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한 유일무이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고 이제 조기대선을 준비하는 와중에 온 국민이 심판관의 자리에 앉아서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심판의 자리에 올라가 있습니다.
오늘 7:1-5에서는 ‘비판하지 말라’는 주제로 말씀한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나 진리에 대한 분별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분명 그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비판’이라고 할 때는,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위에 올라가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선 첫째로, 남을 비판하면 우리가 도로 비판받기 때문에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2절: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
우리 주위에 보면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결점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꼬집고 비판한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아주 인기가 있다.
‘참 똑똑하다, 인기많다. 잘한다. 시원하다’
하지만, 좀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도 똑같이 비판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도 같은 일을 비판받게 된다. 예를 들어, 부자들을 향해 사치스럽다고 비판하던 사람이 그 자신이 더 사치하고, 권력자들을 향해 독재한다고 비난하던 사람이 자신이 더 독재하고, 다른 사람을 가리켜 교만하다고 비난하던 바로 그 사람이 더 교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비판받는다.
둘째로, 형제를 비판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더 큰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간가과하고 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신다.
3절: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티의 원어의 의미는 ‘톱밥 한 알갱이’ 혹은 ‘겨 한 조각’을 뜻한다. ‘들보’는 거대한 서까래 혹은 통나무를 뜻한다. 다른 사람의 작은 티를 왈가왈부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있는 강철 대들보를 더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우선 보기에는 굉장히 옳은 것처럼 보인다.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중에는 커다란 상처와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고 한다. 우리는 남을 향하여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야 한다. 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깨닫고 회개한 사람이 남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남의 잘못과 허물을 캐기 전에, 먼저 우리는 ‘내 눈의 들보’를 보게 하소서라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대한민국민들은 지금 모두가 심판관의 자리에 서 있다. 이 나라의 모든 국민들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향해 돌을 들어 던지려는 유대인들과 똑같은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가진다면, 우리가 남의 티를 보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의 들보를 깨닫는 지혜가 필요하고, 거기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와 폭주, 그리고 거대한 사법 카르텔에 의한 탄핵의 현실이 마음이 아프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모든 시국에 대해 먼저 왜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돌아보고, 교회가 회개해야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죄악과 나의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옛날 구약시대 느헤미야가 이렇게 기도했다.
느헤미야 1:5-7
-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의 기도에 보면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과 자신의 조상, 아버지의 집이 범죄한 것을 '동일시'(identification)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한평생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는 자신의 조상의 죄들, 선조의 죄들, 아버지의 집, 가문의 죄, 민족의 죄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 이게 중요한 대목이다. 비판을 계속 하다 보면 마음이 상하고 기도가 막힐 수 있다. 나라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애통해하는 마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더 깊이 기도할 수 있겠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비판할 때 정말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남을 비판함을 통해 감정적인 관계로 발전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감정적이고 분노하고 화를 내는 관계가 되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평강을 빼앗겨버리게 된다. 우리가 다른 이를 비난하고 비판한다면, 정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비판할 때 내 마음의 평안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평안과 평강이 사라지면 그 비판은 내 눈의 들보를 생각하지 않고 남의 티를 캐내는 행동에 불과하다.
우리의 사명은 심판의 재판관이 아니라 더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수많은 영적, 육적 병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오셨지, 심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심판의 몫은 하나님께 있다.
이땅은 심판과 비난과 비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은 용서와 긍휼과 은혜가 필요하다.
주님, 대한민국이 여러모로 어려운 가운데 있지만, 하박국이 기도하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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