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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전도서

전도서 1장 1-11절, 무엇이 유익한가

by Message.K 2021. 12. 22.



솔로몬이 쓴 3권의 책이 있다.
가장 젊고 혈기왕성할 때, 아가서를 썼다. 남녀 로맨스를
다뤘지만 거기엔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 신랑과 신부될 우리들의 관계를 다룬 계시적 성격이 강한 책이다.

두번째는 잠언서이다. 장년이 된 솔로몬이 세상을 호령할때 쓴 책이다. 인생의 실질적인
전성기에 적은 책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담은 책이다. 직실적, 단도직입적이다.

"이렇게 하면 죽는다, 이렇게 하면 패가망신당한다!"

둘러서 우회적 표현하는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쓴 책이 전도서이다. 저자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솔로몬을 저자로
본다. 나이가 더 든 솔로몬은 노년을 맞이했다. 황혼과도 같은 인생의 말년에 세월을 돌아보며 후회와 회한이 남아 있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어느 시기보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 쓴 책이 전도서이다. 전도서 하면 '헛되다'라는 주제가 떠오른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한 허무주의자의 탄식인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책은 젊은이들을 향해 적은 책이다. 청년 시절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는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책이다. 청년시절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수하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전도서의 세가지 주제:

1인생은 헛되다
2인생은 불확실하다
3인생은 무의미하다

 

솔로몬의 깨달음1:인생은 헛되다


전도서 1:2 인생을 살아보니 너무 허무하다. 그래서 헛되다는 말이 무려 5번이나 등장.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2절/ 히브리어 원문: 하벨 하발림 아마르 코헤렛 하벨 하발림 하콜 하벨

전도서에서만 헛되다는 말, 헤벨이 38회 등장한다(히브리어 성경: 헤벨 73회 등장)-수고에 대한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나는 일, 아무것도 없는 상태!

영어로 헛되다는 vanity 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 뿌리를 찾아보면 두가지 의미이다. 1)잡았는데 바람 같더라는 뜻이다. 인생의 무언가를 잡았는데 손을 펴보니 남는게 아무것도 없더라 2)거울에 비친 나라는 뜻이다. 거울은 분명한 실체가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거울이 깨집니다. 거울 속에 비친 실체가 와장창 깨진다. 결국 " 거울에 비친 나"는 허상이었던 것이다. 전도자는 실체로만 알았던 인생이 결국 허상이었음을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누가 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돈/권력/인기/권세/명예- 솔로몬은 모든 것을 다 누려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말하면 수긍하는 게 맞다.

이라엘의 황금왕조의 군주가 아니었던가! 그 인생의 끝자락에서 내뱉는 그의 경험은 진실된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의 결론은 바로 "헛되다"이다.


솔로몬의 깨달음2: 인생은 불확실하다.

 

예측대로 되는 게 없다, 미래학자, 경제학자들의 예견과 예측은 한 두개 정도 맞긴 하다. 앨빈 토플러란 미래학자의 말은 진짜 신뢰할만한다. 사도행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지만, 모든 것은 성령에 의해 역동적으로 이뤄진다.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뜻대로 이뤄지는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솔로몬의 깨달음3: 인생은 무의미하다


전도서 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피곤하다’이다. 싫어하는 사람, 같이 있지 않고 싶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굉장히 피곤하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시간이 너무 잘 간다. 야곱이 그랬다. 라헬을 사랑하기에 7년을 하루같이 보냈다. 그런데 솔로몬은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고 말한다.  단테의 신곡에 지옥문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문으로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이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연상되는가? 지옥은 ‘고통’이다. 하지만 육체
적인 고통은 고통의 일부분이다. 정말 지옥이 고통스러운 것은 거기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다는 것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은 없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푸스 왕이 가파른 언덕으로 돌을 굴려 올리라는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애써 올린 돌을 다시 아래로 다시 떨어뜨린다. 그리고 또 다시 돌을 힘겹게 올리고 다시 밑으로 떨어뜨린다. 이런 작업을 하루 종일, 그리고 영원히 반복시킨다. 거기서 바로 시지푸스 신화가 나왔다. 노동의 양이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니다. 그보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 사람을 미치도록 힘겹게 하는 것이다. 한 때 러시아에서는 낮이면 죄수들을 벌판으로

불러내어 곡괭이로 언 땅을 힘겹게 파게 한다. 러시아가 얼마나 추운가 꽁꽁 얼어붙은 땅을 힘들게 파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실컷 파고나면 다시 흙으로 덮으라고 하고, 다 덮으면 다시 또 다른 곳을 파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묻으라고 한다. 이 작업을 계속 반복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죄수들이 죽어간다. 미쳐서, 정신분열증 비슷

하게 의미없는 일에 매여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절규하며 죽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의미를 찾지 못할 때 힘들어한다. 한 마디로 미친다. 여기 8절에서 ‘피곤하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솔로몬이 인생을 살아보니, 이런저런 것들을 경험해 보니,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다. 솔로몬은 평생에 걸쳐 이 세 가지를 깨달은 것이다.

 




해 아래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솔로몬은 오늘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넌지시 던진다.

전 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유익하다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등장한다. 무엇이 유익한가라는 질문
은 다시 말해 ‘무엇이 남는가’라는 뜻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모순투성이다. 무의미할 뿐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과연 무엇이 바람 같지 않고 무의미하지 않고 영원히 남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도전이다. 해 아래 과연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감사하게도 성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영원한 것1: 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성경은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영원하다고 증언한다. 놀랍게도 전도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전도서야말로 가장 복음서로 향하게 하는 구약의 책이다. 구석구석에서 메시야를 향한 기다림이 얼마나 절실하게 묘사되는지 모른다. 무엇이 영원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사실을 인정하며 믿고 나아가길 바란다.

영원한 것2: 하나님의 말씀


해 아래 영원한 것, 두 번째는? 마태복음 24장을 보라.

마태복음 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는 말이 아
니다. 이 말에 담긴 진짜 의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내용은 반드시 성취되어 영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히 성취될 것이다. 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말은 바로 이 의미이다.

영원한 것3: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해 아래 영원한 것, 세 번째는 무엇인가? 요한일서 2장이다.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도 정욕도 모두 지나간다. 70대의 성기능이 불능이 된 할아버지도 예쁜 여자를 보
면 정욕이 발동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욕도 지나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하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과연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자.

요한복음 6장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만큼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는 자가 또 있을까? 성경은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고 말한다. 당연히 아버지의 마음과 계획은 그의 본체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 잘 알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정답을 주신다. 즉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아들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아들 곧 예수님을 믿고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다. 그 뜻에 순종하고 행하는 자는 영원할 것이다. 한편, 영생을 얻어야 구원을 받는다는데, 과연 영생은 무엇

인가? 성경에서 답을 준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이 무엇인가?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영
생이다.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말은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이라는 말은 그분과 교제하는 친밀한 관계를 말한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요 14:20)있는 것이 바
로 아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으면서 서로 영원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바로 영생이다. 바로 그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원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기억하라.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다. 단순한 언어로서의 말씀이 아니라 그 분의 언약과 약속이 완
전히 성취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이땅에 남겨진 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을 솔로몬은 기기 막힌 곳에서 슬쩍 감추어 두고 있다. 영국 속담에 ‘열쇠는 대
문 가까이 두는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거의 모든 집에서 열쇠로 문을 잠그고 다니던 시절, 식구들만 아는 은밀한 곳에 열쇠 하나를 두고 사용했다. 중요한 열쇠는 대문 가까이에 두고 감춰두는 법이다. 우리가 오늘 찾아야 할 키워드는 바로 대문 가까이에 있다.



전도자는 무엇이 영원히 남는가, 무엇이 유익한가를 묻는다. 그리고 대문 가까이에 키를 놓아 두었다. 바로 1:1의 말씀이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솔로몬은 자신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다윗의 아들이다.
둘째, 예루살렘 왕이다.
셋째, 전도자이다.
여기서 전도자, 곧 ‘코헬렛’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합친 개념이다. ‘회중을 불
러 모으다’라는 뜻과 ‘회중에게 선포하고 말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이 조금 아쉽다. 원전인 히브리어를 보면 순서가 정확하게 바뀌어 있다. 제일 처음에 ‘전도자’가 등장한다. 히브리 사람들은 중요한 순서대로 이름 앞에 수식을 썼다. 따라서 원전에서 단어의 순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솔로몬은 제일 먼저 자신을 ‘전도자’라고 소개한다. 인생을 살고 보니,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중요하고 예루살렘 왕으로 산 것도 의미가 있었으나, 전도자로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도 비전트립이나 노방전도를 나가서 전도나 선교에 집중한다. 솔로몬은 어느 한 시점에만 전도자로 산 것이 아니다. 전 생애를 통해 자신을 전도자로 소개한다. 왕이나 다윗의 아들이기 전에 그는 먼저 전도자로서 자신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전도자였다.”



그렇게 자신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전도자로서의 삶이 내 인생에 가장 남는 것” 
이라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직장을 다 그만 두고 다 신학교로 가든지 오지로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터, 직장, 대학과 가정에서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존 파이퍼의 이야기

하나님 없이 안락하게 살다 죽는 것은 비극이다. 어릴 때 우리 집 액자엔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 곧 지나간다.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영원
할 것이다.’


나의 아이들은그들이 세상의 성공을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게 나의 가장 큰 갈망이다.

당신의 인생을 위대하고 영원한 것에 걸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은 무한히 위대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것이다. 내가 알기 원하고 경험하기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나와 우리 교회의 사명 선언이다.



헛되고 헛된 것들이 난무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고 나는, 만인의 기쁨을 위해, 만 가지 일에서 지고의 하나님께 대한 열정을 확산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전에 우리교회에서 믿음 생활하시던 L 집사님이란 분이 계셨다. 그분이 의령에서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고 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섬겼다고 한다! 귀신이 난무한, 신기가 있는 자신의 영적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고 12년 동안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도자의 삶이요, 무엇이 유익한지를 바로 아는 자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존 파이퍼가 말한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하나님의 전도자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하며 사고할 수 있는 수련회가 되길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번뿐인 인생 곧 지나간다.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그분과 연관된 우리의 삶은 헤벨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관계로 나
아가는 것을 기억하자!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수련회를 통해 헤벨의 세상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접속하라! 하나님의 계획에 접속되어 그분의 능력을 다운로드하라! 그분의 은혜를 우리의 영혼의 하드에 다운로드하는 수련회가 되길 바란다. 첫날이라 버퍼링이 좀 심하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가운데 넘칠 줄 믿는다! 복음을 여러분의 심장에 다시 장착하는 행복한 수련회가 되길 기도하자!



찬양: 풀은 마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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