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평생 세 권을 책을 썼다.
1. 가장 젊을 때, 손에 땀이 있고 기운이 있을 때 쓴 책이 아가서이다.
아가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사실적, 구체적으로 묘사. 식었던 사랑이, 잊었던 사랑이 다시 돌아오는 아주 뜨거운 내용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남녀간의 에로스, 로맨스의 농도 짙은 사랑이 아니다. 솔로몬이 젊었을 때 나눈 그 술람미 여인과의 애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신부인 교회와 신랑인 그리스도가 어떤 관계이며, 장차 어떻게 만나고 어떤 사랑을 이루어가는지를 예고하는 계시적 성격이 강한 책이다.
2. 두 번째 책은 잠언이다.
솔로몬이 장년이 되어 가장 높은 왕의 자리에 앉아 세상을 호령할 때 지은 책이다. 인생의 실질적인 전성기에 저술했다고 볼 수 있다. 잠언서는 그때 그 경험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을 담은 책이다. 잠언서의 어조는 굉장히 직설적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렇게 하면 망한다, 이렇게 하면 패가망신한다, 이렇게 하면 죽는다”식이다
3. 마지막으로 쓴 책이 바로 전도서이다.
나아가 더 들어 솔로몬은 노년을 맞는다. 인생이 시간이 서산에 지는 해처럼 인생의 끝자락에 머물 즈음이면 누구나 인생을 뒤돌아보게 된다. 솔로몬도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청년시절을 돌아보고 인생의 절정기를 회상했을 것이다. 많은 후회와 회한이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기보다 더 절절한, 간절한 마음으로 쓴 책이 바로 전도서이다. 전도서 하면 ‘헛되다’는 주제를 떠올린다. 헤벨! 하지만 이 책이 향하는 대상은 분명 청년들이다. 전도서는 청년 시절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는지를 말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책이기도 하다. 인생의 길잡이를 하는 역할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세상은 지혜와 돈이 다 필요하다(11-12절)
11.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지혜는 유산과 같이 아름답다고 했다. 유산이란 재산을 말하는데, 우리말로는 지혜는 재물처럼 아름답다로 들린다. 그러나, 원문을 살펴보면, 완전히 다르다. ‘지혜는 재물과 함께 있을 때 아름답다’이다. 솔로몬이 살아보니 세상은 지혜만 가지고 안 되더라, 지혜와 함께 재물이 있어야 대접도 받고 완성이 되더라는 말이다. 이제 돈의 위력이 지혜의 위력만큼 절대적인 세상이 되었다.
전도서 9:15에 보면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라고 말한다. 어느 마을에 위기가 닥쳤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이 마을을 지혜로 구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보니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의 지혜는 멸시를 받기조차 한다(전 9:16).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성공학의 대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어느 책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크게 성공한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매니저는 신입판매원을 선발하고 나서, 제일 먼저 캐딜락 판매점으로 데리고 가서 고물 자동차를 고급 캐딜락으로 바꾸라고 요구한다. 영문도 모르고 신입사원은 갑자기 차를 바꾸라니 당연히 주저하게 된다. 캐딜락! 결국 영업사원은 캐딜락을 사고야 만다. 취직하자마자 차를 반 강제로 캐딜락으로 바뀌었다. 먼저 부인이 놀랠 놀자로 집에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차를 타보니 슬슬 기분이 좋아지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더니 벌써 이렇게 좋은 차로 바꾸었네. 잘나가는가 보다.’
칭찬과 부러움의 시선이 왔다 갔다 한다. 이런 과정을 경험한 신입 판매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의식 속에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다.
‘내가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아.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부러워하는 모양인데!’
그러다가 정말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절실한 목표가 생긴다. 그러면서 신입 판매원의 자신감이 올라가고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결국 시간이 흐른 뒤 그 조직에 속한 판매원들이 거의 예외 없이 판매왕이 된다고 한다. 성공하려면 무조건 좋은 차를 타라는 말이 아니다. 시대가 재물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시대이다.
재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기에 동의한다는 말이 아니라 솔로몬이 살아보니, 세상의 생리가 그렇더라는 말이다.
다음 구절은 애매한 상황에서 가치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전 7:12
12.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여기서 ‘그늘’이라는 말은 ‘보호’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낼 때 생성된 개념이다. 민수기나 신명기는 광야를 ‘크고 무섭고 두려운 광야’라고 했다. 전갈과 뱀이 있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밤과 낮의 기온차가 크기 때문이다.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과 열기로 인해, 밤에는 엄청나게 추운 기운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40년 내내 이 공동체를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 공동체를 덮으셔서 뜨거운 햇빛과 차가운 밤 공기에서 보호하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개념이 ‘그늘’이다. 우리도 흔히 남편 그늘, 자식 그늘 등의 표현을 쓴다, 부모의 그늘도.
솔로몬은 살면서 지혜의 보호도 받아보고, 돈의 보호도 받아 보았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지혜의 그늘을 택하겠다는 말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지혜있는 자가 살리기 때문이다.” 지혜는 결국 생명을 주더라는 말이다. 지혜는 여호와께로부터 온다. 따라서 지혜가 생명을 살린다.
7:13은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3.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돈의 보호 아래에 살고, 지혜의 보호 아래도 살아 왔지만, 결국 인생의 방향은 그 지혜의 근본이신 전능자의 손길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문학적으로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라고 표현한 것이다. 모든 절대 주권은 그분의 행하심에 있다. 아무리 천하가 밀어붙여도 하나님이 막으면 되는 일이 없다.
저는 단지 정의 편에 설 따름입니다
수년 전, 미국 국무성에서 외교관 공개채용 시험이 있었다. 이미 필기고사를 통해 1차합격자들이 모였다. 최종 구술시험 경쟁도 굉장히 치열했다. 쟁쟁한 박사학위 소지자, 대대로 미국의 뿌리깊은 명문 엘리트들, 그리고 국제 외교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실무경력이 있는 실력자들이 모였다.
그때 한국계 이민 2세인 정주리도 필기시험에 합격해 구술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누가 보아도 그녀는 동양인이었고, 한국인이었다. 아무런 백도, 피부색도, 혈통도, 배경도, 박사학위도 없는 그녀는 가장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었다.
드디더 면접 구술시험 날, 면접관이 물었다.
“자료를 보니, 자네는 한국인 2세인데 맞습니까?”
“당신이 한국인 후예로 한국에 태어나 지금까지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시험에 합격하면, 앞으로 미국 정부의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 사이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생길 때 자네는 한국 쪽과 미국 쪽 둘 중에서 어느 쪽에서 서서 이익을 이야기할 것입니까?”
“저는, 미국이나 한국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다만 정의(Justice)의 편에 설 따름입니다.”
고 했다.
면접관의 칼날과도 같은 대답하기 난처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예리하게 잘 비켜가면서도, 오히려 질문자를 감동시켰던 정주리의 이 대답은 그녀늘 당당히 합격시켰다. 그것은 분명 지혜의 힘이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다.
돈과 지혜 가운데 지혜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숙명론이나 운명론과 헷갈리면 곤란하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기도한 기도문의 내용이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내려주소서!
이 기도문의 골자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펼 인생은 아무도 없다. 지혜의 그늘과 돈의 그늘의 위력 앞에 살아본 인생의 처절한 고백이다.
인생의 형통한 날이 있으면 곤고한 날이 있다.
우리는 날마다 형통한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생에게 형통한 날 뿐만 아니라 곤고한 날도 허락하신다.
전 7:14
14.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쁨을 편안하게 누리라. 이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너무나 잘 한다. 하지만 인생에 갑작스런 폭풍우가 불고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어려운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때 뒤돌아보라. ‘생각하라’는 말이다. 마태복음에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마 6:2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마 6:28)고 말씀한다. 단순히 새나 백합화를 쳐다보라는 말이 아니다. 새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이미 고인이 된 존 스트토 박사는 시간이 나면 늘 새들을 관찰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에 대해서 묵상하곤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 곤고한 날이 찾아올 때 그들은 늘 자주 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했다. 감사를 잊어버렸다. 그럴 때 그들은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출애굽했으며, 어떤 약속을 따라 여행 중인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옛날로, 흑암의 땅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곤고한 날이 왔을 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 없이 불만과 불평으로 투덜거린다. 늘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언약의 백성이다. 마음에서 불평과 불만이 치고 올라올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
전 7:14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의 앞길을 미리 알려주시는 법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월드컵 축구경기를 볼 때, 한일 축구경기를 볼 때 생방송으로 보면 한시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집중하여 본다. 골이 터지면 환호하고, 화장실 갈 때도 참고 참다가 하프타임때 광고할 때 간다. 그런데 다음날 녹화경기를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이미 승부결과를 다 알고 있다. 누가 이겼는지 몇 골로 이겼는지 잘 알고 있다. 할 거 다 하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책도 보면서 이야기할 것 다 하면서 아주 산만하게 본다. 집중이 훨씬 떨어진다. 하나님이 장래 일을 헤아리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이유이다.
하나님께만 집중하라는 말씀이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모두 겪게 함으로써 더욱 하나님만 붙들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신다. 거룩은 관계의 개념이다. 거룩한 신랑은 어떤 사람인가? 신부만 사랑하는 신랑이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 거룩한 백성이다. 아빠와 함께 놀이동산에 간 아이는 아빠 손만 붙잡고 가면 된다. 무얼 먹던지, 무얼 타든지, 어떻게 집에 돌아오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의인이 망하고 악인이 승승장구한다
솔로몬은 또 이해할 수 없는 한 국면을 이야기한다. 의인들은 망하고 악인들은 승승장구하는 현장을 이야기한다. 전 7:15
15.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악인은 다 망해야 하는데, 실제로 너무나 잘 살고, 잘 나간다. 의인들은 시험에 떨어지고 병에 걸리고 교통사고를 당하며 괴로움을 겪는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노력한 만큼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다. 그 앞에서 신음할 뿐이다. 이러한 인생의 깊은 신음을 시 73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악인의 형통함이 하늘을 찌른다.
“그들은 죽을 때도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의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요,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시 73:4-7)
그러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시 73:9)
악인들이 세상을 다 해 먹는다는 말이다. 악인들은 항상 평안하고 재물이 불어난다. 그에 반에 마음이 정결한 자는 어떠한가?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도다.”(시 73:13-14)
날마다 재난을 당한다. 인생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악인들의 종말을 깨닫는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디어 그 결과와 끝을 알게 된 것이다.
시 73:18-20
18.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문제로 혼란과 영적 고통을 겪지만, 결국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성 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 역사의 종말과 인생의 끝이 어떠함을 알게 된다. 솔로몬 역시 시편 기자처럼 인생의 아이러니와 부조리와 모순 앞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전도서 7:16-17
16.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지나치고 극단적은 것은 좋지 않으니, 적당히 하라는 말씀이다. 동양사상에서 이야기하는 중용의 도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쓰고 애쓰도 의로운 척해도 죄인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아무리 의를 행해도 죄인일 수 밖에 없다는 진리,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솔로몬은 이 모든 것에서 자유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전도서 7:18
18.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것에서 자유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집안이나 학벌이나 가문이나 혈통을 따질 때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빌 3:7-8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세상은 그를 붙잡고 옥에 가두고 죽을 지경까지 몰아갔지만, 결코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는 아직도 한 손에 쥔 것을 놓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이 부들부들 떨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아직도 흥하고 성하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있고 없고의 개념이 중요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오면 쉽게 불평한다. 이제 그 수준을 뛰어넘기를 바란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를 붙잡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균형 잡힌 삶’이 아닌가!
사도바울처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으로 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 앞에서 형통과 곤고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작정하는 사람,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자유가 있음을 기억하는 지혜로운 주의 백성들이 되라!
*이 설교는 송태근 목사의 저서 <모든 끝은 시작이다>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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