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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태복음

마태복음 8:23-27, 주와 함께 날아오릅니다

by Message.K 2024. 11. 14.

마태복음 8:23-27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두려움과 무서움과 불안의 정체, 원인과 이유를 살펴보고 그것을 정복하는 것은 바로 마음의 문제임을 이야기해 봅시다. 제자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넘어 '주와 함께 날아오릅니다'라는 경지로 나아가자는 취지의 설교입니다.

 

마태복음 8:23-27, 주와 함께 날아오릅니다, 설교
마태복음 8:23-27, 주와 함께 날아오릅니다, 설교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주님을 의지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인생은 우리 인간의 본연의 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면서 무수한 풍랑과 파도를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같이 뱃길을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납니다. 큰 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너무 당황했고 놀랬습니다.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다고 23절에 이야기합니다. 타이타닉 같은 배라면 괜찮겠지만, 그들이 탄 배가 그리 크진 않았을 것입니다. 파도가 배를 덮게 됩니다. 풍랑이 배를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하는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한국사람들이라면 자주 하는 말! -죽겠다는 말입니다.

배고파 죽겠다 I am dying of hunger! 힘들어 죽겠다. 아파 죽겠다. 짜증나 죽겠다. 열받아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기분나빠 죽겠다....

반대로, 우리는 기쁘거나 슬플 때 죽겠다는 말은 잘 안 하는듯합니다. 좋아 죽겠다, 기뻐 죽겠다, 행복해 죽겠다, 맛있어 죽겠다...

 

그런데, 제자들은 열받고, 배고프고, 아프고, 힘들고, 배부르고, 기분나쁘고, 암튼 죽겠습니다! 라고 불평과 원망과 짜증을 있는 그대로, ‘오만상’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깨웁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주무셨을까요? 예수님도 철인은 아니셨나봅니다. 자기관리도 좀 하시지, 새벽기도부터 시작해서 날마다 날마다 설교사역과 치유사역과 심방과 상담과 각종 사역들로 분주하셨을 것입니다. 전용자가용도, 마차라도 한 대 있어야 할텐데, 예수님의 전용자가용은 두 다리 뿐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그 일교차심한 작열하는 태양아래에서 낮사역을,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늦은시간까지 사역을 하셨으니 얼마나 피곤하셨을까요? 파도가 대작하는데, 제자들은 죽을 지경입니다. 제자들인 심리적으로 죽을지경이라는, 멘탈붕괴라는 현상이 아니라 이건 완전 배가 뒤집힐 정도의 위기감이 눈으로 직접 확인되는 상황입니다.

 

(2016년 4월 22일) 일본의 구마모토 도시는 지진으로 완전 난리가 났습니다. 이재민들에게 또 하나의 재앙은 지진의 현장 위에 완전 폭우가 오는 바람에 9천 가구의 집이 지금 몰락의 위기에 있습니다. 그 상황은 눈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눈 앞의 풍랑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주무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흔히 ‘천하태평’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상황은 긴박하고 심각한데, 오히려 태연하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자녀들을 향해 부모님은 하는 말, ‘천하태평이다’그런 말 들어보신 적 있지요? 그런데, 우리 주님이 지금 제자들 눈에는 천하태평인 것입니다. 풍랑이 이렇게 대작하는데, 어찌 주무실 수 있는가?

 

여러분, 우리가 상황이 긴박하고 여유가 없고 정말 죽을 것만 같은 가운데서도 우리가 생각없이 잠을 푹 자거나, 문제의식없이 그냥 쉴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가 한 시간, 10시간 더 고민하고 더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면 깨어있어 활동하고 열심을 내는 것도 좋은 방안입니다만, 때론 우리가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딜레마의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환경과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냥 머리를 식히는 게 좋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잠은 인간이 밤낮없이 활동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잠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주목하여 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면 탈이 납니다

 

예수님은 그런 차원에서라기보다는 너무 피곤하신 나머지 주무신 듯 합니다. 그런데, 정말 호들갑이 아닌 정말 위기감에 사로잡혀 죽을것만 같은 고통 가운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 곤히 주무시다가 깨셔서 짜증내실 만도 한데, 그들의 스승이시오, 세상의 구주이시며 주인이신 예수님이 입을 여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아는 본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예수님의 이 질문도 너무나 잘 알고, 너무나 익숙한 질문입니다. 특별히 신학적이거나, 특별히 조직적이거나 이론적이거나 학적이거나 탁월하거나 독특한 질문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의 삶 가운데 늘 당면하는 질문입니다. ‘왜 무서워하느냐?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입니다. 우리는 무서워합니다.

 

요즘 영화 탓으로 인해 윤동주의 시집이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20대 여성들에게 잘 팔린다고 합니다. 저는 윤동주가 다녔다는 일본의 동지사 대학의 기숙사에서 밥을 먹어보았습니다. 거기 식당에 치킨과 돈가스가 맛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윤동주의 그 표현을 좋아합니다.“잎새에 이는 바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우리가 시인은 아니지만, 윤동주처럼 날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존재가 아니던가요! 잎새에 이는 바람이 무엇이라고 우리는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왜 무서워하는가?

우리 인간은 무서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인간에겐 영원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불멸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다면 영원을 사는 인생이 되었을텐데, 아담과 하와가 그 기회를 차버린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 기회를 차버린 인간입니다. 저희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회를 차버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장성했기 때문입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무서워하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가 없을 때는 모든 것인 인간위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이 너는 땅을 정복하라, 땅을 다스리라는 책임을 주셨기 때문에 그 사명에 따라 살기만 하면 인간에겐 무릉도원, 영생복락이 따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기회를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움의 드릴이 우리의 인생의 벽을 파고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무서워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현대인에게 가장 큰 문제는 물질의 문제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무엇을 살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디서 살까...모든 것이 물질의 화두입니다. 우리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 모두는 물질의 이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 주는 어떻게, 다음 주는 어떻게, 오늘은 어떻게 살고, 내일은 무엇을 먹고...이 모든 것이 우리의 염려의 실체입니다. 우리의 근심과 고민의 핵심입니다. 제가 총각때 부른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왜 너는 내일 일을 염려하며 왜 마음속에 근심하느냐

참새도 돌보시는 하나님이 널 어찌 안 돌보시랴

네 고통 아시며 돌보아 주시리

참새도 돌보시는 하나님이 널 어찌 안 돌보시랴“

 

이 곡의 영어제목이 Surely He will care for you입니다. 확실하게 그분이 당신을 위해 돌보아시주실 것이다. 케어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질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모든 종류의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주님께서 반드시 돌보아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그런 믿음이 없으면, 돌보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찬양을 계속 부르십시오. 그 찬양의 가사가 여러분을 세뇌시키도록, 공산주의 교육처럼 세뇌시키십시오.

 

여러분의 불신의 죄와 염려의 더러운 기운과 포기하고 싶고, 때론 죽고싶은 부정적인 기운들을 찬양의 가사로, 말씀의 가사로 덜어내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뇌를 사로잡도록,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요동하지 않도록, 말씀이 여러분의 감정을 더 이상 축내지 않도록! 계속 찬송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눈물을 주실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은 안되도 마음은 평안해질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만 제대로 잡으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물론 두려운 문제는 많습니다. 최홍만이 제한테 볼일있다고 있다면, 제가 섬칫 두렵지 않을까요? 혹시나 내가 최홍만이 경기할 때 욕한 것을 들었나 싶기도 합니다). 여러분, 마음을 잡기만 하면 감정도 잡힙니다. 그래서 성경기자는 마음을 생명의 근원이 거기서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돈이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고인이 된 세계적인 브랜드 ‘삼성’을 만들어낸,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자신이 마지막으로 영혼에 대한, 영생에 대한 문제를 편지로 남겼습니다. 그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영생에 대해 호기심도, 질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바빠서 그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인기가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기는 쉽게 사라집니다. 어제의 가수가 오늘의 인기가수로 생생하게 버틸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군대가기 전의 연예인의 인기와 군대간 후의 연예인의 인기는 다릅니다. 수많은 젊은 친구들이 치고 올라오는 시대에 젊다고, 잘 생겼다고, 얼짱이라고, 몸짱이라고, 연기파 배우라고, 영원한 인기는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건강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잘 모릅니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러다가 잃어보면 아는 것이죠.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보디빌더나 다이어트강사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불안하면 생기가 없어집니다. 인기와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렸던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해 비관해서 죽는 것을 봤습니까? 아닙니다. 건강이 죽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죽어서 생명을 포기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이 죽는 것을 막아야합니다.

마음이 죽는 것을 관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죽는 것을, 여러분의 마음이 죽어가는 것을 말씀으로 살려내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씨앗으로 황무지와 같은 마음밭을 일구고 푸른 숲으로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의 꼴을 먹으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죽어가지 않게, 상황과 환경과 조건과 현실이 불편하고 힘겹고 어렵더라도 마음이 건강하면,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좀먹는 모든 사실과 사실이라고 믿어지는 모든 가능성과 사실도 아닌데, 미리 당겨서 생각하는 먹구름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과 사고와 추측과 예상의 좀비들을 예수이름으로 물리치실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갉아먹는 좀비들, 염려의 좀비들, 두려움과 불안과 답답함과 분노, 그리고 절망의 모든 좀비들을 말씀으로 누르십시오. 밟아 이기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담금질해야 믿음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왜 너는 내일 일을 염려하며 왜 마음속에 근심하느냐

참새도 돌보시는 하나님이 널 어찌 안 돌보시랴

네 고통 아시며 돌보아 주시리

참새도 돌보시는 하나님이 널 어찌 안 돌보시랴“

 

주님이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여러분 무엇을 무서워하십니까?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바다의 물결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거친 풍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바로 세상과 바다의 물결과 인생의 거친 풍랑 너머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을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통찰하시고, 주목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분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분이 우리가 당하는 바다의 물결을 허락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분이 우리의 인생을 하감하시는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무서움의 근원들과 이유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쓸데없는, 정말 얼토당토한 사람들의 모함과 비난과 야유와 함정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습니까? 그로 인한 결과들로 인해 무서워하고 있습니까?

시편기자가 고백한 말씀을 기억하지죠?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응답하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나의 반석위에 두사 견고케하셨도다

새 노래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실 것을 믿고 마음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나의 마음을 믿음의 반석 위에 견고하게 세워주시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여러분, 우리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입니다. 텔레비전 리모콘버튼이 제대로 눌러지지 않는 몇 도 제대로 참아내지 못하는 자연인입니다. 참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버퍼링이 길어지면 참기 힘들어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혹여나 인터넷 속도나 스마트폰 속도나 전자제품의 반응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참진 못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기다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시인은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다윗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도 기다렸습니다.

이삭도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자신의 아내의 불임에 대해 20년동안 기도했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입니다. 믿음의 대가들은 기다림의 천재들이었습니다.

바울도 기다렸습니다.

다메섹에서 소명을 받았지만, 다시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소에서 10년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니 속성될 것이 숙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숙성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여러분이 무서워하는 것이 장래의 것일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지금 나이가 얼마이고, 지금 나의 조건과 환경과 스펙과 상황과 실력이 이러한데, 과연 나의 미래는 어떠할까? 우리 가정의 장래는 어떠할까? 요즘 취업난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취준생들에겐 이것이 가장 큰 두려움일 것입니다. 하지만, 불가능의 현실을 너머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과 권세와 파워를 믿고 의뢰하시길 바랍니다. 슈퍼파워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우리의 꿈과 비전을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만족케하실 것입니다. 좋은 것으로 만족케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처럼 새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청춘, 인생의 청춘, 영혼의 청춘을 새롭게 하실 주의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꿈과 비전, 그리고 은사의 활용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젊은이들에게는, 아직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야 할 날이 많은 지체들에겐 그것이 여러분의 두려움과 불안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길 원하며

그 얼굴을 내게로 비추시사 은혜 베푸시길 원하노라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길 원하며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우리의 무서워하는 것은 장차 우리의 다음세대가 물려받아야 할 교육의 현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키우시는 줄 믿습니다. 투자도 중요합니다. 사교육도 중요합니다. 초등학교를 큰 애가 들어가고 나니 정말 새로운 학부모의 세상이 열리더군요. 수많은 학부모들의 말과 말, 정보와 정보, 좋더라, 안 좋더라, 나뻐더라...정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난감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제공해야 할 것은 최선의 영적 환경입니다. 조급하지 말고, 느긋함과 여유로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할 것입니다. 자식농사만큼 부모의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무서워하는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앙금을 갖지 않고 화목하고 평안을 유지한다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스가랴의 말씀처럼 우리를 ‘왕관에 박힌 보석’처럼 여기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건강한 자존감과 자아상이 또 다른 이웃에게, 동료들에게, 심지어 가족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가는 이별의 죽음, 헤어짐입니다. 부모님께서 아직 살아계시지만, 문득 떠나가시면 나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에겐 망각의 선물이 있나 봅니다. 늘 긴장하지 못하고 망각하고, 잊어먹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풍랑과 파도가 어떤 무서움으로 다가옵니까? 어떤 종류의 풍랑과 파도가 여러분의 영혼을 갉아먹고 믿음을 시들게 만들며 믿음을 죽이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인생의 바람도, 우리의 인생의 바다도 예수님께 순종했습니다. 내 인생의 풍랑, 거친 파도도, 세월의 상처와 굴곡도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상기하고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와 함께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고난을 뛰어넘어 상처를 뛰어넘어 파도를 뛰어넘어 주와 함께 고난의 현실을, 땅의 현실을 뛰어넘어 하늘을 향해 주님과 날아오르는 하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23-27의 본문을 토대로 '주와 함께 날아오릅니다'라는 주제의 설교였는데, 제자들의 두려움과 불안이 곧 우리의 두려움이자 불안이요, 그 원인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것,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주와 함께 비상하자는 내용의 설교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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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18-25절의 본문을 통해 "요셉: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한 믿음의 사람"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요즘 비윤리적, 반윤리적인 행태와 결혼관에 대해, 하지만 믿음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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