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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62-66, 넘치는 기쁨의 축제

by Message.K 2024. 3. 20.

 오늘 본문 열왕기상 8장 62-66절의 본문을 통해 솔로몬의 성전1)을 만들고 난 후 감사하며 성전 봉헌식을 하는 광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본문을 통해 '넘치는 기쁨의 축제'라는 제목으로 설교했고,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멈출 수 없는 예배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열왕기상 8:62-66, 넘치는 기쁨의 축제 설교 썸네일
열왕기상 8:62-66, 넘치는 기쁨의 축제

 

 

 

[왕상 8:62-왕상 8:66]

(62)이에 왕과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을 드리니라(63)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64)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65)그 때에 솔로몬이 칠일 칠일 합 십 사일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66)제 팔일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 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첫째, 이 예배의 열정은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62절에 보면 ‘왕과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을 드’렸다고 나온다.

또한 65절에 보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라고 나온다. 이스라엘 전역,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공동체였고 신정주의 체제의 나라였다. 솔로몬이란 리더가 정치적인 리더이자 동시에 영적인 주도권을 행사하는 리더이기도 하다. 솔로몬이 이 봉헌식을 주도했고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앞에 선 사람이 아무리 일을 추진하고 계획하고 진행한다 하더라도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못하면 그 만큼 볼품없는 광경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허먼 밀러(Herman Miller)라는 미국 굴지의 가구 회사의 전 회장이었던 맥스 디프리(Max De Pree)는 이러한 멋진 비유를 했다.

“야구에서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그것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좋은 포수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2)

  

좋은 리더가 있으면 좋은 추종세력이 있어야 한다. 좋은 leader가 있으면 좋은 follower가 있어야 그 공동체가 복되고 부흥하고 발전한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들이 좋은 추종세력, 좋은 순종자들이 먼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앞선 리더들을 뒤따라가면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순종하며 추종할 수 있는 그러한 멋진 제자들이 우리 시대에, 우리 교회에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A. W. 토저도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을 듣는 바로 그 사람의 말을 들어라(Listen to the man who listens to God)”라고 했다.3)

  

현재 달라스 신학교의 총장인 척 스윈돌(Chuck Swindoll)은 20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 중의 하나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도 젊었을 시절, 두 군데 이상의 교회에서 제대로 된 교인들을 만나지 못해 갈등을 겪으며 교회를 옮겨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침내 남 캘리포니아 풀러톤의 이반젤리컬 프리 교회(Evangelical Free Church)라는 곳에 이르러 그가 20년 넘게 미국 최고의 설교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트게 된다. 물론, 그가 당시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를 몇 번이나 옮겼다고 봐도 되겠지만, 역시 주된 이유는 제대로 된 팔로워 그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상 입버릇처럼 자신이 이반젤리컬 프리 교회의 교인들 같은 좋은 팔로워들을 만난 것은 평생 가장 큰 축복이라고 되뇌이곤 한다. 그러니 팔로워십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따르는 이(follower)’하면 무조건 리더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는 그런 선입관부터 깨어 버릴 필요가 있다. ‘따르는 이’라는 영어 단어는 본래 ‘돕다, 후원하다’란 뜻의 고어 독일어인 ‘follaziohan’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원래 어원대로 엄격하게 정의한다면, 팔로워란 ‘리더에게 없으면 안 되는 돕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단어 사이의 관계는 원래 평등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4)

  

 

하나님 앞에서 리더와 따르는 이의 위치는 평등한 것이다. 은사별로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신 리더가 있는 것이고 그것에 부응하는 따르는 자격을 주신 것이다. 교회에는 좋은 목사님이 있으면 좋은 교인들이 있어야 한다. 그 관계는 우월이나 상하의 관계, 고저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로서 서로 동역해야하는 관계이다. 하나님의 교회의 리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것을 제시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리더에게 없으면 안 되는 돕는 존재’고 서가야 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참으로 뛰어난 영적, 정치적 지도자였지만 그에게 백성들이 따라주는 추종세력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솔로몬의 봉헌식은 웅장하였고 풍성하게 집행될 수 있었다.. 6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 솔로몬에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신 것을 인하여 기뻐하고 있다.

 

(66)...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목사님에 대한 불평과 원망과 편견을 내뱉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이 좋은 교인이, 좋은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리더에게 없으면 안 되는 돕는 존재’로서 솔로몬을 뒷받침했던 이스라엘의 백성같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둘째, 이 예배의 열정은 이스라엘의 풍성한 희생으로 인한 풍성한 헌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풍성한 희생이 풍성한 헌신을 낳았다’는 것이다.

  62절에 솔로몬이 드린 화목제의 희생이 얼마였던가?

(63)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

  엄청난 수의 짐승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제물로, 희생의 제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고대 근동에도 이러한 풍습이 있긴 했으나 솔로몬의 이러한 번제물의 규모와 사이즈는 막대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5) 솔로몬 성전의 낙성식은 이처럼 차고 넘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하나님께 드릴 예배의 예물, 제물이 너무나 많아서 풍성했다. 그래서 64절에 보면,

(64)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On that same day the king consecrated the middle part of the courtyard in front of the temple of the LORD, and there he offered burnt offerings, grain offerings and the fat of the fellowship offerings, because the bronze altar before the LORD was too small to hold the burnt offerings, the grain offerings and the fat of the fellowship offerings.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들이 너무나 많아서 너무나 차고 넘쳐서 그 제단에 배열하고 정리하기에는 제단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고 너무 작았다고 했다. 이 축제는 14일 동안 이스라엘 지역에서 이뤄졌는데 하맛 어귀(이스라엘 북쪽)에서부터 애굽 하수(이스라엘 남쪽)까지의 전 지역에서 이뤄졌다(65절).

 

  이러한 풍성한, 차고 넘치는 희생제물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66)...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On the following day he sent the people away. They blessed the king and then went home, joyful and glad in heart for all the good things the LORD had done for his servant David and his people Israel.

 

이처럼 풍성한 헌신과 드림은 풍성한 기쁨과 반응을 낳는다. 희생과 헌신의 드림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받음이 있었다. ‘여호와께서....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여기서 66절만 보면 주어를 ‘여호와께서’로 볼 수 있는 애매한 여지가 있는데 보다 정확한 해석은 영어성경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모든 좋은 것들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이 기뻤고 즐거워했다’는 편이 옳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풍성히 여러분의 것들을 드리시기를 소망한다. 그러한 헌신과 희생이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의 깊은 만족감과 영적인 충만감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저는 감히 도전한다.

  풍성히 주님께 드린 헌금이 있는가?(분에 넘치는 헌금을 드린 적이 있는가? 드려보지 않은 자는 드리는 기쁨을 모를 것이고 게다가 하나님의 세밀하고 정확한 축복과 분에 넘치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교회의 한 K집사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상당한 자극과 감동을 받았다. 그 집사님은 평소에 참 수수하고도 소박한 이미지의 주인공인데 비해 타고 다니는 자가용은 고급승용차였다. 내가 외모를 판단한 면도 있지만 그러한 면이 솔직히 있었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음 좋겠다. 보이는 면이 그러했다. 그런데 우연찮게 그 분의 이야기, 자초지정을 듣게 되었다. 몇 년 전 자기는 교회 건축을 하면서 건축헌금을 내는데 집이 너무 가난해서 건축헌금을 드릴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건축헌금을 작정하고서 자기가 직접 YMCA에 가서 청소를 해주고 받은 급여로 건축헌금을 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를 2년 동안 하였다. 그 집사님은 거기서 받은 월급을 그대로 하나님께 드렸다. 자신의 헌신과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물질을 아낌없이 그러면서도 정성껏 드렸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에게 물질을 부어주시지 않겠는가? 그 집사님의 탁월한 열정은 따라갈 수가 없다. 남들이 다 쉬고 싶어하는 휴가철에도 벽지촌에 들어가 ‘여름성경학교 및 새소식반’을 1박 2일, 2박 3일씩 해 주고 오신다. 그 분의 귀한 헌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의 인간의 가슴도 이렇게 도전과 감동을 쥐어주는데 하나님의 가슴은 오죽하시겠는가?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집사님의 가정에 축복을 엄청나게 부어주실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감동이 존재하면 참 좋겠다.

 

 

풍성히 주님께 드린 시간이 있는가?(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 깊은 시간, 풍성한 시간을 드린 적이 있는가? 머리를 싸매고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하고 곱씹을 때 하나님의 진귀한 비밀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말씀묵상> 독서량(존 파이퍼의 생각)

 

풍성하게 하나님을 찬양했던 순간은 언제 적이었나? 시간을 내어서 찬양에다 무게중심을 두고 한 번 생활해 보라. 찬양함이 우리의 힘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풍성하게 기도에 시간을 투자한 적이 있는가? 바쁘다, 피곤하다, 힘들다, 정신없다는 핑계로 기도시간을 풍성하게 가질 수 없다면 풍성한 기도의 체험과 풍성한 은혜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풍성히 주님께 드린 예배가 있는가?(구약의 예배의 대가였던 다윗, 그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초창기는 참으로 굵은 예배가, 심오한 예배가 나오는데 그것은 풍성한 예배자들의 헌신과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식적이고 고질적이고 습관적인 예배에는 솔로몬의 풍성한낙성식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문을 열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라.)

 

이른 아침 내 영혼에 목마름에 문을 열고

나의 사랑 내 주님께 이 하루를 드려요

 

  풍성한 시간, 헌신, 투자, 기도, 말씀, 준비, 구비함...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과 예배와 교회와 시대와 나라와 민족과 열방 가운데 필요하다.

 

 

 

 

  우리는 오늘 새벽에 ‘이스라엘의 멈출 수 없는 예배의 열정, 넘치는 기쁨의 축제’였던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장면을 같이 살펴보았다. 요약하자면,

 

  첫째, 이 예배의 열정은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흘러넘치는 예배는 지도자와 따르는 자의 함께 함에서 온다. 교회의 목사님과 온 성도들이 함께함으로, 동참함으로, 동역함으로 축제의 교회로 만들어가자. 좋은 교인들이 되자.

  둘째, 이 예배의 열정은 이스라엘의 풍성한 희생으로 인한 풍성한 헌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짧고 굵게’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참으로 오용되고 있는듯하다. 짧은 것이 굵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행운이고 요행이고 재수를 바라는 것과 같다. 깊은 샘물은 깊은 수원지가 필요하듯이 깊은 믿음은 깊은 헌신과 희생이 동반된다. 깊은 말씀은 깊은 말씀묵상과 깊은 기도가 요구된다. 깊은 예배는 깊은 절제와 깊은 희생이 동반됨을 명심하자. 그러할 때 우리의 예배가 깊은 예배, 넘치는 예배, 풍성한 예배가 될 줄 믿는다. 우리 모두 그러한 차고 넘치는 예배자들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결단하고 실천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한다.

 


  • 1)솔로몬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성전 건축이다. 다윗 왕이 성전 건축을 원했지만 그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금하셨다(대상 28:3). 그래서 그 임무는 평화의 사람으로 알려진 솔로몬에게 맡겨졌다. 성전 건축은 솔로몬 재위 40년 되는 해 봄에 시작되어(B.C 966), 7년 후에 완공되었다(6:1-38). 성전은 성막의 두 배 규모였지만, 성막과 비슷했다. 성전은 길이 27m, 폭 9m였으며 그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성막과 마찬가지로 성전은 동쪽을 향했으며, 지성소는 정남향에 위치했다.
  • 토마스 넬슨, 손에 잡히는 넬슨 성경 개관, 김창환 역(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2003), 129.
  • 2) 한홍, 거인들의 발자국(서울: 두란노, 2003), 58. 그는 따르는 일(followership)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3) 한홍, 60.
  • 4) 한홍, 60-61.
  • 5) 존 윌튼. 빅터 매튜스. 마크 샤발라스, IVP성경배경주석(구약), 정옥배 외(서울: IVP, 2002), 611.
  • 왕은 참석자들을 위해 종교적인 공동체 축제를 치르도록 많은 고기를 제공하고 있는 듯하다. 그 수는 대단한 것이지만 고대 근동 문헌에서 발견되는 다른 수치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주전 879년에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앗수르의 수도 갈라(Calah)에서 자신의 왕궁을 봉헌하는 잔치를 배설하고, 양과 소 1,000마리, 사슴 5,000마리, 가젤 영양 500마리, 닭 34,000마리, 물고기 10,000마리를 제공했다.


열왕기상 8장 62-66절의 본문에 나타난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장면을 통해 솔로몬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넘치는 축제의 기쁨과 열정을 살펴 보았다. 이 예배의 열정은 모두가 함께 했다는 것, 무엇보다도 풍성한 헌신과 희생이 축제를 더 풍성하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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