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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시편

시편 74편 1-11절, 어둠 속에서 드리는 기도

by Message.K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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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시편 74편 1절~11절까지의 본문을 토대로 '어둠 속에서 드리는 기도'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에다)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의 시편입니다.

 

시편 74편 1-11절, 어둠 속에서 드리는 기도
시편 74편 1-11절, 어둠 속에서 드리는 기도

 

 

시편 74편 1-11절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2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3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4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
5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6 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7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8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9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10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11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

 

 

 

  우리는 우리 개인의 일생에서 기억하기 싫은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도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치하의 36년이란 치욕스런 시절을 보낸 그 시간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순간입니다. 그렇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아니면 그보다 더한 역사적으로 어두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였습니다. 나라의 수도가 멸망하는 것을 목도한 시인은 악몽과도 같은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는 원수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74편은 바벨론침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직후에 지은 공동체의 기도시입니다. 아삽의 마스길은 아삽의 교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스길은 '숙련되고 지적이며 예술적인 방식으로 노래와 찬양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스길...나라의 몰락을 바라보는 시인의 비통한 심정이 이 시편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교훈이 될 것이고, 더군다나 이스라엘 독자들에겐 더 큰 역사적인 교훈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패망을 눈 앞에서 보면서 시인은 1절에서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라고 탄원하고 있습니다. 버리시나이까라는 말보다 더 깊은 절망을 맛볼 수 있는 것은 그 앞에 '영원히'라는 말이 붙어 '영원히 버리시나이까'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절망적이고 뼈아픈 현실이었으면, '하나님 우리를 영원히 버리십니까?'라고 질문했을까요? 그렇게 깊은 아픔을 내뱉은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버려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떠한 사이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시인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속량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주의 기업, 주의 회중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주님의! 바로 소유가 누구의 것이냐? 이스라엘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2절: 주의 기업, 주의 회중,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

3절:주의 발,

4절:주의 대적,

7절:주의 성소, 주의 이름이 계신 곳...계속적으로 시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이스라엘에 초점을 둡니다.

 

 2절의 주의 회중! 주의 회중에서 '회중'에 사용된 단어, 히브리어로 '에다'입니다. 구약에 교회란 단어에 사용된 두 단어 '카알'과 '에다' 중에 하나가 바로 '에다'입니다. 에다는 '약속과 협약에 의해 함께 모인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교회'라는 구약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회중'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회중, 에다는 어떤 공동체인가?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얻으시고(획득하시고)와 속량하사 평행을 이룹니다. 속량에 쓰인 단어('카알')는 친족이 채무를 담당하고 그들을 속박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회중'은 하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케한 구속공동체인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공동체인 교회, 교회인 이스라엘을 어찌 이렇게 내팽개쳐질 수 있습니까? 버리실 수 있습니까? 시인 아삽의 깊은 고민은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떠한 관계인데, 이스라엘의 몰락과 바벨론 포로생활이라니!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한 나라의 수도가 멸망하고 황무하게 변해버린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그 땅에선 여호와를 예배할 다른 장소가 없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말합니다.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예배할 장소가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자기의 언약공동체인 교회(에다)를 이렇게 버리실 수 있습니까? 한번도 놓지 않던 영원한 손이 하나님의 손이 어린아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손을 과감하게 놔버리는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리 탁월하고, 승승장구한다하더라도 그분 앞에서 겸손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앞에 우리가 어떻게 가타부타 할 수 있겠습니까? 어처구니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눈앞에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처럼, '영원히 버려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아픔과 고난이 있습니까? 그러나, 시인이 이렇게 시를 적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람되게 하는 것, 하나님을 우리의 눈높이로 끌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분의 언약공동체인 에다, 교회를 쉽게 버리고 내팽개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스라엘에 임한 심판을 보면서, 그 땅에 임한 원수들의 마음속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8절입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모든 상황'은 아마도 성전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성전의 장엄함을 표현하기 위해 복수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장소적인 개념보다 하나님과 만난 사실을 가리킵니다. 곧 그들은 성전을 불태울 때에 불로 '하나님과의 만남'(모든 축제의 가능성)조차도 파괴시켜 버렸다고 성경학자(모티어)는 말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누리는 모든 하나님과의 영적 특권을 방해하고 그것을 상실케하고자 총력을 기울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그 영적 교제의 시간과 장소와 기회를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어도 예배드릴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처지였습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너무나 사랑해서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을 때 가슴이 찢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스라엘! 하지만 예배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차단당했을때의 그 박탈감은 얼마나 더 힘든 것입니까? 그러기에,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시고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자존심이자, 국가적인 자긍심이었던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정체성을 가진 민족인데!"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떠한 자리에 있던지, 그 자리가 우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그 영적인 관계는 자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진실하고 신실하게 맺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뼈아픈 시편74편의 전반부이지만 마지막은 희망적입니다. 11절입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희망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스라엘이 기도한다는 것은 황무한 예루살렘에도 부흥은 임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 여러분이 지금 있습니까? 시인의 고백, "주의 오른손을 거두지 마십시오! 주님, 나의 원수들을 멸하여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한 아삽처럼, 우리도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희망과 소망의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성경 시편 74편 1-11절의 본문을 기반한 설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와 성전까지 잃어버린 그들의 황폐한 영적, 육적 상황을 하나님께 토로하면서 회복을 기대하는 기도에 대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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