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강해 6장 1-17절, 심판의 역사

by Message.K 2022. 3. 2.

*.본 포스팅은 요한계시록 6장 1-17절을 가지고 <심판의 역사>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4-5: 하늘의 장엄한 예배

예배를 통해 영적으로 무장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있습니다. 다가올 무서운 심판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예배한 사람만이 이 세상이 주는 어떤 좌절과 절망도 부딪쳐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미래의 심판은 각기 다른 세 가지 시리즈로 구성,

- 일곱 인(6, 8),

- 일곱 나팔(8,9,11),

- 일곱 대접(16) 이라는 세 가지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이 삼중 재앙이 서로 연결, 각 재앙 중 7번째 재앙이 다음 7 재앙 전체를 내포하게 되어 있어, 결국 전체가 하나의 재앙이기도 합니다. 즉 7번째 재장은 7나팔 재앙으로 발전하고, 7 나팔 재앙은 7대접 재앙으로 발전합니다.

 

계 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인봉된 사건들이 역사의 종말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것은 종말 직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책의 인들이 떼어지고 난 후에 그 책이 펼쳐지게 되어 있으므로, 인을 뗀다는 것은 책이 펼쳐지는 예비 단계입니다.

 

 

마태복음 24장: 예수님이 이 당시의 마지막 시대를 예언하실 때도, 재난의 시작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유사한 포인트를 갖고 있는데, 세상의 마지막은 한방에, 일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자연 재난들과 핍박들과 거짓 메시아의 가르침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더 빈번해지고 정도가 심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해석하는 중요한 틀이 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재앙들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재앙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이후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전 역사 가운데 임하게 되는 재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난리와 기근, 전쟁, 사망의 이야기는 이미 주님의 무서운 심판이 진행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최악의 상황, 최후 심판은 아닙니다.

 

 

처음 네 개인의 인을 뗄 때마다 동일한 패턴이 보입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인을 떼시고,

둘째,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come)고 부르시고,

셋째, 색깔이 있는 말과 그 말을 탄 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을 통해서 각기 다른 종류의 혹독한 재앙이 임하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첫째 인, 흰 말을 탄 자

2절: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성경에서 ‘희다’는 것은 선하고 좋은 것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서,

흰 말을 탄 자’를 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학자가 있으나, 지금 어린양 그리스도는 두루마리의 인을 떼고 계시기 때문에 같은 분일 수 없습니다. 이들 모두는 마지막 때에 세상에 임할 다른 종류의 재앙을 가져올 자들입니다.

‘흰 말을 탄 자’는 순결하신 예수님을 사칭하여 사람들을 미혹케하는 적그리스도. - 사이비 영성, 거짓 종교, 교묘한 이단을 이용, 미혹케하는 사람들, 신실한 하나님의 성도들과 교회를 유혹하고 흔들어놓은 이들.

 

살후 2:8-10

적그리스도의 손에 들려진 활? 성경에서 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대표적인 무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무기는 검, 엡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나오는 무기도 성령의 검, 말씀의 검, 특히 당시 황제숭배를 요구했던 로마 황제들은 활의 신 아폴로의 후예임을 주장하며 활을 들고 다님, 적그리스도가 활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

적그리스도 예수님처럼‘면류관’을 쓰고 있음. 그러나, 헬라어로 보면,

주님이 쓰시는 면류관은 왕의 면류관? ‘디아데마이고,

적그리스도가 쓰시는 면류관은? 전쟁에 미친 정복자가 쓰는 면류관 스텝 하노스이다.

이기려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정확히 번역하면, ‘정복하여 이기려고 혈안이 되었다’는 뜻. 예수님은 이미 이기셨는데, 적그리스도는 이기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이기지도 않았는데 면류관을 쓰고 있고, 거짓승리를 주장하는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둘째 인, 붉은 말을 탄 자

3.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붉은 말: 붉은 색은 전쟁, 폭력, 피를 상징. 붉은 말의 기수는 활이 아니라 ‘큰 칼’을 휘두르고 있는데,

이 칼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질서와 정의의 칼 롬파이아가 아니라, 암살과 반란과 전쟁에 쓰는 칼 마카이라. 그는 먼저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버리고, 서로 죽이도록 큰 칼을 받는다. 평화가 없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반복한다.

 

인류의 역사 = 전쟁의 역사, 사탄은 총칼로만 전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끼리의 전쟁만 아니라, 모든 인종, 모든 사상, 모든 출신지역, 모든 계급, 모든 세대끼리 싸우는 등, 별의별 이유로 서로 싸우고 대립케 만든다. 이 전쟁과 분열의 기운이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다. 교단 Vs 교단, 목회자들끼리 대립케하고, 목회자와 평신도들 간에, 성도와 성도 간에 얼마나 많은 분열과 싸움을 조장하는지 모름.

 

 

 

 

셋째 인, 검은 말을 탄 자

5.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5절: 검은 말? 전쟁으로 인한 기근, 빈곤의 상징. 저울은 그 당시의 경제 도구를 상징. 값을 외치는 소리와 저울은 세상에 몰려올 경제 인플레이션과 굶주름을 보여줌.

 

6절: 밀과 보리의 가격- 당시 팔레스틴 지방의 평균 물가의 12배나 되는 가격.

이것은 기근으로 인한 엄청난 인플레 현상을 암시, 2차대전 때 독일군에 의해 소련의 레닌그라드가 포위당했을 때, 식량이 너무 부족해서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 겨우 한 끼 빵을 살 수 있을 정도 밖에 안 됐다고 함, EX) 아르헨티나 이민 자매와 선 본 사건. 말세의 대환난기에는 이런 터무니없는 인플레현상이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

 

 

 

감람유와 포도주: 웬만한 가뭄에도 견뎌내는 식물. 가뭄이 극심해져서 밀과 보리 같은 주된 양식이 떨어졌을 때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주식으로 삼기도 했음. 그러므로 셋째 양식은 최악의 한계 상황에 달한 기근은 아님. 인플레가 심해지긴 했지만, 아직 저울을 달아먹을 곡식이 있었고, 부족한 곡식에 대한 내용물을 하나님이 남겨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짜 극심한 고통의 시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음.

1930년대 미국의 끔찍한 경제 대공황,

1990년대 후반 IMF라는 무서운 경제위기.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시대의 위기를 만나면 무기력하게 쓰러지게 된다. 마지막 날엔 전혀 예측치 못한 극심한 불경기와 경제 위기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진다.

 

 

 

넷째 인, 청황색 말을 탄 자

7.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청황색: 당시 헬라 문명에서 전통적으로 공포의 색, 죽음의 색으로 인식. 즉 청황색 말은 공포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상징.

 

8절: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 검-전쟁, 흉년-경제적 기근, 사망-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무서운 전염성 질병, Ex)중세기 유럽의 페스트 강타로 1억의 넘는 사람이 몰살한 역사. 현대의 에이즈나 사스SARS, 조류독감 등 알지 못하던 새로운 질병들이 출몰하여 인류를 위협.

이 청황색 말이 가져오는 죽음의 재앙이 땅의 1/4정도를 덮어버림. 전면적은 재앙은 아니고, 세계 인구 혹은 세계 영토의 1/4이다. 다가올 전면적 재앙의 시작이라는 말. 시작인 동시에 아직 기회가 있다. 이 재난에는 메시지가 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영적 대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이다.

 

 

 

 

다섯째 인,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

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다섯째 인을 뗄 때부터 패턴의 변화, 다섯째 인부터는 바로 상황이 전개.

9절의 ‘하나님의 말씀과....영혼들’? 예수님 때문에 핍박당하고 고난을 겪는 모든 신실한 성도들을 가리킨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 뿐만 아니라 순교적 정신으로 살았던 모든 주의 백성들을 의미. 특히. 사도 요한 당시 로마제국의 무서운 박해 아래 신음하던 소아시아 일곱 교회 성도들을 가리킴.

 

그 성도들이 ‘제단 아래’ 있었다. 구약 성경 레위기의 제사법을 기억.

이 제단은 반드시 제물을 죽여서 드리는 속죄제를 위한 제단을 의미, 본문의 제단은 하늘에 있다. 하늘 제단에서 최초로 드려진 제물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지금 같은 제단 아래에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핍박당하고 죽어가는 일곱 교회 성도들이 있다.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 하나님이 귀하시게 받으시고 축복하시는 제사, 첫 재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픈 사건이었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은 전 인류의 죄를 사하심.

 

 

 

로마 황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했다는 그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 직장을 잃거나 죽임 당한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의 고통에도 영적 의미가 있었다. 그들의 피와 아픔과 고난이 하늘 제단에 제물로 드려짐으로 인해, 200여년 후에 로마제국 전체가 복음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주님은 일곱교회의 고난과 핍박을 의미없는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제사로 받아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인류를 구원하셨듯이, 그들의 피로 로마제국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순교의 피 위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난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다. 살인마 아우카 부족을 위해 죽음 짐 엘리엇외 4명의 20대 청년들의 순교 위에 그 원주민들의 복음화가 일어난 것을 우리는 알지 않는가!

 

 

 

10절: 순교자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 ‘대주재’-역사의 주관자.

요한계시록은 세상의 죄악과 핍박과 고통으로 인한 성도들의 절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재앙과 심판은 교회를 위한 것이다. 교회를 핍박하는 악인들의 형통을 본 성도들의 부르짖음, 절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과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악인들을 척결해가시는 것이다.

11절: ‘흰 두루마기’? 거룩, 승리, 존귀함을 상징. 주님이 순교자들에게 각각 흰 두루마기를 입혀주심은 하늘나라에서 그들이 얼마나 고귀한 상을 받았는지를 보여줌.

‘아직 잠시 동안은’...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지만, 아직 완성이 아닌, 중간적인 진행 형태라는 뜻. 아직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시간이 존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문자 그대로 죽임당한 순교자들의 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님, Ex)최바울선교사가 그랬던가? 순교자의 수가 차야 종말이 온다고. 위험한 논리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는 우리의 답답함과 억울함이 다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9, 11절의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순교당한 순교자들 뿐만 아니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매일 일상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지칭.

유도는 초보자에게 무엇부터 가르치는가? 낙법부터 가르친다. 믿음의 세계에 입문하면 제일 먼저 잘 넘어지는 법,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배워야 한다. 안 넘어질려고 하다보면 다친다. 탄력을 이용해 낙법으로 자연스럽게 충격을 최대한, 피해를 최소한 하여 잘 넘어지는 것이 포인트.

제자로서의 코스트, 대가를 제대로 잘 치르고 있는가?

 

 

 

 

 

여섯째 인,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시작됨

12.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하늘과 땅이 모두 천재지변의 심판을 겪게 됨, 지구 최후의 날을 주제로 한 SF영화들처럼 그런 일들, 현상들이 여섯째 인을 뗄 때 발생한다는 말씀.

성경에서 지진은? 하나님이 인간의 삶의 기반을 흔드심으로써 죄많은 인간을 심판하시는 기본적인 도구로 나옴. 최근 지진 연구가들의 보고에 따르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횟수는 더 많아지고, 주기는 더 짧아지고, 파괴력은 더 세지고 있다고 함. 땅, 지진, 해저지진, 해일, 쓰나미가 뒤섟여서 세계가 위험에 처해질 것.

‘해가 검어지고, 달이 온통 피같이 되고, 하늘의 별들이 큰 바람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 떨어지듯이 땅에 떨어진다’고 한다.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진다’고 한다. 우주적인 대격변이 발생.

 

 

15-16절에서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라고 표현한 것?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엄청난 대재앙 앞에선 차별이 없고, 권력, 돈, 명예, 나이, 지위, 외모, 매력, 성격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 심판 앞에선 인간은 무력할 뿐이다.

사 13:9-11

인간적인 수단으로 이 심판, 대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오직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사람들의 죄악의 밀도 더 심해지고 하나님의 진노는 더해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가 아직도 막을 내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기다리시는 숫자가 차지 않았기 때문! 주님은 이 땅의 교회가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한 명이라도 더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면서 심판의 시간을 늦추고 계심.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심판과 구원 속에 담긴 메시지

요한계시록에서의 사람들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결정. 심판과 구원의 유일한 척도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과했느냐, 아니냐이다.

 

 

미래가 누구의 손에 있느냐? 1절의 붉은 말은 탄자가 출발할 수 있는 것은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관자,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오라고 허락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는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다. 어린양이 이 심판을 관장하고 계시다는 것은 성도들과 교회의 운명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줌.

 

그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은 무섭지만, 결코 무서운 책이 아닙니다. 심판이 무섭지만, 그 심판을 주도하시는 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심판의 대상은 하나님을 거역한 세상 권세와 추종자들이다. 그들을 심판하셔야 그들이 핍박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본문을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와 감격으로 읽을 수 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