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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강해 3장1-6절, 일깨어 회개하라

by Message.K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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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요한계시록 3장 1-6절의 본문을 가지고 <일깨어 회개하라>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휴가때 온누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았는데 찬양을 하면서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현란한 조명과 스테이지, 몇십억 할 것 같은 파이프오르간과 안내를 맡은 장로님으로 보이는 정장신사들, 찬양팀 콰이어로 서 있는 30-40명의 사람들, 그들 중 나이가 많은 중년도 끼어 있었습니 다. 그냥 눈물이 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년에 그렇게 사역지가 아닌 교회에서 한 사람의 성도로, 예배드리는 기쁨과 희열은 참 기분 좋은 복이었습니다. 온누리교회는 사람들의 입에 칭찬과 찬사로 오르내리기 좋은 교회입니다. 두란노란 출판사나 경배와 찬양, 한국교회의 흐름을 주도하는 교회입니다. 수많은 행사와 사역과 출판과 프로그램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역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 눈에 보기에 살아 움직이는 번창하는 교회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교회 주변의 커피샵을 장악하면서 큐티나눔을 하고 교제를 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너무 더워서 커피샵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생명의 삶 큐티책을 보면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젊은이들이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 서 손에 새로 나온 9월달 큐티책을 끼고 나오는 분위기... 그런데, 그런 멋진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 ‘ 너희 교회는 죽었다’ 고 한다면, 그것만 큼 충격적인 일은 어디에 또 있을까요? 온누리교회가 죽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례를 드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를 향해 2절의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정말 쇼크사할 것입니다. 분명히 충격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살펴볼 사데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유명했습니다. 바쁘게 사역하고 움직였습니다. 많은 활동과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 했고, 성경공부 프로그램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겉만 화려했지, 영적 내실이 결핍되어 있었습 니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 방향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 니라고 하십니다.

 

 

 

누군가 한 말, 중요한 것은

 

‘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

 

그러기에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제는 죽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사데교회가 있던 사데 지역은 A.D 17년에 지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굉장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도시 태반이 폐허로 변합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도시는 이전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 힘겹게 되었습니다(↔라오디게아 교회). 한물 가버린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고 매달리긴 하지만, 실제는 자존심만 남아버린 속빈 강정같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데교회는 그런 사데 도시를 그대로 닮아 버렸습니다.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데교회는 겉으로는 아주 바쁘고 생산적인 교회 같았지만,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었 습니다. 도시가 아무리 초라해도 교회가 살아 있다면, 도시는 희망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교회가 있는 죽어가는 도시는 희망이 없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아니면 실제로 식물인간이 된 분들을 여러분은 본 적이 있을 것입니 다. 마비가 오거나, 뇌사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어찌보면 죽음보다 더 비참한 마비상태, 뇌사상태”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죽지도 않은 상태에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기계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는 그 비참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 니다. 옆에서 병수발 드는 사람의 마음은 더없이 처참합니다.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게 아닌, 사데 교회의 영적 현실, 영적 식물인간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들에게 2절에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일깨어....영어/Wake up, 즉 ‘ 너 일어나’ 라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잠든 사데교회를 깨우는 말입니다.

 

 

“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사데 교회는 죽어가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자기가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성경의 천하장사 삼손도 이런 영적 마비가 왔었습니다.

 

삿 16:20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만하면 됐지? 그동안 열심히 했다 아니가! 이정도면 충분하다. 괜챦다...” 등등의 잘못된 현실만족이 사데교회의 비극이었습니다. 왜? 사데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사데교회에는 이단의 도전이나 지역 상인조합의 유혹이나 로마정부의 박해가 비교적 덜하거나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좀 더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거꾸로 돌아갔습니다. 개구리가 냄비에서 삶겨지면서 죽어가는 것처럼, 사데교회의 야성이 점점 무뎌져 서서히 죽어가고 있던 모양입니다.

 

 

 

환난이 없고 편안한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할 때, 심방가거나 어디서 대표기도할 때에 ‘ 만사형통’ 을 바랍니다. 아무 문제 없고, 아무 환난 없고, 아무 고민 없이 평탄하게만 살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죠.

 

언젠가 돈에 대한 금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녀를에게 가장 큰 축복은 부모가 돈이 없는 것이다. 뭐 그런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자생력이, 자녀들의 야성을 키워주는 것에는 부모가, 누가 뒤에서 봐주는 사람이 없어야 자생력이 생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우린 생각하죠. 우리 부모님이 더 재력이 있었음, 더 빵빵했음 좋겠 다는 생각. 밀림의 왕자, 사자나 표범이나 호랑이가 야생생활에서 자기 스스로 먹이를 찾고 생존력을 키워야하는데, 우리 안에 쳐박혀 사육사가 던져주는 냉동고기나 철지난 고기들을 먹으면서 살아간다면 야생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대전에 아이들과 사파리에 가 본적이 있는데요, 거기 있는 동물들은 전부 야생동물이 아니라 동물원에서 배달해주는 음식을 먹는 것에 익숙한, 정말 어떻게 보면 불쌍한 동물들입니다.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동물원의 동물들이죠. 그 동물들에게 야생성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냥 주는 고기, 음식 받아 먹고 그 동물원의 울타리 안에서 무탈하게 지내다가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야생, 야성이 필요 한 대목입니다.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교회가 그토록 죽어버린 것은 어떤 외부의 핍박이나 어려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좋은 주위 환경이 서구 교회들의 영적인 야성에 데미지를  준 것입니다.

 

C.S.루이스 : “ 지옥으로 가는 길은 편안하고 밋밋하면서 전혀 장애물이 없다.”

 

이사야는 우리를 연단할 때 ‘ 고난의 풀무’ 로 연단한다고 했습니다.

 

 

계 3:2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온전하다- 잔이나 그릇 따위가 비어 있는 모습을 뜻합니다. 즉, 형태는 갖추어져 있는데, 속이 텅빈 것, 한 마디로 속빈 강정입니다. 예배도, 헌금도, 기도도, 주일학교, 선교도 구제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활기가 없습니다. 열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그 무언가가 빠져있습니다. 혹시나 우리에게 그런 모습은 없습니까? 온전하지 않다not complete라는 것은 ‘ 미완성’ 을 뜻합니다. 주님의 이 평가는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매너리즘에 빠져서 건성건성으로 하며, 땜빵하듯 하던 것 으로 인해 큰 일이 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렘 48:10).

 

주님의 처방전은 무엇입니까?

 

 계3:2 일깨다- 헬라어가 현재진행형 동사, 한두 번 일어나는 게 아니고, 계속해 일어나 정신 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원적으로 생각하면, 꺼져가는 불씨를 계속적 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니라

 

 

미국의 기독교 역사에 있어 대부흥을 경험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17-20세기에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영적 대각성 운동의 불길이 번져나가면서, 교파를 초월한 교회들이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며, 재헌신하는 부흥의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영적 대각성을 ‘Spiritual Awakening’ 즉, ‘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 으로 불렀습 니다.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감격의 부흥인 것입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가 잠에서 깨어나서 바로 할 일은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히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데교회는 죽어가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좋은 것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야단을 치신다는 것은 아직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4절에는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에 네게 있어‘

 

고 했습니다. 타협하지 않은 소수의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주목하고, 귀히 여기며, 본받으라.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히 하는 것”...두아디라 교회 안에 껍질만 남아버린 사역들 중에서 그래도 몇 가지 사역들은 아직도 성령의 감동과 기름부으심이 충만한 것들 이 있으니, 이것을 계속 잘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 남아 있던 예배와 집회와 사역들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그들의 마음...메마른 마음, 교만하고 경직된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만 회개하고 고치면 된다. 주님은 그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아 순수하고, 겸손하게, 뜨겁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3:3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처음 받았던 진리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지켜 행하라(3절) 지켜 회개하라(3:3) Obey and Repent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3:3...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사데교회는 천혜의 요새로서 난공불락의 명성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방어가 두 번 뚫리면서 적군에게 무너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적들은 그 도시를 통하는 벼랑의 비밀통로를 통해 몰래 잠입했습니다. 사데교회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도시 꼴이 난다고 말 씀하십니다. 회개하면?> 5절말씀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 주님, 우리에게 부흥의 불길을 허락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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