던 것이 그리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수많은 여자들과 더 나아가 다이애나비와도 염문을 뿌릴 정도는 여성편력이 심했던 케네디 2세, 샤론 스톤과도 스캔들이 났고, 캘빈 클라인의 홍보책임자 캐럴린 베셋과 결혼하였다. 그는 무리하게 밤에 비행기를 운전하고 가다가 부인과 처형과 함께 사고로 죽고 말았다. 사고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캐네디2세가 정계진출할 것을 막기 위해서 정치적인 음모에 의해 죽은 것인지는 모른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자식들을 잘 키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아들을 위해 물려준 것이 오히려 아들을 패가망신하게 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자녀에게 고난이 무엇인지, 고난의 훈련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길 방법은 현재의 고난과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하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병상에 입원하거나 아플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찾게 된다. 고통과 고난이 하나님의 필요성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우리 인생의 모든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우리는 미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젊고 매력적이고 피부가 탄력이 탱탱하고 근육이 불끈불끈 솟구치고 밤을 몇일 새도 끄떡없는 체력을 자랑하지만, 우리는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고난의 연속임을 생각해야 한다.
새벽기도 다녀온 후 아침에 누워 있는데, 큰 애(남자)가 와서 고백한다.
‘어린이집 가기 싫어?’ 왜? 누가 괴롭혀? ‘H 때문에.’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H가 뽀뽀한다고 얼집에 가기 싫다는 것이다.’그래서 격려하고 달래줬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 나름대로, 중학생은 중학생 나름대로, 대학생은, 청년은, 부부는, 중년은, 노년은 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이런 모든 고통의 본질적인 이유는 신자가 앞으로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이 18절을 이야기한 이유는? 고난의 끝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임박한 종말의 기대가 나타나 있다. 이 놀라운 사실은 종말에 대한 소망은 믿는 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피조물 전체에 유포된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영광의 크기를 보여주는 세 가지의 탄식이 등장한다.
탄식은 무슨 탄식은? 새창조의 소망, 기도안에서의 소망(18-27)으로 분류, 마지막 28-30은 영화의 소망으로 토마스 슈라이너는 분류하고 있다.
먼저, 피조물의 탄식이다(19-22).
인간은 모든 동물들의 대표이고, 정복자이고, 다스리는 자의 사명을 받았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가운데 살게 된다. 그 피해가 피조물 전체에 미치게 되었다. 자연환경이 오염, 대기권 오존층의 파괴, 적조현상, 예를 들어, 몰디브란 나라는 점점 해수면이 높아져 육지가 잠식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모든 현상들이 인간의 죄악으로만 빚어진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직접적으로 인간의 죄악과 연관된 것이 태반이다. 그래서 자연조차도, 피조물조차도 탄식하면서 22절에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 피조물도 바라는 것은 21절의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에 대한 태도 자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친환경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자연보호나 자연파괴 같은 관심과 그리스도인의 환경관은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께서 사람더러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했던 그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족함과 연약함이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으로 드러난 것이고, 그것은 피조물의 탄식으로 이어졌다.
여러분들은 피조물들을 탄식하게 만든 적은 없는가? 쓰레기를 사소하게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실컷 놀고는 정리하지 않고 떠난 놀이터나 공터, 벤치...여러분이 남몰래 버리고 떠나간 무수한 음식물쓰레기와 그 남은 흔적들...MT나 단합회가서 마구마구 버린 수많은 꽁초들과 맥주캔, 병의 잔해들...모든 것이 여러분의 이기심에서 시작된 피조물의 탄식의 원인들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는다고 했다. 모든 것은 욕심, 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피조물들은 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갈망한다.
‘고대’(19절)...‘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목을 뻗어 내미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저주는 인간의 환경도 저주받게 했지만, 이제 인간의 몸이 부활할 때 모든 피조물의 세계도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사막에 꽃이 무성하게 피며,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뒹구는 영광스런 변화를 예언했다. 그 변화된 세계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려진다.
두 번째는 신자들의 탄식이다.
신자들이 탄식하는 이유는 ‘양자 될 것 곧 몸의 속량’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시에 부활한다. 그 때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 몸, 덜 된 몸, 아직 천국가기엔 부족한 몸이 이제 천국시민으로 들어가기에 합당한, 영화로운 몸이 된다. 그래서 신자들은 탄식한다. 몸의 속량을 기다리며 탄식하는 것이다. 현재의 고통이 깊으면 깊을수록, 미래의 영광을 깊이 알면 알수록 신음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신자들의 탄식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셋째, 성령의 탄식이다(26-27).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다. 여기서 연약함이란 인간의 피조물성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연약함은 신자에게 있어‘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 지를 잘 모르는 것’으로 대표된다. 신자가 드리는 기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이것.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하는 기도를 드려 주신다는 말이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신자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성령은 장차 하나님이 신자에게 주실 영광이 얼마나 큰 지 알기 때문에 탄식하며 신자를 위해 친히 간구해주시는 것이다.
-우리 다같이 한번 탄식소리를 내어보자. 피조물과 신자들과 성령께서 탄식하신다.
우리가 고난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1)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마스터플랜(28-30절).
2)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8:28).
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 부르심-> 의롭다하심 -> 영화롭게 하심 (29-30)
1)미리 아심: 특별한 관계를 가진다 =미리 사랑했다! 미리 선택했다!
2)미리 정하심: 예정-하나님이 우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실 목표,
Why? 예수님 닮게하기 위해, 예수님의 동생되어, 입양되는 거지. 또한 예수님의 영광 때문이다. 29절에 보면 예수님을 맏아들이 되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3)부르심: 새로운 전환점, 부르심은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 부름받았다는 증거를 가진 사람이다.
4)의롭다하심
5)영화롭게하심: 예수님을 닮는 것이 영화이다.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완전한 인간성의 모델이다.
구원의 황금사슬!
구원은 나의 행동에 기초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에 기초하고 있다. 구원의 현재와 미래는 나의 행동에 달려 있지 않다.
사랑하는 대학.청년 여러분!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시는 사역을 기억하고 감사하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본질적인, 고질적인 악이 바로‘서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나라교인들 중에 원불교가 많다고. 그 말이 많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교만한 신자들이 교회에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성이 그렇지 않은가! 세월호 사건을 보더라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죽은 사람만 불쌍한 것이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인간들도 웃긴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는가?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뤄가시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여기서 선은 true good이다. 단순히 만사형통의 복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구원과 영광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고난을 포함한 모든 일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로 말미암아 이기주의적인 육체의 행위를 죽이면서, 점점 더 가까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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