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8장 16-40에 등장하는 갈멜산의 엘리야가 비록 이방 선지자들과의 숫자에서는 지는 싸움이었지만, 그가 어떻게 승리하였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의 능력을 힘입어'라는 주제로 설교하는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한다.
처절하게 혼자 남은 엘리야, 혼자서 감당해야 할 싸움
이 세상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믿음의 동역의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고 같이 하고 있다. 함께 하기 때문에, 같이 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월한 부분이 있다. 반면에 혼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구역이 있고, 전도회가 있고, 모임이 있고, 성도의 생활이 있고, 교제가 필요하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유일하게 혼자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다른 우상 숭배를 하는 나라에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교회도 없고, 성경공부도, 구역모임도 없다. 성도 간의 교제는 물론이려니와 기독교 서적도 없다. 적어도 여러분이 알기로는 그 나라의 그리스도인은 당신 혼자뿐이라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선지자 엘리야가 바로 그러한 상황이었다. 선지자 엘리야는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 신을 섬겼으며,하나님을 거부하고 엘리야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바알과 그의 선지자들에게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과 겨루어 보자고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건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고 엘리야 혼자만 하나님께 헌신된 상황에서 엘리야는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그가 가진 마음, 상태는 어떠했을까?
여러분이 만약 엘리야였다면 어떠했겠는가?
처절한 고독감과 외로움에 치를 떨기도 하고, 변절(배신)에 대한 유혹도 느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다 떠났고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두렵고 무섭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원망 섟인 기도가 나오기도 했을 것이며 분노와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결코 회복되기보다는 소망이 사라진,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상상력은 당신의 미래를 바꿀 힘입니다
여기 한 여성이 있다.
몇 년 전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비서로 취직하지만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외국에 나가 강사 자리를 얻고 결혼하며 새 출발을 꿈꾸지만 결혼생활은 불행으로 끝나고, 임신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거라곤 누추한 방 한 칸이 전부다.
여기 또 한 여성이 있다.
일곱 권짜리 시리즈로 소설, 영화, 캐릭터를 합쳐 300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전 세계 저명인사 100명 안에 들며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면,
전자의 여성이 약10년 뒤 후자의 모습이 된다면, 믿어지는가?
사실이다.
『해리 포터』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이 놀라운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다.
조앤 롤링은 고향으로 돌아왔던 당시 몹시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그녀는, 동화를 쓰고 싶다는 열망을 버리지 않고 잠든 딸을 유모차에 싣고 카페에 나와 글을 쓸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출판사에서 연달아 거절당하다가 마침내 한 곳에서 이 대작을 알아보기까지, 1년여 동안 정부에서 주는 생활 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했다는 조앤 K. 롤링. 그런 그녀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강조한 것은 바로 ‘실패와 상상력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실패의 미덕을 배우다
“제가 여러분들 나이에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가난이 아니라 실패였습니다. 여러분이 젊고 유능하며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움이나 고통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사실은 곧 실패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공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러분의 행동을 좌우하겠지요.
대학 졸업 후 저는 7년 동안 엄청난 실패를 겪었습니다. 결혼에 실패하고 실업자 신세에다 가난까지 닥쳐왔습니다. 누가 봐도 전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힘들었고, 그 긴 터널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저는 실패의 미덕을 배웠습니다. 실패가 제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준 것입니다. 비록 밑바닥 인생일지언정 저는 살아있었고, 사랑하는 딸이 있었고, 낡은 타자기와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었지요. 저는 모든 에너지를 가장 중요한 일에 쏟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밑바닥이 인생을 새로 세울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큰 실패는 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몇 번의 실패는 피할 수 없습니다. 또 실패 없이는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누가 진실한 친구인지도 알 수 없죠.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인 것입니다.
삶에는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와 상처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시작하자마자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인생은 성공한 일을 적어놓는 목록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은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힘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까요."1)
한 여성의 삶 가운데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조앤 K. 롤링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어린 아이들이 가장 더 잘 아는 동화책 작가로 우뚝 섰다. 그녀의 웹사이트에는 얼마나 많은 전세계인이 접속하는지 언어도 버전이 5개로 되어있고 홈페이지 또한 마법스런 신비한 구석이 있었다. 한 사람의 무궁한 상상력이 실패를 성공을 바꾸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아마도 믿음의 상상력이 충만했을 것이다. 자신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성취해 가시는지를 머릿속으로 상상해가면서 아합 왕에게 나아갔을 것이다.
갈멜 산에서의 대결(18:16-29)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엘리야는 아합에게 무언가를 제의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영적 전쟁, 신들의 전쟁을 제의한다. 신들의 전쟁,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의 친선경기가 아니라 사력을 다하는, 목숨을 다하는 영적 전쟁을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제안한 엘리야의 대범함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친다면, 아합은 엘리야의 제안을 수락한 까닭은 무엇인가? 아합은 하나님의 명성을, 엘리야의 명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합의 시각은 영적인 시각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선지자 엘리야이지만 숫자로는 어림없는 통계수치가 아닌가? 450대 `1이다! 그는 숫자로 이 전투를 가늠했다. 그는 양적으로 선지자들과 엘리야는 승부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엘리야가 강호동 보다 더 한 체력을 가졌다고 해도...450대 1이다. 4대 1도 아니도, 45대 1도 아니고 450대 1이다. 팔씨름을 해도 체력이 고갈되어 이길 수 있겠다. 인간적으로 셈을 하면 그렇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한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이런 계산을 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인생의 미래에 대해, 자녀들의 교육과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며 걱정하고있는 것이다. ‘교회에 오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고, 교회 직분을 맡으면 공부할 시간은 분명히 빼앗길 것이니깐 다른 애들에게 일을 맡기고 너는 빠져라!’예를 들면 그렇다는 말이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450대 1의 턱없는 싸움이 바로 우리들의 영적 전쟁의 현실이 아닌가?
450대 1, 믿는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불리하고 열세인 가운데서 영적인 승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익 시험, 자격증 시험, 중요한 직장모임, 결혼식 참석, 집안 경조사, 친지, 친구 경조사 챙기는 일, M.T, 부모님 돌아보는 일 등, 모든 것들이 주일성수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언제나 신앙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우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그냥 실수라고 눈감아주면 되는데, 꼬옥 ‘예수’이름을 들먹이면서 우리의 심기를 불편케 한다. 그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의 반열에 들어선 이상 우리는 세상과의 승부에서 일단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엘리야가 서 있었던 450대 1의 불리한 상황을 연결시킬 수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양, 물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시각이 중요한 것이다. 믿음으로 숲을 바라볼 수 있어야지, 인간적인 나무들만을 훑고 있으면 시각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경기며 지극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의 시각을 회복하기를 기도하자. 영적인 시각을 회복하기를 기도하자. 세상의 숫자에 오염되고 충혈된 영적인 시각을 다시 깨우자. 나의 가정, 직장, 자녀, 교회, 인생 전반을 향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뜻과 masterplan을 그리면서 영적인 매서운 관점을 기르자.
아합은 또한 엘리야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단번에 없애버릴 수 있은 절호의 찬스, 기회가 생겼다고 매우 기뻐했던 것 같다. 그 땅에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때문이었던 것이다(왕상 17:1; 18:1). 그래서 아합은 엘리야의 제언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이러한 당찬 450대 1의 도전을 제안하고 난 후, 또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전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20-21절이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21절)
이렇게 엘리야가 외칠 때 백성들은 ‘한 말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상황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부모님이 ‘네가 그랬지? 네가 한 거지?’라고 정곡을 찌를 때 아이가 울먹인다던가, 울음을 빵 터트린다던가 할 때의 상황과도 흡사하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이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그 상황 가운데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죄를 지적했을 때 다윗은 침상에서 울며 대성통곡했던 상황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 자신들의 정곡이 찔린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도가 조금 덜한 모양이었다. 지금 일단 이 신들의 전쟁을 구경하러 왔기 때문에 그냥 ‘꿀먹은 벙어리’마냥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회주의적인 작태를 보였는지를 알 수 있다. 자신들이 편하고 유익할 때는 신앙을 붙잡다가, 자신들이 불리하고 별 유익이 없으면 과감하게 신앙을 내려놓고 세상적인 수단과 기호들을 취하는 기회주의적인 모습! 우리는 얼마나 이러한 모습을 보여 왔는가?
특별히 그들이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는 부부이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블레셋 여자로서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사람이었다. 바알 신은 비를 다스린다고 해서 ‘구름을 탄 자’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여신 아세라는 잉태의 신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동침하면 땅이 비옥해진다고 믿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명하신 것과는 전혀 낯선 것이었으나 사실 그들에게는 강한 매력을 주었다. 이 신들이 그 땅에 살고 있는 가나안 백성들에게 잘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과 그 가족들에게는 생사가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의‘논리적 귀결’은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절대 굶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도 많은 영리한 방법을 써서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재정 형편 등등에 대해서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우리 자신, 다른 사람, 그리고 맘에 드는 환경 등을 또한 신뢰한다.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만으로 무언가 모자란다는 생각에 바알과 아세라의 신앙을 동시에 가졌던 이스라엘, 그것은 종교혼합주의였고 우상숭배였고 배교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종종 이런 머뭇머뭇거림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냐? 백이냐?’
‘하나님이냐? 돈이냐?’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우리들이 하나님보다 더 의존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보다 물질, 하나님보다 사람, 하나님보다 인간적인 백, 관계를 의존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할 때 머뭇머뭇거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생존을 비에 걸고 있었던 농경 사회였다. 그리고 바알은 바로 날씨와 기후를 다스리는 농경 신으로 숭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겠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비가 3년 반동안 내리지 않은 시절이었다, cf, 사르밧 과부의 사건) . 바알은 우상이었지만 그들의 눈에 보였고, 만질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있었던 실체였기 때문이다. 또한 한 나라의 국왕인 아합이 이유가 어찌됐든지 간에 이 바알숭배를 장려했고 그렇게 실제로 본을 보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은 섬기는 것이 너무나 쉬워보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모든 농경생활의 주도권은 바알이 쥐고 있기 때문에 바알에게만 잘 보이기만 하면 되는 구도였다.
우리나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두 신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돈 VS 믿음? 자신의 욕망 VS 믿음, 시간 VS 믿음, 지식의 교만 VS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 친구관계 VS 말씀의 조언, 화anger(주관적인 감정) VS 객관적 믿음...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의 양대 산맥에서 오락가락하며 갈등하고 있다.
갈멜산에서의 450명의 바알선지자의 행보를 보라! 그들이 그토록 섬기던 신을 향해 얼마나 절규하는지, 너무나 처절하여 불쌍하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을! 450명이 제단에 불을 붙이기 위해 바알을 외치며 제단 주위를 뛰노는 모습을 연상해 보라.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리고 사람들, 그리고 엘리야!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고 엘리야는 그들을 27절에서 조롱했다. 그러자 드디어 발광하기 시작한 바알 선지자들이었다. 이성을 잃어버린 채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까지 하며 자학, 피가 흐리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고(28절), 미친 듯이 떠들었지만(29절) 대답 하나 없고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의 모습이 이러하지는 않았는가? 대답도 없고 응답도 없는 우상들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였던 우리의 옛날! 하지만 그 어둡고 처절한 비극에서 해방케 하신 예수님께 감사드리자. 구제불능의 인생이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서, 어두운 죄악의 무게와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의 깊은 수렁에서 우리를 건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양하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
엘리야의 하나님(18:30-40)
바알 선지자들과는 달리 엘리야는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 그 능력에 대한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30절에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하고, 31절에 돌 열 두 개를 취해서, 32절에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았다. 더 특별한 행동은 그가 불과는 반대되는 물을 제단에 붓고 도랑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 불을 붙이기 위해선 물기가 더 없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행동은 엘리야는 3번까지 반복하고 나니 결과는
35절...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고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축축하게 젖은, 물기가 넘치는 제단을 불붙일 수 있는 것은 웬만한 불로는 힘들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얼마나 확신 있게 믿었는지를 알 수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 분께 모든 것을 위탁했던 것이다. 그 젖은 제단, 물기가 축축하게 배인 제단조차도 충분히 태워버릴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 불의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것이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
우리의 모든 간구도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소망도
신실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불가능한 일 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네
어쩌면 엘리야가 그 갈멜산 제단 앞에서 물을 듬뿍 부어놓은 후에 이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도 그 그림이 볼만했을 것이다. 바다가 아닌 산이라는 배경이 어색할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는 주의 말씀을 의지하였다.
32절에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라고 나와 있다.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는 실행한 것이다. 믿음으로 그는 불가능의 벽을 허물기 위해 자신을 던진 것이다. 엘리야는 지금 바알 선지자들이 패배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이렇게 의기양양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는 자신이 믿고 신뢰했던 그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더 기쁨이 충만했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이 따라야 할 유일한 신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더 자극받지 않았을까?
그의 기도를 보라!
36-37절: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하나님은 그 믿음에 응답하셨다. 불로 응답하셨다.
38절: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불가능한, 물기 젖어 축축한 제단을 하나님은 강력한 불로서 태워버리셨다. 응답하셨다. 850(450)대 1의 불리한 전세는 이 하나님의 응답하심으로 인해 역전되었다. 엘리야는 40절에서 백성들에게 바알의 선지자들, 거짓된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라고 명령한다.
우리도 그의 능력을 힘입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현재 직면한 불가항력의 상황은 없는가? 그 불가항력의 450대 1의 상황, 물기 젖어 축축한 불가능의 환경, 그 불가항력의 여러분만의 ‘갈멜’산은 없는가? 당신의 갈멜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갈멜산에서 어떻게 그의 능력을 힘입어 설 수 있는가? 사용받을 수 있는가?
The next time you feel like God can't use you,
remember the following people: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실 수 없다고 느껴질때,
다음의 사람들을 기억하세요:
- NOAH was a drunk....
- 노아는 술취한 사람이었고...
- ABRAHAM was too old..
- 아브라함은 너무 노쇠하였고...
- ISAAC was a daydreamer....
- 이삭은 공상가였고...
- JACOB was a liar..
- 야곱은 거짓말장이였고...
- LEAH was ugly...
- 레아는 못생겼었고...
- JOSEPH was abused.
- 요셉은 학대를 받았었고...
- MOSES couldn't talk.
- 모세는 말을 잘 못했지요.
- GIDEON was afraid....
- 기드온은 두려워했고...
- SAMPSON had long hair & was a womanizer
- 삼손은 긴 머리에 바람둥이였고
- RAHAB was a prostitute
- 라합은 기생이었고
- JEREMIAH and TIMOTHY were too young...
- 예레미아와 디모데는 너무 어렸었고
- DAVID had an affair &was a murderer...
-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하였지요...
- ELIJAH was suicidal.
- 엘리야는 심한 우울증 환자였고
- ISAIAH preached naked.
- 이사야는 벌거벗은 설교자였고
- JONAH ran from God.
-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였습니다.
- NAOMI was a widow.
- 나오미는 과부였고
- JOB went bankrupt.
- 욥은 파산하였고
- JOHN the Baptist ate bugs...
- 세례 요한은 벌레를 먹었고...
- PETER denied Christ...
-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였고
- THEDISCIPLES fell asleep while praying...
- 제자들은 기도하다 잠이 들었고...
- MARTHA worried about everything.
- 마르다는 모든 일에 대해 근심하였고...
- MARYMAGDALENE was demonpossessed...
-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이 씌웠었고
- The SAMARITANWOMAN was divorced..more than once!!...
- 사마리아의 여자는 이혼했었고... 그것도 한번 이상...
- ZACCHEUS was too small.
- 삭개오는 키가 너무 작았습니다.
- PAUL was too religious...
- 바울은 너무 율법적이었고...
- TIMOTHY had a nulcer....
- 디모데는 궤양이 있었고...
- AND LAZARUS WAS DEAD!!!
-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 NO MORE EXCUSES!!!!!
- 이제 더 이상의 핑계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쓰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불완전한 사람을 열심히 열심히 만드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여러분이 현재 직면한 불가항력의 상황-그 갈멜에서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 우리도 그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엘리야처럼 쓰임받기를 소망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나 실재는 어떤 식으로 도전받는가?
그러한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엘리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겠는가?
-엘리야는 오히려 이방 선지자들 앞에 도전장을 내던졌다!
더 나아가는 엘리야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도전장을 내던졌다!
우리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 있는 돌보심에 맡길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
...우리도 그의 능력을 힘입어...
1) [출처] 『해리 포터』를 만든 힘, 조앤 K. 롤링의 실패 극복기|작성자 autolog
구약성경 열왕기상 18:16-40의 본문에 나타난 외롭고 고독한 엘리야가 어떻게 바알 선지자 450명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였는지에 대한 결론으로 '우리도 그의 능력을 힘입어'라는 주제의 설교를 포스팅해 보았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도 매일 매일 승리하길 소원한다.
'설교 > 열왕기상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하 20장 1-7절, 하나님이 히스기야 기도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이유 (1) | 2024.06.04 |
---|---|
열왕기상 19:1-4, 엘리야의 부흥(부활) (0) | 2024.03.31 |
왕하 9:30-37, 어떤 비극의 주인공이길 원하십니까? (0) | 2024.03.28 |
왕상 16:23-34, 누가 성공과 번영을 주는가? (1) | 2024.03.26 |
열왕기상 8:62-66, 넘치는 기쁨의 축제 (0) | 2024.03.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