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의안은 IVP출판사의 <새로운 삶의 길>을 토대로 한 것임을 밝힙니다.
⑫마 26:41, 새로운 관계_시험.2
(마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신학적으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가 없다. 성경은 완벽해지려고 하는 것도 때론 교만이라고 한다. 때론 너무 탁월한 것도 하나님 앞에선 교만이 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 보다 더 앞서는 것은 모두가 시험거리가 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향해 가는 존재들이다. 그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길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시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벽을 향해 기도했던 히스기야도 불치병이 회복되고선 오히려 교만하여졌다. 그렇게 겸손했던 다윗도 환난을 지난 후에 말년에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체크해보고자 하는 욕망의 인구조사를 시행했다. 남들 앞에서 서기를 주저했던 겸손한 사울은 훗날 왕권의 노예가 되어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다. 인간은 이처럼 나약한 존재이다. 우리는 시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오늘은 시험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승리의 비결
우리는 무수한 시험을 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시험, 취직시험, 국가고시, 승진시험 등등...이런 시험 치는 시험도 있지만 마귀와 그의 타락한 천사들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유혹하고 시험에 빠뜨리게 한다. 성경 속에서 어떠한 시험들이 있었는지 같이 함 나눠보자.
불신
(욥 2:9)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이 한순간에 바닥치는 삶을 살게 된다. 집안도 쑥대밭이 되고 재산도 다 탕진하고 몸에는 심한 질병으로 고통받게 된다. 욥의 가장 슬픔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한 순간에 다 떠나 버린 것이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 보다 더 큰 부모의 슬픔이 있을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의 구렁텅이를 욥에게 허락하셨다는 현실이다. 욥에겐 그게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몸까지 완전 엉망이 된 상황에 사랑하는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까지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욥의 마음은 완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그렇게 외치고 믿었던 욥이었지만, 아내는 하나님을 불신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믿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불신의 자리에 노출된다.
교만
(마 4:6)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시는 대목이다. 예수님에게 왜 그런 능력, 슈퍼파워의 능력이 없었겠는가? 우리에게 종종 이런 교만의 시험이 다가온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란 조건을 붙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조건이 필요없으셨다. 예수님의 정체는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이에게도, 사단에게도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으셨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자주 교만의 위험에 노출된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지만, 종종 사람들 앞에서 나의 역량과 재주를 자화자찬하는 칭찬에 휩싸이고 싶어한다.
능력
(행 8:19)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사도들이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고 시몬도 돈으로 성령을 받고자 하는, 능력을 사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베드로는 '네 은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라고 책망했다. 종종 우리는 능력의 자리에 우리가 서 있기를 원한다. 능력이 있으면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주목받고 인기와 명예와 재물이 오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자면,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성령의 역사를 오해하기도 하고 착각하기도 한다. 과거의 수많은 부흥사들과 거인들이 행했던 기적과 이적의 현장, 은사가 난무했던 현장에서 우리는 '그 능력'이 우리를 추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왜 능력을 받고자 하는가?' 능력을 많이 받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능력을 많이 받은 것 때문에 십자가의 길에서 탈선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성
[삼하 11:2-삼하 11:4]
(2)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3)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4)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 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리차드 포스터는 <돈.섹스.권력>이란 저서에 이미 유혹의 요소를 이야기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성의 위험과 리스크는 시험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일국의 왕이자 군주인 다윗이 여인이 없어서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단 말인가? 아리따운 처녀가 얼마나 많았을 텐데. 굳이 '그 여자'여야만 했던 것이다. 사람이 무언가에 꽂히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성의 유혹은 더 심각하다.
돈
(요 13:2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예수님의 제자중 가룟 유다를 회계를 담당했다. 돈에 민감했고 머리가 비상했을 것이다. 돈관리하는 이들이 그러하지 않은가? 그가 예수님을 어떻게 쫓아 제자가 되었는데, 그런 가장 큰 은혜의 자리에서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던가? 돈은 언제나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요소임을 명심해야 한다. 늘 깨어있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맘몬mammon 신을 섬기고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못 박으셨다.
사단은 우리에게 불신/교만/능력/성/돈 등... 여러 형태로 시험한다. 시험에 굴복하면 죄를 범하게 되지만, 시험에 이기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고 신자는 강건해진다.
그러면 이러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히 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가 시험을 받을때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꾸지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상황과 환경이 나를 압도해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God is so good'은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으로 인해 내가 절망하고 낙심하여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시험하지도 않으시고 또한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말씀의 묵상>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무엇으로 이기셨는가?(마 4:7,10 참조)
(마 4: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우리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말씀묵상'이다. 말씀이다. 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채워야 한다. 그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 사람과 별 반 다를 게 없다. 예수님은 사단과의 시험에서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깨어 기도>
우리가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마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우리가 매일 기도해야 하고 무시로 기도해야 하고 쉬지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깨어있을 수 없다. 인간은 늘 약점이 존재하는, 아킬레스 건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상 날마다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이 이유이다. 깨어있기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신 것이다. 기도를 쉬었을때, 기도를 빼먹었을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협박이나 위협조의 어조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를 쉴 때 우리가 어떤 리스크와 위기에 노출될 지 항상 경계해야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때 늘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다. 그래서 영적 선배들은 '기도는 노동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제자들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늘 잠들 수밖에 없없다. 우리는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잠을 자기를 즐겨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기도하길 원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대적>
마귀에 대해 실제 취할 태도는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떤가?
(약 4: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단을 대적하는 '대적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끊고, 예수님으로 인해 사탄의 결박을 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단의 견고한 진을 부술 필요가 있다. 내 이름, 내 능력, 내 역량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여 대항하는 것이다.
결론...
결론을 말하자면, 시험1과 동일하다.
마귀가 도망하는 것은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골 2:15). 만약 우리의 힘으로 나아가면 시험에 질 수 밖에 없다. 순간순간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기도로, 말씀으로 영적인 싸움에 임할 때 승리는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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