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요한계시록 3:14-22의 본문을 가지고 <네가 열심을 내라>란 주제로 주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주신 메시지를 가지고 설교한 내용입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트로이’를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트로이는 ‘트로이의 목마’로도 유명한, ‘트로이 전쟁’으로도 유명합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트로이와 그리스가 ‘Helen Of Troy’, 즉 헬렌이라는 한 여자로 인해 전쟁이 점점 장기화됩니다. 당시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 그리스와 트로이와의 전쟁은 서로에게 매우 힘에 겨운 싸움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있었던 소아시아는 바로 이 ‘트로이 목마’ 이야기가 있었던 오늘날의 터키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그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향한 편지를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언급된 소아시아 중에 마지막을 언급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였을까요?
<라오디<라오디게아 교회라오디게아(Laodivkeia, Laodicea)
라오디게아는 에개 해와 유브라데 강을 끼고 있어 통상로를 지닌 지형적인 유리함으로 인해 상업적으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또한 금융의 한 중심지이기도 하다. 금융자산이 대단했다는 사실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거액의 신용장을 라오디게아에서 현금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에서 증명됩니다. AD 60년의 대지진으로 성읍은 멸망했으나, 시민은 국고의 보조, 당시 로마 황제의 지원을 거절하고 전적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도시를 부흥시켜 그 부를 자랑하였다(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참조). 라오디게아는 이러한 경제적인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지중해의 월스트리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라오디게아는 또 산업 중심지, 특히 직물 제조 판매로 유명. 이 지방에서는 부드럽고, 광택 있는 검은 염색이 불필요한 양모를 산출하는 양을 사육하며, 그 양모로 비싼 모직물을 짰습니다(계 3:18 참조). 땅이 기름지고 양을 기르기에 좋은 목초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는 금융, 경제권 뿐만 자연적인, 지형적인, 천연적인 조건이 좋았습니다.
성읍 서쪽 19㎞의 앗둣다(Attudda)에는 브루기아의 신(神), 멘 가루(Men Karou)의 아름답고도 자유로운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은 치료와 관련이 있었고 신전 근처에는 모든 종류의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최고의 신 제우스도 숭배되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가까운 곳에 유명한 약학교, 요즘으로 치면 의과대학이 있었다. 거기서 `갓브기아의 가루'라고 불리운 안질의 영약을 정제하여 팔고 있었다(계 3:18,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참조).
라오디게아에는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시민은 전체로서는 매우 혼합적인 종족이었다. 이 곳 교회는 바울이 설립한 것이 아니고 아마 그의 동역자들, 특히 에바브라에 의해 목회 사업이 행해졌을 것이다(골 4:13 참조).
이런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인 상태는?( V.15-17)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5)I know your deeds, that you are neither cold nor hot. I wish you were either one or the other!
우리는 이 말을 이렇게 오해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믿음이 있어 성령충만한 삶을 살든지, 아니면 믿음 없이 아예 네 멋대로 살아라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해석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불신앙으로 살다가 심판받게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라는 두 개의 형용사를 ‘미지근하여’라는 말로 함께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참된 문제나 제자의 도리에 너무나 태평하고, 자만하고, 무관심한 고로 그리스도에게는 쓸모없는 자들이었다는 말이다. 람세이라는 학자는 라오디게아는 특출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였다. 아무것도 유별나거나, 두드러진 업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었다. 이곳은 다른 사람의 소원과 요구에 스스로 순응하고 타협을 익숙했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So, because you are lukewarm--neither hot nor cold--I am about to spit you out of my mouth.
라오디게아교회의 영적인 상태는 말 그대로 ‘미지근함’이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물은 너무 차거나 뜨거우면, 몸에 좋지 않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찬 물을 마시면 배가 아프고, 뜨거운 물을 마시면 입이 델 뿐이다. 그러기에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 몸에 좋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요한은 ‘미지근한 물’은 입에서 토해 버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미지근한 물이 건강에 좋다’는 원칙과 성경의 원칙과는 상반된 주장이란 말인가?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의 지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금방 이해 될 것이다.
미지근하여...클리아이노(따뜻하게 하다)에서 파생.
라오디게아 북쪽 11km에 위치한 히에라볼리(hieraboli)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었다고 한다. 그 온천은 라오디게아 남쪽에 위치한 유사한 온천과 함께 공급되는 물의 온도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래서 “네 입에서 너를 토하여(내뱉다) 버리리라”는 말은 미지근한 물을 암시하고 있다.
-‘차다’는 것은 16km 좀 못되는 골로새 지방의 냉수를 언급한 것이다.
-‘덥다’는 것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에게 일익이 되는 히에라볼리 북쪽에 있은 ‘온천’을 상기시켜주었을 것이다. 라오디게아는 부유했어도 그곳의 물은 이런 지형적인 조건으로 말미암아 미지근하여 마시는 자는 곧 토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 사정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름철에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마실려고 물을 마셨는데 미지근하면 우리는 정말 먹지 아니함만 못할 때가 있듯이 그 곳의 물은 늘 그러했던 모양이다. 그들의 물사정이 ‘미지근한 것처럼’ 그들의 영적인 상태 또한 ‘미지근함’ 그 자체였다.
무사 안일주의에 빠져 이름은 성도이나 삶은 불신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 상태였다. 미지근한 것은 그들의 영적인 느슨함이며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회의 못된 습관이었다.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의 영적 현실이었다. 영적인 부요와는 거리가 먼, 육적인 부요에 눈이 멀어 그들은 ‘미지근함’에 머물러 있다. 너무 부유하면, 만족함이 넘치면 ‘미지근해진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라오디게아는 은행업과 염색업과 양모업으로 굉장히 부유한 도시였다. 사람들의 경제적인 수준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경제적인 번성함이 오히려 그들의 신앙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벌거벗은 영적인 현실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말한다.
➜곤고한 것...wretched
➜가련한 것...miserable
라오디게아는 무사안일주의와 태평함의 노예->그들은 자신들의 부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임을 알고 그것에 자신감과 자만심이 가득했던 것 같다. 경제적인 부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에 도취되어서 하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그러한 영적인 교만이 너의 현실을 ‘곤고하고 가련한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가난한 것...poor 그들은 진짜 부유했지만 가난하고 영적인 수준이 빈궁하다고 말한다.
➜눈 먼 것...blind 그들은 의과대학을 가지고 있고 아프면 약을 처방할 수 있는 당시 선진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프리기안’이란 안약이 유행했다. 하지만 그들을 ‘눈멀었다’고 말한다.
➜벌거벗은 것...naked...그들은 양모업, 염색업에 종사했고 그로 인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자신들의 의복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신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부어주신 축복은 어떤 것이 있는가? 그것으로 인해 무사안일하게 주저앉아 미지근한 인생과 삶과 신앙을 영위하고 있지는 않는가? 휴가와 재충전의 8월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가? 미지근하진 않는가?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길 소원한다.
우리의 영적 곤고한 것, 가련한 것, 가난한 것, 눈 먼 것, 벌거벗은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주께 엎드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여러분의 우선순위를 내려놓으라! 주님 보다 더 사랑하여 눈멀어 버린 라오디게아인, 약학도시이지만, 안약을 사서 발라보라고 사도 요한이 조크하고 있다. 세상의 것에 눈멀어버린 우리의 라오디게아는 없는가? 회개하자!
그러기에 중세 교부인 오리겐은 ‘미지근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해이한 상태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구주와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믿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며,
따라서 주님에게는 별로 쓸모가 없는 존재들이란 말로 해석한다.
예수님을 믿긴 믿지만,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을 말한 것이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저는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무사안일과 무기력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을 일컫을 뿐만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말이라고 보고 싶다. 왜냐하면 19절에 보면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깐 요한이 ‘열심과 회개’를 이야기하지 않겠는가?
또 한편으로는 20절 이하를 보면 우리가 흔히 전도할 때에 영접카드에 적힌 성구이기도 한 ‘영접함’에 대한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거듭나지 아니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말씀으로도 적용할 수 있겠다.
라오디게아의 주변의 문화가 교회의 회중들에게 부지중에 들어와서 그들의 영적 생활을 마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비된 그리스도인’, ‘미지근한 그리스도인’, 또한 ‘거듭나지 아니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18절에서 그들에게 충고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의 안타까운 절규같은 느낌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인 대안은?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8절의 의미의 세부는? 해석학적인 키워드!!!
이 의미는 라오디게아 지방 자체가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던 것을 주목, 은행업, 양모업, 염색업, 의약품 등이 인기 있는 지역이었기에 더 그러했다.
불로 연단할 금...금은 불로 연단해야만 금이 나오지 않는가? 하나님은 그들이 부자가 된 그 부가 ‘내게서 불로 연단할 금을 샀다’고 표현하고 있다.
연단한...‘퓌르’(불)에서 파생된 말로, ‘불붙이다’는 뜻. 용광로에서 금속을 제련하여 순금을 추출하는 과정을 일컫을 때 사용하는 표현. 불과 같은 시험을 통해 단련된 굳건한 믿음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이다.
흰 옷...염색업이 주였던 그들에게 흰옷은? 옷은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준다. 17절의 벌거벗은 것과 연결된다. 벌거벗은 영적인 수치를 가려주게 해보라는 것이다.
안약: 의약품이 많이 나왔던 곳이기에 안약을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17절의 구절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는 구절에 대한 비꼼과 경책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8)I counsel you to buy from me gold refined in the fire, so you can become rich; and white clothes to wear, so you can cover your shameful nakedness; and salve to put on your eyes, so you can see.
18절의 의미를 어떻게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육적인 해석이 아닌가? 하지만 이 구절이 영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내게서’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에게서 불로 연단할 금을 사고,
`하나님에게서 흰 옷을 사서 입고,
`하나님에게서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한다-영어 and 접속사로 연결된다-. 이 것은 19절의 ‘열심을 내라’는 말과 연결될 때 의미가 명쾌하게 이해된다. 그들은 돈이 많았고 풍족했고 부요했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신다.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❶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자기들의 자력으로 도시를 회복시킨 것에 자아도취되었다. 라오디게아는 금융도시였다. 도시의 부의 원천인 금을 예전에는 금융업을 통해 챙겼다. 하지만 이제는 ‘불로 연단할 금과 같은 믿음’을 이제는 그리스도로부터 챙겨야한다. 그리스도로부터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❷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벌거벗은 수치스런 상태가 보이지 않도록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라오디게아는 양모도시였다. 하지만 라오디게아의 광택 있는, 럭셔리한 검정색의 양모를 이제는 구입하지 말고 오직 벌거벗은 수치스러운 모습을 가리기 위해선 의로우신 십자가의 그리스도로부터 흰 옷을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구입해야 하라는 것이다.
❸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눈이 멀 때는 안약, ‘프리기안’을 신전 근처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라오디게아는 의료도시였다. 멘 카루 신전 부근의 유명한 시장에서 말이다. ‘구입해라’는 말을 했을 때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러했던 경험을 떠올렸을 것이다. 신전 근처의 시장에서 안약 구입한 경험을!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영적으로 눈 멀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이제 눈을 들어 주를 볼 수 있게 하나님으로부터 안약을 구입하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금과 같은 믿음’, ‘수치를 가릴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의 옷’과 ‘그들의 어두운 눈을 밝힌 안약’을 구입해야 한다. 이것을 하나님께 구입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가? 물질이 필요한가?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열심’이다. 기독교는 공로사상을 부인한다. 배제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는 모든 삶은 또 다르다. 우리가 꾸준한 열심과 성실함으로 훈련해야만이 더 나은 성숙과 진보가 있다. 사도 요한은 그래서 우리에게 권고한다.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회개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충성에 다시 불을 붙이는 데서 올 것이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이야기하는가?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하는가? 바로 19절 앞부분에 나온다. ‘내가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고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모든 것에 만족하는, 그러나 영적으로는 병들어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주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책망하고 징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초청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초청하신다. 우리들의 문제는 많다. 라오디게아 교회도 문제가 많았다. ‘미지근한, 마비된 그리스도인들,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 그러나, 주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자’이기에 주님이 우릴 초청하신다.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책망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자기와 함께 식사의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신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가 라오디게아의 회중들의 마음의 문밖에 서 계심을 생각할 수 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회중들의 마음의 문 밖에 계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서마산교회 성도들의 마음의 문 밖에서도 서 계신다고 확신한다. 예수님의 그의 책망의 음성을 듣고 열의와 회개의 몸짓으로 자기가 그리스도의 친구임을 증명하는 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오셔서 교제를 나누실 것이다. “먹고”란 말의 ‘데이프네오’는 그 날의 가장 큰 식사(저녁)를 말하며, 이것이 동양의 풍습에서는 가장 가까운 친구와 격의 없는 친교를 나누는 중요한 기회였다.
우리들은 어떠한가? ‘열심으로’ 주님 앞에서 인정 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란다.
(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그에게는...>세상적인 모든 것들, 라오디게아의 영적 장애물에 대한 너끈한 승리? 더 나아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한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이렇게 권고하셨고 ‘이기는 그에게는’이라고 말씀하시면 영원한 하늘 보좌를 예비해두시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역사를 들추어보면,
라오디게아, 이 도시가 멸망 한 것은 파묵칼레와의 중간에 있는 강이 큰 홍수로 범람하여 완전히 파괴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징벌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삶 가운데서 타락과 범죄와 향락에 빠졌다. 그들은 너무나도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곳에 많이 재배되었던, 양귀비꽃으로 마약에 중독된 삶이 있었다고 본다.
여러분, 라오디게아교회는 결국 회개하지 않고 안일한 삶에 젖어 쾌락과 향락과 양귀비에 젖어 그리스도를 망각하는 죄악에 머물렀다.
편안한 환경, 안전한 부, 웰빙 건강, 넉넉한 연금, 자녀들의 형통, 만사형통의 축복과 같은 것에 만족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내려놓기로 결단하라! 하나님을 향한 열정, 잃어버린 자를 향한 긍휼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소서!
Epilogue...
친애하는성도 여러분!
(22)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의 이름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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