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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태복음

마태복음 25:14-30, 어디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by Message.K 2024. 11. 18.

마태복음 25:14-30의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어디에 충성하고 있습니까?'라는 주제로 청년대학부를 향해 설교한 내용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달란트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도 알아보고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하시고자 하시는 의미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14-30 설교 썸네일
마태복음 25:14-30, 어디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Prologue...선물 준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심이 심한 세 형제가 돈을 벌려고 집을 떠났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 상당한 성공을 이룸, 어느날 세 형제가 모여 연로한 어머니에게 얼마 전에 주었던 선물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첫째, “난 엄마에게 큰 집을 지어드렸지.”

둘째, “난 엄마에게 벤츠를 사드리고 운전기사까지 고용했어.”

셋째, “난 형님들보다 훨씬 좋은 선물을 했어. 엄마가 성경 읽는 걸 좋아하는데 눈이 좋지 않잖아. 그래서 성경을 통째로 외우는 밤색 앵무새를 엄마한테 보내드렸지. 스무 명의 수도자가 12년이나 그 앵무새를 가르쳤어. 그들이 앵무새를 훈련시키는 걸 도우려고 10년 동안 매년 10만 달러는 그 수도원에 기부했고,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어. 이제 엄마가 몇 장 몇 절이라 말만 하면 앵무새가 그 구절을 읽어줄 테니까.”

 

그 후 세 형제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 첫째에게 “밀턴, 네가 지어준 집이 너무 크구나. 방은 하나밖에 사용하지 않는데 큰 집을 청소하려니 힘들구나.”라고 썼다.
  • 둘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마티 나는 너무 늙어 갈 데가 별로 없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 벤츠를 지금껏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 게다가 운전기사가 너무 막돼먹었어!”라고 썼다.
  • 셋째에게 보낸 편지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 “사랑하는 멜빈,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유일한 아들이구나, 새고기는 맛있었다!”

 

선물을 준 사람의 의도, 아들의 의도는 전혀 생각지 못한 어머니의 불상사!

직장에서는 상사가 직원에게 무언가를 일을 부탁하거나 시킬 때, 학교에서는 교수님이, 집에서는 부모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맡길 때 그 일의 의도와 의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새고기를 맛있게 먹어버린 할머니, 어머니 꼴이 난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로 선물을 준 사람, 일을 맡긴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치 못한 불상사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달란트 비유이다

한 주인이 사업차 외유하는 동안 그의 종들은 각기 다른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돈(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각각에게 맡겨진)을 투자할 모험을 떠안게 된다. 나중에 그들은 원금과 이자를 도로 주인에게 갚고, 주인은 칭찬과 엄청난 보너스로 그들에게 보상했다는 내용이다.

 

부유한 지주들은 대개 재산 관리와 증식을 전문적인 회계사에게 위임했다. 회계사들은 자유민인 경우도 있었지만, 오늘 이 비유에서처럼 종일 수도 있었다. 유복한 주인들은 종종 장기 여행을 떠났다. 요즈음은 비행기나 기차, KTX(고속 철도), 쾌속정, 선박 등 여러 가지 통행수단이 다양하고 빨라진 시대이지만 통행 수단이 불확실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치밀하게 계획한 여행일지라도 돌아올 날을 정확하게 잡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한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맡은 그 종들은 주인이 왜 자기에게 금 5달란트, 금 2달란트를 맡기셨는지 주인의 정확한 의도와 의중을 파악했던 것이다. 달란트는 6,000드라크마로, 이 달란트는 계산 단위 일 뿐 화폐는 아니었다. BC300년경에 양 한 마리는 한 드라크마 값에 해당되었으며, 이 화폐는 눅 15:8,9에서만 언급된다. 1달란트는 양 6,000마리를 살 수 있는 값, 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금1달란트라고 했으니 그 값은 엄청난 값이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한 달란트에 대한 정확한 환산 가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랐지만, 여기 언급된 투자액은 대략 5만 데나리온, 2만 데나리온, 1만 데나리온으로 추산된다.

한 데나리온이 일꾼의 하루 품삯임을 고려할 때,

  • 5달란트=5만 데나리온=50,000일 일꾼 품삯(50000/365=136년 9개월 정도(일당 5만 계산-50000*(12*136)*50000),
  • 2달란트=2만 데나리온=20,000일 일꾼 품삯(20000/365=54년 7개월 정도)이다.

그러기에 이 종들에게 맡겨진 돈을 주인이 ‘작은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굉장한 부를 소유한 주인의 관점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주인은 가장 믿을만하고 지혜로운 종에게만 재산을 맡겼을 것이다.

 

충분한 자산은 수익을 목표로 그 돈을 투자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환전상에게 돈을 빌려주고 거래 수익금의 상당분을 받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당시에 보편적이던 엄청난 이자율을 고려할 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도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었을 것이었다(하지만 유대인은 동료 유대인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꾸어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들은 이윤을 남겼기에 주인의 칭찬은 이러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투자액이 두 배로 증액되었다는 것은 당시로선 정상적인 것이었고, 종들은 그 정도의 결과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일에 성실함을 보여 줌으로써 큰 일에서도 마찬가지의 자질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빈번히 회자되는 원리였다. 예수님은 아마도 ‘즐거움’을 가리키는 아람어 단어를 사용했을텐데 그 단어는 동시에 ‘잔치’란 의미도 있었다(참고, 25:10-‘혼인잔치’). 주인은 집에 돌아와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충직한 종들의 수고에 보답했다.

이들에게는 충성의 현장이 있었다. 주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주인이 그렇게 큰 돈을 자기에게 맡겼는지를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종(1달란트=1만 데나리온=10,000/365=27년 3개월)은 자신에게 위탁된 돈을 관리한 자기만의 방식을 보고한다. 비록 수익성은 최저이지만 가장 안전한 재산 보호법의 하나는 땅을 파서 돈을 묻어 두는 것이었다. 주인이 돌아와서 되찾지 않아 이런 식으로 묻혀 있다가 오늘날 발견되는 재산도 드물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눅 19장에 언급된 종은 마태의 경우보다도 더 무성의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돈을 수건에 싸서 그냥 두었다는 것은 땅에 묻는 것과 달리 돈의 안전조차 신경 쓰지 않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서 이렇게 말한다.

 

  • 24-25절: 정말 깨는 발언이다.
  • 24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주인님! 제가 알기로 당신은 기준이 높고 경거망동을 싫어며 최선을 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인님을 실망시키지나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주인님의 돈을 숨겨둘 좋은 장소를 찾아서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자, 여기 단 한 푼도 어김없이 정확하게 안전하게 도로 갖고 왔습니다.”

 

세 번째 종은 주인이 왜 그것을 자기에게 맡겼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몰이해와 무지가 비극의 발단이었다.

 

주인은 노발대발했다.

 

“그런 식으로 살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그렇게 몸을 사리면서 사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내가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서도 어찌 그렇게 최소한도 못한 일을 행하였느냐?....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자기 소신껏 행할 줄 모르는 이 ‘안이한 자’(안전에만 급급한 자)를 내쫓아버려라”

 

세 번째 종은 좀 더 슬기롭게 행동했어야 마땅했다. 그는 주인의 재산을 그저 방치해 둔 셈이기 때문이다. 돈을 은행에 저금해 두기만 했더라도 원금을 잃을 염려 없이 약간의 이자를 보탤 수 있었고, 최소한 땅에 묻어 두는 것과 다름없이 안전하게 돈을 보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라는 표현은 유대인의 상거래 문서에서는 ‘나는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Cf. 빌라도가 왜 대역죄인인가? 예수님의 처형에 결정을 내렸으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종은 어쩌면 자신의 책임에 대한 자유와 해방감에 더 골몰한 나머지 주인의 의중과 주인의 뜻에 무관심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최선에 상충하는 최소한의 것을 거두는 우리라면? 오늘날의 우리 역시 예수님의 이 물음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의 행동 노선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이 소심한 종은 저축이라는 가장 온건한 방식의 투자조차 생각 못했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단 책임을 맡기시면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어떤 위험이라도 불사하는 것, 그 외에 우리가 선택할 다른 길은 없다.

 

“그렇게 몸을 사리면서 사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몸을 사리면서’를 바꿔 말하면 ‘소심하게’ 또는 ‘겁에 질려 절절 매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겁 많은 일꾼이 그 돈을 투자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땅 속에 숨겨두는 쪽을 택한 이유는 손실에 대한 두려움, 수치나 재정적 혹은 인간적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안전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보장되는 것이며, 그 약속이란 우리가 받은 은사를 순종적으로 투자할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이윤을 창출할 것이라는 내용임을 시사한다.

 

25:28-30

다른 곳에서는 어두움은 지옥을 가리키는 표상으로 사용되고 있다(8:12).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xander Solzhenitsyn)은,

“끊임없이 어디 다칠까 몸을 사리고만 산다면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무사 평온은 미신에 가깝다.

......

삶이란 모험을 불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헬렌 켈러

 

사랑하는 청년대학부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긴, 위탁한 달란트는 어떤 것이 있는가? 여러분의 달란트는 심겨지고 있는가? 하나님을 분명히 알자! 우리가 심지 않고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말 그대로 공짜이다. FREE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진 달란트에 대한 열매에 대해선 우리가 5달란트, 2달란트 받았던 이들의 삶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모험을 감행하라!

 

지금부터20년 후 당신은...하지못한일에대해더후회할것이다
그러니밧줄을풀어던지라탐험하라꿈꾸라발견하라-Mark Twain

 

여러분의 충성의 현장이 있는가? 여러분은 어디에서 충성하고 있는가? 여러분의 충성을 하나님께서 심지 않겠는가? 여러분의 충성을 공동체를 위해 심지 않겠는가? 여러분에게 모험과 충성의 현장이 있는가? 이 교회가, 청년대학부가 바로 여러분의 충성의 현장이길 소망한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통해 수 많은 열매가 맺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마태복음 25:14-30의 본문에 나타난 '달란트 비유'에서 달란트는 5만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으로 친다면 그 가치가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으며, 이런 달란트를 왜 하나님께서 맡기셔서 우리의 충성심을 보시고자 하시는 의도와 뜻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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