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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문서/문서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의 선교사로 가려고 할때

by Message.K 2022. 2. 27.

언더우드가 한국의 선교사로 오기 전에, 1882~188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뉴 브룬즈윅의 선교지망자들을 모아 놓은 한 보고서에서는 한국은 “은둔국”에 대한 것으로, 1200~1300만의 사람들이 복음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언더우드는 인도 선교사를 지망하여 일년간 의학공부를 하면서 특별히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려는 교회는 하나도 없었고, 선교 지도자들은 아직 한국에 가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글을 쓰고 있었다.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

 

는 메시지가 가슴에 울려진 것은 이 때였다. 개혁교회 선교부에 두 번 신청했으나 자금이 없다는 대답이 왔고, 장로교 선교부에도 두 번 신청했으나 소용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 무렵 브루클린의 라파엣 장로교회의 맥윌리암씨가 한국 선교를 위해 6,000달러를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부 총무 엘링우드에게 기부했다. 그 기부금 덕분에 언더우드의 소원이 성취되었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될 수도 있으므로 영국의 친지들에게 작별인사차 도영한 그는 런던 선교회의 총무로 있던 삼촌을 방문했다. 거기서 언더우드의 목적지를 들은 누군가

 

“한국, 한국이라.....거의 20년 전 우리도 한 사람을 거기에 보냈는데, 그 후에 아무 소식을 못 들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바로 1866년에 제너럴 셔면호에서 순교한 토마스 목사였다.

 

 

 

언젠가 책을 읽다가 발견한 노트를 다시 끄집어 읽는다. 우리나라는 정말 선교가기엔 너무나 척박한 나라였고 선교사들조차도 꺼리는 나라였다. 그런데,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와 언더우드 선교사...그리고 수많은 선진들의 헌신과 섬김과 충성으로 인해 이만큼 복음화가 된 것이다. 이 대목을 읽다보면, 가슴이 너무 찡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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