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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시편

시편 18편 1-2절 설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by Message.K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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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시편 18편 1-2절의 본문을 토대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란 주제로 중고등학생들에게 아주 오래 전에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시편 18편 1-2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시편 18편 1-2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미국의 쌍둥이 빌딩 테러 대참사

 금주에 최대의 사건은 여러분들도 알다 싶이 ‘미국의 테러 대참사’였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매스컴을 통해서 귀에 익숙할 정도로 많이 들었을 것이다. 세계의 강대국인, World Power인 미국의 영토에서 그것도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인 world trade center는 정말 미국의 자랑이기도 하고 명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101(110)층이나 되는 빌딩이 몇 초 사이에 주저앉는 모습은 ‘공든 탑이 무너질랴’가 아니라 ‘공든 탑도 무너진다’라는 말을 내뱉게 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63빌딩인데 그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해 보라. 아니면 대구우방타워가 무너졌다고 해 보라.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지금도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는 미국사태는 손에 꼽을 정도의 엄청난 테러행위였다. 앞으로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에 어떻게 대응할 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 참상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는가?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테러가 벌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아니면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인 한국에 있다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아니면 이러한 사건과 사고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면서 여러분의 할 일에만 몰두하는가? 제가 이러한 예를 들어도 이렇게 반응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학생들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자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라는 찬양을 우리는 잘 알고 잘 부르고 가사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찬양을 부르면서 가사를 한 번 묵상하였음 좋겠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자」이시다. 그렇게 큰 소리 치고 세계의 모든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우월감을 가지는 미국에 테러가 발생했는데 우리 같이 약한 대한민국에 테러가 왜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지키시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러한 말은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이러한 극악한 사건을 통하여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뜻이 있을 것이다. 웬만한 충격에도 끄덕하지 않게 시공했다는 그 어마어마한 건물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들으면서 저는 ‘인간은 충분히 겸손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나토미anatomy>라는 영화를 제가 보았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사람의 육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육신을 입고 우리는 한 평생을 산다. 여러분들도 매스컴을 통해 테러사건을 익숙하도록 들었기에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오늘의 시편은 다윗의 시편

 우리는 그 옛날 구약시대에 ‘인간으로서 겸손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겸손을 가졌던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은 바로 시편의 많은 시를 자작했고 노래했던 다윗이다. 다윗이 자주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이야기하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이런 찬양도 있지 않은가?-이렇게 시는 시작되고 있다. 다윗은 이 시를 자신이 이제껏 전쟁터에서 수없이 싸웠던 원수(적)들과 자기를 깊이 시기하여 죽이려했던 사울의 손에서 벗어났던 시기에 지었다. 앞으로도 그에겐 많은 환란과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 다윗은 자신의 그 험난한 피난생활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을 지켜주신 것을 찬양하고 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나의 힘>이라고 하나님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이러한 경우를 체험한 적이 있는가? 저는 훈련소에서 구보를 할 때 정말 힘들었다. 7월 달의 그 무더운 아침햇살을 받으면서 구보를 하는데 정말 쓰러질 것 같았다. 참고로 전 단거리는 자신 있어도 장거리는 정말 죽을 쑬 정도다(중3 체력장을 할 때 남들보다 한 바퀴 덜 돌고 들어와서도 기록이 5분대). 그러니 구보는 정말 힘들었다. 난 그 아침시간이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뛸 때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나의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좋은 씨앗’의 노래를 늘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뛰었다. 묵상을 하니 하나님께서 뛸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중간에 막 쓰러지는 애들도 있었다-방위니깐 얼마나 약하겠는가? 이해하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다윗의 경험과 나의 경험은 비교할 수가 없다.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몇 번씩이나 잃을 뻔한 경험에 놓였었다. 사울이 자신이 비파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창을 던져서 부리나케 도망쳐서 목숨을 구한 사건이나 동굴 속에서 자신을 뒤쫓다 지쳐 쉬고 있는 사울을 대면하였을 때...정말 다윗이기에 그러한 인생을 힘차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나님을 매일 찾았던 다윗의 삶의 자세

 다윗은 또한 여호와를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들은 다윗이 자신의 머리에서 좋은 말과 미사여구를 짜내어 하나님을 표면적으로 기분 좋게 할려고 뽑아낸 말들의 열거가 아니다. 이것은 다윗이 뼈를 깎는 듯한 삶의 진절머리나는 어려움들을 극복하고서 뒤를 돌아다 볼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지 않았다면 도저히 살아 올 수 없는 삶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심정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이다. 진심으로 우러나오지 않는 말들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다윗은 진정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매일 찾았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다윗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우리들은 자신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거나 자신의 바라던 성적이 나왔을 때 대단히 기뻐할 것이다. 그 기쁠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기쁠 때의 그 순간만 하나님을 좀 생각하다가 ‘내가 좀 열심히 했으니 이러한 결과가 오지 않았는가?’하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묻어버린다. 그러다가 우리가 힘이 들 때, 성적이 하염없이 하향곡선을 그리거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오해로 편견으로 얼룩져 썰렁하게 될 때, 부모님이 내 맘에 안 들어서 자꾸 원망과 불평이 나오거나, 교회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일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모든 게 부담스럽게 생각되어지고 앞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앞에서 일을 추진한다고 힘이 들고, 따라가는 친구들은 앞에서 학생회를 이끌어가는 애들이 왜 저 모양이냐? 비판하면서 서로 의견충돌이 은연중에 보일 때, 아니면 그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서로에게 은근히 ‘따’를 시키거나 무시하거나 말도 걸지 않고,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쏙 빼놓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불평한다. 그 속엔 ‘하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하나님, 화석화된 하나님이 되어버린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성공과 나의 성적과 나의 이성친구와 나의 기분과 즐거움을 위해 좀 이용하는 태도가 우리들에게 다분하다. 그리고 쉽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 ‘자기칭찬과 자기 즐거움’에 국한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제가 찬양인도를 할 때 늘 마음이 흡족하진 않다. 어떤 경우에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때가 있고 어떻게 이렇게 부족한 내가 자라나는 청소년의 황금같은 시기에 있는 애들을 찬양 인도한다고 서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그러다가 어떤 경우에 찬양인도 참 잘 되면 나의 곡 선곡이나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조금 돋보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화자찬을 할 때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나의 무엇을 위해 이용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내가 성경을 읽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축복해주시지 않을 거야.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꺼야 하는 그런 극단적인 비겁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의 앞날과 미래와 삶을 위해서 우리가 하는 종교활동-성경읽기, 찬양, 기도, 교회모임, 교회행사-를 도구로 이용하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은 지극히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100퍼센트 불순한 동기 없이 드려져야 한다. 교회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여러분의 의지가 아닌 부모님이 교회 안가면 잔소리하니깐 그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억지로 오기 싫은 발걸음으로 교회 온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정말 기뻐하겠는가?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왕 할거라면 하나님께 여러분의 억지가 아닌 순수한 맘으로 드렸으면 좋겠다. ‘찬양을 드릴 때도 제가 찬양합시다. 열심히 찬양합시다. 율동합시다. 너는 왜 율동 안하냐? ’이러면서 잔소리해가며 찬양한다면 그곳에 무슨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겠는가? 여러분들이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중심을 보신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미성년자이고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 맑고 투명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순수할 때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없다면
나이 먹고 세상의 때가 묻으면 어떻게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겠는가?

 

 

다윗은 10대 시절에 거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찾았다

우리들의 이러한 때묻고 부족한 삶의 자세, 신앙의 자세와는 달리 다윗은 모든 삶의 구석구석마다 하나님이 배여 있었다. ‘나의 힘-여호와’라고 늘 고백하면서 그는 양떼를 보호하기 위해 짐승과 싸웠고, 거인giant 골리앗을 때려눕혔고, 정말 원수 같은 사울도 자신의 칼로 충분히 그의 심장을 찔러 죽일 수 있었지만-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하나님을 생각했기에,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기에 감히 죽일 수 없다는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의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의 테러참상’이 꼭 남의 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도 백화점이 무너져 죽을 수 있고, 가스사고로 버스에 탔다가 시체가 될 수도 있고, 다리 건너다가 추락해서 죽을 수 있고, 나이가 먹어 유능한 엘리트 사원으로 외국을 드나들며 비즈니스맨으로 활동하다가 '세계무역센터‘에서 비행기가 자폭해서 순식간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의 운명이 그런 것이다.

 

 

 

 

그 젊은 시절의 체험과 삶이 다윗을 다윗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이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는 그러한 사람 아닌 사람이라면 그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윗을 지키시는 자‘이시기 때문에 ’낮의 해와 밤의 달도 상치 못할 것이며‘, 환란을 면케 하시고’, ‘우리의 출입을 영원토록 지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테러사건 때 아침에 출근을 늦게 해서 생명을 건진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산다면 그 사람은 진짜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설사 건물이 무너져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마음 중심에 모시는 다윗이라면 그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늘 그의 우편에 그늘이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힘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힘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든든한 빽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부모님인가? 여러분이 매달 치르는 모의고사의 그 성적인가? 여러분의 가진 외모의 화려함인가? 준수함인가? 아니면 여러분이 가진 유우머 감각 즉 개인기인가? 아니면 애들과 싸워서 절대지지 않는 여러분의 주먹인가? 여러분을 정말 잘 이해해 주는 친구인가? 그 모든 것들은 다 한계가 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을,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는 없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구원의 뿔은 바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이다.

다윗의 고백처럼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도록, 닮도록 노력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음 좋겠다.

 

시편 18편 1-2절의 본문을 가지고 과거에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설교했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라는 주제의 포스팅이었습니다. 다윗의 10대에 거친 삶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기에 그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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