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않음은 듣지 않음이다
바울은 지난주에 이어 믿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 듣지 못한 사람은 믿을 수 없고,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들을 수 없다,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전할 수 없다(14-15a). 바울은 지금 우리가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셔야 하고 보내신 후에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하고 전파하더라도 들어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13-15절까지 바울의 6가지동사
보낸다-전한다-듣는다-믿는다-부른다-구원받는다
그래서 15절에선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여러 신체기관 가운데 입술이나 손이 아니고 발이라고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액션을 취하는 것,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것,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이사야 52:7에서 이야기하는 목적은 복음전도의 역할의 중요성을 성경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 첫단계가 바울과 바울의 동료전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신 사역의 마지막을 대표한다. 이렇게 복음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16-21절: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 책임이라는 것!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13절에 이야기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대다수의 이스라엘이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다(16절). 이스라엘은 단순히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기를 명백히 거절했던 것이다. 1-3단계까지 갔지만 4단계 믿음의 단계에서 문제를 일으킨것이다. 이사야가 ‘주여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사야 53:1에 언급된 대로, 하나님의 종이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지며, 고난을 받으리라는 메시지는 수용하기 힘든 대목이다. 마가복음 10:45에서 예수님은 그 자신의 가는 길이 고난의 길임을 이사야 53장에 근거하여 이해하셨다.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오는 메시야를 대망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고난받는 종의 메시지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벗어나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17절).
복음 선포는 성령이 주도하시는 사건이다. 성령은 복음의 말씀에 자신을 개방하는 자의 마음속에 믿음을 창조하신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 하지만 그 믿음이 생기는 방해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고정관념이고 편견이다. 이스라엘에겐 그런 고정관념이 있었다. 고난 받는 종, 메시야는 그들에겐 파격이었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이미지였다. 왕이자, 선지자이시며, 제사장이신 메시야(기름 부음받은 자)가 십자가의 사형틀에서 죽어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 십자가의 사형틀은 율법의 저주를 받는 자가 죽는 나무십자가였다. 나무엘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메시야가 죽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전통적인 율법과 그들의 관습을 추적해보면,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이해되는 측면이 부분적으로 있을 수 있다. 유대인은 수동적인 불순종보다 능동적인 불순종을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한이유가 이스라엘의 책임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명백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9-11장은 유대인과 복음에 대한 관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해선 면책권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복음을 구약을 통해 엄청나게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들음이 믿음으론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믿음을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생겨나는데. 복음에 대해 들으려고 하지 않은 그 고정관념과 편견이 그들을 불순종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가슴이 열리지 않으면 복음은 여러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여러분, 말씀을 들으면 분명히 믿음이 생긴다. 그것을 믿는가? 여러분이 낙심되어 있다가 누군가로부터 희망과 소망의 언어를 접했을 때 여러분에게 힘이 나지 않던가! 지쳐서 겨우 교회 왔는데, 말씀이나 기도회때의 기도를 통해 한 순간의 말 한 마디, 언어를 통해 힘이 불끈불끈 솟아날때가 없던가! 바로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
바울은 계속해서 19절에서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이스라엘이 복음을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에 근거해서 볼 때, 이스라엘이 은혜의 복음과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전혀 몰랐다는 것을 말도 안 된다.
19절: 신명기 32:21
20절: 이사야 65:1
이스라엘은 자신의 불신에 대해 핑계할 수 없다.
눅 15:11하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처럼 ‘내가 종일 손을 벌리노라’아버지의 마음이시다.
바울은 9-10장에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지못하고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게 지키시는 것과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는 양면성을 모두 동일하게 강조하는 구약의 인용을 통해 앞으로 11장에서 현재 이스라엘 대다수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순종에 빠져있지만, 장차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이스라엘 대다수가 다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설명할 것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
대학.청년 셀모임 나눔sheet
1.바울은 13-15절까지 바울의 6가지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보낸다-전한다-듣는다-믿는다-부른다-구원받는다
우리는 얼마나 이 6가지 동사중에 얼마나 말씀, 복음을 잘 듣고 반응하고 있는가? 당신의 말씀(설교)청취태도는 어떠한가? 평소에 당신은 수업중에나 강의중에 아니면 친구들과의 관계 가운데 얼마나 잘 경청하는가? 혼자서만 말하는 독설가는 아닌가? 건성건성으로 남의 말을 듣진 않는가? 잘만 듣고 반응해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2.말씀을 들음에서 믿음이 생기고,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청함에서 자란다는 것을 배웠다. 당신이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요소는 무엇인지 돌아보라. 당신이 가진 말씀에대한, 설교자나 리더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말씀을 들리지 못하게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하라. 유대인은 수없이 말씀을 들었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책임임을 기억하라. 당신도 제2의 유대인이 될 수있음을 유념하며 말씀에 집중치 못하게하는 태도,습관,고집,성격,자세를 나누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라!
(예/설교자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있다면 그분을 위해 기도해보라, 설교자와 멀어지면 당신은 은혜의 자리에서 분명 멀어진다)
3.대학청년으로서 당신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더 잘 듣고 더 많이 들어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 이번주부터 시작하고 결단해야할 행동과 지침을 결정하고 나누라.
(예/주일 대예배 참석, 오후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참석, 믿음으로 반응하기위해 지각하지 않고 10분 일찍 미리와서 기도로 예배준비하기, 대청부 기도회 참석, 수련회참석, 셀모임을 위해 기도하기)
4.올해에는 더 말씀에 집중하여 믿음으로 반응하는 셀, 대학부, 청년회가 되도록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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