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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로마서

로마서 강해㊺ 16장1-27절, 마지막 인사말Epilogue

by Message.K 2021. 11. 17.

 

로마서의 마지막장 16장은 바울의 마지막 인사(16:1-23)와 송영(16:25-27)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6:1-23의 구조는 분명하다.

 

1)1-2절: 바울은 뵈뵈를 추천한다.

2)3-16절: 로마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들어 개인적인 인사를 한다.

3)17-20절: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

4)20-23절: 바울의 친구들이 전하는 인사말이 포함되어 있다.

5)24-27절: 마지막 송영

 

 

1-2절: 로마서의 전달자 뵈뵈에 대한 추천서

  고린도에서 쓴 이 로마서는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요즘은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나 이메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다. 고대에는 주로 인편을 이용했다. 마라톤 선수도 편지배달부였다. 로마서를 로마교회에 전달해준 인물은 여성이었는데, 바로 뵈뵈였다.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집사로 번역)이자, 자선사업가요 복지가로 보이는 뵈뵈를 바울은 추천한다. 당시 여행자는 추천서를 가지고 있으면 도움을 받기가 더욱 용이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권이나 비자가 없으면 해외여행을 할 수 없듯이, 추천서 없이는 여행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 뵈뵈를 추천하면서 바울은 그녀를 영접하라고 하는데, 이 말은 ‘환대하고 숙식과 도움을 제공하라’는 의미이다. 그녀는 루디아처럼 자기재산으로 바울을 비롯한 많은 전도자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추천받을 수 있는 삶, 신앙, 인생이 되어야!

 

 

 

 

3-16절: 바울의 로마 성도들에 대한 인사

  바울은 로마교회에 인사를 한다. 바울의 인사에는 26명의 개인(2명은 무명, 두 가족, 최소한 3 개의 가정 교회가 등장한다.)

바울의 인사명단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를 이를 통해 명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바울의 사역방식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독불장군식의 사역자가 아니었다. 바울은 언제나 팀으로 사역했고, 언제 많은 사람과 관계망을 통해 사역했다.

Ex)모세의 독불장군 사역-이드로의 제언,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만부장

 


 또한 26명중에서 여자가 무려 9명이나 된다. 바울의 동역자들 중에 여성들이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중 4명인 마리아, 드루배나, 두르보사, 버시를 특별히 선택해 ‘많이 수고했다’고 칭찬했다. 그들은 강력한 수고와 노력과 희생을 주님과 복음과 바울을 위해 바쳤다. 주님은 누가 더 많이 주를 위해 헌신했는지 알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는 혼자서 세울 수 없다. 남녀노소 함께 세워가는 것이다.

우리공동체도 함께 세워가는 것을 기억하라. 대학청년회 주보에 함께 섬기는 이들을 적은 이유가 있다. 여러분의 한 기능, 한 사역, 한 파트가 예배를 만들어가고, 공동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입장만 생각하면 공동체는 더 이상 나아지는 것이 없다. 누군가의 섬김과 헌신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편안하게 안식하며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00년전 이 땅에 복음의 황무지였던 한반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 위해 사투를 벌인 선교사들과 영적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대구의 제일교회당, 동산병원의 터는 100년 전 원래 공동시체투기소였다. 선교사가 그 버려진 땅을 사서 병원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그러면서 지금의 발전과 복음의 진보가 있는 것이다.

  제주비전수련회 가운데 우리 신앙인의 발걸음을 통해 제주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귀한 기회가 되길 소원한다. 우리의 기도와 말씀의 잔치를 통해 그곳에 그리스도의 주권이 더 온전히 선포되길 기도한다.


 

둘째, 동역자 명단을 통해 로마 교회의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을 볼 수 있다. 로마교회는 인종적으로 다양했다. 유대인, 이방인.

26명의 명단 가운데 브리스길라, 아굴라, 친척 안드로니고, 유니아(7절), 헤로디온(11절)은 유대인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이방인이었다. 로마 교회는 사회계층적으로는 다양했다. 노예출신도 많았고, 권세 있는 집안 사람들도 있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중, 브리스길라는 아내였다. 아내보다 남편이 더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남편보다 아내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혁신적인 것이다. 복음이 혁신적인 것처럼!

 


  코닥 후지와 함께 세계3대 필름회사중 하나는 아그파 필름이었다. 1936년 세계최초 컬러 필름을 개발한 독일 회사로 작곡가 멘델스존의 아들 폴 멘델스존이 만든 회사였다. 2001년에 최대 흑자를 기록했던 이 회사는 2005년에 파산하고 말았다. 불과 4년만에 회사가 문을 닫았다. 다른 회사들은 디지털 형태로 변화했는데, 전통적 필름을 버리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일어난 일이다.

 

  교회도, 복음도 변화에 걸맞게 움직여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영국의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는 찰스 해든 스펄젼 목사님의 일화이다.

수만명이 모이는 교회를 물려받은 후임자는 이전에 목사님이 목회했던 방식을 고수했다. 십년이 지나도, 이십년이 지나도...

지금 그 교회의 성도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고 런던의 한 기자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London was changed!

Society was changed!

But Church was not changed!


 바울의 변화는 복음으로 인해 기인되어졌다. 그리고 복음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암블리아(8), 우르바노(9), 허메(14), 빌롤로고, 율리아(15): 노예출신 자유인들.

-이 사람들은 노예, 종이었다. 관료주의체제에서 종들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다. 하지만, 복음이 주인과 종을, 양반과 상놈을 하나되게 한 것이다.

빌레몬서: 빌레몬은 주인이고, 집 나가 도망친 종놈은 오네시모였다. 바울은 빌레몬에서 편지를 쓰면서 오네시모가 잘못했지만, 그가 복음을 통해 변화되었으니 그를 받아주라고, 용서해주라고 한 내용의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이다. 복음은 변화의 기폭제이다. 복음은 변화의 촉매이다. 복음은 변화 그 자체이다.



 바울과 바나바: 원래 바울이 소명이 받을 때 바나바가 그를 용납하고 예루살렘교회의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바울은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포악한 폭력주의자, 핍박자인 바울을 누가 회심했다고 믿겠는가! 하지만 초대교회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바나바가 있었기에 바울이 있었다. 초창기에는 성경에 보면 ‘바나바와 바울’(행 13:7)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13:13을 걸쳐 15:2로 가면, ‘바울과 바나바’로 바뀐다. 이제 리더십이 바나바에게서 바울로 옮겨진 것을 본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역사이다.

 

 

  변화와 개혁과 변혁의 역사가 바로 복음의 역사! 우리 안에도 그러한 역사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담당교역자 목사와 청년 대학부 여러분의 관계이지만, 나중에는 여러분이 저보다 훨씬 더 영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나바는 위대했다. 왜? 리더를 키우는 리더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도, 여러분들도 리더를 키우고 양산하는 리더가 되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죽어야 여호수아가 나온다는 사실! 모세가 죽지 않고 떠나지 않으면 아무리 여호수아가 나설려고 해도 안 된다는 사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10), 나깃수의 권속(11)들은 상류층.

아리스도불로(10)는 헤롯대왕의 손자이자, 글라디우스 황제의 친구, 나깃수(11)는 글라디우스 황제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부유한 세도가였다. 남성보다 오히려 여성이 더 많은 로마교회였다. 건강한 교회는 로마교회처럼 다양성과 통일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교회론에서 지역교회(Local church)와 선교단체(Para church)가 있다. 지역교회는 이러한 다세대의 다양한 연합이 특징이다. 하지만 선교단체는 그렇지 않다.



UBF의 교회론, 네비게이토의 동일한 세대들, 연령대만 모여 예배하는 교회는 불완전한 교회이다. 대전에 카이스트대 근처에 과학자들만 모이는 교회나 서울에 연예인들만 모이는 교회는 여러가지 장단점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폐쇄성이 있어선 아니된다는 것, 교회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오는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하겠다. 교회는 다양한 계층, 다양한 계급(?),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는 포용성이 존재해야 한다. 그 다양성이 교회의 활기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그 다양성이 통일성unity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교회이다. 교회는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될 때 훨씬 더 교회로서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었기 때문이다.

 

 

 

17-20절: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승리의 약속, 은혜 구하는 기도

 바울은 개인적인 인사말을 멈추고 거짓 교사에 대해 경고한다.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대한 바른 교훈을 가르쳐 주는 것과 함께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첫째, 바울은 거짓 교사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외적인 박해보다 오히려 내적인 거짓 교사들의 이단적인 가르침이다. 그래서 바울이 선교 여행 중 경험한 거짓 선생들에 대해 미리 경계하는 것이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당부하는 것이다.

 

17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침투하게 되면, 바른 교리를 무너뜨리고, 바른 윤리적 삶을 망가뜨려 기독교 공동체를 파괴시킨다.

 

 

 둘째, 발은 거짓 교사들과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배만 섬긴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말한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없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영적 분별력을 키우라고 말한다.

 

19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창 3:15의 약속의 성취이다. 사탄에 대한 메시야의 승리를 확증.

 

초림: 사탄의 결정적이 패배

재림: 사탄의 완전한 패배

 

바울의 교회의 이러한 승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은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20절).

 

 

21-23절: 바울 동료들의 로마 성도들에 대한 인사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 6명을 기록한다.

 

첫째, 나의 동역자, 디모데는 바울의 오른팔과 같은 사람이었다. 루스드라 출신의 디모데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때 바울의 전도팀에 합류하여 계속 바울과 동행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고린도에 체류하면서 이 로마서를 쓰는 동안에도 바울과 함께 있었다(행 20:3-4). 고린도후서, 데살로니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에는 바울의 공동 저자로 소개된다.

둘째, 누기오는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 교사인 구레네 사람 루기오(행 13:1)거나, 혹은 복음서 저자인 누가라는 견해가 있다. 어떤 이는 누기오가 누가의 애칭이기에 누가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째, 야손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소동이 일어났을 때 바울을 도왔던 사람(행 17:5-9)이다.

넷째, 소시바더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그리스를 떠날 때 바울과 함께 동행한 베뢰아 사람이다.

 

다섯째, 더디오는 바울의 로마서 편지의 구술을 받아 적는 사람이다.

“더디지만 열심히 받아 적겠습니다.”

 “그래서 그대 이름이 더디오란 말인가?”

 

여섯째, 가이오는 ‘바울과 온 교회의 식주인’이라고 소개된다.

일곱째, 에라스도는 ‘이 성의 재무관’이라고 말하는데, 고린도시의 책임있는 지방관리로 추정된다.

여덟째, 구아도는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 나오지 않아 신원을 알 수 없는, 바울의 동료신자라고 밝힌다.

 

 

 

25-27절: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영광송

  바울의 로마서 마지막은 복음에서 시작한 것처럼 복음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서론에선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라고 했는데, 결론에서는 ‘나의 복음’이라고 이야기한다. 바울의 나의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하시는 이신칭의의 복음이다. 바울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다. 이 복음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1)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된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다. 이 복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드러난 것이다. 이 복음의 혜택의 대상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다.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는’ 것이다(1:5; 15:18)

 

 

  우리는 복음으로 믿어 구원받고, 복음으로 견고해져 간다. 복음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예수님 안에서 성장해가고 견고해져 가는 데도 필요하다.

  복음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전한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복음이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찬양: 창조의 아버지G


1) 물론 선지자들은 과거에 그리스도에 관해 많은 예언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복음의 밝은 빛에 비해 너무 희미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것들이 과거에는 숨겨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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