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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도행전

사도행전 5장 17절-32절, 사도들이 박해를 받다

by Message.K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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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때, 성전 미문의 날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친 것이 유대 당국의 첫 번째 공격을 유발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의 치유와 회복 사역은 그들의 마음의 시기의 불씨를 더욱 당기게 했습니다. 그로인해, 당국의 두 번째 공격을 유발시켰습니다. 이번에는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17절에 보니 사두개인들의 당파가 일어나 베드로와 요한만을 체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도들을(29절: 베드로와 사도들) 체포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사탄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공격해 올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때에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환경과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위기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복음의 반대자들은 대부분의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19절-20절입니다.

 

 

19.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19절에서 ‘주의 사자’는 천사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메신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자와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행자,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옥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서 메시지가 들려왔습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그들이 왜 지금 옥에 갇혔습니까?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또 다시 옥문이 열리고 소명을 받습니까? 바로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인 본문의 표현을 빌자면, ‘이 생명의 말씀’때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당국과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의 예수에 대한 이야기나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막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기운은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무수한 고난과 환난과 아픔과 역경이 있습니까? 그 모든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위축되고, 무기력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터널이 짧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터널이 너무 깁니다.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터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이며, 내 안에 생명의 복음, 생명의 기운이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보십시오. 부모는 뼈빠지게 일합니다. 정말 몸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노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어쩌면 기성세대는 그렇게 쇠퇴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는우리의 수고와 땀의 기운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어서 기운이 있고 싹을 틔우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의 사자는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 말하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옥에 갇혔다가 다시 나오고, 다시 기상천외하게 탈옥하게 되고 다시 그 복음,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생명은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생명의 말씀, 그 생명의 로고소는 언어로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어떤 봉변이나 위기나 어려움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해야 하는 것이죠. 왜냐구요? 생명의 로고스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죽음에서 사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부활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옥에 갇힌 대다수의 사도들이 옥에 잡히지 않으려고 먼 곳으로 도망치면 다시는 안 잡힐 것인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감옥에서 나와 어디에 있습니까? 25절입니다.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이 또 감옥에 들어가는 꼴을 무서워하여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성전에 서서 더 공개적으로, 더 도발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말씀, 생명의 로고스이기 때문입니다.

 

 

  28절에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우리가 금지하였는데, 왜 이런 일을 계속하느냐고.베드로는 대답합니다. 29절에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고 합니다. 사람의 권위보다 하나님의 권위가 더 높기 때문에 그 권세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의 권세에서 창조가 나왔고, 거기서 생명이 나왔고, 거기서 만물이 조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순종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더 신뢰하며 순종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생명을 전하는 일에 있어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순종하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복음은 생명의 말씀이라 자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어릴 적 잡은 물고기가 세수 대야 위에 넣어놓으면 죽은 고기는 시체가 물위에 둥둥 떱니다. 하지만, 생명력이 있는 고기는 강가나 냇가에 다시 풀어놓으면 생명이 붙어 있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생명은 이처럼 움트고, 회복시키고, 일어나는 힘인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사도들이 감옥에 나와서도 증거한 것처럼 우리도 증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삼천축제때에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사도들이 감옥에 갇히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범죄자가 되는 것처럼 여기는 굴욕과 모욕과 수모를 아랑곳하지 않고, 성령충만하여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다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25절에 사도들은 ‘백성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30절 이후의 내용입니다. 너희가 믿고 있는 것이 잘못된 내용이란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31.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2.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는 증인입니다. 그 증인의 사명을 우리가 선 자리에서 온전히 증거해야 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말씀(언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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